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나라는 이 발해의 후예로서 요와 원한이 아주 깊었기 때문에

2022. 9. 5. 19:49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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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23 / 경사문(經史門)

요ㆍ금ㆍ원(遼金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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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契丹)은 본래 한(漢) 나라 때 동쪽 오랑캐로서 선비산(鮮卑山)에 피거(避居)하여 선비와 서로 가까웠고 병ㆍ영(幷營) 접계에 있었는데, 태종 덕광(太宗德光)에게 미쳐 발해(渤海)를 격파하고 전 요동(遼東) 지대를 점거한 다음, 드디어 국호를 고쳐 요(遼)라 하고 연(燕)ㆍ운(雲) 등 16주(州)를 모두 소유로 만들었다.

금국(金國)이 갑자기 일어나자 천조제(天祚帝)연희(延禧)는 그 형세가 쭈그러지게 되었다. 송 휘종(宋徽宗)이 친히 불러 묻기를, “만약 중국으로 돌아오면 마땅히 황형(皇兄)으로 대우하고 갑제(甲第)를 주어 극진히 봉양할 것이다.” 하니, 천조는 크게 기쁘게 여겼다. 이 사실을 그때 금 나라 사람이 알고 송(宗) 나라로 격문(檄文)을 보내 극도로 꾸짖었는데, 《송사(宋史)》에는 이를 숨겼고, 일도 과연 이루어지지 못했다.

천조는 드디어 운중(雲中)으로 도망쳤다가 금 나라가 연경(燕京)을 함락시키자, 또 음산(陰山)으로부터 먼 당항(黨項) 바깥까지 도망쳤다. 그러나 금 나라 장수 누실(婁室)에게 생포되자, 누실은 그를 사살하고 여러 말[馬]로 시체를 짓밟도록 하여 무슨 원수나 갚은 것처럼 심히 하였으니, 이는 추측컨대 발해가 죄도 없이 요(遼)에게 섬멸된 때문인 듯하다.

금 나라는 이 발해의 후예로서 요와 원한이 아주 깊었기 때문에 필시 끝끝내 추격하여 사로잡았던 것이리라. 여 태조(麗太祖)도 역시 발해 때문에 요사(遼使)를 물리쳐 끊어 버리고 무도한 나라라고 하였다. 그때의 사실은 비록 상고할 수 없으나 필시 지극히 참혹하고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꼭 시체를 찢어 죽인 후에야 마음이 쾌하였겠는가?

그들 족속 야율대석(耶律大石)은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서역(西域)으로 도망쳐 수십 년 동안에 20여 개의 국가를 이기고 수만 리의 지역을 차지한 다음 국호를 서요(西遼)라 하였다. 서요는 무릇 6대로 79년 만에 멸망되었으나 묘호(廟號)를 덕종(德宗)이라 하였으니, 서역 백성들이 마음에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에 글안의 후예 금산(金山)ㆍ금시(金始) 두 왕자(王子)가 하삭(河朔) 백성을 위협하고 자칭 대요수국왕(大遼收國王)이라 하여 천성(天成)이라는 연호까지 세웠으나 몽고(蒙古)에 패망되고 말았다. 이때 우리나라 장수 조충(趙冲), 김취려(金就礪) 등이 몽고ㆍ동진(東眞) 두 나라 군사와 함께 공격하여 3년 만에 겨우 섬멸시켰다.

금국은 본래 여진(女眞)의 종족으로 백두산(白頭山) 동북쪽 경박(鏡泊) 사이에서 일어나 요(遼)를 격멸하고 중국으로 들어가 임금이 되었다. 해릉왕(海陵王)에 이르러 도읍을 연경(燕京)으로 옮겼다가 다시 변경(汴京)으로 옮기게 되었다. 세종(世宗)은 요양(遼陽)에서 즉위했는데 여기는 중경(中京)이었다.

선종(宣宗) 때 다시 변경으로 옮겼는데, 애종(哀宗)수서(守緖)에 이르러 원(元)ㆍ송(宋) 두 나라의 협공을 받아 하북(河北)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채주(蔡州)로 도망쳐 분신자살하니 금 나라가 드디어 멸망되었다.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그의 종족 포선만노(蒲鮮萬奴)가 이미 동쪽 변방에서 황제로 자칭하고 국호를 대진(大眞)이라 했으니, 우리나라에서 이르는 동진황제(東眞皇帝)였다. 원(元) 나라 운수가 바야흐로 흥왕했을 때도 능히 금할 수 없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변경의 걱정이 되었던 것인데, 그들의 도읍을 세운 것과 세대를 전한 것은 상고할 수 없다.

몽고제(蒙古帝)는 본래 사막(沙漠)에서 일어나 금 나라와 송 나라를 차례로 격멸하고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고치고 연호를 지원(至元)으로 하였으니, 이 대원과 지원은 건곤(乾坤)이라는 뜻이었다. 순제(順帝)가 왕위를 버리고 도망칠 때 탕화(湯和)는 추격하려 했으나 서달(徐達)이 따르지 않았다. 그가 천명과 인심에 순응했다는 뜻으로 시호를 순제라 하였다.

