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지리산(智異山)에서 놀다가 진산(晉山)의 악양류(岳陽樓)와 동정호(洞庭湖)를 구경하고 이를 사랑하여

2022. 9. 12. 11:12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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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 6 

정여창(鄭汝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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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하동인데, 자는 백욱(伯勗)이며, 호는 일두(一蠹)이다. 중국 사신 장영(張寧)이 보고 특이하게 여겨 설을 지어 이름지어 주었다. 성품이 단정하고 침착하고 고요해서 사귀어 놀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홀로 한훤선생(寒暄先生 김굉필(金宏弼))과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함께 종유하였다. 성리(性理)의 학문에 마음을 쏟았는데, 같은 무리에서 이학(理學)으로써 추앙하였다. 성종 경술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천거되어 보직되었고, 지방으로 나가서는 안음 현감(安陰縣監) 벼슬을 받았다. 무오년에 사화가 일어나자, 종성(鐘城)으로 귀양가서 적소에서 죽었다. 중종이 명하여 우의정을 증직하고, 고을의 원으로 하여금 봄과 가을에 사당에 몸소 제사지내게 하였으며, 뒤에 문헌(文獻)이라 시호하고, 문묘(文廟)에 배향하였다.

○ 선생은 몸가짐을 매우 엄하게 하여 종일토록 단정히 앉고, 비록 무더위에라도 처자(妻子)가 그의 속살을 보지 못하였다.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

○ 선생이 늘 돌아가신 아버지를 섬기지 못한 것을 한탄하여, 어머니 곁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멀리 떨어진 적이 없었다. 〈행장〉

○ 선생이 지리산(智異山)에서 놀다가 진산(晉山)의 악양류(岳陽樓)와 동정호(洞庭湖)를 구경하고 이를 사랑하여, 섬진(蟾津)의 어귀에 집을 짓고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심고서 장래에 그곳에서 늙으려 하였다. 〈행장〉

원문: 未嘗遠違。行狀 先生遊智異。見晉山岳陽洞庭愛之。築室于蟾津之口

○ 안음현에 광풍루(光風樓)와 제월당(霽月堂)이 있는데, 선생이 현감이었을 때에 세워서 이름지었다. 《동국여지승람》

○ 선생이 안음 현감이었을 때에, 무릇 자녀가 있으나 가난하여 재물이 없어서 오래도록 혼인을 못시킨 사람은 스스로 알리게 하였는데 매우 두텁게 도움을 주어 때를 놓치지 않게 하니, 온 고장이 크게 의지하였다. 〈행장〉

○ 안음에 나가 원이 되어 사무에 임하는 여가에 읍내의 총명한 자제를 뽑아서 몸소 가르침을 행하고 날마다 강독(講讀)을 과제(課題)하니, 학자들이 이를 듣고 멀리서 모여 왔다. 봄ㆍ가을로 양로례(養老禮)를 행하여 안팎 마루에서 베푸니, 남녀 늙은이가 취하고 배부르지 않은 이가 없었다. 정치는 맑고 백성은 기뻐하며, 고장 안이 서로 일깨우며, 속임수로 공을 배반하지 말라 하였다. 《유선록(儒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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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집 제2권 / 시(詩) 

용호 주인 김문순 의 원시에 차운하다〔次龍湖主人 金文珣 原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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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 용면의 솜씨 없음 애석하니 / 畫手龍眠惜未工
청회 일대가 금성 속에 있도다 / 靑淮一帶錦城中
어부는 삼경 달에 낚시를 걷고 / 漁人捲釣三更月
목동은 십리 바람에 피리 부네 / 牧豎橫笳十里風
가는 기럭 오초의  알지 못하고 / 歸鴈不知吳楚遠
지는 꽃은 분명 무릉과 통하리라 / 落花端與武陵通

농촌 이웃 백주로 자신 잊은 곳에 / 農隣白酒忘形地
누가 알까, 늘 깬 사람이 주인임을 / 誰信長醒是主翁

[-D001] 화공 용면(龍眠) : 

용면은 송(宋)나라의 저명한 화가(畫家)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그가 그린 〈산장도(山莊圖)〉는 세상의 보물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인물의 묘사에 뛰어나 고개지(顧愷之)와 장승요(張僧繇)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았다. 《宋史 卷444》

[-D002] 오초(吳楚)  : 

오초는 양자강(揚子江) 동쪽, 즉 강소성(江蘇省) 지방 및 양자강 하류인 호남(湖南)ㆍ호북성(湖北省) 지방을 가리킨다. 두보(杜甫)가 동정호 가에 있는 유명한 정자 악양루에 올라가 지은 〈등악양루〉에 “오초는 동남으로 갈라졌고, 건곤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라고 하였다.

