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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7년 신유(1741) 5월 21일(갑신)
17-05-21[02] 한림 추천에 대한 폐단과 김원재의 일과 당습에 대한 헌부의 아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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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憲府) 【지평(持平) 이광의(李匡誼)이다.】 에서 전계를 거듭 아뢰고, 또 아뢰기를,
…………..
참찬관(參贊官) 오수채(吳遂采)가 전횡(田橫)의 오호도(嗚乎島) 일을 논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 이제묘(夷齊廟)와 제갈묘(諸葛廟)는 모두 산(山) 이름에 따라서 친히 묘호(廟號)를 써 준 것은 충성과 의리의 뜻을 오래도록 느끼게 하려는 까닭에서이다. 지금 듣건대, 오호도는 바로 우리 나라 홍주(洪州) 지방이라고 하니, 그것을 도신으로 하여금 옛날의 자취를 자세히 살피고 묻도록 하라.”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북도(北道)의 오국성(五國城)에 휘종(徽宗)ㆍ흠종(欽宗)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아닌가?”
하니, 오수채가 말하기를,
“백성들이 서로 전하기를 황제총(皇帝塚)이라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 당시 고려(高麗)에 길을 빌리려고 하였다면, 오국성(五國城)이 북도(北道)에 있었음은 의심할 것이 없다. 이미 황제총이라고 하였으며 또 무덤 모양도 있다고 하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나무하는 일과 짐승 치는 일을 금지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주-D001] 전횡(田橫)의 오호도(嗚乎島) 일 :
전횡은 제왕(齊王) 전영(田榮)의 아우로, 한(漢)나라 초기에 한신(韓信)이 제왕인 전광(田廣 전영의 아들)을 사로잡자, 자립(自立)하여 제왕이 되었음.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천하를 통일하자 그는 부하 5백여 명을 거느리고 섬으로 도망하였는데, 뒤에고조가 불렀으나 신하 되기를 거부하고 자살하자, 5백여 명의 부하들도 따라서 죽었으므로, 고조가 전횡의 절개를 높이 찬양하고 왕(王)의 예(禮)로 장사지냈음. 그가 도망한 섬이 오호도라는 일설에서 기인된 일임.
> 조선왕조실록 > 영조실록 > 영조 3년 정미 > 11월 8일 > 최종정보
영조 3년 정미(1727) 11월 8일(경신)
03-11-08[01] 검토관 조진희가 북관 여러 고을의 군비가 허술함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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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주강(晝講)을 행하여 《중용(中庸)》을 강론하였다. 검토관(檢討官) 조진희(趙鎭禧)가 북관(北關)의 여러 고을에 군비(軍備)가 허술함을 진달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회령(會寧)은 성중(城中)에 우물이 없어 주민(住民)들이 모두 성 밖에 나가서 물을 길어가니, 위급한 때에 믿을 만한 곳이 되지 못합니다. 들은즉 ‘본부(本府)의 수십 리 밖에 운두성(雲頭城)이 있는데 천연(天然)의 험준(險峻)함이 매우 장대(壯大)하고 성중에 또 우물이 있으며 변방 사람들이 서로 전해 이르기를 완안성(完顔城)이라 하고 혹은 오국성(五國城)이라 일컫는다.’고 합니다. 이제 만약 이 성을 수리하여 회령부(會寧府)를 옮기거나 혹은 보라 첨사(甫羅僉使)로 하여금 살게 한다면, 부령(富寧)으로 더불어 무산령(茂山嶺)을 협수(夾守)하여 족히 내외 관방(內外關防)의 형세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니, 마땅히 수신(帥臣)으로 하여금 형편을 살피고 다시 상확(商確)하여 장문(狀聞)하도록 한 다음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품처(稟處)케 하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원전】 41 집 682 면
【분류】 왕실(王室) / 군사(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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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문답(黃敎問答) / 황교문답(黃敎問答)
황교문답후지(黃敎問答後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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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말하기를,
............................
이제 내가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대체로 천하의 두뇌(頭腦)와 같았다. 황제가 북쪽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다름 아니라 두뇌를 누르고 앉아 몽고의 인후를 틀어막자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몽고는 이미 날마다 나와서 요동을 뒤흔들었을 것이니, 요동이 한 번 흔들리고 보면 천하의 왼쪽 팔이 끊어지는 것이요, 천하의 왼쪽 팔이 끊어지고 보면 하황(河湟 영하성 지방)은 천하의 오른편 팔이라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니, 내가 보기에는 서번의 여러 오랑캐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농(隴)ㆍ섬(陝)을 엿볼 것이다. 우리 동방은 다행히 바다 한 쪽에 궁벽되어 있어서 천하 일에 상관이 없다 하겠으나, 내 이제 머리털이 흰지라 앞일을 가히 보지는 못할 것이로되, 30년을 넘지 않아서, 능히 천하의 근심을 걱정할 줄 아는 자가 있다면 응당 나의 오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호(胡)ㆍ적(狄) 잡종의 일을 위와 같이 아울러 기록해 둔다.”
