陸行幾千餘里。水路則倍之

2022. 9. 2. 13:43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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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전서 38 / 유서(諭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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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목사 엄사만(嚴思晩)에게 감진사(監賑使) 잉임(仍任)하게 하고 이어 백성들을 위유(慰諭)하게 하는 유서 갑진년(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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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국토가 편소(褊小)하여 도가 모두 8개가 있고 주(州), 부(府), 군(郡), 현(縣) 겨우 360여 개가 별과 바둑처럼 나열되어 있어 지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한번 수한(水旱)이나 기근(饑饉)이 들면 관할하기가 매우 편한데, 유독 탐라(耽羅) 한 지역은 바다 밖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뭍길이 몇천여 리나 되고 물길은 그 두 배나 된다. 그곳의 소식은 이미 서울과는 막연하여 무마(撫摩)하는 일은 단지 수령들에게 맡긴 실정이다. 평범한 문서가 오는 데에도 걸핏하면 반년이나 걸리니 무릇 섬에 사는 백성들의 질고(疾苦)와 걱정과 즐거움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는 어찌 조정의 회유(懷柔)하는 은택이 섬과 뭍에 차이를 두어서 그러하겠는가.
올해의 농사는 팔도에 큰 풍년이 들어서 묘당은 황정(荒政)에 대해 해야 할 일이 없으니, 내가 밤낮으로 오로지 염려하던 바도 또한 거의 약간은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얼마 전 동지가 지난 뒤에 수신(守臣)이 비로소 고을이 굶주리고 있다고 알려 왔다. 그리하여 이를 걱정하느라고 한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도정(道程)이 아득하게 먼 점을 더욱 탄식하였다. 만약 탐라가 바다에 있는 섬이 아니고 육지에 있어서 먼 정도가 북쪽의 육진(六鎭)과 서쪽의 칠읍(七邑) 정도라면 풍흉의 소식이 어찌 이와 같이 더디었겠는가. 농사가 흉년인데도 내가 알 수 없었고 백성이 곤궁에 처해 있는데도 구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섬에 사는 백성도 나의 적자(赤子)인데, 너희들의 부모 된 나로서 어찌 그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 우리 열성조(列聖朝)에서부터 이 땅을 진념하여, 내륙과 차이를 두지 않고 위무(慰撫)하시고 민휼(憫恤)하시는 데에 한껏 애를 쓰지 않은 적이 없으셨다. 그리하여 깊은 사랑과 두터운 은택이 너희들의 골수에 사무치고 너희들의 살갗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이 덕 없는 사람이 왕위를 이어받은 초기에 맨 처음 부월(斧鉞)을 가진 어사를 파견하여 문무(文武)에 대해서는 과거를 설행하여 인재를 취하였고, 부로(父老)들에 대해서는 폐막(弊瘼)을 묻고 숨은 애로 점들을 찾아내었다. 그리하여 효자를 높여 주고 열녀를 포상하였으며, 요역(徭役)을 가볍게 해 주고 부세(賦稅)를 적게 해 주는 등, 무릇 너희들의 몸을 편하게 해 주고 너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들은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소원대로 따라 주었다. 이는 나 한 사람이 베푼 은혜가 아니라, 또한 우리 조종조(祖宗朝)께서 먼 곳에 사는 백성들을 회유하신 은택을 우러러 체현한 것일 따름이다.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신통한 너희들은 그것을 혹시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
