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洛東), 낙서(洛西), 낙원(洛原), 낙평(洛平), 장림(長林), 낙양(洛陽)

2022. 9. 17. 11:49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소모사실(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11권)  >   소모사실 제이   >   1894년 12월 26일 낙양역 도장에게 전령을 보냄

1894 12 26 낙양역 도장에게 전령을 보냄

26일. 낙양역 도장에게 전령을 보냄[同日傳令洛陽驛都掌處]

역(驛)을 설치한 뜻은 본래 엄중하며, 함부로 역말을 타는 것은 법에 저촉된다. 더구나 지금 사행(使行)이 주(州)에 들어온 뒤라서 응당 부담해야 할 여러 가지 역(役)이 적지 않아 그것을 감당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지금 듣건대, 본 군문에 소속된 자들 및 감영과 본 부(府)의 하례배(下隷輩)들이 공적이거나 사적인 일로 드나들면서, 장리(掌吏, 담당관리)들을 위협하여 술과 음식을 요구하거나, 타고 갈 말을 외람되이 요구하는 등 그들을 핍박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한다. 이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놀라서 탄식을 하였다. 이에 명령을 내려 신칙하노니 이 이후로 만약 이렇게 토색하는 폐단이 있다면 이 전령을 보여주어 법을 어기지 말도록 하라. 만약 완악하게 버티는 자가 있으면 즉시 보고하여 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게 하도록 하라.

소모사실(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 11권)  >   소모사실 제이   >   1895년 1월 25일 각 역의 도장리에게 전령을 보냄

1895 1 25  역의 도장리에게 전령을 보냄

25일. 각 역의 도장리에게 전령을 보냄[同日傳令各驛都掌吏處]

작년 12월에 상주 고을의 가겟집에 대령시켜 두었던 각 역의 역말 8필의 사료 값 합계 148냥을 각 역의 형편을 생각하여 본 소모영에서 액수에 준하여 지급하였으니, 앞으로 만약 이를 빙자하여 징수하는 폐단이 있으면 즉시 본 주(州)에 보고하여 엄중하게 다스려 폐단을 막도록 해야 할 것이다.(낙동(洛東), 낙서(洛西), 낙원(洛原), 낙평(洛平), 장림(長林), 낙양(洛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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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로집 발

벽로집 발문(跋文) [유만공(柳晩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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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나는 금강산을 유람하며 일만 이천 봉이 하늘가에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을 훑어보았다. 내친 김에 동쪽으로 푸른 바다에 임하여 또 구름 파도와 안개 물결이 끝없이 넘실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작고 용렬한 눈으로 한번 보고 돌아오니 꿈에 신선세계에서 논 것 같아서 그 진경(眞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들 중에 금강산이 어떠하냐고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한마디 말로 대답하겠다. “매우 기이하고 수려합니다.” 동해가 어떠하냐고 묻는 이가 있으면 한마디 말로 대답하겠다. “망망하고 드넓습니다.” 무릇 금강산은 천하의 이름난 산이고 동해는 천하의 큰물이니 천하 사람들 중 한번 보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조선 사람들 중에도 구경한 이가 많지 않다. 그런데 조선 사람이 또 한번 구경하기를 원하는 것으로는 연경(燕京)이 있을 뿐이니, 오악(五嶽)과 삼도(三都)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형세를 달리 논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일찍이 연경을 유람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묻자, 한마디 말로 대답했다. “장엄하고 화려합니다.” 장엄하고 화려한 것은 그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본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곳은 이미 천자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어서 성곽과 궁전, 정원과 지대(池臺 못과 누대)가 그 장엄함에 어울린다. 그곳은 이미 서민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살림집과 시내 상점, 여러 가지 물건과 보물, 노리개는 그 화려함에 어울린다.

만약에 도읍을 정한 곳이라면 어느 땅인들 그렇지 않을까 마는 장관으로 말하자면 어찌 금강산과 동해가 자연 속에서 이루어져서 천하무적이 된 것과 같겠는가. 하물며 연인(燕人)이 그 땅을 도읍으로 삼고 있는 곳은 곧 옛날 사막이었던 들판이고, 그 주인은 현재 만주인이니, 어떻게 전대(前代) 황도(皇都)의 문물제도(文物制度)와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연경으로 가는 사람을 전송하는 시를 지은 적이 있다. “이번 행차는 4천 리의 여정에 차지 않을 테니, 1만 리를 가는 대장부의 정에 흡족하지 못하리라. 조선 사람이 중국을 보았다고 허투로 말을 하나, 중국을 보지 못하고 북경만 본 것이네.” 그러나 조선 사람으로 북경을 본 사람은 드물고, 보고서 능히 이해해서 기록한 자도 드물다. 이것은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면목을 모르고 표주박으로 물을 퍼서 바다를 재어서는 물가를 엿볼 수 없다. 지금 연파(蓮波) 김진수(金進洙)는 한번 연도(燕都)에 들어가서 그 귀와 눈으로 접촉한 것은 두루 수집하여 시에 넣어 그 참다운 경지를 모두 읊어내지 않은 것이 없으니 잘 유람하고 잘 진술한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다. 만약 연파(蓮坡)가 주(周), 한(漢), 당(唐), 송(宋)나라 때 태어나서, 위수(渭水), 낙수(洛水)와 한수(漢水), 변수(汴水)의 도읍을 유람했다면, 그의 해박하고 유려한 문장의 필치가 어떻게 장형(張衡) 좌사(左思)의 무리로 하여금 여러 도읍에 대한 부(賦)를 오로지 아름답게 짓도록 내버려 두었겠는가. 그런데 연파가 이 시편에 의미를 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 중에 이 시편을 본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연파는 강개(慷慨)한 선비로써 중국을 관광한 후, 흠모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내어 이렇게 찬미하는 말을 쓰게 된 것이오.” 이에 내가 대답했다. “아니오. 연파는 소중화(小中華) 조선 사람으로 옛날의 사막 땅을 밟고 지금 만주 사람들을 만나 슬퍼하는 마음을 내어 이처럼 탄식하고 애석히 여기는 말을 쓰게 된 것이오. 다만 조선 사람에게는 전할 수 있을지언정, 북경 사람에게는 보여서는 안 될 것이오.” 연파가 나의 이 말에 대해 뭐라고 이를지 아직 모르겠다. 정사년 9월 간송생(澗松生) 유만공(柳晩恭)은 땀을 흘리면서 평한다.

[-D001] 망망하고 : 

두보(杜甫)의 〈자경부봉선현영회오백자(自京赴奉先縣詠懷五百字)〉에 “시름의 끝이 종남산과 나란하니, 망망하여 수습할 수 없어라.[憂端齊終南, 澒洞不可掇.]”라 하였다.

[-D002] 표주박으로 …… 재어서는 :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재며, 댓가지로 종을 친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45》

[-D003] 장형(張衡) 좌사(左思) : 

장형(張衡)은 〈이경부(二京賦)〉를, 좌사(左思)는 〈삼도부(三都賦)〉를 지었다.

[-D004] 유만공(柳晩恭) : 

1793~1869.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호는 간송거사(澗松居士) 자는 정보(定甫)이다. 《세시풍요(歲時風謠)》를 남겼

宸垣識略

저자: 吳長元 編 / 오장원 권책수: 8 발행자: [刊寫者未詳] 발행년: 乾隆53年戊申[1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