하였다.
임하필기 제32권 / 순일편(旬一編)
청해(靑海)의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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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의 모란에 대하여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간악(艮岳)의 유종(遺種)으로서 오국성(五國城)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절도(節度)의 정원과 못 둘레에 심어져 있는 것이 무려 수백 그루인데, 크기가 모두 한 움큼 되는 고목이고 꽃도 매우 아름답다. 옛날 백사(白沙) 선생이 삼락재(三樂齋)에 있을 때 절도사가 국화를 보내 주어 심었다. 청해에는 옛날부터 본래 꽃 종류가 많았다. 일찍이 삼락재 앞에서 모란이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도 아마 간악에서 나온 품종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9권 > 칠언고시 > 최종정보
동명집 제9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68수
후억석가 7수 〔後憶昔歌 七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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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먼 예전인 송나라의 경덕 연간 / 憶昔宋家景德年
거란에서 침입해 와 전연으로 들어왔네 / 契丹侵我來澶淵
북성에서 깃발 들고 만세 소리 불렀거니 / 北城旗幟萬世呼
호성 소리 하늘 울려 선우가 다 놀랐다네 / 呼聲動天驚單于
그 당시에 중국에서 군사의 힘 떨쳤다면 / 是時中國奮兵力
척륜조차 어찌 상건 북쪽으로 갔겠는가 / 隻輪豈返桑乾北
오랑캐들 중국 깔봄 예서 시작되었거니 / 蠻夷猾夏自此始
무략 크게 못 떨친 게 진정으로 애석하네 / 武略不竸良可惜
생각건대 송 도군이 간악 쌓아 일으키자 / 憶昔道君起艮嶽
해내에서 분분하게 화석 바쳐 올렸다네 / 紛紛海內獻花石
자백마를 타고 있던 혼동강의 오랑캐는 / 混同胡兒赭白馬
그 기운이 솟구쳐서 천하 삼키려고 했네 / 憑凌氣欲呑天下
거란족이 송의 변방 막아 줄 만하였는데 / 契丹足捍我邊疆
어찌하여 쳐 없애고 승냥이와 사귀었나 / 胡乃撤毁交虎狼
여진족은 예전부터 신의라곤 없었으니 / 犬羊無信非一夕
금과 비단 산과 같이 준들 무슨 소용이랴 / 金繒如山竟何益
생각건대 여진 본디 힘이 없는 오랑캐로 / 憶昔女眞本小醜
그 당시에 요 천조를 신하로서 섬기었네 / 當年服事遼天祚
요나라서 매년마다 해동청을 요구하매 / 遼人歲歲索海鷹
떨쳐 일어나서 끝내 강녕부를 함락했네 / 奮起遂陷江寧府
한나라는 막북에서 선우 축출하였거니 / 漢家漠北逐單于
여진족이 어찌 능히 흉노 당할 수 있으랴 / 女眞豈得當匈奴
애석하다 그 당시에 위곽 같은 장수 없어 / 惜哉時無衛霍將
자백마를 쏘아 되놈 생포하지 못했구나 / 不射赭白生擒胡
생각건대 선화 때에 국운 장차 다하여서 / 憶昔宣和運將訖
황천에서 경계 보여 요얼 내려보내었네 / 皇天示警降妖孼
검은 기운 하얀 기운 천지간에 가득했고 / 黑氣白氣滿天地
곤륜산과 황하의 물 만리 밖서 터졌다네 / 崑崙黃河萬里決
섣달인데 치는 번개 어쩜 그리 심했던가 / 臘月雷霆何震蕩
변경 땅에 하룻저녁 열 길 얼음 얼었다네 / 汴京一夕氷十丈
기수 가의 돌다리서 짝을 찾고 있던 여우 / 有狐綏綏在淇側
어찌하여 대궐에 와 어탑 위에 올랐던가 / 胡爲來登御榻上
생각건대 송나라의 장수였던 충사도는 / 憶昔宋將种師道
여진 침입하였을 때 몸은 이미 늙었었네 / 女眞入冦身已老
몸은 비록 늙었지만 품고 있던 그 웅략은 / 此子雖老有雄略
지난 옛날 조충국만 못하지가 않았었네 / 不減昔時趙充國
