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배신 매우등을 합밀에 파견, 말과 방물을 올리자 잔치와 다소의 폐백등을 내려주었다.

2023. 3. 20. 17:58북경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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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英宗睿皇帝實錄

 

·            天順七年

 

·            天順七年 四月

 

·            天順七年 四月 二十四日

英宗睿皇帝實錄 卷三百五十一 天順七年 四月 二十四日 2번째기사 14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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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國遣陪臣梅佑哈密地面遣使臣哈只等貢馬及方物賜宴并綵幣等物有差

조선국이 배신 매우등을 합밀지면에 파견하다.파견된 사신 합지등이 말과 방물을 받치자

잔치와 다소의 폐백등을 내려주었다.

열하일기 나오는 합밀왕(哈密王) 합밀 투르판 분지 동부의 하미(쿠물) 의미한다. 하미는 청나라의 강희제 치세에 청나라의 조공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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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1 기미(1439) 2 2(경진)

21-02-02[03] 통례문 봉례랑인 매우가 일향의 적을 내려주기를 상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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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례문 봉례랑(奉禮郞)인 매우(梅佑)가 상언(上言)하기를,

신의 아비 원저(原渚)는 일찍 죽은데다 또 집에는 문적(文籍)이 없사와 할아버지 군서(君瑞)가 중국에서 나온 근본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하오나, 신의 할아버지가 처음에 고려 때에 벼슬하여 관직이 행성제공(行省提控)에 이르렀고, 신의 아비도 또한 우리 태종 때에 벼슬하여 편벽되게 성은(聖恩)을 입사와 관직이 가선 의주 목사(嘉善義州牧使)에 이르렀습니다. 신도 또한 성은을 입사와 이름이 사판(仕版)에 있사오니 할아버지 때부터 신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이미 3대에 이르렀으나, 본관(本貫)은 아직도 중국이라 칭하오니 심히 민망하게 여기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일향(一鄕)의 적(籍)을 내려 주시어 외로운 신하의 소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매, 이조에 내렸는데, 이조에서 아뢰기를,

“예전 제왕들은 다른 지방의 풍속이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사모하고 오면, 혹 성(姓)을 내려 주고 혹 씨(氏)를 내려 주어 회유하는 뜻을 보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高麗) 때에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偰長壽)의 애비 손(遜)이 원나라에서 나왔는데, 관향을 경주(慶州)로 주었고, 상산군(尙山君) 이민도(李敏道)도 또한 원나라에서 나왔사온데, 우리 태종 때에 이르러 관향을 경주로 주었습니다. 이제 매우(梅佑)의 할아버지 군서(君瑞)가 처음으로 왔고, 아비 원저(原渚)도 청렴하고 근신한 것으로 벼슬하여 관직이 목사에 이르렀으며, 매우에 이르기까지 양대가 본국에 복무하였사오니, 청하옵건대, 그전 예(例)에 의하여 관향을 하사하게 하옵소서.”

하니, 충주(忠州)로 관향을 내려 주었다.

【원전】 4 집 189 면

【분류】 역사-고사(故事) / 왕실-사급(賜給) / 가족-성명(姓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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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9 계미(1463) 2 3(임술)

09-02-03[01] 매우ㆍ이함장이 표류 인구를 돌려준 것에 사례한 표문ㆍ방물표ㆍ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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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매우(梅佑),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이함장(李諴長)을 보내어 명(明)나라에 가서 표류 인구(漂流人口)를 돌려준 것을 사례하게 하였다. 그 표문(表文)에 말하기를,

“황은(皇恩)이 광대하여 능히 총애하고 편안하게 하고, 신권(宸眷)이 우융(優隆)하니 어찌 감대(感戴)하기를 이기겠습니까? 분수를 헤아리니 몸둘 곳이 없고 도보(圖報)할 길이 없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외람되게 용렬한 재질을 가지고 다행히 소대(昭代)를 만나, 사호(絲毫)의 도움[補]도 바침이 없는데 항상 난익(卵翼)의 사은(私恩)을 듬뿍 입었습니다. 돌아보건대, 오직 바닷가의 백성이 항상 바람의 조난(遭難)을 당하는 근심[患]을 만나니, 어찌 표탕(漂蕩)의 유천(遺喘)을 뜻하였겠습니까? 다행히 동양(東洋)의 동뇌(凍餒)한 여생(餘生)을 특별히 구호하고, 구토(舊土)에 복귀하기를 허락하여, 이내 천개(賤价)와 함께 돌려주시니, 진실로 제봉(堤封)이 한가지로 즐거워합니다. 이것은 대개 삼가 황제 폐하의 자소(字小)하는 깊은 어지심과 포황(包荒)하는 큰 도량을 만나, 굶주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한 지아비의 향우(向隅)함이며, 염려하여 기르고 편안하게 하심입니다. 만방(萬邦)을 어루만지시되 무외(無外)하여, 드디어 해가 돋는 지역으로 하여금 자주 하늘로부터의 은혜를 입었으니, 신은 삼가 마땅히 청구(靑丘)를 정성껏 지키어, 더욱 병한(屛翰)의 임무를 다하겠으며, 크게 자극(紫極)을 바라보며, 수강(壽康)하는 기도[祈]를 갑절이나 펴겠습니다.”

