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영주(瀛洲)가 이곳이다.

2022. 9. 1. 17:29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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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51 / 책문(策問) 4

탐라(耽羅) 제주(濟州) 세 고을 유생들의 시취(試取) ○ 갑인년(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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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말하노라.
아, 그대 제주의 제생아. 그대 제생이 생장한 땅은 옛날 구한(九韓)의 하나인 동방 영주(瀛洲)가 이곳이다. 성좌와 토양과 풍속과 제도와 산물은 비록 《직방기(職方記)》에 기록된 것이 없고 《왕회도(王會圖)》에 그려진 것이 없다 하여도, 지역이 구분된 차례와 풍속의 순박하고 경박함과 연혁의 유래와 수륙의 알맞은 풍토에 대해서는 그대 제생이 이 고을에서 태어났고 이 고을에서 성장하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으니 자연히 듣는 것도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내가 이 고을에 대해 알고 싶은데 그대 제생이 아니면 누구에게 듣겠느냐.
오직 우리 국가는 성신(聖神)이 계승하여 방패와 깃털로 왕정에서 춤을 추면 문덕(文德)이 멀리 파급되어 해 뜨는 바닷가에까지 따르지 않는 곳이 없다. 옛날 우리 태종 초년에 탐라국에서 국빈으로 방문하여 관작의 호칭을 고쳐 주기를 청하여 성주(星主)와 왕자를 좌우 도지관(左右都知管)으로 삼았는데 이로부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제도가 차츰 갖추어지게 되었다. 동도와 서도에 대정현(大靜縣)과 정의현(旌義縣)을 두어 목사(牧使)는 절제사를 겸하게 하고 판관(判官)은 감목도위(監牧都尉)를 겸하게 하였으며, 심약(審藥)과 왜학(倭學)과 역학(譯學)을 각각 갖추어 직책을 분장한 것은 모두 국내와 같이 관리하게 하였다. 흉년이 들면 바람과 파도를 무릅쓰고 곡식을 싣고 가 먹이고 공물이 도착하면 솜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여 따스한 은혜를 한층 더해 주니, 열성조의 먼 곳을 회유하고 사랑으로 어루만진 혜택을 온 섬 안에서 잊지 않고 입에 담아 노래하고 칭송한 지 몇백 년이 되었다.
이제 부덕한 내가 계통을 이어받았으니 선대 제왕의 헌장을 따라 이 백성을 위로하고 보호하는 일에 밤낮으로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구중궁궐이 깊어서 숨은 폐단을 진달하지 못하지나 않은지, 백성의 무리가 많아서 혜택이 두루 미치지 못하지나 않은지, 관리들이 잘못하고 있지나 않은지, 사물의 곡절이 불리하지나 않은지를 늘 두려워하고 있다. 더구나 탐라도는 외진 바다 가운데 있으며 산물은 진주 및 생선과 감귤ㆍ유자ㆍ준마 등이 풍요하고, 백성은 재물을 잃고 노역에 곤란을 당하여 사내를 경시하고 여인네를 중하게 여기는 풍속이 있다. 근년 이래로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겹치고 흉년이 자주 드니 남방에 대한 염려가 마치 몸에 질병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때에 만약 한 탐욕스러운 이에게 다스리는 중책을 맡기거나 백성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에게 관직을 주어 뇌물이나 찾게 하고 거두어들이는 일을 자행하게 한다면,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섬 백성들은 호소할 길조차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하겠느냐.
대저 하늘은 시절을 낳고 땅은 재물을 낳는데, 사람이 하늘의 도리를 이용하고 땅의 이로움을 따르는 것은 고금에 관계없이 동일한 일이다. 탐라도 바다에서의 일은 많고 육지의 일이 적은 것이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고, 띠풀의 이엉을 엮지 않고 씨앗을 심어서 밟아 주는 일이 특히 고된 것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으며, 면화가 생산되지 않아서 한 조각의 베나 비단을 황금과 같이 여기는 것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같다. 활을 쏘아 땅을 점치던 당시에는 재물의 풍요로움이 저러하였건만, 백성들을 쉬게 하고 안정시킨 뒤인데도 그들의 생활과 물산의 산출이 이처럼 쇠잔해진 것은 옛사람들의 이른바 ‘토끼 머리에 뿔이 돋고 소 옆구리에 날개가 나온다’는 식의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조처에서 생긴 일이 아니겠느냐. 전일의 제도에 대해서는 지난 잘못을 추궁하여 허물 잡는 일이 없고 후일의 명령은 지금부터 관용의 길을 열어 주었는데, 무심한 세상의 인정은 마침내 국법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사에게 명하여 그대들에게 찾아가 바로잡게 하였으니, 진실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있다면 국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잘못된 정치는 무엇을 고쳐야 하며, 이로운 일은 어느 것을 일으켜야 하고, 백성들의 하고 싶어 하는 것 중에 반드시 따라 주어야 할 것과 백성들의 곤경 가운데 반드시 풀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책문을 내어 자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 리의 먼 바다 속 어란(魚欄), 해사(蟹舍)의 실정을 뜰에도 나가지 않고 손바닥을 가리키듯 알아볼 수 있겠느냐. 