불손하던 오랑캐들 기운 자못 꺾였거니 / 羯胡不遜氣頗戢
맹호 진정 명아주와 콩잎 보호해 준 거네 / 猛虎眞能衛藜藿
그런 장수 안 쓴 것이 후회막급이거니와 / 有將不用悔無及
아아 마른 물고기가 하천 지나가며 우네 / 吁嗟過河枯魚泣
생각건대 송 망한 건 이상한 일 아니거니 / 憶昔宋亡非異事
그건 바로 그 당시의 화 자 한 자 때문이네 / 只是當年一和字
어젠 금과 비단 실어 세폐로다 보내었고 / 昨日金繒送歲幣
오늘은 또 산하 쪼개 되놈에게 바치었네 / 今日山河割土地
남쪽 북쪽 관방 형세 하늘에서 주었거니 / 南北關防險天作
황하의 물 넘실대어 물결 아주 사나웠네 / 黃河洶湧水波惡
이런 형세 가지고도 여진을 못 막았거니 / 有此不能御女眞
오랑캐들 역시 진에 사람 없다 비웃으리 / 胡雛亦笑秦無人
생각건대 휘종 흠종 사막 땅에 있을 적에 / 憶昔徽欽在沙漠
강좌 지역 혼란함은 하늘에서 그런 거네 / 江左草昧當天造
진회란 자 용사하여 악비 장군 죽었으니 / 秦檜用事岳飛死
아아 모든 일에 대해 다시 무얼 말하리오 / 嗚呼萬事更何道
정위 새는 목석으로 바다 메우려 했거니 / 精衛木石塡巨洋
아아 계획함에 어쩜 그리도 못 헤아렸나 / 嗟爾作計何不量
새조차도 원수 갚을 뜻을 품고 있었거니 / 一鳥尙有報仇志
송사 읽어 볼 때마다 나의 마음 상하누나 / 每讀宋史令人傷
[주-D001] 생각건대 …… 들어왔네 :
송나라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1004)에 거란(契丹)이 송나라 군사를 노주(潞州)에서 패배시키고 전연(澶淵)으로 쳐들어오자 변방의 다급한 보고가 하룻밤에 다섯 번이나 이르렀다. 이때 구준(寇準)이 황제에게 친히 원정(遠征)하도록 권하고 고경(高瓊)이 위사(衛士)를 거느리고 하수(河水)를 건너가니, 원근에서 어가(御駕)의 일산을 바라보고 뛰면서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수십 리에 들렸다. 그러자 거란이 기가 꺾여 마침내 화의(和議)를 이루고 물러갔다. 《宋史 卷281 寇準列傳》
[주-D002] 선우(單于) :
한나라 때 흉노족의 군장(君長) 칭호인데, 여기서는 거란의 군장을 가리킨다.
[주-D003] 그 …… 갔겠는가 :
송나라 경덕 연간에 거란과 화친을 하지 않고 거란을 공격하였더라면 거란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상건(桑乾)은 지금의 북경(北京) 남쪽에 있는 영정하(永定河)를 가리킨다.
[주-D004] 생각건대 …… 일으키자 :
송 도군(宋道君)은 송나라 휘종(徽宗)이다. 휘종이 도교를 혹신하면서 스스로 이렇게 칭하였다. 간악(艮嶽)은 송나라의 수도였던 하남성 개봉현(開封縣) 성안 동북쪽에 있는 산인데, 송 휘종이 쌓은 것으로 일명 수봉(壽峯)이라고도 한다.
[주-D005] 자백마(赭白馬)를 …… 오랑캐 :
자백마는 도화(桃花)의 색깔을 띤 말로, 준마(駿馬)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오랑캐들이 타는 말을 뜻한다. ‘혼동강의 오랑캐’는 여진(女眞)을 가리킨다. 송나라 휘종 때 동관(童貫) 등이 여진과 연합하여 거란(契丹)을 협공하자고 건의하자, 휘종이 그 계책을 따라 거란을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거란의 세력이 약화되고 여진의 세력이 팽창하게 되었다. 여진은 그 뒤에 금(金)나라를 세워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송나라를 침입하였다. 송나라는 여진과의 싸움에서 패해 개봉이 함락되면서 상황(上皇)인 휘종과 황제인 흠종(欽宗)이 금나라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하였으며, 송나라는 양자강 남쪽으로 내려가 남송(南宋)이 되었다.
[주-D006] 어찌하여 …… 사귀었나 :
송 휘종이 여진과 연합하여 거란을 친 것을 말한다. 승냥이는 여진을 말한다.
[주-D007] 요 천조(遼天祚) :
요(遼)나라의 제9대 임금이다.
