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라(耽羅)는 그 풍속이 노(獠 서남지역에 사는 오랑캐)와 같고

2022. 9. 1. 17:28제주도

고전번역서 > 강한집 > 강한집 제2권 > > 최종정보

강한집 2 / ()

거제부 간덕촌 명나라 유민이 살던 곳에서 묵다〔宿巨濟府看德邨大明遺民所居〕

[DCI]ITKC_BT_0527A_0020_010_0540_2015_001_XML DCI복사 URL복사

만주족이 황제의 도읍을 점거하여 / 滿洲據神京
천하가 온통 오랑캐 세상이 되었으니 / 天下皆被髮
열렬한 요동의 백성들이 / 烈烈遼東叟
피난하여 바다로 들어왔네 / 避地入溟渤
그윽하고 깊숙한 이 섬에서 / 玆島窈且深
소나무 그늘 아래 띠풀 집을 지었지 / 茅屋蔭松樾
계문은 오천 리나 떨어져 / 薊門五千里
끝내 유골조차 돌아가지 못하였으나 / 曾不歸其骨
자손은 선조의 남긴 뜻을 받들어 / 子孫承遺志
농사지으며 기꺼이 숨어 살았네 / 農畆甘湮沒
꿩을 잡으며 산구릉 아래서 잠들었고 / 弋雉眠山雲
물고기를 잡으며 바다에 뜬 달을 노래했네 / 罶魚歌海月
동산에는 유자나무 잎이 무성하고 / 園中柚葉繁
뜨락에는 매화가 피었지 / 庭際梅花發
전장의 먼지가 중국을 덮었으니 / 煙塵滿九州
하필 유주(幽州) 갈석(碣石)에 연연해하랴 / 何必戀幽碣
슬프도다 천주(泉州)와 장주(漳州)의 사람들이 / 哀哉泉漳客
뗏목을 타고 백월에서 왔을 때 / 乘桴自百粤
탐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 耽羅不能容
포박하여 되놈들에게 바쳤네 / 纍纍獻戎羯
그런데 그대들만은 이 땅에 몸 부쳐 / 爾獨棲此土
주륙을 면할 수 있었구나 / 得免伏斧鉞
도깨비 마을에 그림자를 감추고 / 匿影魑魅鄕
교룡의 굴에 자취를 숨겼네 / 遁迹蛟龍窟
명나라의 의관 여전히 바꾸지 않고 / 衣冠猶不改
힘을 다해 애쓰며 살았다네 / 筋力以自竭
중원에는 지사가 많은데 / 中原多志士
어찌 북벌을 도모하지 않는가 / 胡不謨北伐
요동 땅 화표는 온통 쓸쓸하고 / 華表一寥廓
고개를 돌려보면 늘 아스라할 뿐 / 回首恒忽忽
우리를 대우함이 자못 정성스러워 / 遇我頗欵曲
밤낮으로 방에 와 아뢰네 / 日夕升堂謁
서쪽 숲에서 사슴 죽이던 / 西林殪白鹿
장한 마음 아직 멎지 않았으니 / 壯心殊未歇
장차 연산을 정벌할 때를 기다려 / 且待征燕山
끝내 병졸이 되어 앞장서리라고 / 終當爲前卒

 

[-D001] 간덕촌(看德邨) :

명나라의 유민이 살던 곳.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하였을 때와 한족의 재건 국가인 남명(南明)이 망한 1661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명나라의 유민들이 우리나라로 피난해 왔는데, 조정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거제부 간덕촌에서 함께 살게 하였다.

[-D002] 거제부 …… 묵다 :

일설에는 황경원(黃景源)이 1761~1762년 거제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는 것을 근거로 이 시가 유배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나 작품의 편차를 통해 창작 연도를 추정하면 이 시는 1752~1753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아마도 경부부윤 시절에 주변을 여행하며 지은 것으로 보인다.

[-D003] 유자나무 잎이 무성하고 :

거제의 유자도(柚子島)에는 온 섬에 유자나무가 있다.