지금 나의 책문에 대해 대책을 내는 이는 모두가 한 지방의 준재이며 마을의 착실한 사람이 아닌 이가 없다. 토박이이니 경험은 익숙할 것이며 공부는 책 속에서 만족하게 하였을 것이다. 어떻게 하여야 조그마한 섬에 산물은 풍성하고 백성은 편안하여 천지의 보물이 모두 모이고 아래로 새는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며 바다의 물결도 조용하여 아름다운 교화가 만족하게 될 수 있겠느냐?
또 그대 제생에게 묻노라. 고을 이름을 탐라라고 것은 대체로 탐진(耽津) 정박하여 신라에 조회한 으로 인하였다고 하는데, 혹 탁라(乇羅)라고 칭하기도 하고 혹은 탐모라(耽牟羅)라고 칭하기도 하는 것은 어디에서 취한 뜻이냐? 어쩌면 탁도 역시 나루 이름이고 모는 어조사인 것은 아니냐? 한퇴지(韓退之)의 ‘친구를 전송하는 서문[送序]’에 해외의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꼽으면서 유구(流求)ㆍ부남(扶南)ㆍ탐부라(耽浮羅) 등속은 동남의 하늘 땅 끝에 있다고 하였으니 《운급(雲笈)》에서 말하는 “태상노군(太上老君)이 부라악(浮羅嶽)에 하강하였다.”는 것이 혹시 이 섬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모(牟)가 부(浮)로 와전된 것이라면 산악이라는 악(嶽)은 증명할 만한 것이 있느냐? 또한 노인성(老人星)을 본 사람은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노인성이라는 것은 바로 항성(恒星)의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천추(天樞)가 되는 남극성(南極星)을 노인성이라고 한다고 하니 얼마나 잘못된 것이냐.
고씨(高氏)는 성주(星主)를 세습하고 양씨(梁氏)는 왕자를 세습하였다. 문창우(文昌佑)가 왕자의 작호를 얻었는데 기록에는 양씨를 계승한 왕자를 고씨를 계승한 것으로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 예실불(芮悉弗)이 위조(魏祖)에게 고하기를, “황금은 부여(夫餘)에서 생산되고 마노(瑪瑙)는 섭라(涉羅)에서 생산되는데, 백제(百濟)에 합병되고 나서 두 물품이 왕부에 오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섭라가 바로 탐라이냐? 탑라치(塔羅赤)가 원 나라 사신으로 올 때 소ㆍ말ㆍ낙타ㆍ당나귀ㆍ양 등을 싣고 와서 수산평(首山坪)에서 길렀다고 하는데 지금도 낙타와 양의 종자가 있느냐? 또는 달로화치부(達魯花赤府)는 어떻게 먼 곳에 있는 중국(中國)에서 관할하였으며 군민안무부(軍民安撫府)는 어떻게 하여 고려에 두게 되었는지 그 지역을 지적할 수 있겠느냐? 문림(文林)이 왜국으로 사신을 가면서 해양을 바라보고 통괄하여 알았다고 하고 고려에 초빙되어 가면서는 길을 알았다고 하는데 그 고사를 아울러 들추어 보아라. 또한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 나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마는 예로부터 삼성혈(三姓穴)이 전해 오고, 붉은 옷을 입은 사자가 곡식과 종자와 처녀를 보내왔다는 말이 《제해(齊諧)》에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석함(石函)의 유적이 전해 오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이냐?
또한 성주와 왕자의 호칭이 시작된 시대를 상고해 보며, 하(河)ㆍ막(幕) 양 도를 설치하게 된 본말을 자세히 말하여 보아라. 또한 구름 속의 은하수라도 잡을 수 있다고 하여 진산(鎭山)의 이름을 한라산(漢拏山)이라고 하였는데, 이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현인은 몇 사람이나 되느냐? 짙푸른 바다가 끝이 없고 암벽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수족(水族)의 신령함에 대한 많은 신기한 소문이 있지 않느냐? 또한 산악에서 향기가 나부끼면 신선이 노닌다고 아름답게 이야기하고, 나무 구유에서 물이 떨어지는 음향을 풍경 소리에 비하는데, 이러한 것은 청허(淸虛)한 자들에게 있는 일이다. 토양은 푸석하고 건조하여 매번 새 밭을 일구어야 하고, 절구질하며 주고받는 잔잔한 옛 노래는 이곳 풍토기에 특별히 기록된 것이다. 바다 위의 삼신산(三神山)이 천하에 진정 있는 것이냐? 태평 시절 백 년 동안에 백성과 사물은 근래에 어떠하냐? 또한 고봉 절정에 더러는 물이 담긴 연못이 많다고 하는데 조물주는 어쩌면 그리도 정력을 들였으며, 구름 사이에 푸른 점이 점점이 있는 것은 모두 강남의 산이라고 하는데 거리는 확실하게 얼마나 되느냐? 그대 제생은 듣고 본 것을 모두 말하여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나의 뜻에 보답하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D001] 고을 …… 조회한 :

탐라의 고을나(高乙那)ㆍ양을나(良乙那)ㆍ부을나(夫乙那)의 후손이 항해를 하여 신라의 탐진(耽津)에 닿았는데, 이어 신라 왕에게 조회를 하니 신라 왕이 이들에게 직함을 내려 주고, 탐진을 통하여 신라를 방문하였다고 하여 탐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耽羅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