2022. 9. 2. 13:48ㆍ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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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5년 무자(1888) 11월 16일(계해) 맑음
25-11-16[36] 흥복전에서 미국 공사를 접견할 때 행 도승지 민병석 등이 입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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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시(申時).
상이 흥복전(興福殿)에 나아가 미국 공사(美國公使)를 접견하였다. 이때 입시한 행 도승지 민병석(閔丙奭), 가주서 이석영(李錫泳)이 차례로 모시고 섰다.
상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남면(南面)하여 교의(交椅) 앞에 섰다. 이어 사관에게 공사를 인도하여 들어오도록 명하였다. 공사가 서쪽 계단으로 당에 올라 기둥 안쪽으로 들어가 타공례(打恭禮)를 행하자, 상이 답읍(答揖)하였다. 이어 말을 전하라고 명하고 이르기를,
“이 엄동(嚴冬)에 머무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가?”
하니, 공사가 아뢰기를,
“다행히 별 탈 없습니다.”
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제주(濟州)의 경치를 유람하였는데 풍토와 사람들이 어떠하던가?”
하니, 공사가 아뢰기를,
“귀국의 호조체문(帖文)을 받들어 길에 올라서 가는데 부산에서 배를 탈 적에 그곳의 백성들이 서양인을 처음 보고는 외모가 이상하다고 모두 달아나 배에 태워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일본의 소선(小船)을 타고 제주에 갔는데, 산골 마을의 백성들이 가게에 들여 먹을 것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체문을 가지고 관장(官長)에게 들어가 보고하여 이르기를, ‘귀국의 대군주(大君主)가 호조체문으로 우리가 유람할 수 있도록 해 주었는데 너희들이 이와 같이 박대하니, 이는 왕명을 어기는 것이다.’라고 하자 그제서야 백성들이 다소 안심하였습니다. 또 현관(縣官)이 보호하고 편안하게 대해 주어 각처의 산과 섬을 모두 관광할 수 있었습니다만, 한라산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려 하자 그곳의 백성들이 오르지 못하도록 막아 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산 위에 세 개의 못이 있어 그 물이 본래 약수로 쓰여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알 수가 없으니 한번 보고 싶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산 위에 세 개의 못이 있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만약 올라가서 보면 그 물이 범람하여 사람들이 모두 빠져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은 것이다.”
하니, 공사가 아뢰기를,
“물 속에 사나운 물고기 화석(火石)이 있으면 이런 괴변(怪變)이 생기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만약 귀국의 고위(高位) 신하들과 한번 가서 본다면 죽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뜻을 따라 주고 싶지만 빠져 죽을 변고가 있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공사가 기어이 이런 마음을 갖는다면 내년 봄을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공사가 아뢰기를,
“제주는 산을 끼고 있고 물을 두르고 있으며 토산물(土産物)도 많습니다. 별도로 항구를 열어 각국과 통상(通商)을 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바꾸어 백성들이 부유해지고 군(郡)이 실해지고 재용(財用)이 모두 풍족해지고 인심이 서로 화합할 것이니, 매우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것은 쉽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하였다. 공사가 이르기를,
“한번 제주를 보니, 대단한 요해처(要害處)였습니다. 계책을 세워 지킨다면 비록 적군이 침범해 오더라도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어 시설을 설치할 기계의 도면(圖面)과 설명을 기록한 종이를 우러러 올리니, 이를 설치하여 방어한다면 비록 백만의 군병이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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