[-D003] 지는 …… 통하리라 : 

용호 주인이 있는 주변의 승경이 마치 선경(仙境)과도 같음을 나타내었다. 본문의 ‘무릉(武陵)’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말한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따르면, 진(晉)나라 때 무릉의 어부가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곳이 워낙 선경이라서 바깥세상의 변천과 세월의 흐름도 잊고 살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백담집 4 / 칠언율시(七言律詩) 

태안 청해루에 잠시 앉았다가〔泰安淸海樓小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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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를 오고 가서 풍류가 넉넉한데 / 二年來往足風流
청해루 가운데 두 번째 유람이라네 / 淸海樓中再度遊
매화 흰 날 동산 숲은 눈처럼 희고 / 雪白園林梅縞日
귤로 단장한 가을 울타리는 금처럼 누렇네 / 金黃籬落橘粧秋
맑은 날에 지리 파악으로 나누어짐을 보겠고 / 晴看地理分巴岳
밤에 별자리 두우성에 비치는 것을 알겠네 / 夜覺星文照斗牛
베개에 기대니 맑은 조수 소리 귀에 가득하여 / 欹枕潮聲淸滿耳
인간세상 고금의 시름을 씻어주네 / 人間要蕩古今愁

[-D001] 파악(巴岳) : 

중국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파주(巴州)와 호남성(湖南省) 북쪽에 있는 악양(岳陽)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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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형강진에서〔荊江津〕 문의(文義)와 회덕(懷德)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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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 명승지와 우연히 서로 비슷한데 / 中原名勝偶相侔
만경창파 맑고 맑아 푸른 기름 뿌린 듯하네 / 萬頃粼粼潑綠油
번구의 구름 산은 악주 물가를 둘러쌌고 / 樊口雲山圍鄂渚
형문의 안개  나무는 오주를 안았네 / 荊門煙樹擁吳洲

저녁노을 외로운 오리 멀리 하늘 밖에 있고 / 落霞孤鶩長天外
수양버들 온화한 바람에 너른 들머리에 늘어졌네 / 垂柳和風大野頭
근심하고 즐거워한 범공은 이제 보이지 않으니 / 憂樂范公今不見
이 사이에 누가 악양에 오르겠는가 / 此間誰着岳陽樓

[-D001] 형강진(荊江津) : 

금강(錦江) 상류에 있는 형각강(荊角江) 나루이다. 이 시는 형각강을 당시의 적벽강(赤壁江)에 비유하여 지은 것이다.

[-D002] 번구(樊口) …… 둘러쌌고 : 

번구는 유비(劉備)가 적은 수의 군사로 조조(曹操) 군사를 물리친 곳으로, 호북성(湖北省) 악성시(鄂城市) 서쪽에 있는 땅 이름이다. 번항(樊港)이 양자강(揚子江)으로 유입되는 곳이므로 생긴 이름이다.

[-D003] 형문(荊門) …… 안았네 : 

형문은 호북성에 있으며, 유비(劉備)와 조조(曹操)가 싸운 곳이다. 오주(吳洲)는 오나라로, 유비가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조조를 물리친 것을 의미한다.

 [-D005] 악양(岳陽) : 

동정호(洞庭湖)에서 수군을 조련하려고 세운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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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집 제11권 / 기행록(紀行錄) 

연해(沿海)의 군현을 모두 돌아보고 두류산(頭流山 지리산(智異山)의 별칭)에 들어가 쌍계사(雙溪寺)와 신흥사(神興寺)를 구경한 기행록〔歷盡沿海郡縣 仍入頭流 賞雙溪神興紀行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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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일 병신. 맑음.

동 틀 무렵 두치(頭峙)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깊은 산 겹겹 고개에 한 줄기 길이 구불구불하여 행로가 매우 어렵다. 오시에 강을 건너 악양(岳陽)을 지나서 화개(花開) 골짜기에 당도하기 7,8리 전에 길옆 민가에서 묵었다. 이 지역의 빼어난 경치는 호남과 영남에서 으뜸간다. 큰 강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는데 물결이 골짜기에 가득하여 강의 양쪽 물가에서 겨우 소와 말을 분별할 정도이다. 겹겹의 봉우리가 강을 끼고 마주서 있는데 동쪽은 지리산이고 서쪽은 백운산(白雲山)이다. 고기잡이 어부들의 집이 곳곳마다 마을을 이뤄 초가집 울타리가 대나무 사이로 보일락 말락 하니, 이른바 ‘악양의 점사(店舍 조그만 가겟집)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 10일 정유. 맑음.

일찍 출발하여 쌍계(雙溪)로 향했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니 걸음마다 화폭에 담을 만하다. 화개 골짜기에 이르니 골짜기 문은 서쪽을 향했는데 동부(洞府)가 옹장하고 깊다. 큰 시내가 산중으로부터 흘러나와 돌에 부딪혀 우레처럼 울리며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니 바로 화개의 하류이다. 이곳으로부터 강을 따라가는 길을 버리고 시내와 나란히 10여 리를 가서 쌍계동(雙溪洞) 입구에 당도하였다. 물 한 줄기는 석문에서 나오고 다른 한 줄기는 신흥(神興)에서 나와서 합하여 거세게 흘러가니, 바로 화개의 상류의 무릉계(武陵溪)이다.

시내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 수백 보쯤에 두 개의 바위가 길을 막고 문처럼 마주보고 서 있으니 쌍계사를 출입하는 사람은 이곳을 지난다. 그 높이가 모두 5,6길은 되는데 ‘쌍계석문(雙溪石門)’이란 커다란 네 글자가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 하나에 각각 두 글자씩 썼는데 필획이 가지런하고 서체(書體)가 엄격하여 칼과 창이 엇갈려 비껴선 듯하니 참으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수적(手迹 손수 쓴 글씨)이다. 삼연(森然)히 감동을 받아 말에서 내려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대개 당나라에서 명필을 손꼽을 때 모두 저태부(褚太傅)와 안태사(顏太師)를 말하고 최학사(崔學士)만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외국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공은 논할 것도 없고 일찍이 안공의 마애비(磨崖碑) 각본(刻本)을 보았는데 결코 이것에 미치지 못했다.

