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 10:39ㆍ북경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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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개수실록) 13년 임자(1672) 10월 27일(무진)
13-10-27[01] 사은 겸 동지사인 창성군 이필ㆍ부사인 판윤 이정영이 청나라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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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 겸 동지사인 창성군 이필(昌城君李佖), 부사인 판윤 이정영(李正英), 서장관인 사예 강석창(姜碩昌)이 청나라에 갔다. 그 이듬해 봄에 환국하였는데, 그들의 문견사건에,
“몽고(蒙古) 기악온(奇握溫)의 후예가 군대와 말이 웅장(雄壯)하여 청인(淸人)이 두렵게 느끼고서 해마다 3백 6십만 금(金)을 실어다 주고 있으니, 명색은 속국이라고 하나, 실은 신복(臣服)하는 것이 아닌데, 근일에는, 대동지(大同地)를 떼어 주어 방목(放牧)하기를 요구하여, 장차 실랑이가 벌어지려는 형편이므로 한창 장수를 가려 군대를 조련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대체로 이들의 형세가 조만간 아무래도 청나라의 절박한 해(害)가 될 것인데, 우리 나라의 걱정 또한 작지 않습니다. 지난 병오년 사은사 허적 등이 연경에 들어갔을 때 궐정(闕庭)에서 몽고 사신과 맞닥뜨렸는데, 역관으로 하여금 탐문을 하였더니, 답하기를 ‘우리 몽고는 지금 세 나라가 되었다. 하나는 항타안(項朶顔)이고 하나는 대타안(大朶顔)이고 하나는 산타안(山朶顔)이다. 그 밖에 국경과 근접한 부락은 모두 청나라에 속해 있다. 우리 항타안은 곧 대원(大元)의 후예이다. 비록 청나라에 귀부(歸附)하고 있으나 그래도 제호(帝號)가 있고, 대타안은 대국에 복종하여 몹시 친대(親待)를 받으며, 산타안은 군대가 강한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복종하는 일이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북경(北京)은 우리 나라 소유인데 잃어버린 지가 지금 이미 수백년 째이다. 산타안은 쌍환달자(雙環㺚子)라고도 하는데 요새(要塞)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제 스스로 지켜 나가고 있어, 비록 청나라의 위세로도 감히 가병(加兵)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원전】 38 집 127 면
【분류】 외교-야(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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