[주-D008] 해동청(海東靑) :
매 이름이다. 사냥용 매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송골매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보라매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 해동청은 동북아 일대에서 생산되는데, 특히 고려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해주(海州)와 백령진(白翎鎭) 등에서 산출되는 해동청이 유명하여 중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져 중요한 진상품이 되었다. 《五洲衍文長箋散稿》
[주-D009] 떨쳐 …… 함락했네 :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어 송나라까지 멸망시켰다는 뜻이다. 강녕부(江寧府)는 지금의 남경(南京) 근처에 있는 강녕현(江寧縣)을 말한다.
[주-D010] 애석하다 …… 못했구나 :
중국에 명장이 없어서 북쪽 오랑캐를 막지 못했다는 뜻이다. 위곽(衛霍)은 서한(西漢) 때 흉노(匈奴)를 정벌하여 공적을 크게 세운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을 가리킨다.
[주-D011] 생각건대 …… 내려보내었네 :
선화(宣和)는 송나라 휘종(徽宗) 때의 연호인데, 이때 송나라가 망할 것을 암시하는 여러 조짐이 보였다고 한다.
[주-D012] 검은 …… 가득했고 :
선화 3년(1121) 9월에 청백색의 기운이 세 길이나 뻗쳐서 달을 꿰었다고 한다.
[주-D013] 곤륜산(崑崙山)과 …… 터졌다네 :
선화 원년(1119) 여름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려 송나라의 서울인 변경(汴京)이 온통 물에 잠기는 홍수가 일어났다. 이강(李綱)이 이를 이적(夷狄)이 침입해 와 병란(兵亂)이 일어날 조짐이라고 하면서 상소하여 극언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정강(靖康)의 화(禍)가 있었다고 한다.
[주-D014] 기수(淇水) …… 올랐던가 :
간사한 자가 조정에 들어와 고관으로 있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휘종이 도사(道士) 임영소(林靈素)의 방술(方術)에 현혹되어 그를 높이 떠받들면서 현묘선생(玄妙先生)이라는 호를 내리고 통진달령원묘선생(通眞達靈元妙先生)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유호(有狐)〉에 “짝을 찾는 여우가, 저 기수의 돌다리에 있다.〔有狐綏綏 在彼淇梁〕”라고 하였는데, 이 시는 요사스러운 여우가 돌다리에 있는 것처럼 소인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비난한 것이다. 또 선화(宣和) 연간에 금중(禁中)에 여우와 모습이 비슷한 짐승이 있어 머리도 눈도 수족도 없고, 온몸에는 검은 털이 났는데, 혹 금좌(金座)에 올라가기도 하고, 비빈들의 침대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또 선화 7년 가을에는 여우가 대궐 안으로 들어가 어탑(御榻)에 걸터앉았다고 한다.
[주-D015] 충사도(种師道) :
송나라 흠종(欽宗) 때의 장수이다. 하북제치사(河北制置使)로 있던 중 정강(靖康) 연간에 금나라가 남침해 오자, 충사도가 군사를 거느리고 들어가 후원하면서 전수(戰守)할 계책을 정하자, 민심이 안정되었는데, 그 당시에 이미 나이가 아주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노충(老种)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대부분 묵살되었으며, 이후 도성이 함락되자, 흠종이 “충사도의 말을 쓰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탄식했다고 한다. 《宋史 卷335 种世衡列傳 師道》
[주-D016] 조충국(趙充國) :
한 선제(漢宣帝) 신작(神爵) 원년(기원전 61)에 강족(羌族)이 쳐들어왔을 때, 조충국이 70세가 넘은 나이로 출정을 자원하여 금성(金城)에 이른 뒤 난리를 평정하고 장기간 둔전하면서 안정을 도모하였다. 《漢書 卷69 趙充國傳》
[주-D017] 맹호 …… 거네 :
조충국과 같은 용맹한 장수가 중국 백성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권77 〈개관요전(蓋寬饒傳)〉에 “산에 맹수가 있으면 명아주나 콩잎도 따러 나오지 못하고,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간사한 자들이 일어나지 못한다.〔山有猛獸 藜藿爲之不采 國有忠臣 奸邪爲之不起〕”라고 하였다.
[주-D018] 그런 …… 우네 :
지난날의 일들을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물고기 한 마리가 수레바퀴에 파인 얕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작은 양의 물이면 살아날 수 있겠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서강(西江)의 물을 길어다가 구원해 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자, 차라리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빨리 찾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악부》 잡곡가사(雜曲歌辭)에 〈고어과하읍(枯魚過河泣)〉이 있다. 대표작으로는 한나라 무명씨(無名氏)의 작품이 있는데, 그 시에 “마른 고기가 하천을 지나면서 눈물을 흘리거니, 후회한들 어찌 다시 미칠 수 있으리오.〔枯魚過河泣 何時悔復及〕”라고 한 구절이 있다.