작은 고개를 지나 쌍계사로 들어가니 거처하는 중이 나와서 맞이한다. 나를 인도하여 학사대(學士臺)에 이르러 중이 말하기를,

“옛날에 대 위에 웅장한 건물이 있었는데 신라 시대에 창건하였습니다. 난리를 겪어 폐해졌는데 아직 중건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 다만 옛 비석이 우뚝 홀로 남아있으니, 실로 진감 태사(眞鑑太師) 비명(碑銘)인데 고운이 짓고 쓴 것이다. 글자의 전형(典刑)은 이따금 예나 다름이 없는데 절반이 마멸되어 거의 읽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선당에 들어가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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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암집 1 / () 

악양(岳陽유지(遺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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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우거진 물가로 옛터를 찾아가니 / 爲訪遺墟草浦邊
군산은 낙조 속에 의연한 모습이어라 / 君山落照尙依然
드넓게 오초를 삼킨  말해 무엇하랴 / 闊呑吳楚何須說

조물주가 참으로 소유천을 만들어 놨구나 / 造物眞成小有天

[-D001] 군산(君山) : 

중국의 악양루(岳陽樓)가 있는,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는 산으로, 일명 상산(湘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역시 악양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지명이다.

[-D002] 오초(吳楚) 삼킨  : 

두보(杜甫)가 동정호 가에 있는 유명한 정자 악양루에 올라가 지은 〈등악양루〉에, “오초는 동남으로 갈라졌고 건곤은 밤낮으로 떠 있누라.〔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하였다.

[-D003] 소유천(小有天) : 

신선이 사는 곳으로, 도가(道家)의 삼십육동천(三十六洞天) 중 첫째이다.

 

고려사절요 25 / 충혜왕(忠惠王) 

갑신 5(1344), 원 지정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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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정월에 원 나라에서 유탁(柳濯)을 합포 만호(合浦萬戶)에 임명하였다. 전 만호 첨의상의(僉議商議) 양지수(楊之秀)는 신임 만호에게 자리를 교대하여 주지 않으려 오랫동안 있다가, 마침내 나와서 도내에 나다녔으나, 아무도 위문하는 이가 없었다. ○ 재상이 백관들과 국가 원로를 민천사에 모으고 도성(都省)에 올릴 글에 서명하려 하였는데, 원로들이 많이 나오지 않아 일이 마침내 성취되지 못하였다. ○ 왕이 역의 수레로 달리니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게양현까지 이르지 못하고, 병자일에 악양현(岳陽縣)에서 훙(薨)하였다. 독살당하였다고도 하고, 귤을 먹고 운명하였다고도 한다. 나라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소민들은 기뻐 날뛰면서, “이제는 다시 살 수 있는 날을 보겠다." 고까지 하였다. 백성들에게 덕택이 미치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처음에 궁중과 길거리에 노래가 유행하기를, “아야마고지나(阿也麻古之那)가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라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사람들이 해석하기를, “악양(岳陽)에서 죽는[亡故] 어려움[難]이여, 오늘 가면 어느 때에 돌아올 것인가." 하였다.

사신이 말하기를, “충혜왕은 영특하고 슬기로운 재능을 좋지 못한 데에 사용하였고, 나쁜 불량배들을 가까이하면서 음란하고 방종한 행동을 멋대로 자행해서, 안으로는 부왕에게 꾸지람을 받고, 위로는 천자에게 죄를 얻어, 죄수의 몸이 되어 길에서 죽었으니, 마땅하도다. 비록 늙은 신하 이조년(李兆年)의 간절한 간언이 있었으나 말을 듣지 않았으니, 어찌 하겠는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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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암시집 2 / 율시(律詩) 

외숙 국헌공 새로 별장을 지었는데  수춘장과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6 21 내가 마침  별장에 왔는데 공도  별장에 왔다는 말을 듣고 뵈러 가려 하였더니 바람이 일어나고  물결이 솟아올라  기세를 감당할  없게 되어 울울한 심정을 참을 길이 없었다이에 절구  수를 지어 외숙 김영후  바치다〔大叔菊軒公新構野莊與吾壽春莊隔江相望六月廿一日予適來吾莊聞公亦到新莊欲謁而風作浪湧不可禁當不勝鬱鬱因成絶句二首拜呈左右金永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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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고 잔잔한 호수는 거울 빛 같은데 / 百頃平湖似鏡光
어촌 양 기슭에서 집들이 정면으로 마주 보았네 / 漁村兩岸正相望
저녁 바람이 물결을 일으켜 갑자기 건너가기 어려우니 / 晩風吹浪忽難渡
외숙을 뵐 길이 없어 몇 번이나 한했던가 / 幾恨無因謁渭陽
 

누대의 백련사 이미 보았지만 / 樓臺已見白蓮社
풍랑 탓에 청초호 건너지 못하네 / 風浪未過靑草湖
이는 선사 - 선탄(禪坦)이다. - 가 당일에 지었던 시구 / 此是坦師當日句
낭랑히 읊조리며 부질없이 다시 탁주를 마시네 / 朗吟空復飮村酤

[-D001] 국헌공(菊軒公) : 

고려 말 문신인 김영후(金永煦, 1292~1361)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조부는 김방경(金方慶)이다. 강직한 성품으로 충혜왕, 충목왕을 보좌하여 부원배(附元輩)들에게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벼슬은 우의정에 이르렀고 복창부원군(福昌府院君) 상락후(上洛侯)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급암의 모친이 김방경의 손녀이기에 급암은 김영후를 외숙이라고 부른 것이다.