[-D004] 중국 :

원문은 ‘九州’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우(禹)가 치수(治水)에 성공한 뒤에 전국을 9주(州)로 나누어 각기 토산물로 공(貢)을 바치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D005] 유주(幽州) 갈석(碣石) :

유주는 중국의 요동 및 하수지역이다. 갈석(碣石)은 하북성(河北城) 창려현(昌黎縣)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요동의 끝지역이다. 요동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던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D006] 백월(百粤) :

지명(地名)이다. 옛날 교지(交趾)에서 회계(會稽)까지 7, 8천 리 주위에 군소 월족(越族)들이 모여 각기 작은 나라들을 매우 많이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文獻通考 輿地考 古越南》

[-D007] 슬프도다 …… 바쳤네 :

1668년(현종9)에 중국의 천주(泉州)와 장주(漳州)의 주민 1백여 명이 표류(漂流)되어 제주도에 닿았는데, 당시 조정에서는 그들이 표류해 온 일이 청(淸)나라에 누설될까 두려워서 그들을 포박하여 청나라로 압송했다. 이 일에 대해 송시열은 “천주ㆍ장주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라고 개탄한 바 있다. 《宋子大全 附錄 卷5 年譜4》

[-D008] 도깨비 …… 숨겼네 :

원문의 ‘魑魅鄕’과 ‘蛟龍窟’ 모두 사람이 잘 살지 않는 깊은 산속 또는 바닷가를 말한다.

[-D009] 화표(華表) :

화표는 이정표 구실을 하도록 길가에 세워둔 나무 기둥. 여기서는 요동(遼東) 땅을 은유하는 말로 쓰였다.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선도(仙道)를 배워 터득한 뒤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고향 땅에 돌아와서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다가 탄식하며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搜神後記 卷1》

[-D010] 서쪽 …… 죽이던 :

주(周)나라 쇠퇴기에 목왕(穆王)이 서쪽 지방의 오랑캐인 견융(犬戎)을 정벌한 일을 가리킨다. 당시 제공(祭公) 모보(謀父)가 선왕(先王)을 예로 들면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극력 간하였으나 목왕은 결국 견융을 정벌하고 흰 이리 네 마리와 흰 사슴 네 마리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史記 卷4 周本紀》 북벌(北伐)을 염원하던 강한(江漢)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 고전번역서 > 대동야승 > 해동잡록 > 해동잡록 6 > 최종정보

해동잡록 6

정이오(鄭以吾)

[DCI]ITKC_BT_1327A_0060_000_0030_2002_005_XML DCI복사 URL복사

○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교은(郊隱)이다. 공민왕 말년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시를 잘하였으며, 선산(善山)에 지방관으로 있었는데 일처리가 맑고 간략하며 문치(文治)에 여유가 있었다. 본조(本朝)에 들어와서 벼슬이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으며, 80여 세까지 살았고, 문정(文定)이라 시호하였으며, 문집이 세상에 전한다.

○ 선산 원이었을 때, 〈비봉산 제성단(飛鳳山祭星壇)〉이란 한 절구를 읊기를,

관아의 일이 끝나 한가한 틈을 타서 성곽 서쪽으로 나가니 / 衙罷乘閑出郭西
중은 없고 절은 낡고 길마저 험하구나 / 僧殘寺古路高低
제성단 언저리엔 일찍 봄바람이 찾아와 / 祭星壇畔春風早
붉은 살구꽃 반쯤 피고 산새가 우네 / 紅杏半開山鳥啼

하였다. 의종 때에 남극(南極)의 노인성(老人星)이 선주(善州 선산의 옛이름)에 나타났으므로 해마다 봄ㆍ가을ㆍ중기일(中氣日 춘분과 추분날)에 나라에서 향(香)을 내려 이를 제사 지내는데, 단은 부(府)의 서쪽에 있는 비봉산(飛鳳山)에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한양(漢陽) 〈남산팔영(南山八詠)〉에 〈척헌관등(陟巘觀燈)〉이란 시가 있는데, 교은이 읊기를,

초파일(4월 8일, 즉 석가모니의 탄신일) 관등놀이 성대하니 / 八日觀燈盛
태평하기 몇 해이더뇨 / 昇平第幾春
만감(여러 감(龕). 감은 탑, 또는 탑 밑의 실(室))은 그림같이 밝고 / 萬龕明似畫
사방은 티끌 없이 맑구나 / 四境靜無塵
무지개 같은 불꽃은 남두성에 서렸고 / 虹焰蟠南斗
별빛은 북두성을 에워쌌네 / 星芒拱北辰
밤을 새도 구경을 못 다 하겠구나 / 通宵看未足
새벽이 된 것도 깨닫지 못하였네 / 不覺到鷄晨

하였고. 또 〈답청(踏靑 청명(淸明)을 전후한 이른 봄의 들놀이)〉이란 한 절구가 있으니,

꽃 찾는데 바람이 산들 불고 / 問花風淡蕩
답청하는데 햇볕 따사롭구나 / 踏靑日暄姸
좋은 모임에 친구 많지 않으나 / 良會無多子
높은 정취는 신선보다 낫네 / 高情勝別仙