[주-D019] 화(和) 자 :
화친(和親)을 말한다. 송나라가 금나라와 대치할 적에 주전론(主戰論)을 펴는 사람들의 계책을 쓰지 않고 화친론(和親論)을 펴는 사람들의 계책을 썼다가 금나라에게 망한 것을 말한다.
[주-D020] 생각건대 …… 때문이네 :
이 시에 대해 남은경은 “이 시에서 송나라가 멸망한 이유로 정두경은 ‘和’라는 글자를 지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정두경은 당시 조선과 갈등을 빚고 있던 청국에 대한 주화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시의 내용은 정두경이 병자년에 올린 〈병자소(丙子疏)〉에도 똑같이 나오고 있다. 이는 곧 정두경이 상소문 등을 통해 직접 발언하던 현실 문제에 관한 내용을 시라는 문학 형식을 통해 보다 생생하고 절실하게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경계하게끔 하려는 의도를 가졌음을 알게 한다.”라고 하였다. 《남은경, 東溟 鄭斗卿 文學의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86쪽》 또 여운필은 “이 시는 앞의 일곱 구절에서 북송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형제지의를 맺는 굴욕적인 강화로 미봉책을 쓰다가 험벽한 관방을 가지고도 결국 오랑캐에게 나라를 망쳐 버린 일을 기술하고 나서, 사람이 없어 그러했다고 비웃는 뜻을 덧붙였다. 이는 병자년에 이르러 후금(後金)이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다시 침공할 분위기가 높아진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주화론에 대한 강한 반의를 드러낸 태도가 정두경이 올린 〈진십사소(進十事疏)〉에서 송나라를 거울로 삼으라고 한 것과 같은 내용인 점으로 보아 병자호란 직전에 지어진 작품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운필, 東溟 鄭斗卿의 詩世界, 한국한시작가연구 제10집, 한국한시학회, 2006, 276~277쪽》
[주-D021] 오랑캐들 …… 비웃으리 :
오랑캐들이 중국에 대해, 선견지명을 지니고 미리 방책을 세울 사람이 없었다고 비웃을 것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진(晉)나라 사회(士會)가 진(秦)나라에 망명했다가 진(晉)나라의 술수에 걸려 다시 진(晉)나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요조(繞朝)가 말채찍을 선물로 주면서 “그대는 진(秦)나라에 사람이 없다고 하지 마라. 나는 그대 나라의 술수를 알고 있지만 내 계책이 쓰이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文公13年》
[주-D022] 진회(秦檜)란 …… 죽었으니 :
진회는 남송 때의 대표적인 간신이고, 악비(岳飛)는 남송 초기의 명장이다. 악비가 여러 차례의 무공으로 태위소보(太尉少保)에까지 올라 하남북제로초토사(河南北諸路招討使)가 되어 금군(金軍)을 대파하고 수일 내로 황하를 건너가 실지(失地)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시 조정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진회는 금과의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하루에 12번 금자패(金字牌)를 내려 악비를 소환했다. 그 후 진회는 만사설(萬俟卨) 등을 시켜 악비를 탄핵하여 처형하였는데, 이때 악비의 나이가 겨우 39세였다. 《宋史 卷473 秦檜列傳》
[주-D023] 정위(精衛) …… 했거니 :
실현이 불가능한 일도 포기하지 않고 했다는 뜻이다.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 바다에 놀러 갔다가 익사(溺死)한 뒤 정위라는 새로 변했는데, 바다에 빠져 죽은 원한을 갚으려고 입으로 끊임없이 돌과 나무를 물고 와 동해에 빠뜨려서 바다를 메우려 했다는 전설이 있다. 《山海經 北山經》
> 고전번역서 > 학봉전집 > 학봉일고 제2권 > 부 > 최종정보
학봉일고 제2권 / 부(賦)