[-D002] 백련사(白蓮社) : 

진(晉)나라의 혜원 법사(慧遠法師)가 시작한 결사로, 염불 수행에 있어서 승려와 속인을 가리지 않아 많은 고승과 명유들이 참가하였다. 이 결사(結社)가 이루어졌던 동림사(東林寺) 안에 백련(白蓮)을 많이 심었으므로 백련사라고 하였다.

[-D003] 청초호(靑草湖) : 

원래 중국 오호(五湖)의 하나로 불리는 호수이다. 이 호수는 지금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 서남쪽에 있는데 동정호(洞庭湖)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청초산(靑草山)으로 인하여 이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D004] 선탄(禪坦) : 

고려 말엽의 유명한 시승(詩僧)이다. 그는 거문고와 시에 뛰어났는데 특히 시로써 알려져 이제현 등의 상찬을 받았다. 《선탄집(禪坦集)》이라는 시집을 남겼고 〈고풍(古風)〉 등의 작품이 《동문선》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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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집 2 / ()○을미고(乙未稿) 

아침 일찍 악양 지나다〔早過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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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강 한가운데 갑자기 웅덩이가 생겨 / 大江中忽陷
돌아 흐른 물결이 파란 언덕을 이루네 / 洄浪綠成岸
산봉우리 틈새로 아침 햇살 비추고 / 峰缺暾斜映
수증기는 노을 졌다 막 흩어지누나 / 水蒸霞初散
강길 따라 아침 나무꾼 붐비어라 / 沿流早樵競
배는 무겁고 돛대는 반쯤 가려졌네 / 舟重檣亞半
바람 소리 우수수 갈대밭 대숲 사이엔 / 淅淅蘆篁間
오리 거위가 시끄러이 울고 쪼고 하네 / 呷唼鳧鵝亂
길 가는 나는 아침 풍경을 좋아해 / 行人愛朝景
때때로 지팡이 짚고 바라보노라 / 時復支筇看
평생에 묘호를 상상만 하다 보니 / 平生想湖泖
정신은 가 있고 글은 책상에 있는데 / 神往書在案
이 경계가 응당 그곳과 같으련만 / 此境應與同
모자란 건 삼고와 짝할 만한 이로세 / 所欠三高伴
삽암의 그림자 우뚝하기도 해라 / 峨峨鍤巖影
동정호 가에 푸른빛이 떨어졌네 / 靑落洞庭畔
강가에서 이슬 젖은 국화를 따서 / 臨江掇露菊
삼가 한유한에게 받들어 올리노라 / 敬薦韓惟漢

[-C001] 을미고(乙未稿) : 

1895년(고종32), 매천의 나이 41세 때 지은 시고이다.

[-D001] 악양(岳陽) : 

경남 진주(晉州)의 서쪽에 위치한 현명(縣名)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이 현을 하동군(河東郡)에 예속시켰다.

[-D002] 묘호() : 

춘추 시대 오(吳)의 송강현(松江縣) 서쪽에 위치한 호수 이름인데, 상, 중, 하의 삼묘(三泖)로 일컬어지는바, 물이 많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송(宋)나라 하원(何薳)의 《춘저기문(春渚紀聞)》에 의하면 “이른바 삼묘라는 곳을 지금 보니, 모두 넓고 큰 호수로, 봄, 여름에는 연과 부들이 널리 퍼져 있어 물 위에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고, 가을, 겨울에는 갈대숲이 무성하고 고기를 낚을 만한 섬들이 줄 이어 있어 강호의 썰렁한 풍경은 아예 없으니, 이른바 겨울에는 다습고 여름에는 서늘하다는 것이 정히 그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겠다.〔今觀所謂三泖 皆漫水巨浸 春夏則荷蒲演迤 水風生涼 秋冬則葭葦藂蘙 魚嶼相望 初無江湖凄凜之色 所謂冬暖夏涼者 正盡其美〕”라고 하였다.

[-D003] 삼고(三高) : 

춘추 시대 월(越)의 범려(范蠡), 진(晉)나라 때 장한(張翰), 당(唐)나라 때 육귀몽(陸龜蒙)이 모두 오(吳) 지방 사람이므로, 송(宋)나라 때에 오강(吳江)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고사(高士)라 하여 삼고사(三高祠)를 세우고 그들을 제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齊東野語 卷7》

[-D004] 삽암(鍤巖) : 

하동군 섬진강 변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고려 시대의 은사(隱士) 한유한(韓惟漢)의 전설이 얽혀 있다. 조식(曹植)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의하면 “별안간에 악양현(岳陽縣)을 지나는데, 강가에 삽암이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녹사(錄事) 한유한이 살던 곳이다. 한유한은 고려가 곧 망할 것을 알고는 처자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살다가 조정에서 대비원 녹사(大悲院錄事)로 부르자, 어느 날 밤에 집을 떠나 도망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모른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南冥集 卷2》

[-D005] 한유한(韓惟漢) : 

고려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처음에 벼슬을 하다가 이자겸(李資謙)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고는 장차 화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가족을 데리고 악양현(岳陽縣)에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조정에서 그의 재주를 아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았으나 그는 끝내 숨어 버리고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세인(世人)들은 그가 신선이 되어 갔다고도 하는데, 후일 지리산(智異山)의 화엄사(華嚴寺), 연곡사(燕谷寺), 쌍계사(雙磎寺) 등지에서 그의 자취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그가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의 도를 이어받아 삼신산(三神山)으로 알려진 금강산(金剛山), 지리산, 한라산(漢挐山)을 두루 다니면서 신선을 따라 노닐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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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집 제1권 / 시(詩) 