나리창(羅里倉)은 너희들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창고의 곡식이 넉넉하지 못하여 연해 고을에서 곡식을 운반해 오자는 의논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호남 백성들을 거듭 힘들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에 나아가 융통을 하면 또한 족히 구제하기에 충분하니, 어찌 수천 포(包)의 곡식을 아끼어 여러 자제들이 먹여 주기를 기다리는 심정을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본창(本倉)의 남아 있는 저축에서 조(租)와 모(麰) 등은 이미 도를 안찰하는 신하로 하여금 기한을 정해 운반을 감독하여 즉시 꾸려 출발하도록 하였다. 세밑에는 연이어 가서 닿을 것이니 내년 봄에 진휼을 한다면 자연히 굶주림에 허덕이는 걱정은 없게 될 것이다. 이에 앞서 탐라에 진휼을 베풀 때 간혹 어사를 파견하여 운반을 감독하고 진정(賑政)을 감독하는 예가 있었는데, 흉년에 주전(廚傳)으로 인하여 도리어 너희들에게 영송(迎送)의 노고를 끼치었다. 일찍이 선조(先朝) 기축년에 이 폐해를 염려하여 또한 도백에게 명하여 구관(句管)토록 하였으니, 이번에도 삼가 위의 예를 따라 전 목사 엄사만을 특별히 가을보리가 익을 때까지에 한하여 그대로 머무르게 하고 겸하여 진정을 감독하는 책임을 부여하여 그로 하여금 진정에 마음을 다하게 하였다.
지난해 여러 도에 흉작이 들었을 때 무릇 공헌(貢獻)하는 물종(物種) 및 백성들의 몸에서 나와 관(官)에 들어가는 것들을 모두 어공(御供), 어약(御藥)과 함께 특별히 면제해 주었는데, 이미 육지의 백성에게 시행한 것을 유독 섬의 백성에게 시행하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천헌(薦獻)에 쓰는 귤과 유자, 제향에 희생으로 쓰는 소는 더없이 중요한 제수(祭需)이고, 또 공마(貢馬)로 말하자면 군정(軍政)에 관계되는 것인 만큼 섣불리 논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밖에 먼 곳에서 바치는 진귀한 물건들에 대해서도 어찌 우리 백성들을 위해 감면을 아낄 것이 있겠는가. 각전(各殿)에 바치는 삭선(朔膳)과 물선(物膳), 삼명일(三名日)에 진상하는 방물(方物) 및 내국(內局)에 진상하는 약재(藥材), 경외(京外)의 각 아문과 각 영문에 진배(進排)하는 물종, 내사(內司)와 각사, 각 궁방 노비들의 신공(身貢)을 특별히 모두 정퇴(停退)하거나 줄여 주어 진휼 물자에 그대로 보태도록 하라. 이미 자전(慈殿)의 하교(下敎)를 받들었으니, 자전궁에 바치는 방물, 물선, 삭선에 대해서도 모두 정퇴하거나 줄여 주도록 하라. 올해 정퇴한 것들을 모두 내년에 바쳐야 할 것들과 함께 내년 가을에 독촉하여 바치게 하는 일도 또한 마땅히 구휼하여야 하니, 내년에 바쳐야 할 것들도 그대로 정퇴하도록 허락하라.
아, 지금 이 견감하고 면제하는 일을 어찌 시혜(施惠)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백성들의 힘을 펴게 해 주고 백성들의 식생활을 넉넉하게 해 주어야 하는 도리로 본다면 혹시 만분의 일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신(守臣)의 장계를 본 뒤로부터 너희들이 고생하며 허둥대고 있을 정상이 내 눈앞에 선하였다. 주거(舟車)가 이르지 아니하여 곡식을 옮길 방도가 없는데, 쌀단지는 바닥이 나고 살아갈 방도가 막연하여 누더기를 걸치고 어촌과 해안 사이에서 울부짖으면서 날마다 배에 실은 곡식이 와서 먹여 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희들의 기한(飢寒)을 다른 도의 흉작에 비해 갑절이나 더 불쌍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다만 미덥게 여겨 걱정을 잊게 하는 것이 있으니, 고을의 치소가 험한 바다에 가로막혀 있고 세 고을의 경계를 벗어나면 왕래하기가 어려우므로, 조정의 관원이 와서 위로하고 안집(安集)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스스로 안주하여 생업에 종사하게 하면 자연 이리저리 흩어져 유랑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구중(九重)의 궁궐이 비록 아득히 멀기는 하나, 나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임해 있으니, 너희들은 모쪼록 각기 이를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이에 유시하노라.