간악부(艮嶽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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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에 천지가 나눠지면서 / 厥初玄黃之肇判
하토에 산악들이 자리잡을 때 / 奠山嶽於下土
한 기운이 운행하여 솟아올랐지 / 一氣運流而挺峙
어찌 사람 힘으로 산 만들었으랴 / 豈人力之所造
그런데 저 간악의 산을 만든 건 / 夫何艮嶽之爲山
하늘의 힘 아니라 사람 힘이네 / 不以天而以人
험준한 산 기대어 팔 내저으며 / 倚孱顔而扼腕
백성들을 괴롭힌 도군 탄식네 / 嘆道君之厲民
태종 때의 융성함이 끝난 때부터 / 曰自太宗之運訖
팔대 뒤에 나라 운수 쇠미해져서 / 屬中微於八葉
꽃과 돌에 어린 황제 마음 쏟으며 / 逞童心於花石
천하 만기 짚신보다 가볍게 봤네 / 輕萬機於屣脫
토목 공사 하느라고 부역 일으켜 / 極土木而興徭
밤낮없이 높다랗게 쌓아올렸네 / 罔晝夜而額額
하천 세계 낮고 좁은 것 싫어하고 / 鄙下土之湫阨
하늘 세계 맑고 넓은 것 흠모했네 / 慕上界之淸曠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 골짜기가 / 彼尋常之丘壑
어찌 내가 노닐면서 즐길 곳이랴 / 寧娛予之遊賞
가슴속의 기묘함을 마음껏 놀려 / 運胸中之奇巧
조화옹이 만든 것을 현란시켰네 / 幻造化之制作
바윗돌을 쌓아서는 산을 만들고 / 積卷石而爲山
천하 재물 쏟아 부어 독려하였네 / 傾天下而董役
하늘이 만든 높은 산이 아니니 / 匪天作之高山
그 어찌 태왕이 노닐던 데리 / 豈太王之所荒
백성들의 원망 쌓아 터를 다듬고 / 築民怨而爲址
방탕한 욕심 쌓아 산 만들었네 / 積淫欲而成崗
채찍으로 돌을 치던 위엄 떨치며 / 振鞭石之餘威
수일 만에 완공하라 다그치었네 / 責不日之成功
세 봉우리 빼어남을 서로 다투니 / 奄三峯之競秀
산과 바다 오묘함을 다 만들었네 / 窮奧祕於山海
변하의 푸른 물결 끌어들이고 / 控汴河之淸波
남산의 산 안개를 잡아당겼네 / 挹南山之杳靄
자궐의 맑은 광채 가까이하고 / 近紫闥之淸光
격우의 바람 연기 소통시켰네 / 漏隔宇之風煙
공중에는 높은 누각 이어져 있고 / 絡嵬觀於層空
허공중엔 복도가 걸려 있었네 / 橫複道於半天
먼 변방의 진귀한 금수 기르고 / 籠要荒之珍禽
남쪽 지방 꽃나무들 모아 놓았네 / 簇江浙之花木
산골짜기 맑은 기운 알연히 피니 / 藹洞府之淸幽
별유천지 딴 세상이 완연하였네 / 宛別有之區域
숙원을 이룬 것이 마음 기뻐서 / 欣宿願之始償
마음껏 노닐면서 즐거워했네 / 極盤遊而耽樂
붉은 노을 속선 신선 음악 울리고 / 飄仙樂於紫霞
푸른 산엔 비단 휘장 현란하였네 / 眩羅綺於翠微
진군을 불러다가 친구로 삼고 / 邀眞君而爲友
신선들을 불러다가 악사 삼았네 / 招羽客而爲師
돌아갈 줄 모른 채 푹 빠져 놀고 / 羌遊衍而忘返
모두 잊은 듯이 속세 사절하였네 / 謝塵寰兮如遺
국사 날로 글러져도 아니 살폈고 / 國日非而不省
백성들이 못살아도 아니 살폈네 / 民曷喪而莫察
그 누가 알았으랴 한 산 만들자 / 誰知一嶽之纔築
백성들의 원망 소리 높아질 줄을 / 奄民嵒之岌岌
변방 산의 살기는 하늘 뻗치고 / 陰山之殺氣彗雲
산머리에 지는 해는 광채 잃었네 / 峯頭之落日無色
토붕와해 형세 되어 못 떨치고는 / 勢土崩而莫振
천자 수레 까마득히 하황에 갔네 / 龍馭邈兮河隍
지난날의 번화함을 바라다보니 / 回首昔日之繁華
몇 개의 점 외로운 산만 남았네 / 但數點之孤岳
산 이름은 만세산 옛이름인데 / 山萬歲之舊號
나라는 하루아침 민멸되었네 / 國一朝而煙滅
누가 이런 화의 계제 만들었던가 / 念誰爲之厲階
제 스스로 만들어 논 화의 싹이네 / 是自作之禍孼
오호라, 도군 황제 미혹됨이여 / 噫道君之昏惑
어찌하여 그와 같이 방종하였나 / 胡縱逸之此極
참으로 그때 당시 마음 고쳐서 / 苟當日之改度
그칠 줄을 알아 욕망 모두 버리고 / 知艮背而去欲
산악이 내린 신보 등용한 다음 / 用維嶽之申甫
태산조차 위태롭게 여기었다면 / 心太山兮猶危
종묘사직 지킬 기반 공고해져서 / 吾知宗社之鞏固
숭산 화산 같아 아니 무너졌으리 / 鎭崇華而不移
저 도군은 이를 생각 아니했으니 / 嗟彼哉之罔念
후회 눈물 흘려본들 어찌 미치리 / 縱啜泣兮何及
아아, / 嗚呼
남산에 우뚝하게 아방궁(阿房宮) 솟자 / 表闕南山
백이의 함곡관(函谷關)이 무너졌도다 / 百二之函關瓦裂
못 가까이 봉래궁이 완공이 되자 / 池壓蓬萊
강도의 혁혁한 공 사라져 갔네 / 江都之赫業雲沒
은 나라의 거울이 멀지 않으니 / 殷鑑不遠
뒷사람은 경계해야 마땅하였네 / 後車可戒
그런데 어찌하여 저 도군 황제는 / 如何道君
미혹된 맘 고치지를 못하였던가 / 迷不自改
한 오라기 푸르른 저 간악만이 / 一髮靑山