관수루에 올라 보니 느낌이 있어서 읊다 선인이 지은 시의 운을 썼다.○계묘년(1903, 광무7) 〔登觀水樓有感 用先詩韻○癸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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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이에 은하에서 흘러서 오고 / 水流銀漢位
산은 이에 동정호의 군산 서 있네 / 山立洞庭君
풍경 보면 삼한 모습 아스라하고 / 風景三韓邈
여염집들 강 양쪽에 나뉘어 있네 / 閭閻二國分
단청 들보 비에 젖어 걱정되는데 / 畫梁愁落雨
시판 이에 가는 구름 바라다보네 / 藻板弔歸雲
누각 기대 휘파람을 길게 부는데 / 高倚一長嘯
저물녘 빛 누각 벽에 일렁거리네 / 夕陽翻壁文

일본군의 병참(兵站)이 낙동강의 북쪽에 있어 일본 사람들이 제판(題板)을 대부분 철거하였다고 한다.

[-D001] 관수루(觀水樓) :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에 있는 누각으로, 낙정(洛井) 나루의 바로 옆 북쪽에 있는 층암절벽에 위치한다. 고려 중엽에 창건되었으며, 1874년(고종11)에 강물에 떠내려간 후 중건하지 못하다가 116년 만인 1990년 5월에 복원되었다.

[-D002] 군산(君山) :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의 어귀에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 일찍이 상군(湘君)이 노닐었으므로 일명 상산(湘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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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사집 제3권 / 무술조천록 하(戊戌朝天錄下) 

계문(薊門)의 내 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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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들을 에워싸고 / 天圍野
들은 하늘과 잇닿았어라 / 野接天
흐릿한 내는 숲과 같고 / 漠漠煙如樹
몽롱한 숲은 내와 같아라 / 濛濛樹似煙
하물며 군산의 가을비 오는  / 況是君山秋雨夜
젖은 구름  대로 상천이 어둑할 때이랴 / 濕雲寒竹暗湘川

[-D001] 하물며 …… 때이랴 : 

산(君山)은 중국의 악양루(岳陽樓)가 있는,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는 산으로, 일명 상산(湘山)이라고도 한다. 상천(湘川)은 동정호로 흘러드는 강인 상수(湘水)이다. 이 상수와 그 지류(支流)인 소수(瀟水)가 동정호로 흘러드는 지점은 경치가 매우 좋아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란 명칭이 생겼는데, 소상팔경 중 하나가 소수와 상수에 밤비가 내리는 풍경인 소상야우(瀟湘夜雨)이다. 여기서는 ‘이곳 계문만 하더라도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저 유명한 소상야우야 말해 무엇 하겠느냐’는 뜻으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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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유집 제1권 / 시(詩) 

악양(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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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들 잎은 바람 따라 흔들리고 / 風蒲泛泛弄輕柔
사월 화개 땅엔 보리가 다 익었네 / 四月花開麥已秋
두류산 천만 봉을 두루 다 돌아보고 / 看盡頭流千萬疊
배는 또 섬진강을 강물 따라 내려가네 / 孤舟又下大江流

[-D001] 악양(岳陽) : 

정여창(鄭汝昌)은 모친상을 치른 뒤, 1488년(성종19)에 섬진강(蟾津江) 어귀에 악양정(岳陽亭)을 짓고 생활하였고, 이듬해 4월에 두류산을 유람하였다. 이 시는 이때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D002]  …… 흔들리고 : 

중국 송(宋)나라 때 문장가 소식(蘇軾)과 친분이 두터웠던 참료자(參廖子)라는 스님의 시에 “바람에 부들 잎이 가벼이 흔들리니, 앉으려는 잠자리 앉지를 못하네. 오월 임평 땅 산 아랫길에는, 무수한 연꽃이 물가에 가득하네.〔風蒲獵獵弄輕柔 欲立蜻蜓不自由 五月臨平山下路 藕花無數滿汀洲〕”라고 하였는데, 첫 구절은 이 시에서 차용한 듯하다. 《欽定四庫全書 585集 西湖遊覽志 西湖遊覽志餘 卷14》

[-D003] 두류산(頭流山) : 

지리산(智異山)의 다른 이름이다.

 

고전번역서 > 일두집 > 일두유집 제3권 > 시장 > 최종정보

일두유집 제3권 / 시장(詩章) 

