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선(也先)이 군사 수만을 거느려 황하(黃河) 위에 주둔하고 있는데,

2022. 11. 16. 14:55북경 추정

 

세종실록 118권, 세종 29년 10월 29일 정해 1번째기사 1447년 명 정통(正統) 12년

야선의 침략을 대비하는 계책을 의논하다

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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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을 압송(押送)하는 관원 김유례가 요동(遼東)에서 급히 보고하기를,

"야선(也先)이 군사 수만을 거느려 황하(黃河) 위에 주둔하고 있는데, 황제가 요동 제비(遼東隄備)에게 칙유(勅諭)하기를, ‘야선(也先)이 장차 조선까지 쳐서 흔들 것이라. ’고 합니다."

하니, 임금이 영의정 황희(黃喜), 좌의정 하연(河演), 우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찬성 박종우(朴從愚), 우찬성 김종서(金宗瑞), 좌참찬 정분(鄭苯), 우찬성 정갑손(鄭甲孫), 병조 판서 김효성(金孝誠), 참판 이승손(李承孫), 도진무 이견기(李堅基)·민신(閔伸)·이양(李穰)·하한(河漢)을 불러 전지하기를,

"지금 야선(也先)이 요동(遼東)을 버리고 멀리 우리 나라를 치는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지난번에 그 나라의 조서(詔書)를 받들지 않았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그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거나 혹은 항복을 받으려 하여 군사를 가할 염려가 없지도 않으니, 양계(兩界)의 방비를 늦출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마병은 보낼 수 없고 연변(沿邊) 군읍(郡邑)에 보병(步兵)과 화포(火砲)의 기구를 첨가하여 성을 지키어 기다리는 것이 어떠한가."

하니, 희(喜)·연(演)·인(仁)·효성(孝誠)·분(苯)·갑손(甲孫)·견기(堅基)·양(穰)·승손(承孫)·한(漢)은 말하기를,

"매양 얼음이 얼 때를 당하면 본읍(本邑)의 마병·보병이 번(番)을 당하여 방수(防戍)하여 부족하지 않으니, 성을 지키는 보병을 갑자기 증가할 것이 없고, 도절제사의 마감하여 논계(論啓)하는 것을 기다리소서."

 

세종실록 125권, 세종 31년 9월 9일 병술 1번째기사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왕세자가 모화관에서 칙서를 맞이하다

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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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지휘(遼東指揮) 왕무(王武)가 오매, 왕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모화관(慕華館)에서 칙서를 맞이하였다. 그 칙서에 이르기를,

"예로부터 호로(胡虜)가 교활한 마음을 품고 있어 서북(西北)의 우환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하늘을 순응한 자는 창성하고 하늘을 거역한 자는 망하는 것이니, 예나 지금이나 모두 이 일에 벗어난 일이 없었다. 우리 성조(聖祖) 때부터 하늘의 밝으신 명(命)을 받자와 호(胡)·원(元)의 난을 쓸어 없애시므로 추잡한 무리들이 사막에 도망가 사는 자들이 서로 빼앗기도 하고, 서로 죽이기도 하여 피폐로움이 심하니 이것이 하늘이 내리신 화이니, 스스로 저지른 잘못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 그 잔당(殘黨)의 추장(酋長)에 탈탈불화(脫脫不花)라는 자와 그 무리 야선(也先)이 멀리 사막의 북쪽에 사는데,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고 말[馬]을 바치기에 조정(朝廷)에서 그 무리를

비루히 여기지 아니하고 특별히 사람을 보내어 상(賞)을 주었는데, 근래에 이 무리들이 간사한 계략을 내어 믿고 하늘을 거역하고 은혜를 저버리고서 요동(遼東) 지방의 변방을 침범하므로, 서쪽 변장(邊將)을 보내어 추한 무리들을 죽이게 하고 포획함이 심히 많았으며, 요동에서도 추격하여 국경에서 내쫓아 비록 좀도둑을 잡기는 하였으나 얻은 것이 잃을 것을 보충할 수 없다. 듣건대, 탈탈불화(脫脫不花) 등이 다시 와 변방을 침범할 것이라 드러내어 말하고, 귀국의 변방을 노략질하고 여진(女眞)의 사람과 가축을 겁탈한다는 말이 있으며, 또 변방 군민(軍民)은 조정에서 반드시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귀국은 동쪽 변방에 밀접하게 가까이 있으며 대대로 예의로 이름난 번국(藩國)이므로 우리 나라와 함께 기쁘고 슬픈 일을 서로 같이 하였는데, 어찌 모르는 체하여 구휼하지 않겠소. 대저 이 오랑캐가 장차 취하려면 먼저 주는 기회를 얻어 이따금 먼저 화친을 맺자고 말하고 혹 세력으로 위협하기도 하여 그 간사한 것을 밝힐 수 없으니, 한번 국교를 맺으며 기만하고 해를 끼친 것이 승냥이보다 심하여 왕도 그 간교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이 없겠으므로, 특별히 칙서를 보내어 왕에게 알리노니, 칙서가 이르는 날 변방을 지킨 두목(頭目)과 인중(人衆)을 엄격하게 정비하여 이 간교한 무리를 조심하여 막을 것이다. 행여 속인 바 되어 나라에 해를 끼치게 하지 말라. 대저 살무사를 죽이지 아니하면 마침내 물(物)을 해치는 것이요, 강아지풀을 없애지 아니하면 곡식을 해치게 마련이다. 오랑캐가 이미 침범하려는 계획이 있으니 무찔러서 원근에 있을 해를 없애야 할 것이매, 이미 요동 제독(遼東提督)·군무 도어사(軍務都御使)와 총병(摠兵)·진수(鎭守)·참장(參將) 등에게 명령하여, 날쌔고 정예로운 장사(將士) 1, 20만을 정돈하여 대비시키고, 여직(女直)·야인(野人)의 이병(夷兵)과 인마(人馬) 수 만을 골라 뽑아 오로지 적을 죽이는 것만 기다리게 하였노라. 이제 생각하건대, 왕이 대대로 충의로 계승하여 순역(順逆)의 이치를 밝히 알고 있으니, 왕은 마땅히 정병(精兵) 10여 만을 골라 모아 대두목(大頭目)으로 하여금 통솔케 하여 요동 여러 장수와 더불어 모여 협공할 것을 기약하여 이 적을 박멸하는 데 힘쓰게 하라. 이 적이 망하여 없어지게 되면 거의 위로 천도(天道)를 순응하고 아래로 인심(人心)에 합할 것이니, 요동의 이익뿐 아니라 귀국의 이로움도 될 것이다. 짐(朕)이 충의를 가상히 여겨 반드시 은뢰(恩賚)를 크게 줄 것이며, 모든 나라에 공이 있는 자는 모두 후히 상을 주어 인색하지 않을 것이니, 왕은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여 짐의 생각에 부응토록 하여 명백하게 납득하라. 그러므로 유시하노라."

하니, 임금이 일이 병기(兵機)에 관계된다 하여 비밀로 하고 발표하지 아니하였다. 세자가 하마연(下馬宴)을 태평관(太平館)에서 베풀었는데, 여러 대군(大君)과 군(君)이 술을 돌리는데, 왕무(王武)가 일어서서 영응 대군(永應大君)에게 가서 역자(譯者)에게 말하기를,

"틀림없이 전하가 총애하는 아들일 것입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