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16. 14:35ㆍ북경 추정
인조 15년 정축(1637) 7월 4일(경오) 맑음
15-07-04[24] 사은사 세 사람을 인견할 때 상사 이성구 등이 입시하여 사행의 결과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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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상이 □□□에 나아가 사은사 세 사람을 인견하였다. 상사 이성구(李聖求), 부사 회은군(懷恩君) 이덕인(李德仁), 서장관 채유후(蔡裕後), 도승지 김수현(金壽賢), 가주서 유도삼(柳道三), 기사관 신집(申楫)ㆍ김진(金振)이 입시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본원에 말하여 젊고 총명한 사람을 선발하여 착실하게 가르치도록 하라.”
하였다. 이성구가 아뢰기를,
“심양은 날씨가 일찍 추워져서 신들이 나올 때가 마침 6월이었는데도 이미 서늘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세자궁의 겨울 옷감을 미리 들여보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하였다. 김수현이 아뢰기를,
“칙사가 머지않아 나올 텐데 세 도의 백성들만이 그 피해를 입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따로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은전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공물(貢物)을 방납(防納)하는 폐단이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고 하니 반드시 신칙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의사(醫司)의 약재(藥材)와 관련하여 정원에 물으니, 일부분은 혹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약재의 공물이 이전에는 10필(疋)이다가 지금은 15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아랫사람들이 사사로이 사용하기 때문이니, 칙사가 왔을 때에 한정하여 양 의사의 약재 공물을 호조로 이송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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