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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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종이 냉산(冷山)에 있을 때 반소매 옷을 사자(使者)에게 부쳐 보내면서 ‘부모를 구하러 오라.’라고 쓴 혈서(血書)를 보냈고,
>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0년 갑인 > 6월 4일 > 최종정보 영조 10년 갑인(1734) 6월 4일(무신) 아침에는 쇄우가 오고 저녁에는 맑음 10-06-04[07] 희정당에서 소대를 행하는 자리에 참찬관 김성응 등이 입시하여 《이충정공주의》를 진강하고, 지방에 있거나 명을 오래 어긴 옥당에 대한 처리, 체납된 환자의 납부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DCI]ITKC_ST_U0_A10_06A_04A_00080_2020_211_XML DCI복사 URL복사 신시(申時)에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소대를 행하였다. 참찬관 김성응(金聖應), 참찬관 이종성(李宗城), 시독관 김약로(金若魯), 가주서 남태기(南泰耆), 기사관 이덕중(李德重), 기사관 김상로(金尙魯)가 입시하였다. 이종성이 읽었는데 ‘조구..
2023.11.09 -
길주(吉州)로 유배되어 고개를 넘어가던 때의 일인 듯합니다. 옥천(沃川)에서 도보로 2000여 리인데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5년 기미 > 6월 3일 > 최종정보 영조 15년 기미(1739) 6월 3일(무인) 아침에는 비가 오고 저녁에는 흐림 15-06-03[25] 주강을 행하여 《춘추》를 진강하고, 제언을 밭으로 만드는 폐단에 대해 논의하고, 호조 판서 유척기 등을 패초하도록 전교하였다 [DCI]ITKC_ST_U0_A15_06A_03A_00260_2021_306_XML DCI복사 URL복사 진시(辰時)에 상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갔다. 주강을 행하러 신하들이 입시한 자리이다. 지경연사 조현명(趙顯命), 특진관 윤용(尹容), 참찬관 조윤성(曺允成), 시독관 조명리(趙明履), 검토관 정이검(鄭履儉), 가주서 심각(沈瑴), 기사관 강간(康侃), 편수관 이한상(李漢相), 종신 해계군(海溪君) 이집(李..
2023.11.08 -
백두산(白頭山)을 형성한 산줄기는 대개 몽고(蒙古) 땅에서 시작되어 서북쪽으로부터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동남쪽에서 대지(大池 천지(天池))에 이르기까지의 수천 리가 대간룡(大幹龍 여러 ..
> 고전번역서 > 다산시문집 > 다산시문집 제20권 > 서 > 최종정보 다산시문집 제20권 / 서(書) 중씨께 올림 신미(1811, 순조 11년, 선생 50세) 겨울 [DCI]ITKC_BT_1260A_0200_010_0240_2000_008_XML DCI복사 URL복사 거론하신 9ㆍ6과 방(方)ㆍ원(圓)의 관계개념은 서로 맞지 않을 듯싶습니다. 8로 1을 에워싼 것이 9고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7인데 9는 변음(變陰)이지만 7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6으로 1을 에워싼 것이 어떻게 6의 원(圓)이 된단 말입니까. 서법(筮法)에 나오는 7ㆍ8ㆍ9ㆍ6의 숫자는 따로 하나의 법칙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수리가(數理家)가 방(方)과 원(圓)을 추산(推算)하는 법과는 서로 꼭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
2023.10.31 -
회령(會寧)30리 둘레가 과연 모두 모래와 돌의 땅이어서 사는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니
회령[會寧 함경북도 북부에 있는 시.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콩, 쌀, 채소, 잎담배 따위이며 그 밖에 석탄, 석회석의 생산이 많다. 공업은 탄광, 기계, 직물, 제지, 제약, 제당, 도자기 제조가 성하다. 1991년 시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 중종실록 > 중종 2년 정묘 > 7월 12일 > 최종정보 중종 2년 정묘(1507) 7월 12일(계축) 02-07-12[03] 한순의 일에 대해 부원군 이상으로 하여금 의논하도록 하다 [DCI]ITKC_JT_K0_A02_07A_12A_00030_2005_002_XML DCI복사 URL복사 대사헌 민상안ㆍ대사간 강경서 등이 합사하여, 한순ㆍ이줄ㆍ구세건의 일을 극력 논하니, 전교하기를, “한순의 일은 정원으로 하여금 금부의 전후 추안(推案)을 가져다가 그 공술..
2023.07.04 -
북쪽으로는 백두산(白頭山), 동쪽으로는 장백산(長白山)의 여러 봉우리가 둘러 있어서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고전번역서 > 학봉전집 > 학봉일고 제3권 > 북정일록 > 최종정보 학봉일고 제3권 / 북정일록(北征日錄) ○ 기묘년(1579, 선조 12) 10월 8일(경진) [DCI]ITKC_BT_0210A_0230_120_0080_2004_005_XML DCI복사 URL복사 맑음. 새벽에 어둠을 무릅쓰고 황초령을 올랐는데, 고개가 높아서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중간 고개를 오르고 나서는 이미 높은 고개 위에 올랐다고 여겼는데, 고개 위에 올라서니 또다시 한 고개가 반공(半空)을 가로질러 있었다. 눈이 두어 자나 쌓여 있었으며, 양쪽 벼랑에는 고목이 구름 속에 치솟아서 하늘과 해가 보이지 않았다. 지세는 대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았다. 초방원에서 고개를 오를 적에는 하늘에 오르는 듯하였으나, 고개 북쪽은 평지를 ..
2023.06.27 -
별처럼 벌여 있는 저수지와 작은 성은 육진(六鎭)으로 견고하지 않은 곳이 없다.
>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5년 기유 > 11월 22일 > 최종정보 영조 5년 기유(1729) 11월 22일(임진) 맑음 05-11-22[28] 함경 감사 윤양래에게 내린 교서 [DCI]ITKC_ST_U0_A05_11A_22A_00290_2018_123_XML DCI복사 URL복사 함경 감사 윤양래(尹陽來)에게 내린 교서에, “왕은 이르노라. 생민의 기쁨과 슬픔은 방백과 관계되나 평소 적임자를 찾기 어려웠고 국가의 평안과 위태로움은 변방에 달려 있으니 더욱 이 선발을 중시하였다. 이에 공동의 천거를 따라 마침내 경의 재주에 부탁하노라. 이 함경도 한 지방을 돌아보면 해동(海東)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이다. 산과 강은 분유사(枌楡社)를 끼고 있으니 왕업의 토대를 닦은 곳이요, 성과 해자는 오랑캐와 중국..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