하였다. 방물표(方物表)에 이르기를,

“천권(天眷)이 특별히 두터워 거듭 어지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토의(土宜)가 비록 미약하오나 애오라지 사례하는 정성을 표하여, 삼가 황세저포(黃細苧布) 20필, 백세저포(白細苧布) 2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30필, 황화석(黃花席) 20장(張), 만화석(滿花席) 20장, 만화방석(滿花方席) 10장, 잡채화석(雜彩花席) 10장, 인삼(人蔘) 1백 근(觔)을 갖추었습니다. 위의 물건들은 가짓수가 심히 적고 제조(製造)함도 또한 거칠으니, 어찌 여정(旅庭)의 의(儀)에 합당하겠습니까마는, 거의 헌폭(獻曝)하는 정성임을 해량하소서.”

하였다. 중궁(中宮)의 예물(禮物)은 홍세저포(紅細苧布) 10필, 백세저포(白細苧布) 1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30필이었다. 황태자(皇太子)의 전문(箋文)에 이르기를,

“덕(德)은 원량(元良)이 되기를 힘쓰며, 은밀히 신화(神化)를 도우시어 어진 마음을 미루어 한결같이 사랑하고 홍사(洪私)를 쏟도록 인도하니, 온 나라가 고루 즐거워하고, 몸을 어루만져 감격함이 더합니다. 생각하건대, 봉양(封壤)이 궁벽한 바닷가에 있는 까닭으로 배를 타는 무리가 지난번에 태풍의 액운[厄]을 만나, 표류하다 대침(大浸)하여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더니, 동양(東洋)에 전하여서 생명을 얻고, 곡진(曲盡)히 깊이 사랑하시어 한기(寒飢)를 면하게 하고, 천개(賤价)를 따라서 아울러 향려(鄕閭)에 돌아오게 허락하시니, 보답하기를 어찌 몸이 가루가 된들 다하겠습니까? 은혜는 진실로 살과 뼈와 같으니, 이것은 대개 삼가 황태자 전하의 공(功)이 익량(翼亮)에 도탑고, 효(孝)는 순승(順承)에 돈독하여 상성(上聖)의 무리를 구제[濟衆]하는 마음을 몸받음입니다. 소신이 번방(藩邦)을 지키는 정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드디어 노둔(駑鈍)한 자질로 하여금 편벽되게 용광(龍光)을 입게 하였으니, 신은 삼가 마땅히 길이 제잠(鯷岑)을 술직(述職)하여, 항상 학금(鶴禁)에 축원을 펴겠습니다.”

하였다. 예물(禮物)은 백세저포(白細苧布) 10필, 흑세마포(黑細麻布) 30필, 인삼(人蔘) 1백 근(觔)이었다.

【원전】 7 집 565 면

【분류】 외교-명(明) / 어문학-문학(文學)

[-D001] 신권(宸眷) : 

황제의 은혜.

[-D006] 제봉(堤封) : 

국가.

[-D008] 자극(紫極) : 

황제의 어좌.

[-D009] 원량(元良) : 

황태자.

[-D012] 익량(翼亮) : 

황제를 도와 천하를 다스림.

[-D013] 제잠(鯷岑) : 

우리 나라의 별명(別名).

[-D014] 학금(鶴禁) : 

황태자의 궁전.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 세조 9년 계미 > 5월 28일 > 최종정보

세조 9 계미(1463) 5 28(병진)

09-05-28[02] 사은사 매우 등이 명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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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사(謝恩使) 매우(梅佑) 등이 명(明)나라로부터 돌아왔다.

