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6국 시대 한(漢)의 건국자

2022. 9. 17. 11:46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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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8권 / 소대(召對) 모두 4편이나 3편만 수록한다.

영춘헌 소대〔迎春軒召對〕 정축년(1877, 고종14) 4월 20일. 상번 어윤중(魚允中), 하번 김윤식(金允植), 승지 조준영(趙準永), 각신(閣臣) 김흥균(金興均), 책자 《통감(通鑑)》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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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진양호(正月晉羊祜)’에서부터 ‘불부유언(不復有言)’까지 읽고 해석을 마쳤다. 상주하여 아뢰었다.

………..주상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오호(五胡)라고 하는 것은 모두 남선우(南單于)의 종족인가?”

답하여 아뢰었다.

“기질은 가까우나 종족과 부락은 각기 다릅니다. 유연(劉淵)은 호족(胡族)으로 곧 남선우의 종족입니다. 석륵(石勒)은 갈족(羯族)이고 부견(苻堅)은 저족(氐族)이며, 요흥(姚興)은 강족(羌族)이고, 모용(慕容)ㆍ탁발(跖拔)ㆍ우문(宇文) 등의 종족들은 모두 선비족(鮮卑族)입니다.”

주상께서 말씀하셨다.

“시자(侍子)를 두어 볼모로 삼은 것은 그들이 배신할까 걱정해서 그리 한 것인가?”

답하여 아뢰었다.

“계책은 비록 그것이었지만 도리어 그 해를 입었습니다. 유연은 영웅호걸의 재능을 지니고 오랫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정령(政令)의 득실과 형세의 허실을 낱낱이 알고 있었기에, 마침내 호시탐탐하던 마음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만일 일찌감치 변방에 두었더라면 어찌 이에 이르렀겠습니까. 이것이 강통(江統)이 〈사융론(徙戎論)〉을 지은 까닭입니다.

[-D001] 영춘헌(迎春軒) : 

창경궁의 내전으로, 정조가 거처하다가 승하한 곳이다.

[-D002] 소대(召對) : 

왕명으로 입대(入對)하여 정사에 관한 의견을 상주하는 일이나, 경연(經筵)의 참찬관(參贊官) 이하를 불러서 임금이 몸소 글을 강론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의 내용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14년 4월 20일 기사에도 보인다.

[-D003] 어윤중(魚允中) : 

1848~1896. 본관은 함종, 자는 성집(聖執), 호는 일재(一齋),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어약우(魚若愚)의 아들이다. 1869년(고종6) 문과에 급제,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에 이르렀다. 1896년 아관파천 때 보은으로 도망가다가 용인에서 살해되었다. 저서로 《종정연표(從政年表)》가 있다.

[-D004] 조준영(趙準永) : 

1833~1886.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경취(景翠), 호는 송간(松磵)이다. 1864년(고종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을과로 급제, 참판을 거쳐 1881년(고종18)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의 한 사람으로 40일 동안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통리기무아문의 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가 되었다. 이듬해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올 때 영접관(迎接官)이 되고, 1883년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를 거쳐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실패 후 사대당 내각에서 개성 유수(開城留守)가 되었다. 이듬해 협판내무부사(協辦內務府事)가 되고, 1886년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를 지냈다. 편저로는 《일본문견사건(日本聞見事件)》이 있다.

[-D005] 각신(閣臣) : 

조선 시대 규장각(奎章閣)에 소속된 제학(提學), 직제학(直提學), 직각(直閣), 대교(待敎) 등의 관원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청요직(淸要職)이었다.

[-D006] 김흥균(金興均) : 

1858~? 본관은 안동, 자는 기재(起哉)이다. 김병훈(金炳薰)의 아들로 병필(炳弼)에게 입양되고, 1875년(고종12) 을해(乙亥)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 김흥규(金興圭)로 개명하였다. 고종 25년 병조 참판에 임명되었다.

[-D007] 양호(羊祜) : 

221~278. 태산(泰山) 남성(南城) 사람으로, 자는 숙자(叔子)이다. 중국 진(晉)나라 사마씨(司馬氏)의 대장으로 조서(詔書)를 받아 오(吳)와의 국경을 지켰는데 군기가 엄숙하고 인의로써 다스렸다. 오나라 장군 육항(陸抗)과 비록 대립된 자리에 있었으나, 서로 지기(志氣)가 상통하여 늙어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서로 경대하였다. 병이 위독해지자 사마염(司馬炎)은 친히 그의 병석을 찾아 위로하였으며, 정남 대장군에 임명하고 남성후(南城侯)에 봉했다. 죽은 뒤에는 태부에 추증되었다. 원문에 ‘양우(羊祐)’라 되어 있으나 ‘양호(羊祜)’의 오기이다. 아래 원문에도 한 차례 더 보인다.

[-D008] ()나라 무제(武帝) : 

236~290. 자는 안세(安世), 묘호는 세조(世祖), 시호는 무제(武帝)이다. 사마소(司馬昭, 211~265)의 아들이자 사마의(司馬懿)의 손자이다. 중국 서진(西晉)의 제1대 황제(재위 265~290)로, 위나라 원제의 선양을 받아, 낙양을 도읍으로 진나라를 세웠다. 280년 오나라의 항복을 받아 천하를 재통일하였다. 점전법ㆍ과전법ㆍ호조식을 공포하였다.

