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명청과의 외교(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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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宋)나라 때 사신이 천자를 위해 백 가지 상서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고 하여 ‘백상루’로 이름했다고 한다.
고전번역서 > 신증동국여지승람 >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5권 > 평안도 > 최종정보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5권 / 평안도(平安道)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 [DCI]ITKC_BT_B001A_0560_010_0080_2000_006_XML DCI복사 URL복사 동으로 고자성군(古慈城郡) 경계와 1백 30리이고, 남으로 희천군(熙川郡) 경계와 2백 70리이고, 함경도 함흥부(咸興府) 경계와 3백 6리이고, 서로는 위원군(渭原郡) 경계와 36리이고 북으로 압록강(鴨綠江)과는 1백 3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3백 61리이다. 【건치연혁】 옛날에는 독로강(禿魯江)이라 했는데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에 만호(萬戶)를 두고 18년에는 지금 이름으로 고쳐 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 진변(鎭邊)ㆍ진성(鎭成)ㆍ진안(..
2023.11.17 -
동선생(董先生)의 조선부는 단지 서쪽 지방 일대만 기록했을 뿐입니다.
조선왕조실록 > 중종실록 > 중종 32년 정유 > 3월 15일 > 최종정보 중종 32년 정유(1537) 3월 15일(갑오) 32-03-15[05] 근정전에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다 [DCI]ITKC_JT_K0_A32_03A_15A_00050_2005_042_XML DCI복사 URL복사 사시(巳時). 두 사신이 오므로 상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衮龍袍) 차림으로 근정전 문 밖까지 나가 맞이하였다. 서로 사양하며 들어와 근정전 안에 이르러 각기 읍(揖)하는 예를 하고나서, 상이 말하기를, “듣건대 대인들께서 17일에 길을 떠나려 하신다니, 과인이 매우 서운합니다. 과인을 위해 다시 며칠 더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하니, 두사신이 말하기를, “현명하신 왕을 위해 5~6일이나 머물렀는데 어찌 감히 또 다시 ..
2023.06.08 -
강희제(康熙帝)의 태후도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다.
고전번역서 >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6권 > 경사문 > 최종정보 성호사설 제26권 / 경사문(經史門) 동인입중국(東人入中國) [DCI]ITKC_BT_1368A_0270_010_0310_2002_010_XML DCI복사 URL복사 동인(東人)으로서 중국에 들어가 뜻을 이룬 자는 금(金)의 선조로서 사가(史家)가 평주(平州) 사람이라 일컬었는데, 평주는 바로 지금 영흥(永興)이다. 혹자는, “바로 평산(平山)인데, 황제의 묘소라 유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금국 황제의 선묘(先墓)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자로 중국에 들어가 존귀하게 된 자는 원 순제(元順帝)의 황후(皇后) 기씨(奇氏)와 명 태종(明太宗)의 비(妃) 권씨(權氏)ㆍ한씨(韓氏)같은 이들인데, 이들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거니와 명 선..
2023.05.17 -
명나라 여러 신하들은 단지 황상(皇上)이라고만 칭하였으니, 이는 다 역사에 빛나는 일이다.
고전번역서 >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5권 > 경사문 > 최종정보 성호사설 제25권 / 경사문(經史門) 존호(尊號) [DCI]ITKC_BT_1368A_0260_010_0610_2002_010_XML DCI복사 URL복사 주(周) 나라 양왕(襄王)이 정(鄭) 나라에 나가 살면서 제후에게 알리기를, “불곡(不糓 제후가 자신을 낮춰서 하는 말)이 부덕하여 도읍을 정 나라 땅에 두게 되었다.” 하였는데, 《춘추》에 이것을 예(禮)라 한 것은 그 명칭을 낮출 줄 알았기 때문이다. 《도덕경(道德經)》에, “왕후(王侯)는 스스로 고(孤), 또는 과(寡)라고 칭한다.” 하였는데, 불곡이란 천(賤)함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천도(天道)는 가득 찬 것을 무너뜨려 겸손을 보태 주고 지도(地道)는 ..
2023.05.17 -
「노추가 강남(江南)을 모두 섬멸하고 나면 조선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과도 같다고 하였다.」 하였으며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 세종 12년 경술 > 3월 6일 > 최종정보 세종 12년 경술(1430) 3월 6일(병오) 12-03-06[02] 종학의 관원을 박사라 일컫고 성균관의 관원으로 겸임케 할 것을 건의하다 [DCI]ITKC_JT_D0_A12_03A_06A_00020_2005_007_XML DCI복사 URL복사 예조에서 아뢰기를, “삼가 살피옵건대, 송나라 태종(太宗)이 황질(皇姪)들을 위하여 사부(師傅)를 두니, 집정(執政)이 아뢰기를, ‘환위(環衛)하는 관원은 친왕(親王)에 견주어서는 안되니 마땅히 등급(等級)을 내릴 것입니다.’ 하므로, 이에 교수(敎授)라고 명칭하였더니, 고종(高宗)이 강남(江南)으로 천도하여서는 종학(宗學)을 임안부(臨安府)에 세워 명칭을 종박사(宗博士)라고 고쳤다가, 후..
2023.05.15 -
명나라를 더러 강남(江南)이라고 일컫기도 하며 조선(朝鮮)을 더러는 고려(高麗)라고 일컫기도 하니, 이것은 역시 서로 호칭(號稱)하는 말이오.”
인조 24년 병술(1646) 12월 22일(갑오) 24-12-22[01] 역관 이형남ㆍ한상국을 파견하여 왜사를 따라가 대마도주를 위문하게 하다 [DCI]ITKC_JT_P0_A24_12A_22A_00010_2005_020_XML DCI복사 URL복사 역관(譯官) 이형남(李亨男)ㆍ한상국(韓相國)을 파견하여 왜사(倭使)를 따라가 대마도주(對馬島主)를 위문하게 하였다. 【도주가 강호(江戶)에 가서 오래 머물다가 대마도로 돌아왔기 때문에 사신을 파견하여 그가 먼 길 다녀온 것을 위로하였다.】 당초 왜사가 온 것은 전적으로 치조(致吊)하기를 바라서인데, 【도주가 새로 모상(母喪)을 당했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조정이 내간상(內艱喪)에는 조문한 그전의 규례가 없고 뒷날의 폐단만 있다고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귤왜(..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