하였다. 동상

쌍매당(雙梅堂) 이첨(李詹)이 교은(郊隱)과 시를 논할 적에, 스스로 글귀를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내놓았으니,

연기는 두목의 진회의 밤에 비꼈고 / 煙橫杜子秦淮夜
달은 소동파의 적벽 가을에 밝구나 / 月白蘇仙赤壁秋

하니, 교은이 여러 번 읊어보고, “롱(籠)ㆍ소(小)” 하였으나, 이첨이 처음에 알아듣지 못하므로, 정이오가 천천히 읊기를,

연기는 두목의 진회 밤에 덮였고 / 煙籠杜子秦淮夜
달은 소동파의 적벽 가을에 작구나 / 月小蘇仙赤壁秋

하였다. 롱(籠)ㆍ소(小)라는 두 글자는 먼저 것에 비하여 백 배(倍)나 정채(精彩)롭다. 〈시어(詩語)〉

○ 이른 봄에 여러 늙은이들과 성(城) 남쪽에서 연구(聯句 시구 하나씩 부르는 것)하는 모임을 가졌는데, 많은 동리 자제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교은이 먼저 부르기를,

소가 좇고 있는 언덕엔 풀이 비로소 파랗고 / 眠牛壟上草初綠

하니, 박치안(朴致安)이란 사람이 곧 응대하여 이르기를,

새 우는 가지 끝엔 꽃이 한창 붉구나 / 啼鳥枝頭花正紅

하매, 자리를 같이한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였으며, 시의 명성이 이때부터 당시에 크게 떨쳤다.

○ 교은의 시에,

송곳 세울 좁은 땅마저 권세가에 들어가고 / 立錐地盡入侯家
시내 산골짜기의 경치만 남아 있어 현에 속한 곳이 많구나 / 只有溪山屬縣多

하였는데, 호강(豪强)한 자들이 모두 차지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송곳 꽂을 만한 땅도 없으며, 빼앗지 못한 것은 시내와 산뿐임을 말한 것이다. 동상

○ 교은이 김방경(金方慶)의 〈행장〉을 보고서, “이것은 창연(蒼然)하면서도 노련한 솜씨의 작품이다.” 하고, 다만 몇 글자만을 고쳤다. 〈행장〉의 발문(跋文)

○ 탐라(耽羅)는 그 풍속이 노(獠 서남지역에 사는 오랑캐)와 같고 그 땅이 멀며, 성주(星主 제주 목사)와 왕자(王子)와 토호의 세력 강한 자들이 평민을 다투어 차지하고, 일을 부리는데 이를 인록(人祿)이라 하며, 백성을 괴롭혀 욕심을 채우므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일컫는다. 〈교은송인서(郊隱送人序)〉

[-D001] 두목(杜牧) 진회(秦淮) :

두목의 박진회(迫秦淮)라는 시에 ‘강뜰에 안개 덮이고 백사장에 달빛 쏟아지는데[煙籠寒水月籠沙], 밤에 진회에 정박하니 술집이 가까워라[夜泊秦淮近酒家]’라는 구절이 있다.

 

> 고전번역서 > 임하필기 > 임하필기 제38권 > 해동악부 > 최종정보

임하필기 38 / 해동악부(海東樂府)

서호곡(西湖曲)

[DCI]ITKC_BT_1432A_0410_010_0550_2007_008_XML DCI복사 URL복사

송(宋)나라 말기의 백성들은 가난에 쪼들려 / 景炎之族傷於貧
화방에서 가벼운 치장으로 매춘을 하네 / 畫舫輕裝自買春
어떤 장사가 선뜻 천금을 버리겠는가 / 壯士千金誰肯擲
일조에 탐라의 먼지를 씻기 어려워라 / 一朝難滌耽羅

선우추(鮮于樞)가 지은 것인데, 그 가사에, “서호의 유람선에 있는 건 뉘 집 딸이던고 행하(行下)를 탐내어 억지로 가무를 하네. 어떻게 해야 천금을 던져 주는 사나이를 만나 기생 노릇 하다가 한 지아비를 섬길 수 있을는지.[西湖畫舫誰家女 貪得纏頭强歌舞 安得壯士擲千金 坐令桑濮歌行露]” 하였다. 이에 대해 이익재(李益齋)가 말하기를, “송나라가 망하자 사족(士族)들이 이런 식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상심한 것이다. 탐라(耽羅)의 이 가곡은 극히 비루하지만 그래도 민간 풍속을 보고 시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