[-D009] 태시 연간(泰始年間) : 

진(晉)나라 무제(武帝)의 연호로, 265~274년이다.

[-D010] 언영(鄢郢) : 

춘추 시대 초나라의 도읍지이다. 초나라 문왕(文王)이 처음 영(郢) 땅에 도읍했다가 언(鄢) 땅으로 도읍을 옮겨서도 그대로 영이라 불렀다.

[-D011] 범문자(范文子) : 

?~기원전 574. 중국 춘추 시대 진(晉)나라 사람으로, 성은 사씨(士氏), 이름은 섭(燮), 시호는 문(文)이다. 사회(士會)의 아들로 경공(景公) 때 대부, 여공(厲公) 때 중군수(中軍帥)를 지냈다. 난서(欒書) 등을 따라 진(秦)나라와 싸워 크게 이기고 또 언릉(鄢陵)에서 초(楚)나라 군사와 싸워 이겼다.

[-D012] 여공(厲公) : 

?~기원전 573. 이름은 수만(壽曼)으로, 중국 춘추 시대 진(晉)나라 경공(景公)의 태자로 경공을 계승해 즉위했다. 기원전 573년(여공8) 난서(欒書)ㆍ중항언(中行偃) 등에게 체포되어 갇혔다가 죽었다.

[-D013] 안으로 …… 있다 :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서 나온 말이다.

[-D014] 이항(李沆) : 

947~1004. 중국 송(宋)나라 비향(肥鄕) 사람으로, 자는 태초(太初), 이병(李炳)의 아들이다. 980년 진사에 급제하여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이르렀다. 황제의 사치심을 경계하여 당시에 성상(聖相)이라고 일컬었다.

[-D015] 날마다 …… 반성한다 : 

증자는 날마다 남을 위하여 계획하는 데 충성스럽지 못하였는가, 벗과 교제하는 데 미덥지 못하였는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하는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고 하였다. 《論語 學而》

[-D016] 호한야(呼韓邪) : 

동흉노(東匈奴)의 선우(재위 기원전 58~기원전 31)이다. 흉노가 분열하여 5명의 선우가 일어난 중의 하나로, 형인 질지선우와 싸우고 패한 뒤 몽골 본토로 돌아가 전한(前漢)과 화친관계를 갖고 왕소군(王昭君)을 아내로 맞았다.

[-D017] 왕망(王莽) : 

기원전 45~23. 위군(魏郡) 원성(元城)사람으로 자는 거군(巨君)이다. 중국 한(漢)나라의 외척으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웠다.

[-D018] 편호(編戶) : 

호적에 편입된 평민을 말한다.

[-D019] 오호(五胡) : 

진 무제(晉武帝) 사후에 왕실에서 내란이 일어 북방 소수민족 다섯 종족이 서로 이어가며 중원에서 황제를 칭했는데, 그것을 역사에서 오호라고 부른다. 흉노족(匈奴族)의 유연(劉淵) 및 저거씨(沮渠氏)ㆍ혁연씨(赫連氏), 갈족(羯族)의 석씨(石氏), 선비족(鮮卑族)의 모용씨(慕容氏) 및 독발씨(禿髮氏)ㆍ걸복씨(乞伏氏), 저족(氐族)의 부씨(苻氏)ㆍ여씨(呂氏), 강족(羌族)의 요씨(姚氏)이다. 《晉書 卷6 元帝紀》

[-D020] 유연(劉淵) : 

?~310. 중국 16국 시대 한(漢)의 건국자로, 자는 원해(元海)로 흉노족이다. 308년 한제(漢帝)라 일컫고 평양(平陽)에 도읍했다. 시호는 광문(光文), 묘호는 고조(高祖)이다.

[-D021] 석륵(石勒) : 

274~333. 중국 16국 시대 후조(後趙)의 건국자로, 자는 세룡(世龍)으로 상당 무향(上黨武鄕) 사람이며 갈족(羯族)이다. 유연(劉淵)에게 투항하여 대장이 되었다가 319년 후조(後趙)를 건국하고 조왕이라 일컬었다. 16국 가운데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되었다. 재위는 15년간이었다.

[-D022] 부견(苻堅) : 

338~385. 중국 16국 시대 전진(前秦)의 임금으로, 일명 문옥(文玉), 자는 영고(永固)이다. 부웅(苻雄)의 아들로 박학다재했으며 처음엔 동해왕(東海王)이 되고, 동진(東晉) 목제(穆帝) 승평 1년(357) 부생(苻生)을 죽이고 자립해 대진천왕(大秦天王)이라 했다. 북방을 통일하고 동진(東晉) 익주(益州)를 빼앗았다. 재위는 27년간이며, 후진(後秦) 요장(姚萇)에게 잡혀 죽었다.

[-D023] 요흥(姚興) : 

366~416. 중국 16국 시대 후진(後秦)의 임금으로, 자는 자략(子略), 강족(羌族) 요장(姚萇)의 아들이다. 유학(儒學)을 중시하고 불교를 제창(提創)했다. 구마라습(鳩摩羅什) 등 고승에게 불경 번역을 요청했다. 재위는 22년간이었다.

[-D024] 강통(江統) : 

중국 진(晉)나라 때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응원(應元), 벼슬은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융론(徙戎論)〉을 지어 혜제(惠帝)에게 올렸는데, 융인(戎人)과 적인(狄人)을 색출해서 몰아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晉書 卷56 江統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