그는 나라 운수가 점점 쇠해지자, 우리나라 탐라(耽羅)에 궁실을 경영하고 도피할 계획까지 하다가 결국 사막에서 죽었다. 황제(明皇帝)가 그의 지속(支屬)을 탐라로 옮겨 섬 백성으로 만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의 유종(遺種)이 북쪽에 있어 우리나라에 사신(使臣)을 보내오기까지 했으니, 소위 북원(北元)이 바로 이들이었다.

지금도 장성(長城) 밖은 모두 몽고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책문(柵門) 바깥 동북쪽에 있는 모든 부락이 가장 강성하다. 이들이 바로 글안과 선비가 살던 부락에 남아 있는 족속인 듯하다. 나중에 반드시 또 중국에 들어가 임금 노릇 할 자가 있을 것이니, 시무(時務)를 아는 자로서는 상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D001] 요ㆍ금ㆍ원(遼金元) :

요ㆍ금ㆍ원 세 나라의 이름.

[-D002] 병ㆍ영(幷營) :

지명. 병주(幷州)와 영주(營州).

[-D003] 태종 덕광(太宗德光) :

요(遼)의 제2대 임금.

[-D004] 천조제(天祚帝) :

요(遼)의 제9대 임금.

[-D005] 해릉왕(海陵王) :

금(金)의 제5대 임금 세종(世宗) 옹(雍)의 왕호.

[-D006] 선종(宣宗) :

금(金) 나라 제8대 임금 순(珣)의 묘호.

[-D007] 애종(哀宗) :

금(金) 나라 제9대 임금 수서(守緖)의 묘호.

[-D008] 몽고제(蒙古帝) :

원 세조(元世祖) 홀필렬(忽必烈).

[-D009] 건곤(乾坤)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주역(周易)》 건괘ㆍ곤괘의 단사(彖辭)에, “大哉 乾元 萬物資始 乃統天”과 “至哉 坤元 萬物資生 乃承順天”에서 인용된 것.

[-D010] 순제(順帝) :

원 나라 제8대 임금 첨목이(帖睦爾)의 묘호.

[-D011] 탐라(耽羅) :

제주도(濟州島)의 구호.

[-D012] 황제(明皇帝) :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 한국고전번역원 | 김철희 (역)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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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22 / 경사문(經史門)

동사 다휘(東史多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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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신왕(辛王) 때에 명 태조(明太祖)가 조칙하기를, “짐(朕)이 역대로 고려 정벌한 사실을 살펴보니, 한(漢) 나라는 네 차례나 정벌했는데 자주 변경을 집적거린 까닭에 섬멸시켰다 하고, 위(魏) 나라는 두 차례를 정벌했는데 남몰래 두 마음을 품고 오(吳) 나라와 좋아한 까닭에 도읍을 무찔러버렸다 하고, 진(晉) 나라는 한 차례를 정벌하였는데 그들이 거만한 행동으로 무례한 짓을 한 까닭에 궁실을 불태우고 남녀 5만 명을 사로잡아 노비로 부렸다 하고, 수(隋) 나라는 두 차례 정벌하였는데 요서(遼西)를 침략하면서 번방(藩邦)의 예를 폐한 까닭에 쳐서 항복을 받았다 하고, 당(唐) 나라는 네 차례나 정벌하였는데 임금을 죽이고 형제간에 그 왕위(王位)를 다툰 까닭에 땅을 뺏어서 9도독부(都督府)로 만들었다 하고, 요(遼) 나라는 네 차례나 정하였는데 그들이 임금을 죽이고 또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난을 일으킨 까닭에 궁실을 불태우고 난신(亂臣) 강조(康兆) 등 수만 명을 목 베어 죽였다 하고, 금(金) 나라는 한 차례를 정벌하였는데 사신을 죽인 까닭에 그들 백성까지 무찔러 버렸다 하고, 원(元) 나라는 다섯 차례나 정벌하였는데 도망쳐 다니면서 사자(使者)와 조정에서 배치한 관노(官奴)를 죽인 까닭에 군사를 일으켜 토벌한 다음 탐라(耽羅)로 귀양 보냈다가 잡아 죽이기까지 하였다 했으니, 이렇게 서로 벌어진 원인은 모두 자신이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로 본다면 한(漢) 나라 이후부터 무릇 스물 세 차례나 병화(兵禍)를 입은 셈이다. 만약 그런 사실이 없었다면 황제(明皇帝)가 어찌 이와 같이 일렀겠는가? 동사(東史)에는 기재되지 않은 것이 많으니 마땅히 그대로 써서 전하고 믿도록 해야겠다. 탐라에서 한 사실은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이는 혹 사씨(史氏)가 숨겼던 것인가? 전고(典故)를 널리 아는 자로서는 마땅히 상고해야 할 것이다.

[-D001] 동사 다휘(東史多諱) :

동사(東史)에 숨긴 사실이 많음. 《類選》 卷9上 經史篇 論史門.

[-D002] 신왕(辛王) :

고려 제32대 임금 신우(辛禑).

