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조선 병력(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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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의 원수(元數)가 3만여 명인데 추종인을 합하면 10만여 명이 됩니다.
조선왕조실록 > 중종실록 > 중종 31년 병신 > 7월 17일 > 최종정보 중종 31년 병신(1536) 7월 17일(경오) 31-07-17[08] 병조 판서 윤임 등이 대열 진을 치는 것에 대해 건의하다 [DCI]ITKC_JT_K0_A31_07A_17A_00080_2005_041_XML DCI복사 URL복사 병조 판서 윤임등이 아뢰기를, “11일 대열을 마친 후에 곧바로 풍양궁 숙소로 행행하시면, 군사들은 그날 오후에 군진을 파하고 다음날 강무 장소에 다 도착하게 해서 먼저 가까운 곳인 천점(泉岾)으로부터 시작하여 차차 강무하게 하는 것이 삼공의 뜻이니,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들의 생각으로는 군사의 원수(元數)가 3만여 명인데 추종인을 합하면 10만여 명이 됩니다. 이 10만여의 무리는 해가 길 ..
2023.06.21 -
병인양요 ㅡ 추격하여 100여 명을 죽이고 병장기를 모두 빼앗았다. 아군 사상자는 4명이었는데, 공이 시신을 잡고 애통해하고 상처의 피를 입으로 핥으니 모든 군사들이 감동하였다.
병인양요 9월 18일엔 프랑스 측이 함정 2척과 해군 육전대원들로 한성근과 지홍관이 병사 150명과 함께 지키던 문수산성을 공격했다. 프랑스 해군이 빠르게 사격하여 전사자 3명[19]에 부상자 2명을 내었다. 조선 군대는 후퇴하고 프랑스 해군은 문수산성을 불살라버렸다. 조선군은 프랑스 해군에게 사격을 퍼부어 50~ 60명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했으나[20], 조선군 스스로도 자신들이 총을 쏘자 프랑스 군인들이 그냥 엄폐하였는지, 부상당했는지 아니면 사망했는지도 가늠하지 못하였다. 이 패배로 사실상 강화도는 프랑스 해군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시원과 이지원 형제가 분노하여 음독 자살하기도 했다. 이어 9월 22일에 광성진과 갑곶진을 점령해 불태웠고 조선 배를 보이는 대로 포격해 격침시켰다. 조정은 급히 ..
2023.06.20 -
귀조(貴朝)에서 병선 4만여 척을 거느리고 가서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한다.」고 하니, 이에 온 섬의 사람들이 놀라고 의혹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분서주(東奔西走)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 세종 8년 병오 > 5월 21일 > 최종정보 세종 8년 병오(1426) 5월 21일(갑인) 08-05-21[02] 대마도에 다녀온 석견주의 사물 관압사 대호군 이예가 복명하며 올린 계문 [DCI]ITKC_JT_D0_A08_05A_21A_00020_2005_005_XML DCI복사 URL복사 석견주(石見州)의 사물 관압사(賜物管押使)인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여 계하기를, “종정성(宗貞成)은 예(禮)를 갖추어 명령을 맞았으며, 내리신 부물(賻物)을 받고는 신 등을 대접함에 심히 후하여 45리(里)나 되는 훈라관(訓羅串)까지 나와 전송(餞送)하면서, 신(臣)에게 이르기를, ‘신이 마땅히 선부(先父) 정무(貞茂)의 뜻을 계승해서 귀화(歸化)에 전심하였어야 되는데, 요사이 본도(..
2023.03.27 -
대금(大金)은 바로 우리 원조(遠祖)로 그 강성함이 더할나위 없었지만, 올적합(兀狄哈)을 치려 하되 마침내 얻지 못했습니다.
연산군일기 28권, 연산 3년 10월 7일 을해 2번째기사 1497년 명 홍치(弘治) 10년 삼위 선유관 동청례가 보고한 사행의 일정 내용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삼위 선유관(三衛宣諭官) 동청례(童淸禮)가 복명(復命)하여 아뢰기를, "삼위(三衛)의 야인(野人) 이목장합(李木長哈) 등 70사람이 지난 7월 초순에 만포(滿浦)에 와서 우리 나라 사신(使臣)을 기다리다가 신(臣)의 선성(先聲)을 듣고서 3사람은 먼저 그 추장에게 알리기 위해 돌아갔고, 4사람만 남아 기다리고 있으므로 신은 말하기를, ‘지금 내가 하사할 물건을 많이 싸가지고 왔다. 만약 너희들이 나를 거년에 인도하던 길에서 영접한다면 나는 끝내 가지 않겠으니, 전자에 약속했던 만거(滿車)의 길이 자못 평탄한즉 그곳으로 와서 영접해 달라.’ 하였..
2023.03.01 -
대체로 보아 우리나라의 군총(軍摠)은 100여 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3년 정사 > 9월 11일 > 최종정보 영조 13년 정사(1737) 9월 11일(병신) 맑음 13-09-11[29] 양역과 군정 등 백성에게 끼치는 여러 가지 폐단과 혁파할 방법에 대해 진달하는 부호군 이목의 상소 [DCI]ITKC_ST_U0_A13_09A_11A_00300_2021_277_XML DCI복사 URL복사 부호군 이목(李穆)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군신은 부자와 같고 사해(四海)의 모든 사람은 형제와 같으니, 형제가 곤궁하여 병들면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은 형제로서의 우애의 정이고, 자식이 병이 들면 치료하여 온전히 편안하게 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자애의 정입니다. 이는 모두 천리의 자연 가운데서 우러나오는 것이니 억지로 힘써서 될 수 있는 것이 아..
2023.01.05 -
조화 순환포(造化循環砲)와 일와 봉전(一窩蜂箭)
조선왕조실록 > 영조실록 > 영조 49년 계사 > 10월 27일 > 최종정보 영조 49년 계사(1773) 10월 27일(임자) 49-10-27[02] 행 부사직 구선행이 상소하여 북한 산성의 방비 등에 대해 아뢰다 [DCI]ITKC_JT_U0_A49_10A_27A_00020_2005_035_XML DCI복사 URL복사 행 부사직(行副司直) 구선행(具善行)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예전 기해년에 ‘근본을 튼튼하게 하라.’는 성교(聖敎)는 북한산(北漢山) 옛 성(城)을 수축하고 또 조지서(造紙署) 동구(洞口)를 막아서 난리가 나면 이어(移御)할 장소로 삼으려고 하신 것이니, 〈이러한〉 예지(睿智)와 신략(神略)은 도성(都城)이 먼저 허물어지는 근심을 개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묘년에 계술(..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