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추정 자료(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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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黃喜)가 의정부에 앉아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잡아들인 것과 같은 일은 아주 오래된 일이라 비록 바랄 수는 없지만,
번암집 제23권 / 소차4(疏箚四) 동시 스크롤 한림 권점을 한 뒤에 최경악의 상소에 대해 변론하고 이어 조정의 의례를 논하는 차자〔翰圈後辨崔景岳疏仍論朝儀箚〕 [DCI]ITKC_BT_0543A_0270_010_0130_2022_007_XML DCI복사 URL복사 삼가 아룁니다. 신이 어젯밤에 전 장령(掌令) 최경악(崔景岳)의 상소에 대한 비답을 보고 비로소 도당(都堂)의 한림 권점(翰林圈點)으로 인해 남들의 미움을 잔뜩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 신이 고심하며 부응하려고 한 바는 태화(太和)를 보합(保合)하시려는 성상의 뜻이었고, 정성을 다해 선발하려고 한 것은 등용할 젊은 나이의 인재들이었습니다. 더구나 고르고 방정(方正)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안정시키는 요체를 거의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
2023.07.11 -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조선왕조실록 > 효종실록 > 효종 6년 을미 > 1월 27일 > 최종정보 효종 6년 을미(1655) 1월 27일(임자) 06-01-27[01] 대신ㆍ비국의 신하들과 강화에 진을 설치하는 일과 노비 추쇄에 관해 의논하다 [DCI]ITKC_JT_Q0_A06_01A_27A_00010_2005_006_XML DCI복사 URL복사 상이 대신과 비국(備局)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이시백(李時白)이 아뢰기를, “강화(江華)에 진을 설치하는 일은 뭇 의논이 여러 가지입니다마는, 신의 생각으로는 근방 각 고을에 대하여 연변(沿邊)에 신지(信地)를 나누어 정하여 변란에 임하여 들어가 지킬 곳을 미리 알게 하고 집과 자량(資糧)을 각각 조치하며, 해마다 바꾸어 개비(改備)하는 것도 스스로 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
2023.07.05 -
천자(天子)의 학(學)을 벽옹(辟雍)이라 하고, 제후(諸侯)의 학궁을 반궁(泮宮)이라 하니, 그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 세조 9년 계미 > 2월 10일 > 최종정보 세조 9년 계미(1463) 2월 10일(기사) 09-02-10[01] 성균 생원 김경충 등이 신축 궁장이 성균관 반수 안에 들지 않도록 청하였으나 불허하다 [DCI]ITKC_JT_G0_A09_02A_10A_00010_2005_007_XML DCI복사 URL복사 성균 생원(成均生員) 김경충(金敬忠) 등이 상서(上書)하기를, “신 등이 그윽이 듣건대, 학교(學校)는 풍화(風化)의 근원이며 어진 선비[賢士]에 관계되는 바이니, 예로부터 성제(聖帝)ㆍ명왕(明王)이 중히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천자(天子)의 학(學)을 벽옹(辟雍)이라 하고, 제후(諸侯)의 학궁을 반궁(泮宮)이라 하니, 그 벽옹(辟雍)이라는 것은 물이 언덕을 돌아 흘러서 ..
2023.06.30 -
이번 걸음에 인편(人便)을 얻게 되어 또한 대방(大邦)에 고(告)하니, 특별히 5만 민(緍)의 자금(資金)을 하사(下賜)하여 불쌍하고 가엾이 여겨 주시고, 또 대왕(大王)의 자비로운 교화(敎化)가 먼..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 세종 10년 무신 > 3월 1일 > 최종정보 세종 10년 무신(1428) 3월 1일(계미) 10-03-01[02] 구주 순무사 평상가가 《대반야경》을 구하기를 청하나 다만 사신에게 정포를 주어 보내다 [DCI]ITKC_JT_D0_A10_03A_01A_00020_2005_006_XML DCI복사 URL복사 일본국의 구주 순무사(九州巡撫使) 평상가(平常嘉)가 예조에 서신을 보내기를, “대국[大邦]의 지치(至治)는 비할 데 없사와 구구(區區)한 백성들이 각기 그들의 처소를 얻게 되고, 성덕(盛德)의 전례(典禮)가 있사와 매우 먼 나라에서도 모두 화호(和好)를 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봉읍(封邑) 안에 옛 절[舊刹]이 하나 있는데, 오래부터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구하려고 하니,..
2023.06.05 -
당당한 만승(萬乘)의 임금으로서 온 천하의 모든 생물이 모두 교화(敎化)를 입지 않음이 없으니,
조선왕조실록 > 세종실록 > 세종 12년 경술 > 윤 12월 27일 > 최종정보 세종 12년 경술(1430) 윤 12월 27일(계해) 12-윤12-27[03] 진헌사 관군기감사 김인이 북경에서 돌아와 아뢰다 [DCI]ITKC_JT_D0_A12_12B_27A_00030_2005_007_XML DCI복사 URL복사 진헌사(進獻使)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인(金因)이 북경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대감(大監) 오성(吳成)이 특별히 내리는 양(羊)과 술을 가지고 회동관(會同館)에 와서 성지(聖旨)를 전하기를, ‘조선 국왕이 중국을 공경히 섬기며 진헌한 어선(御膳)도 매우 정결하며, 매[鷹子]도 모두 좋으므로 짐(朕)은 매우 만족히 여기노라.’ 하였고, 예부 상서(禮部尙書)가 또 성지를 전해 오기를, ‘조선 국왕..
2023.06.05 -
“저승전(儲承殿)은 태후(太后)가 거처하는 전각이다.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2년 병오 > 9월 4일 > 최종정보 영조 2년 병오(1726) 9월 4일(계사) 맑음 02-09-04[08] 저승전(儲承殿)의 문호(門戶)에 봉표(封標)한 낭청을 파직하라는 등의 비망기 [DCI]ITKC_ST_U0_A02_09A_04A_00090_2014_048_XML DCI복사 URL복사 비망기(備忘記)에, “저승전(儲承殿)은 태후(太后)가 거처하는 전각이다. 그래서 이번에 도배(塗褙)한 일을 보고자 가서 살펴보았더니, 문호(門戶)에 봉표(封標)가 되어 있었고 투서(套書)가 찍혀 있었다. 그래서 일이 매우 괴이하여 물었더니, 호조 낭청이 봉표하고 서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내전(內殿)은 지극히 엄숙한 곳이어서 일개 낭관이 봉표할 곳이 아니다. 설령 이런 일이 있더라도 이름을..
202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