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0. 11:55ㆍ북경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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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6년 기축(1889) 11월 8일(경술) 맑음
26-11-08[28] 만경전에서 세 사신을 소견할 때 동부승지 이중하 등이 입시하여 사행의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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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시(申時).
상이 만경전(萬慶殿)에 나아갔다. 세 사신이 입시하였다. 이때 입시한 동부승지 이중하(李重夏), 가주서 김명준(金明濬), 기주관 백시순(白時淳), 별겸춘추 김학수(金鶴洙), 동지 겸 사은 정사(冬至兼謝恩正使) 이돈하(李敦夏), 부사 이희로(李僖魯), 서장관 윤시영(尹始榮)이 차례로 나아가 엎드렸다.
상이 이르기를,
“사관은 좌우로 나누어 앉으라.”
하였다. 이어 세 사신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니, 이돈하 등이 앞으로 나와 엎드렸다.
상이 이르기를,
“해마다 다녀오는 일이지만 공무(公務)로 인해 얼음이 언 먼 길을 갔다 오는 일이 매우 마음에 걸린다. 모쪼록 잘 다녀오도록 하라.”
하였다. 이어 전교하기를,
“이번에 길을 떠나는 것이 조금 늦었는데, 사신의 일이 촉박하게 되지는 않겠는가?”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작년에 비하면 별로 늦지 않았습니다. 이달 23, 4일 사이에 의주부(義州府)에 이르러 며칠 묵고 다음 달 2일에 강을 건널 계획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에 역관(譯官)과 하례(下隷)들이 지나치게 역말을 사용하고 계속 입파(入把)하는 일들을 각별히 신칙해서 연로에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일찍이 사신이 갈 때 각별히 신칙하더라도 더러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각별히 더 신칙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북경(北京)에 이른 뒤에 혹 탐문할 만한 일이 있거든 일일이 자세히 탐문하라. 또 와서 머물고 있는 각국 공사(公使)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 만약 서로 방문하여 보고할 만한 일이 있으면 또한 자세히 탐문하라. 서장관(書狀官)은 상사(上使)나 부사와 다르니, 더욱 널리 탐문해서 자세히 기록하여 오는 것이 좋겠다.”
하니, 이돈하 등이 아뢰기를,
“삼가 하교대로 자세히 탐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뢰기를,
“어느 날 황성(皇城)에 이르는가?”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다음 달 27일 오시(午時)에 자문(咨文)과 세폐(歲幣)를 규례대로 바쳐야 하니, 기일 며칠 전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세 사신 중에 일찍이 갔다온 사람이 있는가?”
하니, 이돈하 등이 아뢰기를,
“모두 처음 갑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국이 삼세(蔘稅)를 덜어서 감해 준 일은 과연 은혜를 베푼 것이다. 말할 만한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감사의 뜻을 잘 표시해야 하겠다.”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혹 말할 만한 길이 있으면 삼가 감사의 뜻을 표시하겠습니다.”
하고, 이어 아뢰기를,
“며칠 전 원세개(袁世凱)의 관사에 갔는데 또한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세 사신이 함께 갔는가?”
하니, 이돈하 등이 아뢰기를,
“함께 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날이 이미 저물었다. 오늘은 고양(高陽)숙소참(宿所站)에서 묵고 내일은 파주(坡州)숙소참에서 묵으니, 하루에 가는 거리가 40리에 불과한가?”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이 두 참(站) 외에는 하루에 7, 80리 갑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세 사신 중에 일찍이 서도(西道) 수령을 지낸 사람이 있는가?”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모두 서도 고을의 수령을 지내지 않았고, 신만이 일찍이 곡산 부사(谷山府使)에 제수되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년 3월 그믐께 돌아오게 되겠는가?”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내년에 윤달이 있으니 3월 초순께 돌아올 수 있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곳에서 황성까지는 50일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에 불과하다.”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갔다 오는 데 매번 150일 가량 걸렸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로(水路)를 통해 건너가면 과연 편리하고 빠를 것인데, 육로로 가는 것이 매우 마음에 걸린다.”
하니, 이돈하가 아뢰기를,
“육로로 오가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수로로 가면 또한 육지에서 짐을 실어 날라야 하니 더욱 폐단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세 사신은 먼저 물러가라.”
하였다. 이어 사관에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또 물러가라고 명하니, 승지와 사관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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