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 달자(太極㺚子) 섬서(陝西)와 산서(山西)는 원래 우리 땅이므로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 마땅히 무기(武器)를 가지고 일을 해내겠다.
2022. 12. 2. 10:41ㆍ북경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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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13년 정묘(1687) 3월 22일(경자)
13-03-22[01] 돌아온 사은사 낭선군 우와 김덕원 등을 인견하다
[DCI]ITKC_JT_S0_A13_03A_22A_00010_2005_010_XML DCI복사 URL복사
돌아온 사은사(謝恩使) 낭선군(郞善君) 우(俁)와 김덕원(金德遠) 등을 인견(引見)하였다. 김덕원이 아뢰기를,
“한인(漢人) 곽조서(郭朝瑞)가 오삼계(吳三桂)의 신하로서 주류하(周流河)에 유배(流配)되어 있기에, 신(臣)이 태극 달자(太極㺚子)들의 소식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여기에 온 사자(使子)가 말하기를, 「섬서(陝西)와 산서(山西)는 원래 우리 땅이므로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 마땅히 무기(武器)를 가지고 일을 해내겠다.」고 하므로, 황제(皇帝)가 성을 내고 또한 두려워하여 여러 곳에 있는 둔전(屯田)의 갑병(甲兵)을 이미 모두 철수시켜 각진(各鎭)으로 돌아왔고, 증원한 군사 8천 명은 아직 보내지 않고 남겨 두었으며, 땅을 갈라 주려고는 들지 않고서 단지 갖옷[裘]과 말[馬] 및 폐백(幣帛)만 더 주어 강화(講和)했는데, 이로 인해 드디어 사단이 이루어지게 될 듯하다.’라고 했습니다.”
하였다.
【원전】 39 집 9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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