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7. 11:23ㆍ고대사
동문선 제29권 / 책(冊)
왕후 애책(王后哀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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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權近)
홍무(洪武) 9년 병진 가을 윤 9월 초하루 임오 21일 임인에 순정왕후(順靖王后)의 재궁(梓宮)을 권찬(權𣪁 임시 매장한 자리)에서 빈(殯)으로 옮겼다가 그 뒤 5일 병오에 서울의 서릉(西陵)에 장사를 모시니, 이는 예이다. 발인제를 이미 마치고 비단 장막을 장차 옮기려 하니, 용이(龍轜 상여)는 주저하고, 적불(翟茀 꿩털로 수레에 단 것)은 머뭇거린다. 스산한 바람이 스치자 명정은 흐늘흐늘하고, 찬 안개 부슬거리자 붉은 깃발이 너울거린다. 효자 사왕(嗣王)은 하늘에 울부짖어 길이 사모하고, 이슬을 밟아 더욱 슬퍼한다. 형용이 이미 감춰짐을 애통해 하고, 자훈(慈訓)을 일찍 여읜 것을 생각하니, 슬픔은 얼굴에 드러나고, 정은 말씀에 나타난다. 이에 종신(從臣)들에게 명령하여 효성스러운 생각을 서술하게 하였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당(唐) 나라의 성스러운 후손이 우리 대동(大東)을 개척하시매, 5백년을 흘러오는 동안에 덕은 흐뭇하고 인은 두터웠는데, 왕화의 시작됨은 중궁(中宮)으로부터였습니다.
넓은 저 면(沔)의 땅은 정기가 서려 모였습니다. 아름다운 대족(大族)이 있으니, 그 집은 한씨(韓氏)라 이릅니다. 적선(積善)하기 여러 대 동안 하매 경사가 피어남이 무궁하였습니다. 이에 훌륭한 따님을 낳으시니, 도가 유융(有娀 은 나라의 시조모(始祖母))과 같았습니다.
꽃다운 행실은 어질고 삼가며, 옥 같은 자질은 깊고 깊었습니다. 지존을 풍금(楓禁 임금이 거처하는 궁)에서 짝하시어, 깊이 초방(椒房 후비가 거처하는 궁)에 드셨습니다. 발자국을 밟아 임신하시니, 아들 낳기가 더디지 아니하였습니다. 무지개가 흘러 상서를 표시하자,천일(天日)의 자질이었습니다. 난초의 꿈이 과연 미더웠건만 어쩌자고 슬픔이 얽히었단 말입니까. 요모(堯母)의 문이 적막하고, 태사(太姒)의 장막이 처량하였습니다. 아, 슬픕니다.
생각하건대, 경효왕(敬孝王)께옵서는 거룩하신 수의(垂衣)의 정치이었사온데, 전성(前星 태자의 별)은 오래도록 어둡고 후궁에서는 빛을 감춰서 근심이 얼굴에 맺히고, 염려가 종사(宗祀)에 미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이 지은 합(合)이라 새 왕후를 맞아오시어, 첫아들을 낳으시니 태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성대한 공 빛나는 덕이 있음에도 생존하실 때의 봉양이 미치지 못했으므로 마지막 가시는 일에 조심하였습니다. 이에 이름을 현시(顯諡)로 더해 올리고, 예를 옛법대로 따랐습니다. 추숭(追崇)을 이미 극진히 하였건만, 사모하는 마음 더욱 깊습니다. 왕후의 아름다운 옷은 이렇게 진설되어 있는데, 패옥(佩玉) 소리는 들리지 아니합니다. 아,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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