악양정(岳陽亭) [유호인(兪好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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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亭子)는 진양(晉陽)의 악양현(岳陽縣)에 있으니, 정후 백욱(鄭侯伯勖)이 지내던 곳이다. 백욱은 어려서부터 스스로 매이기를 싫어하였고 산수(山水)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병통이 있었다. 일찍이 여기에 별장을 짓고, 이어 정자를 세우고는 이름하기를 ‘악양정(岳陽亭)’이라 하고 날마다 여유롭게 지내면서 시를 읊조리며 즐겼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부름을 받아 소격서 참봉이 되었으니, 상이 그 행실을 가상하게 여긴 것이다. 정군(鄭君)이 이르러서는 한 가닥 수염을 뽑듯이 쉽게 과거에 급제하였다. 한림원에서는 직필(直筆)로 일컬어졌다. 서연(書筵)에 궐원이 있자 또 설서(說書)에 보임되어, 날마다 춘궁(春宮)을 모시어 보익(輔益)한 것이 아주 많았다. 내가 어쩌다 문학(文學)이 되어 삼가 같이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루는 저녁에 함께 시강원(侍講院)에 들어가 시강을 하고 나서, 담론(談論)이 자자했었다. 하여 이른바 ‘악양의 일’을 이야기하는데, 그 산천의 승개와 풍경의 아름다움이 선명히 눈앞에 있는 듯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느라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다만 정후(鄭侯)는 병환이 있어 벼슬살이를 즐기지 않았고, 여차하면 귀향하려는 뜻이 있었다. 노두(老杜) 〈복거편(卜居篇)의 운자(韻字)를 써서 화운하기를 매우 독촉하였는데, 사양했으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삼가 운자를 따라 지어 보여서 좋은 모임에 한바탕 큰 담소거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남쪽 하늘 아래로 돌아가고픈 마음 뭉클하니 / 一掬歸心天盡頭
그곳 악양은 곳곳이 맑고 그윽하지 / 岳陽無處不淸幽
선명한 산천 경개는 흥취를 돋우는데 / 雲泉歷歷偏供興
부질없는 벼슬살이는 수심만 자아내네 / 軒冕悠悠惹起愁
두곡의 숲과 못엔 봄볕이 따스하고 / 杜曲林塘春日暖
망천의 비구름은 저녁 산에 떠 있겠지 / 輞川煙雨暮山浮
서연에서 매일 세 번 강론을 해야 하니 / 書筵每被催三接
악양루 앞 빈 배 위엔 달빛만 가득하겠구나 / 辜負亭前月滿舟

[-D001] 노두(老杜) 복거편(卜居篇) : 

노두는 당(唐)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를 말한다. 〈복거(卜居)〉는 《두소릉시집(杜小陵詩集)》 권9에 실려 있다.

[-D002] 두곡(杜曲) : 

당(唐)나라 대성(大姓)인 두씨(杜氏)들의 세거지(世居地)이다. 〈복거(卜居)〉 시에 “주인이 집 지을 터를 잡으니 숲과 못이 그윽하네.〔主人爲卜林塘幽〕”라는 구절이 있다.

[-D003] 망천(輞川) :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가 별장을 지어 놓고 즐기던 곳이다. 두곡과 망천은 시인들이 은거했던 대표적인 지명이므로, 악양을 비유하여 인용한 것이다.

 

고전번역서 > 대산집 > 대산집 제46권 > 제문 > 최종정보

대산집 제46권 / 제문(祭文) 

제산 김공에 대한 제문 정묘년(1747, 영조23) 〔祭霽山金公文 丁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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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 人有議公
“시의에 알맞게 대처함을 잃었으니 / 或失時措
인산의 일과 바다로 귀양  는 / 仁山紫海
이 누구 때문이었는가 / 是誰之故
어찌 잠시 늦추어서 / 曷不少遲
하늘이 정해 줄 때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 待天所定
저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니 / 我曰不然
이 어찌 공의 탓이겠습니까 / 是豈公病
군사부 삼사의 의리 중하니 / 生三義重
있는 곳에 목숨을 바치는 법입니다 / 所在致死
스승을 무함하는 사람들 말을 / 人有誣言
어찌 차마 좌시할 수 있겠습니까 / 其忍坐視
나는 스스로 의리를 다할 뿐 / 我自盡義
어찌 그 밖의 것을 알겠습니까 / 寧知其外
우환이 뜻밖에 이르는 것은 / 憂患倘來
성인 또한 어찌할 수 없지요 / 聖亦無奈
아득한 바다를 건너가 / 濟海洋洋
가시나무 울타리에 갇혔습니다 / 往罹栫棘
평탄함과 험함을 똑같이 여기니 / 夷險一視
감히 근심하는 마음을 두겠습니까 / 敢有憂戚
유배되었던 섬강의 강가는 / 蟾江有滸
장기가 대낮에도 가득 찼습니다 / 瘴霧晝塞

갈은리  마을에서 / 葛隱舊里
선사의 남은 자취 더듬으매 / 先師餘躅

악양의 들판이요 / 岳陽之野
아득한 군산이었습니다 / 君山杳杳

눈물이 아롱진 대나무에 / 其竹有斑
바람이 한들거립니다 / 其風嫋嫋
택반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 憔悴澤畔
그 형체가 고달프셨습니다 / 其形有纍
때로 거닐며 시를 읊고 / 有時行吟
어버이 생각하고 시대를 근심하셨지요 / 念親憂時
………..

 [-D017] 유배되었던 섬강(蟾江) 강가 : 

김성탁은 1738년(영조14)에서 졸년까지 전라도 광양현 섬진 지역에 유배되어 있었다.

[-D018] 갈은리(葛隱里 마을 : 

전라도 광양은 예전에 갈암 이현일이 유배되었던 곳이다. 그중 섬강의 갈은리라는 마을에 머물렀는데 이현일의 호와 같아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는 일화가 한국문집총간 128집에 수록된 《갈암집》 〈연보〉에도 실려 있다.