나라가 망한 뒤에 남아 있어서 / 亡國餘兮
공연스레 시를 읊는 이로 하여금 / 空使騷人
한스런 맘 없어지지 않게 하누나 / 恨難祛兮
[주-D001] 간악부(艮嶽賦) :
간악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에 있는 인공으로 만든 산인 만세산(萬歲山)으로, 국도의 간방(艮方)에 위치해 있으므로 간악이라고 부른다. 송 나라 정화(政和) 7년에 이 산을 만들고는 휘종(徽宗)이 간악부를 지었다.
[주-D002] 도군(道君) :
송 나라의 휘종(徽宗)을 말한다. 휘종은 도군 황제(道君皇帝)라고 자칭하였다.
[주-D003] 태왕(太王) :
주 나라 문왕(文王)의 할아버지인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존호(尊號)이다.
[주-D004] 채찍으로 …… 위엄 :
진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 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돌다리를 놓으려고 하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바다로 돌을 내모니 돌들이 저절로 바다로 달려갔다. 그런데 돌이 빨리 가지 않아 신인이 돌을 채찍질하니 돌에서 피가 흘렀다. 《藝文類聚 卷79》
[주-D005] 복도(複道) :
아래와 위 이중으로 나 있는 길이다.
[주-D006] 진군(眞君) :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神仙)들의 존칭(尊稱)이다.
[주-D007] 천자 …… 갔네 :
북송(北宋) 정강(靖康) 2년(1127)에 금(金) 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을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철종(哲宗) 두 황제와 황족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을 말한다. 하황(河隍)은 하황(河湟)으로, 휘종이 잡혀갔던 오국성(五國城)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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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집 제1권 / 시(詩)○서수록(西繡錄)
성천 강선루 시에 차운하다 3수〔次成川降仙樓韻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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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북에 맑은 샘이 몇 줄기나 되는가 / 關北淸冷幾道泉
고요하고 짙푸르게 화려한 누대 앞에 머무네 / 蓄膏停黛畫樓前
산은 뭇 구멍을 열어 물 가운데를 뚫고 / 山開衆竅波心透
강은 두 줄기로 흘러 절벽 너머로 이어지네 / 江作雙流壁外連
아침저녁 구름과 비는 누대 위의 꿈이고 / 雲雨朝昏臺上夢
열두 개 산봉우리는 초나라의 하늘이네 / 峯巒十二楚中天
퉁소 소리 고요하니 신선은 멀리 떠났는데 / 笙簫寂寞仙裾遠
공연히 푸른 산 마주하고 아득히 생각하네 / 空對靑鬟思黯然
수많은 푸른 봉우리 굽은 대를 둘러싸고 있는데 / 多少蒼峯控曲臺
백 자 높은 누대가 강을 향해 열려있네 / 層樓百尺面江開
오려낸 듯한 푸른 숲은 그윽한 새를 감추고 / 靑林如剪藏幽鳥
어금니처럼 엇갈린 오랜 바위엔 이끼 끼었네 / 老石交牙衣綠苔
세자에게 입은 은택이 삼 년 동안 넉넉하였고 / 少海恩波三載洽
두 마리 오리 변한 신선 신발 구천을 맴도네 / 兩鳧仙舃九天廻
하황이 아직도 이리의 소굴에 들어가 있으니 / 河湟尙入豺狼窟
석양 속 높은 난간에서 원통한 마음 가눌 수 없네 / 斜日危欄恨未裁
요지 현포와 서로 다를 게 없으니 / 瑤池玄圃將無同
시원한 바람 타고 푸른 하늘을 넘는 듯하네 / 若御冷風跨碧穹
물 요괴는 따뜻함 타고 채색 불꽃을 불고 / 水恠乘暄噓彩焰
산정은 밤이 되자 긴 무지개를 쏘네 / 山精入夜射長虹
밭에 나는 고운 옥으로 신선 차는 옥패를 만들고 / 田生美璞攻仙佩
집에 미녀 있어 단청한 창문을 닫네 / 家有名姝掩畫櫳
나 또한 옥황상제의 향안리이니 / 我亦玉皇香案吏
누대에서 적송자와 만날 약속 하였다네 / 樓居曾約赤松翁
[주-C001] 서수록(西繡錄) :
유몽인이 평안도 순변 어사(巡邊御史)에 제수되었을 때 지은 시이다.
