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황제 관련 기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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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太王 전하 재위 시에 청국 膠州灣 靑島 소재 가옥을 구입하였고,
주한일본공사관기록 & 통감부문서 > 統監府文書 5권 > 三. 日米特許條約 > (10) 膠州灣所在家屋ニ關スル件 원문 국역 글자 크게글자 작게이전 기사다음 기사출력 글자 크게글자 작게 (10) 膠州灣所在家屋ニ關スル件 李王職機發第一二號 去ル九月八日付機第二○號ヲ以テ御照會有之候李太王殿下御在位ノ際淸國膠州灣靑島所在家屋ヲ購入シ且ツ之ヲ趙南昇ヘ下賜セラレタル件ニ關シ李太王附事務官津輕英磨ヨリ別紙甲號之報告有之候ニ付右寫及御送付候也 明治四十四年十一月二十一日 李王職次官 小宮三保 印 朝鮮總督府 總務部長官 小松綠 殿 [李太王所屬事務官 津輕英磨의 上件 報告書] 膠州灣所在家屋下賜御沙汰書ノ眞僞幷該家屋購入ノ事情ニ付當方ニ於テ調査シタル結果左ノ如シ 一. 趙南昇ニ對スル該家屋下賜ノ件 該家屋ヲ趙南昇ニ下賜セラレタル事情ニ付テ殿下ニ伺ヒタルトコロ殿下ハ左ノ如ク語ラ..
2023.03.27 -
황제는 북경과 도쿄에 전보를 보내 3중 공수 동맹을 요청하고 서울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사료 고종시대사 27 > 1904년(고종 41년) 1월 18일 > 미국 『The New York Times』, 심각한 한국 상황을 전함 기사제목 미국 『The New York Times』, 심각한 한국 상황을 전함 연월일 고종 41년(1904년, 淸 德宗 光緖 30年, 日本 明治 37年) 1월 18일 심각한 한국 상황 평양에서 대규모 봉기 예상-미국은 서울에 기관총 런던, 1월 18일-『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의 도쿄 특파원은 서울의 러시아 공사인 파블로프가 한국군이 중국 국경을 반복적으로 침범하고 주민들에 대해 과도한 행동을 취했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동북 국경에 있는 러시아 세관 관리들은 비슷한 사건을 보고하고 한국인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3.03.10 -
길가에서 엎드려 통곡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었다. 이는 모두 망국의 한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경난록() > 기미년(1919년) 기미년(1919년) 기미년(1919년) 12월 20일註 023 태황제(太皇帝)께서 승하하여 조야(朝野)에서 애통하였다. 삼년복을 입고 홍릉(洪陵)에 장사를 지냈다. 흠위(廞衛, 제왕의 장례 행렬에 쓰는 도구)와 의절(儀節)은 한결같이 옛 법식을 따라 행하였다. 경향(京鄕) 각지의 선비와 남녀 백성들이 궐문 밖에서 능소(陵所)까지 4~5십리를 길게 이어져 있었고, 길가에서 엎드려 통곡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었다. 이는 모두 망국의 한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능(陵) 위의 비문(碑文)을 ‘대한국대황제(大韓國大皇帝)’라고 써서 존숭하였는데 저들 쪽에서 금지하고 비석을 세우지 않고 능 곁에 묻어 두었다. 전(前) 참령(參領) 고영근(高永根)이 이를 분개하며 충직한 마음을 ..
2023.01.13 -
양궁은 거액의 내탕금을 들여 널리 남녀학교를 세우고 서양인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교육시키고자 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별책 1 91권 독립신문 > 上 海 版 > 제12호 (대한민국 4년 11월 4일) 제목 제12호 (대한민국 4년 11월 4일) 제12호 (대한민국 4년 11월 4일) 論說 雜報 왜인에 의한 閔后 시해사건 秘史 을미년 왜인들이 한국 왕후 민씨를 시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시해의 원인을, 민후가 聯俄排日을 도모하자 극단적인 방법을 쓴 것이라 하였고, 세인들은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미국인 언더우드 목사가 그 親信에서 비밀리에 전한 바에 따르면 사건의 내용은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에 따르면 총명하고 재기가 넘친 민후는 당시 한국의 군신 가운데는 감히 따를 자가 없는 여걸로 묘사되고 있다. 다만 이전 정치에 간섭하는 과정에서 실덕이 없지 않았으나, 이는 ..
2022.12.12 -
1894년 勅令 第2號로써 朕이 正殿에 나아가 視事할 것이니 여러 臣下들은 條例를 만들어 議政府에서 議定하여 들이라고 하다.
사료 고종시대사 21 > 1897년(고종 34년) 10월 12일 > 고종, 원구단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등극함 기사제목 고종, 원구단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에 등극함 연월일 고종 34년(1897년, 淸 德宗 光緖 23年, 日本 明治 30年) 10월 12일 자시(子時). 대가(大駕)가 왕태자와 원구단(圜丘壇)에 친히 제사 지낸 뒤에 황제(皇帝)에 등극하였다. 이때 입시한 비서원 경 김영목(金永穆), 비서원 승 김홍륙(金鴻陸)ㆍ강우형(姜友馨)ㆍ정세원(鄭世源)ㆍ홍우상(洪祐相), 비서원 낭 조기하(趙夔夏)ㆍ이우만(李愚萬)ㆍ신헌균(申憲均)ㆍ김춘수(金春洙), 규장각 직학사 김승규(金昇圭), 대제 민경식(閔景植), 홍문관 시독 이범석(李範錫)ㆍ이범찬(李範贊)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장례가 외판(外辦)을 무..
2022.12.04 -
갑술년(1874, 고종 11) 황태자가 탄생하여
경난록() > 갑술년(1874) 갑술년(1874) 갑술년(1874, 고종 11) 황태자가 탄생하여 조야(朝野)에서 칭경(稱慶)하고 나라에 사면령을 크게 내리고 증광시(增廣試)를 설시하여 취사(取士)하였다. 화기(和氣)를 맞아 저궁(儲宮, 황태자)의 무궁한 복록을 기원하는 일을 급선무로 삼고 무녀와 술객(術客)을 뽑으니, 이들이 궐내에 가득 찼다. 북 치는 소리가 내전(內殿)에서 끊이질 않았고 척전법(擲錢法)으로 길흉화복을 점치는 술수가 궐문 밖에 어지럽게 진설되었다. 그들은 모두 초무(楚巫, 무당)와 당거(唐擧)註 009로서 과거와 미래를 알고 흉한 일을 피하고 길조를 성취하도록 하였다. 또 벼슬아치 중에 홍승지(洪承旨)의 신령스러운 경전과 정참판(鄭參判)의 총령(叢鈴)註 010이 있었다. 마침내 이궁(..
2022.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