[-D019] 악양(岳陽) …… 대나무에 : 

악양은 경상도 하동현(河東縣)의 악양으로, 광양의 섬진(蟾津) 동쪽 언덕이 악양과 서로 맞닿아 있었다. 이곳의 지명이 마침 악양이므로 중국 악양루(岳陽樓)의 일을 끌어다 써서 군산(君山)과 반죽(斑竹)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오산집 4 / 칠언배율(七言排律) 

영남 방백 윤방(尹昉) 영공(令公)에게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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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칠 개 고을이 한 도로 구성되니 / 六十七官爲一道
남쪽의 거진으로 청구에서 으뜸이지 / 維南巨鎭冠靑丘
조령을 경계 삼아 양호와 접하였고 / 界分鳥嶺兩湖
계림에서 갈려 나와 삼국을 구하였지 / 壤畫鷄林三國求
천 리의 지역은 창해에서 끝나고 / 千里封疆滄海盡
만 겹의 형세로 백산이 떠 있지 / 萬重形勢白山浮
인재가 풍부한 천연의 고을이고 / 人材陸海天雄府
국보의 금탕으로 대지의 으뜸이지 / 國寶金湯地上游
중책이 반드시 위인에게 돌아가니 / 重寄必須歸雅量
어진 이가 비로소 간택에 들어갔지 / 高賢始可協爰謀
주상이 지모 인정 명성이 커지었고 / 智垂睿想聲名大
정사를 잘 처리해 덕업이 융성했지 / 器別盤根德業優
일찍부터 공을 보고 가슴 절로 조였는데 / 蚤識我公膺自陜
오늘 다시 주상에게 보답한 걸 보았으이 / 更看今日答凝旒
백미가 형제 중에 신색이 수려하니 / 白眉兄弟形神秀
흑수로 공경 되어 명망이 더욱 났지 / 黑首公卿位望尤

정승 가문 효자 나와 가업을 계승하고 / 孝出相門能繼述
임금 일에 충성 쏟아 극도로 주밀했지 / 忠專王事極綢繆
요직에 등용되어 임금님 자주 뵙고 / 登敭淸貫頻三接
태평 시대 만나서 또다시 으뜸갔지 / 際會明時又一頭
형조의 장관 되자 경월이 동하였고 / 頃長秋官卿月動
경기 도백 사직 전에 복성이 되었지 / 俄辭畿伯福星留
이번에도 왕 대신해 교화 펴서 영광이니 / 此行且復榮宣化
다방(多方) 역임 물론이고 젓가락도 요청했지 / 歷試無論請借籌
품계 높아  임금 사악보다 고위였고 / 峻秩高居堯四岳
멀리 임해 한나라 제후까지 안찰했지 / 遙臨倂按漢諸侯
범공처럼 고삐 잡자 풍채를 흠모했고 / 范公攬轡欽風彩
가자처럼 휘장 걷자 수레를 우러렀지 / 賈子褰帷仰德輶
세류영의 군중에 창칼이 삼엄하고 / 細柳營中森畫戟
감당의 막하에 망아지가 울었지 / 甘棠幕下擁鳴騶
청천의 부월이 구름 타고 내려오니 / 靑冥斧鉞來雲表
열군이 무장하고 길가에 늘어섰지 / 列郡櫜鞬夾道周
적자가 용사   왕씨 때문이고 / 赤子龍蛇王氏卓설산의 경중은 정공에게 달려 있지 / 雪山輕重鄭公遒
남쪽 지역 순시하니 귤과 유자가 선마를 맞이하고 / 南巡橘柚迎先馬
서쪽을 보고 웃으니 선비들이 해우하길 그만두네 / 西笑簪纓輟解牛
잡무 제친 황패(黃霸)는 조용히 진압하고 / 務屛久聞黃靜鎭
흥취 깊은 유량(庾亮)은 누대로 올라갔지 / 興深還見庾登樓
치송과 조정을 두루두루 찾아보고 / 稚松潮井臨觀遍
풍혈과 용추를 차례대로 노닐었지 / 風穴龍湫取次遊
수로의 패왕 판도 가락에서 찾아보고 / 首露霸圖尋駕洛
고운의 신선 자취 두류에서 찾아봤지 / 孤雲仙迹訪頭流
아득한 처용포에 구름은 그대로나 / 處容浦逈雲烟古
황폐된 포석정에 초목은 수심 짓네 / 鮑石亭荒草木愁
경성 같은 사람 떠나 산속이 적적하고 / 人去庚星山寂寂
남옥의 저만 남아 달빛이 유유하네 / 笛留藍玉月悠悠
퇴옹의 도덕은 연원이 광대하고 / 退翁道德淵源闊
명로의 기풍은 가을의 기색일레 / 溟老風標氣色秋군자의 향리는 

직설의 가문이고 / 君子鄕餘家稷卨
의관의 마을은 가업들을 계승했지 / 衣冠里在業箕裘
당종은 비 꿈 꾸고 여지를 찾았었고 / 唐宗夢雨徵輿地
여주는 피난하여 복주를 알았었지 / 麗主蒙塵記福州
백록처럼 깨끗한 집 몇 곳이나 되겠으며 / 幾處精廬白鹿似
자경같이 능한 사신 그 누가 있겠는가 / 何人膚使子卿儔
동방의 예악이 시골까지 퍼지니 / 東隅禮樂包鄕曲
남극의 성신이 해동에 찬란했지 / 南極星辰耀海陬
한 방면을 구제할 때 근면이 요하지만 / 方面濟時要黽勉
일심으로 나라 걱정 주저할 수 있겠는가 / 一心憂國敢夷猶
왜인은 간담이 서늘하여 귀순하고 / 膽寒赤狄須賓服
창생은 안색 살펴 어루만져 준다네 / 眉察蒼生合燠咻
촉 땅을 진정한 문요 못지않지만 / 不讓文饒鎭庸蜀
민 지역 다스렸던 상곤은 어떠할지 / 何如常袞按閩甌

더구나 난리 뒤 할 일이 많은 때에 / 矧當亂後仍多事
변방에 부임하니 필적할 이 적었지 / 又是臨邊亦寡仇
현실 살펴 군대 정비 묘산을 이룩하고 / 討實詰戎成妙算
재물 불려 식량 조달 기획에 주력했지 / 阜財調食費嘉猷
명령이 시행 잘돼 깃발 색이 변하였고 / 令嚴流水旌旗改

