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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나라 때 사신이 천자를 위해 백 가지 상서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하여 ‘백상루’로 이름했다고 한다.
고전번역서 > 신증동국여지승람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5권 > 평안도 > 최종정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5권 / 평안도(平安道)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 [DCI]ITKC_BT_B001A_0560_010_0080_2000_006_XML DCI복사 URL복사 동으로 고자성군(古慈城郡) 경계와 1백 30리이고, 남으로 희천군(熙川郡) 경계와 2백 70리이고, 함경도 함흥부(咸興府) 경계와 3백 6리이고, 서로는 위원군(渭原郡) 경계와 36리이고 북으로 압록강(鴨綠江)과는 1백 3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3백 61리이다. 【건치연혁】 옛날에는 독로강(禿魯江)이라 했는데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에 만호(萬戶)를 두고 18년에는 지금 이름으로 고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 진변(鎭邊)ㆍ진성(鎭成)ㆍ진안(..
2023.11.17 -
여섯 자[尺]를 한 보(步)라 했는데, 지금 보통 사람으로 시험해 보면 두 번 발을 떼는 땅의 거리가 여섯 자에 차지 않으니
1리 = 392미터=360으로 나누면 1보가 1.08미터 1리= 360보(1보=두번 발을 떼는 땅의 거리) 키 작은 성인 기준 두걸음으로 조선의 리수는 360*(1보=두걸음=6자)1.5m=540m 조선의 리수는 청나라 리수보다 크다. 고전번역서 >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12권 > 인사문 > 최종정보 성호사설 제12권 / 인사문(人事門) 동시 스크롤 전ㆍ지ㆍ산ㆍ장ㆍ탕(田地山場蕩) [DCI]ITKC_BT_1368A_0130_010_0640_2002_005_XML DCI복사 URL복사 옛날에 여섯 자[尺]를 한 보(步)라 했는데, 지금 보통 사람으로 시험해 보면 두 번 발을 떼는 땅의 거리가 여섯 자에 차지 않으니, 그 자가 길고 짧거나 혹은 사람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어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중국에..
2023.11.16 -
東川王墓 馬山面 漢王里에 잇는데 周圍六百七尺四寸 高가 一百二十六尺으로서 實로 山과 가튼 規模宏大한 古墳이다.
서우 제13호 > 時事日報 起 十月十六日 止 十一月十五日 잡지명발행일기사제목기사형태 서우 제13호 1907년 12월 01일 時事日報 起 十月十六日 止 十一月十五日 소식 時事日報 起 十月十六日 止 十一月十五日 ○ 幸行仁川(十月 十六日) 皇上陛下와 皇太子殿下셔 本日上午十一時에 動駕사 南大門停車場에셔 玉車를 乘시고 仁川에 幸行사 日本 皇太子殿下를 會見시고 皇帝陛下셔 下午 三時三十分에 還御시고 皇太子殿下셔 南大門停車場에셔 日本 皇太子의 施館으로 伴往셧다가 四時三十分에 還御셧다더라. ○ 義魁砲殺春川郡 守備隊에셔 義徒의 魁首池敬道 等 十一名을 砲殺얏다더라.(以上 內報) ○ 軍艦新造建議米國 海軍大將 주우에룩氏가 潛水艇 四隻과 水雷驅逐艇 六隻과 裝甲巡洋鑑 及 石炭運送船 各三隻을 新造기로 建議..
2023.11.16 -
단군묘 강동 서쪽 3리쯤에 둘레가 410자(尺)인 묘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전번역서 > 명고전집 > 명고전집 제3권 > 소계 > 최종정보 명고전집 제3권 / 소계(疏啓) 승정원에서 단군묘에 복호(復戶)를 두어 수호하기를 청한 계사〔喉院請檀君墓置戶守護啓〕 [DCI]ITKC_BT_0582A_0040_010_0050_2018_002_XML DCI복사 URL복사 단군(檀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출현하신 성인으로 역사서에 편발(編髮)과 개수(蓋首)의 제도, 군신과 상하의 구분, 음식과 거처의 예법이 모두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단군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실로 영원히 잊지 못할 은택이 있는 것이니, 존경하고 떠받들기를 지극히 높고 완비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신이 강동 현감(江東縣監)으로 있을 때 고을 관아 서쪽 3리쯤에 둘레가 410자(尺)인 묘가 있는 것..
2023.11.15 -
우왕이 즉위한 지 20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가 왕씨(王氏)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면
임해군 사망 1609년 6월 3일 (향년 36세) 조선 경기도 교동면 (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광해군이 고변을 들었을 때야 "내 형이 그럴 리 없다." 했지만 삼사가 절도 안치를 청하자[17] 혐의를 기정사실화하여 유배한 뒤 옥사를 벌였다. 그리고 죄가 없을 일말의 가능성조차 무시한 채 종들의 입에서 자백이 나올 때까지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고, 그나마도 종 1명이 고문을 이기지 못해 군기를 땅에 묻었다고 진술했는데 왕은 "바보가 아닌 이상 벌써 파냈을 거다."라며 자신의 머릿속 각본에 따라 자백할 것을 강요했다. 대사헌 정구, 이덕형 등이 전은론을 펴자 못마땅하게 여긴 반면 정인홍이 임해군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기뻐했다. 그러니까 임해군이 역적이라는 ..
2023.11.15 -
일본은 自北岸去拘邪韓國七千里 거리에 있다.
慶星大 김해(金海) 대성(大成)동 고분群 3차 조사에서 (부산(釜山) = 연합(聯合)) 金官가야(伽倻)의 국가 형성 이전 단계로 알려져 있는 拘邪國의 집단취락지로 추정되는 기원전 2-1세기께의 環濠유적이 경남(慶南) 김해(金海)시 대성(大成)동 고분群에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 고전번역서 > 동사강목 > 동사강목 제2하 > 최종정보 동사강목 제2하 무신년 신라 실성왕 7년, 고구려 광개토왕 17년, 백제 전지왕 4년(진 안제 의희 4, 408) [DCI]ITKC_BT_1366A_0090_000_0490_2002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춘정월 백제가 여신(餘信)으로 상좌평(上佐平)을 삼았다. 백제가 6좌평 위에 다시 상좌평을 두어 지금의 총재(冢宰)와 같다 여신을 임명하고..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