[주-D001] 뭇 구멍을 열어 :
바람이 분다는 말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바람을 비유하면서 “거대한 땅덩어리가 숨을 내뿜는 것을 바람이라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났다고 하면 온갖 구멍이 성내며 부르짖기 시작한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말이 있다.
[주-D002] 아침저녁 …… 하늘이네 :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서(序)에 “초(楚)나라 양왕(襄王)이 고당(高唐)에 노닐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자신은 무산의 여자라고 하면서 수청을 들겠다고 청하였다. 다음 날 아침에 떠나면서 ‘저는 무산의 남쪽 언덕에 사는데, 매일 아침이면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됩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하였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무산은 봉우리가 열둘인데 강선루 앞의 산도 열두 봉우리로 십이봉(十二峯)이라 불린다.
[주-D003] 두 마리 …… 맴도네 :
지방관이 된 것을 의미한다.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하동(河東) 사람 왕교(王喬)가 섭현(葉縣)의 현령(縣令)으로 있었는데, 그는 신선술(神仙術)을 익혀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항상 섭현에서 조정으로 날아가 명제를 알현하였다. 명제가 그가 자주 오는데도 수레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몰래 태사(太史)를 시켜 엿보게 하였더니, “그가 올 때마다 한 쌍의 들오리가 동남쪽에서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날아오기를 기다려 그물로 잡았는데, 한 쌍의 신발만 얻었을 뿐입니다.” 하였다. 《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 王喬》
[주-D004] 하황(河湟) :
하황은 하수(河水)와 황수(湟水) 일대로 서융이 사는 지역인데, 여기서는 관서의 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치평요람 제112권 / 송(宋)
[《역대통감집람(歷代通鑑輯覽)》 76권 〈송 신종황제(宋神宗皇帝)〉]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국가가 기어코 서방의 적을 토벌하여 평정하려고 한다면, 먼저 하황(河湟)을 수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계책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씨가 복배(腹背)에서 적국의 공격을 받고 표리(表裏)에서 번갈아 공격하는 환난이 생기므로 필시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멸망할 것입니다.
지금 무위(武威)의 남쪽으로부터 옛날 위주(渭州)의 서쪽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나라 때 설치한 농서(隴西)ㆍ안정(安定)ㆍ금성(金城) 등 3군(郡)의 지역입니다. 이는 이른바 황중(湟中)의 대유(大榆)와 소유(小榆)로서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五穀)을 재배하기에 좋은데, 이는 모두 현재 조하(洮河)와 난선(蘭鄯)의 일대에 있습니다. 한나라 때 여기에다 둔전(屯田)을 개설하고 성읍(城邑)을 건설한 다음 여러 강족(羌族)을 복속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당나라 건원(乾元 당(唐)나라 숙종(肅宗)의 연호로 758~760년) 이후로 토번이 침입하여 하농(河隴)을 전부 함락하였고, 현재는 융적(戎狄)이 점거한 지 이미 3, 4백 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동전(董氈)이 비록 하황의 일대에 있으나 연변의 여러 부족이 자체적으로 부락을 형성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목정(木征)ㆍ할약(瞎藥) 및 기파온(欺巴溫)의 무리들이 모두 한나라 국경과 가까운 조하(洮河)의 일대에 있습니다. 그중 큰 종락(種落)은 1, 2만에 불과하고, 작은 종락은 2, 3천 밖에 되지 않는데, 모두 분리되어 흩어져 있어서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병합하고 아울러 어루만져야 하니, 정말로 은혜와 신의를 후하게 베풀어 종당(宗黨)과 관계를 맺어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기울여 사모하여 기꺼이 귀부하려는 뜻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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