ⓒ 한국고전번역원 | 김동현 (역) | 1998

 

濟州前牧使嚴思晩仍任監賑。仍使慰諭民人諭書。甲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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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邦壤地褊小。道凡有八。州府郡縣僅三百六十有奇。星羅棊布。可按圖而知已。一有水旱饑饉。管領甚便。而獨耽羅一域。僻處海外。陸行幾千餘里。水路則倍之。聲響旣漠於京師。撫摩只付於長吏。尋常啓牘之來。動費半年。凡島民之疾苦憂樂。莫之憑悉。豈朝家懷柔之澤。或間於島陸而然歟。今歲之秋。八路大熟。廟堂無所事乎荒政。惟予宵旰一念。亦庶幾少弛矣。迺者陽至之後。守臣始以州饑聞。於是乎丙枕蹶坐。益歎道塗之云邈。若使耽羅。不海而陸。遠止於北

之六鎭。西之七邑。則豐歉之聞。豈此之遲乎。歲饑而莫予之知也。民窮而亦莫之救也。島民亦吾赤子。爲爾等父母。烏在其父母之責也。噫。自在我列聖朝。軫念玆土。罔間於內服。慰撫之。憫恤之。靡不用極。深仁厚澤。浹爾髓而淪爾肌。逮予寡人嗣服之初。首遣持斧之臣。文武則設科試取其才。父老則詢弊瘼採其隱。以至崇孝而褒烈。輕徭而薄賦。凡所以便爾等之身。悅爾等之心者。事靡巨細。無願不從。此非予一人惠也。亦所以仰體我祖宗朝柔遠之澤耳。至愚而神爾等。其或知之否。羅里之倉。爲爾等設也。倉穀不敷

至有沿邑移粟之議。而重撓湖民。在所難愼。就此塗抹。亦足接濟。未何愛數千穀包。不以慰諸子弟望哺之情。本倉遺儲。若租若麰。已令按道之臣。刻期督運。不日裝發。計於歲底。陸續往泊。明春開賑。自可無顑頷之憂矣。前此耽羅設賑之時。間有發送繡衣。督運監賑之例。而儉歲廚傳。反貽爾等迎送之勞。曾在先朝己丑。爲念是弊。亦命道伯句管。今亦謹遵右例。前牧使嚴思晩。特令限麥秋仍留。兼付監賑之責。使之悉心賑事。而往歲諸路之歉。凡貢獻物種及民之出於身而納于官者。竝與御供御藥。而另行蠲除。所已

施於陸民者。獨不施於島民可乎。薦獻橘柚。祭享犧牛。係是莫重享需。又若貢馬。亦關戎政。有難輕議。外此遠方珍獻。何惜吾民。各殿朔膳物膳。三名日方物。內局進上藥材。京外各衙門各營門。進排物種。內司及各司各宮房奴婢身貢。特竝停減。留補賑資。旣承慈敎慈殿宮所獻方物物膳朔膳。亦竝停減。今年停退條之幷與明年條。而督納於明秋。亦所當恤。明年條仍許停退。噫。今玆蠲免。豈云施惠。而其於紓民力裕民食之道。或有萬一之助否耶。自見守臣之狀。念爾等顚連遑遑之狀。宛在予目中。舟車不至而懋遷

無路。甁罌告罄而契活罔涯。鶉衣卉服。呼號於浦村海岸之間。日望船粟之來哺。此予所以愍爾等飢寒有倍於諸道之歉也。但賴而忘憂者有之。州治隔以重溟。除非三州之境。則難以往來。不待朝家之勞來還集。而自可安土奠業。自不至於蕩析流居耳。九重雖夐。臨之孔邇。爾等須各恃而無恐也。故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