【원전】 7 집 575 면

【분류】 외교-명(明)

 

대한자강회월보 제5호   >   國朝故事 (續
國朝故事 (續)
南嵩山人 張志淵

○古初漢南之地가 爲三韓이니 以韓人이 立國故로 稱韓이라 하고 又稱辰國者는 避秦東來者ㅣ俱是秦氏統一後來故로 通謂之辰이라 하나니 辰之爲奏은 據左氏傳(거좌씨전) 辰瀛(진영)에 可證이오 又 今 亞細亞西藏諸人이 稱中國爲支那者ㅣ 亦以秦音之轉也니 盖秦時에 始通中亞諸國故也라 漢書에 云辰國이 欲上書見天子호되 右渠壅渴不通(우거옹갈불통)이라 하니 此는 指三韓也라 范史(범사)에 始立三韓傳云三韓凡七十八國이니 馬韓이 最大하야 共立其種爲辰王하고 盡王三韓之地러니 朝鮮王準이 爲衛滿所破하야 走入海하야 攻馬韓破之 하고 自立爲韓王이라가 準이 後滅絶하고 韓人이 復自立爲辰王이라<27>하고 此外辰國은 無所見이니라.

다산시문집 제6권 / 시(詩) 송파수작(松坡酬酢)
여영천 우회가 자기 아우 우렴을 생각하며 지은 시에 차운하다[次韻呂榮川友晦懷其弟友濂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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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계주 머나먼 길에 기러기도 드물어라 / 遼薊迢迢雁亦稀
어느 날에 산해관의 동문을 들어갈꼬 / 海關何日款銅扉
의무려산 다하여라 청전을 넘어가고 / 醫巫山盡踰靑甸
은하수 연하여라 자미궁이 가까워지네 / 牛女河連近紫微
북쪽 오랑캐는 언제나 패기가 수그러질꼬 / 北隷幾時消霸氣
서장국에는 군사 기밀을 엿볼 길이 없어라 / 西藏無路覘軍機
불월간 가을 바람이 사신 수레에 불어 오거든 / 金飆不月吹華蓋
살수 패수를 거쳐 올 제 말이 정작 살찌리라 / 蕯浿歸程馬正肥

[주-D001] 여영천 우회 : 여우회(呂友晦)의 이름은 동근(東根)인데 일찍이 영천 군수(榮川郡守)를 지냈다. 또 우렴(友濂)의 이름은 동식(東植)인데,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 참판에 이르렀고, 청(淸) 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주-D002] 자미궁(紫微宮) : 천제(天帝)가 거처한다는, 북두성(北斗星) 북쪽에 있는 성좌(星座)를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천자의 대궐을 이른다

 

.> 승정원일기 > 고종 > 고종 13년 병자 > 9월 24일 > 최종정보

고종 13 병자(1876) 9 24(신사맑음

처음 철길을 만들되 단지 사천(泗川)과 서장(西藏)만을 허락하였다.

 

 

다산시문집 제17권 / 제문(祭文)

중추(中樞) 이시승(李時升)의 제문

뛰어나고 매서운 기개는 간에 서리고 폐에 뭉쳤는데 울적하여 펴지 못한 채 이처럼 떨어져 운명하게 되었네. 몸은 문지(門地) 때문에 굽히고 이름은 재물로써 가렸으나 깊은 생각과 총명한 지혜는 무리 가운데서 뛰어났네. 북으로는 악라(卾羅)까지 가고 남으로는 이리(伊犂)에 다다라 해우(海宇)를 거두어 놓고 변방을 의논했으나, 그 관직을 생각하니 때를 만나지 못함 애석타 하겠네. 그가 남긴 10편의 글, 아는 이 그 누구인가. 불볕 날씨에 떨치고 나간 것이 나와의 이별이었네. 탁주와 닭고기로 이 슬픈 마음을 나타내노니 부디 흠향하소서.

[주-D001] 악라(鄂羅) :

러시아의 음역(音譯)임. 아라사(鄂羅斯).

[주-D002] 이이(伊犁) :

강 이름으로 혹 이열(伊列)ㆍ이려(伊麗)ㆍ익리(益離)라고도 한다. 부명(府名)으로는 한(漢) 나라 때에는 오손국(烏孫國)이었다가 청(淸) 나라 초에 준갈이(準噶爾)가 살았는데, 건륭 때에 준부(準部)를 멸하고 이이부(伊犁部)를 두었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密縣

本文

漢伊吾廬地。後漢置宜禾都尉。三國屬鮮卑。北魏屬蠕蠕。北周爲伊吾地。唐屬伊州伊吾郡。宋入回鶻。元爲威武王分鎭之所。明爲哈密衞。清康熙間内附。乾隆間置哈密廳。直隸甘肅安西道。光緖初改隸新疆省。民國改縣。屬迪化道。地當天山之陽。玉門以西出西域第一孔道。土潤泉甘。田多樹密。以樂土稱。與迪化同時准俄人貿易。縣西南有回城。其部長爵親王。前清時毎歳貢瓜。以甜瓜爲最有名。有十數種。緑皮緑瓤而清脆如梨甘芳似醴者爲最上。世稱哈密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