[-D003] 황제(明皇帝) :

명 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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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4 / 만물문(萬物門)

탐라 과품(耽羅果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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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지(耽羅) 몇 가지 이상한 과실이 적혀져 있다.

첫째는 연복자(燕覆子)인데, 즉 목통(木通) 중의 특이한 종류로서 열매는 크기가 모과(木瓜)와 같고 맛은 아주 향기롭다.

지금 목통 열매라는 것은 모과에 비하면 동떨어지게 작은데, 《본초》에, “작은 모과와 같다.” 하였다. 생각건대, 이것이 제일 진품이 되는데 세상에서 쓰는 것은 다만 열품일 뿐이다. 그러나 연해(沿海)의 모든 고을에도 이것이 있다고 한다.

둘째는 오미자(五味子)인데, 빛은 새까맣고 크기는 새머루[蘡薁]와 같으며 맛도 달다. 토인(土人)들은 이를 주안상에 쓰는데, 마를수록 맛이 더 진기가 있으니 이상하다.

셋째는 청귤(靑橘)인데, 가을과 겨울철에는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으나, 겨울을 지나고 2~3월에 이르면 신맛이 조금 가신다. 5~6월이 되면, 농익은 묵은 열매와 싱싱한 새 열매가 한가지에 같이 달렸는데, 묵은 열매의 맛은 달기가 마치 텁텁한 초에다 꿀을 타 놓은 것과 같으며, 7월에 이르러서는 열매 속의 씨가 변해서 물이 되는데 맛은 여전히 달다.

8~9월이 지나고 겨울철이 되면 열매는 도리어 푸르러지고 씨는 다시 맛이 생겨서 신맛이 새로 연 열매와 다름없다. 맨 처음 신맛이 생길 때는 시람들이 모두 천하게 여기고 먹지 않으니, 대개 과실 중에 이상한 것은 이 청귤에 앞설 것이 없다.

지금 《본초》 중에 모두 적혀 있지 않으니, 이는 혹 풍토가 각각 달라서인지, 또는 혹 빠뜨려서인지? 생각건대, 의가(醫家)에서 쓰는 청피(靑皮)는 곧 이 청귤의 껍질인 듯하다.

[-D001] 탐라 과품(耽羅果品) :

탐라에서 생산되는 과일의 품종. 탐라는 제주의 구호. 《類選》 卷10中 萬物篇 草木門. 《五洲》 卷25 耽羅異品辨證說.

[-D002] 《탐라지(耽羅) :

조선조 효종 때 이익한(李翊漢)이 찬한 제주도의 읍지로 총 1책. 건치연혁(建治沿革)ㆍ읍명(邑名)ㆍ성씨(姓氏)ㆍ풍속(風俗) 등 35항목으로 분류되었음. 이태호(李太湖)나 이원진(李元鎭)이 찬자로 된 본도 있음.

[-D003] 연복자(燕覆子) :

으름.

[-D004] 목통(木通) :

으름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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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1 / 천지문(天地門)

제주(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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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옛날에는 탐라국(耽羅國)이었다. 육지에서 9백 70여 리에 위치하며 주위는 4백여 리가 된다. 산꼭대기는 오목하게 생겨 봉우리마다 모두 그러하다. 날씨가 활짝 개었을 때 올라가서 서남쪽을 바라보면 하늘 가에 산이 보인다. 남방에서 온 중국 상인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송강부(松江府)의 금산(金山)이라 한다. 춘분과 추분에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 보인다. 산세가 험준한 것이 다른 산과 다르다. 제주는 앞쪽에서 북으로 향해 있고 대정(大靜)과 정의(旌義)는 산 뒤에 있는데 정의는 서쪽이요, 대정은 동쪽이다. 서복(徐福)한종(韓終)이 바다에 들어갔다는 것이 꾸며댄 말이긴 하나 그의 말이, “지부산(芝罘山)에 올라가서 신산(神山)을 바라본다.” 하였으니, 지부산은 동해가에 있는 것으로 시황(始皇)이 직접 올라가 본 곳이다. 올라가면 바라보인다는 곳이 아마 이 산을 가리킨 듯하다. 송강의 금산은 서남쪽에 있으니 저쪽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반드시 동북이 될 것이다. 섬 안에 또 영주(瀛州)라는 이름이 있으니 이상하다.

[-D001] 서복(徐福) :

진 시황(秦始皇) 때의 방사(方士). 삼신산(三神山)에 들어가서 불사약(不死藥)을 가져 오겠다 하다가, 마침내 바람을 핑계하고 가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왔다고 보고하였음.

[-D002] 한종(韓終) :

전국 시대의 방사. 한중(韓衆)이라고도 함. 열선전(列仙傳)에 한 중이 불사약을 구하여 제왕(齊王)에게 바쳤으나 왕이 먹지 아니하므로 자기가 먹고 신선이 되었다 함.

[-D003] 지부산(芝罘山) :

산동성(山東省) 동래현(東萊縣)에 있음.

 

松江府

 

本文

宋置華亭府。改松江府。清屬江蘇省。治華亭、婁縣。民國廢府。幷二縣爲松江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