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뗏목 낚시

2022. 9. 2. 16:05제주도

종실록 17권, 고종 17년 11월 9일 계유 2번째기사 1880년 조선 개국(開國) 489년

표류한 배를 원적이 있는 고을로 호송하다

국역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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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 한규직(韓圭稷)이, ‘표류민(漂流民)을 문정(問情)한 일에 대해 방금 이달 15일 유시(酉時)에 도착한 부산 첨사(釜山僉使) 임형준(任衡準)의 치보(馳報)를 받아보니, 일본(日本)의 화륜선(火輪船) 1척이 당일 묘시(卯時)에 수종(水宗)에서 떠나왔다고 하였으며, 역학(譯學) 유광표(劉光杓)의 수본(手本)에 의하면, 「객관(客館)에 도착한 돛이 2개인 화륜선 1척에 대해 문정하니 선주(船主) 히로세 가이키치[廣瀨塊吉]와 선격(船格) 30명과 표류민을 인솔해 온 통사(通事) 1인(人) 등이 함께 탔으며 항해증명서와 일본 영사관(領事官)의 개인편지 1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당 선주가 말하기를 『우리 배는 객관에 머물러 있는 상고(商賈)들이 무역한 물건을 삯을 정하여 운반하려고 왔는데 귀국의 표류민 9명과 통사(通事) 1인 등이 함께 타고 이달 12일 진시(辰時)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통사가 『이번 표류민은 저를 차임(差任)해서 인솔해 오게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표류민 등에게 표류하게 된 사연과 이름, 거주지를 물어보니, 선주 김치일(金致日) 등 9인은 모두 전라도(全羅道) 제주목(濟州牧) 좌면(左面) 평대리(坪岱里)에 사는 백성들인데 뗏목 배 2척으로 고기잡이를 하려고 각자 낚싯줄과 밥을 가지고 함께 타고 금년 9월 21일에 별방포(別坊浦) 앞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22일 새벽녘에 서북풍이 몹시 불어 큰 바다로 표류해서 27일 오시(午時)에 일본 영해에 이르러 고기잡이 하는 일본 사람이 구해 주었습니다.」하였습니다. 단지 9명만 일본 배에 옮겨 탔으며 원래 탔던 뗏목 배는 큰 바다에 내버리고 29일에 떠나서 오늘 묘시에 객관에 도착하였다는 사정(事情)은 일본 사람들이 말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앞으로 바람을 조심해서 배를 운행하라는 뜻으로 각별히 엄하게 신칙(申飭)한 후 해관(海關)으로 하여금 급히 압송하여 올려 보내게 하였는데, 본진(本鎭)에서 신문하여 공초 받은 여러 사연은 한결같이 역학이 문정한 것과 같았습니다. 이미 고의로 표류한 흔적이 없으므로 원적(原籍)이 있는 고을로 호송하라는 뜻으로 동래 부사(東萊府使) 심동신(沈東臣)에게 관문(關文)을 보내어 신칙하였으며 또한 본영에서도 특별히 도와주었습니다.’라고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