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추정(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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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주와 황도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하자, 홍서봉이 아뢰기를,“40리의 노정입니다.”
> 고전번역서 > 간이집 > 간이집 제7권 > 갑오행록 > 최종정보 간이집 제7권 / 갑오행록(甲午行錄) 통주에서 첩운(疊韻) [DCI]ITKC_BT_0215A_0080_010_0390_2008_003_XML DCI복사 URL복사 통주 성 저 너머로 곤곤히 흐르는 노하 강물 / 通州城外潞河水 양자강 물결 찾아와서 궁성에 인사드리누나 / 揚子潮來望禁墻 흰 성가퀴 화려한 누대 아스라하게 둘러싸고 / 粉堞麗譙環縹緲 내 낀 모래톱 겹친 나무숲 끝도 없이 아득하네 / 煙洲重樹極蒼茫 눈발 속에 찾아가는 푸른 깃발 술집이요 / 雪天酒扣靑帘戶 얼음 깨고 물고기 낚는 누런 모자 사내로세 / 氷穴魚尋黃帽郞 여기에 또 풍류 있어 지금 다할 줄 모르나니 / 更有風流今不盡 복사꽃 일렁이는 물에 잔뜩 모여든 배들이여 / 桃花浪闊..
2023.10.31 -
누르하치는 1621년 신유년에 심양(瀋陽)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신유년(辛酉年) 1621년은 금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연호[원본 편집] 명(明) 천계(天啓) 원년 후금(後金) 천명(天命) 6년 일본(日本) 겐나(元和) 7년 후 레 왕조(後黎朝) 빈또(永祚) 3년 막 왕조(莫朝) 끼엔통(乾統) 29년 / 롱타이(隆泰) 4년 기년[원본 편집] 류큐(琉球) 쇼호왕(尚豊王) 원년 명(明) 희종 천계제(熹宗 天啓帝) 원년 후금(後金) 태조 천명가한(太祖 天命可汗) 6년 조선(朝鮮) 광해군(光海君) 13년 후 레 왕조(後黎朝) 신종(神宗) 3년 영원성 전투[편집] 1621년(천명 4년), 기세가 오른 누르가치는 심양, 요양을 잇따라 함락시켰고 1625년 요양 옆의 심양으로 천도했다. 이 때 금의 세력권은 요동 전역에 미쳤다. 1626년(천명 9년), 연전연승하던 누르가치는 ..
2023.10.25 -
영락제가 안휘성(安徽省)과 강소성(江蘇省) 일대를 남직례로 고쳤다.
강희제(康熙帝, 1654년 5월 4일(음력 3월 18일) ~ 1722년 12월 20일(음력 11월 13일))는 청나라의 제4대 황제(재위 1661년 ~ 1722년)이자,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한 직후 청 제국이 산해관을 넘은 뒤 자금성에서 청 제국의 군주가 천명을 상실한 명나라의 주씨를 대신하여 중국의 새로운 수명천자(受命天子)가 되었음을 선언한 이래 두 번째 황제이다. 성과 휘는 아이신 교로 효완예이(玄燁, 만주어: 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ᡥᡳᡠ᠋ᠸᠠᠨ ᠶᡝᡳ Aisin Gioro Hiowan yei), 묘호는 성조(聖祖, 만주어: ᡧᡝᠩᡯᡠ Šengdzu), 시호는 합천홍운문무예철공검관유효경성신중화공덕대성인황제(合天弘運文武睿哲恭儉寬裕孝敬誠信中和功德大成仁皇帝, 한국어 한자음으로 듣기 (도움말·정보), ..
2023.10.06 -
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 6월 23일 癸卯 2번째기사 1397년 명 홍무(洪武) 30년 시의에 적합하지 않아 예불을 받지 않겠다는 황제의 뜻을 전하는 명 예부의 서신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유운(柳雲)이 요동(遼東)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신이 공경하여 차견(差遣)을 입어 사은(謝恩)으로 진헌하는 예물을 싸 가지고 마필(馬匹)을 압령하여 4월 21일에 요동(遼東)에 이르렀사온데, 도사(都司)가 관원을 차견하여 경사(京師)에 가서 주문(奏聞)함을 입어, 떠나간 뒤에 42일을 머물러 6월 초3일에 이르렀는데, 흠차(欽差)한 행인(行人) 유귀지(劉貴篪)가 성지(聖旨)를 흠뢰(欽賚)하여 가지고 요동에 와서 신 등을 대하여 개독(開讀)하고, 인하여 선유(宣諭)를 흠전(欽傳)하고 진헌하는 예물과 마필을 모두 수..
2023.06.21 -
유주가 궁벽해도 중원이라 칭해지니 / 幽州雖僻號中原
고전번역서 > 번암집 > 번암집 제13권 > 시 > 최종정보 번암집 제13권 / 시(詩)○함인록 상(含忍錄上) 사하역〔沙河驛〕 [DCI]ITKC_BT_0543A_0170_010_0850_2022_004_XML DCI복사 URL복사 유주가 궁벽해도 중원이라 칭해지니 / 幽州雖僻號中原 백발에 그대로 만 리 길 수레를 타네 / 白首仍乘萬里轅 기역에는 아직도 은대의 제도가 전하니 / 箕域尙傳殷代制 한인들 많이 만주인과 혼인을 맺었네 / 漢人多結滿州婚 꽃이 핀 무너진 성가퀴에는 까마귀가 잠들고 / 花生廢堞烏鴉宿 풀 돋은 긴 둑에는 말 가축이 시끄럽네 / 草動長堤馬畜喧 멀리서 온 나그네는 여정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 遠客不知長短堠 술집 다방 있는 이곳은 어느 마을이뇨 / 酒簾茶榜是何村
2023.05.31 -
명 태조(明太祖)는 변량(汴梁)을 북경(北京), 금릉(金陵)을 남경(南京)으로 삼았다.
고전번역서 >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 > 최종정보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관중(關中) [DCI]ITKC_BT_1368A_0030_010_0110_2002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송 태조(宋太祖)가 변경(汴京)에 수도를 정하고 다시 관중(關中)으로 갈 생각이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강(靖康)의 난리에 충사도(种師道)가 관중으로 피난할 것을 권하였으나 하율(何㮚) 등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명 태조(明太祖)는 변량(汴梁)을 북경(北京), 금릉(金陵)을 남경(南京)으로 삼았다. 이때에 황제에게 관중으로 옮기기를 권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포빈(鮑頻)의 말에 의하여 마침내 금릉으로 수도를 정하였다. 대체로 관중에 대한 이야기를 다만 역사적 사실로만..
20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