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조선의 일반 영토(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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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가 고려 쪽으로 남도(南渡)하여 금(金)에게 눌리고 있을 때에도 사신을 보내 안부를 물어 오랑캐의 정세를 통지하였습니다.
명황 즉 당 현종(唐玄宗) 천보(天寶) 14년(755) 11월에 안녹산(安祿山)이 어양(漁陽)에서 20만 대군으로 반란을 일으켜 12월에 수도를 함락하자, 현종은 촉(蜀)으로 몽진하고 황태자(皇太子) 즉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즉위한 뒤에 군사를 지휘하여 난리를 평정하였는데, 이때 당나라의 명신(名臣)인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등이 강회(江淮)의 보장(保障)이라고 일컬어지는 수양성(睢陽城)에서 서로 협력하여 몇 개월 동안이나 안녹산의 군대를 막다가 성이 함락되자 장렬하게 순절한 고사가 전한다. 《舊唐書 卷187下 忠義列傳下 張巡》 현종개수실록 26권, 현종 13년 12월 5일 丙午 2번째기사 1672년 청 강희(康熙) 11년 송준길·송시열의 사람 됨됨이를 아뢰다 국역 원문 .원본 보기 살펴보건..
2023.11.09 -
그의 호패에는 영변(永邊)이라고 쓰였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없는 읍호이니,
조선의 관직표 양덕현감, 은산현감 안주진관 安州鎭管 안주병마첨절제사 : 안주목사 병마동첨절제사 : 숙천도호부사, 가산군수 병마절제도위 : 안주판관, 영유현령 영변진관 永邊鎭管 영변병마첨절제사 : 영변대도호부사 병마동첨절제사 : 박천군수, 운산군수, 희천군수 병마절제도위 : 영변판관, 태천현감 영원진관 寧遠鎭管 영원병마... >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13년 정사 > 2월 7일 > 최종정보 영조 13년 정사(1737) 2월 7일(을축) 맑음 13-02-07[20] 국청 대신 이하가 청대하여 진짜 법훈을 가려내는 일, 패초를 어긴 대간들을 삭직하는 문제, 지레 나간 원경순을 처벌하는 문제, 윤상통의 죄명을 문목에 추가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DCI]ITKC_ST_U0_A13_02A_07A_00210..
2023.10.14 -
부령부는 남쪽으로 포정사가 천리고 더 남쪽으로 서울이 2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다.
북한문화재(北韓文化財) 평양시(平壤市) 을밀대 -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의 을밀봉에 있는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시기에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처음 세워진 누정이다. 을밀대란 '윗미르터(윗밀이언덕)'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에 '을밀선인'이 자주 하늘에서 내려와 논데서, 또는 '을밀장군(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이 이 곳을 지켜 싸운데서 온 이름이라는 전설도 있다. 지금의 누정은 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 지은 것이다 을밀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을밀상춘(을밀대의 봄맞이)'으로 일찍부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왔다 현무문 -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현무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시기에 평양성 북성의 북문으로 처음 세워졌다 모란봉(..
2023.10.06 -
안음(安陰=함양)에서 서쪽으로 600리 길을 달려 홍양(洪陽=홍성)의 해상(海上)에 이르렀다.
안음(安陰=함양)에서 서쪽으로 600리 길을 달려 홍양(洪陽=홍성)의 해상(海上)에 이르렀다. 동계집 속집 제3권 / 부록(附錄) 신도비명(神道碑銘) [조경(趙絅)] [DCI]ITKC_BT_0295A_0120_010_0150_2009_002_XML DCI복사 URL복사 동계(桐溪) 정공(鄭公)이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고 상기(喪期)가 끝난 이듬해에 사자(嗣子) 전 현감 창시(昌詩)가 안음(安陰)에서 서쪽으로 600리 길을 달려 홍양(洪陽)의 해상(海上)에 이르렀다. 가장(家狀) 한 권을 갖고 와서 한양(漢陽) 조경(趙絅)에게 건네고 울면서 말하기를, “선친의 묘소에 나무가 이미 한 아름이나 자랐습니다. 불초한 제가 밤낮으로 선친을 생각하면서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힘껏 비석을 마련하였습니다. 감히 영원히..
2023.06.19 -
북방에 연경(連境)한 평안도ㆍ황해도ㆍ강원도를 5, 6길[道]로 나누어서 일시에 공격하여 들어가게 하고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 세조 13년 정해 > 5월 28일 > 최종정보 세조 13년 정해(1467) 5월 28일(임진) 13-05-28[04] 대사헌 양성지가 북방을 비어하는 사의를 올리다 [DCI]ITKC_JT_G0_A13_05A_28A_00040_2005_010_XML DCI복사 URL복사 대사헌(大司憲) 양성지(梁誠之)가 북방을 비어(備禦)하는 사의(事宜)를 올렸는데, 이르기를, “1. 북방의 사람들이 처음에 순역(順逆)을 알지 못하고 미연(靡然)히 반적을 따랐으니, 모름지기 그 지방 사람으로 경성(京城)에 있는 자를 사서 어질고 어리석음을 가리지 말고 수십 인을 얻어, 북방과의 연경(連境)인 평안도의 3, 4처와 황해도의 1, 2처와 강원도의 2, 3처에 각각 유서(諭書) 두서너 통씩을 은밀히..
2023.06.04 -
울릉도는 육지에서의 거리가 7백 리 내지 8백 리쯤 되며, 강릉ㆍ삼척 등지의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면 세 봉우리가 가물거린다.
고전번역서 >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3권 > 천지문 > 최종정보 성호사설 제3권 / 천지문(天地門) 울릉도(鬱陵島) [DCI]ITKC_BT_1368A_0040_010_0220_2002_001_XML DCI복사 URL복사 울릉도는 동해 가운데 있는데, 우산국(于山國)이라고도 한다. 육지에서의 거리가 7백 리 내지 8백 리쯤 되며, 강릉ㆍ삼척 등지의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면 세 봉우리가 가물거린다. 신라 지증왕(智證王) 12년(511)에 그곳의 주민들이 힘을 믿고 복종하지 않자, 하슬라주(何瑟羅州)의 군주(軍主) 이사부(異斯夫)가 나무로 만든 사자의 위력으로 이를 정복했으니,하슬라는 지금의 강릉이다. 고려 초기에 방물(方物)을 바친 일이 있었으며, 의종(毅宗) 11년(1157)에 김 유립(金柔立)을 우릉..
20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