정사에 풍속 변하여 포악이 사라졌지 / 政簡移風虎豹休
느슨한 옷차림에 붉은 인수 늘어졌고 / 緩帶雍容垂赤紱
투호하고 담소하며 군막에 앉았었지 / 投壺談笑坐靑油
그 누가 사방에 부지런히 힘썼는가 / 四方宣力知誰健
저절로 천 년 내내 명성이 전해지리 / 千載流聲覺自由
위엄이 변방 진압 창 방패 들여놓고 / 威折遐衝藏戟盾
인화가 멀리 퍼져 들판에서 노래하네 / 仁霑遠服樂田疇
변새에서 북상하는 장계가 뜸해지니 / 邊庭會寢北飛奏
성주께서 남쪽의 걱정을 덜게 됐지 / 聖主少寬南顧憂
이것이 신하 직분 다한 것이 아니겠나 / 辦此豈非臣職得
이제는 주상 은혜 갚았다고 할 수 있지 / 從玆亦足主恩酬
춘광이 화창하니 방초가 무성하고 / 春光澹蕩芳菲盛
물색이 미려하자 절기가 유화하네 / 物色暄姸節氣柔

온 조정이 다 나와서 멀리까지 전송하고 / 出餞傾朝爭遠送
돌아올 때 시 운자를 암암리에 생각했지 / 來歸命韻競冥搜
이별할 땐 쌀벌레 가득 뜬 술 권했지만 / 離筵勸進盈樽蟻
기로에선 비 부른 비둘기 소리 싫어했지 / 別路愁聞喚雨鳩
나 혼자만 노고한다 탄식을 하지 말고 / 莫歎獨賢强膂力
웅략 펼쳐 변방 관문 튼튼히 하시게나 / 直將雄略壯咽喉
부끄럽게 내 공부는 쓰이기 어려우니 / 多慙鉛槧難爲用
진흙길에 욕보아도 거두어 주지 않네 / 辱在泥塗未見收
사냥매는 가을 맞아 수리를 바라보고 / 劍翮乘秋望鵰鶚
흙덩이나 넘는 말은 천리마를 선망하지 / 霜蹄歷塊羨驊騮
길한 점을 얻으려고 첨윤을 찾았으나 / 欲求吉卜從詹尹
좋은 기회 자주 잃자 건수를 원망했지 / 屢失佳期怨謇修
빈번하게 모시면서 자리를 내리었고 / 得御頻繁曾下榻
옛날에 알현하고 배도 같이 탔었지 / 登門夙昔且同舟
형제들과 사귀어 과분한가 하면은 / 遨遊伯仲寧非忝금란의 친구는 너무나도 엉뚱하지 / 托契金蘭最不侔
종이 주자 무딘 붓을 필낭에서 꺼내 놓고 / 授簡可能拈禿筆
기로 임해 한을 참고 조심하라 경계했지 / 臨岐堪恨戒征輈
현인 아닌 이 몸이 조언하여 송구하나 / 贈言自愧非仁者
명월을 어두운  던졌다고 말 말게나 / 明月休言是暗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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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언 57 산고속집 (사언, 오언, 칠언, 장구 등 

고시(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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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1681, 숙종7) 경뢰절(驚雷節)에 이 이조(李吏曹 이관징(李觀徵))가 지난해 귀양을떠났다가 풀려나 돌아가면서 제군(諸君)들과 함께 서해안을 유람하며 서로 수창(酬唱)한 시와 서(序)가 도합 11편이었다.  나 또한 일찍이 남부여(南扶餘)의 해안 1천여 리를유람한 적이 있는데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제 일같이 눈에 선하다.  

내가 옛날 만력 말년에 / 昔我萬曆末

남쪽으로 유람 가서 사수(泗水)에 들렀는데 / 南遊過淸泗
백제 땅 서남쪽 가는 / 百濟西南畔
하늘도 없고 땅도 없이 물뿐인 큰 바다였네 / 大壑無天地
끝없이 광활하여 천지사방을 분간할 수 없고 / 蕩漭迷六合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영이한 기운을 토하며 / 噓噏吐靈異
커다란 우주를 포괄하여 / 包括宇宙大
낮은 곳에 처한 큰 그릇이었네 / 居卑以爲器

아침에는 해가 뜨고 저녁에는 달이 떠서 / 朝日而夕月
해와 달이 제 위치를 바로잡고 / 兩曜各正位
삼신산 서쪽의 백해까지 / 白海三神西
만리가 한눈에 들어왔네 / 萬里收一視
부경이 바닷가에 나고 / 浮磬出海濱
도이가 베옷을 입기도 하며 / 島夷或衣卉
서주에서 빈주를 바치고 / 徐州貢
백어를 제사에 올리네 / 白魚供祀事
우뚝 솟은 전횡의 이여 / 峌𡸣田橫島
천하가 그 의를 칭송하네 / 天下誦其義
구이와 팔만의 밖은 / 九夷八蠻外
너무나 넓어 다 쓰기 어렵구나 / 泱漭難悉記
 번을 거듭 통역하여 진이를 바치니 / 重譯獻珍異
각처에서 명물을 가져왔네 / 各以名物致

하남은 온조 나라이니 / 河南溫祚
옥야(沃野)가 천 리에 뻗쳐 있고 / 葆澤一千里
양호(兩湖)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이라 / 兩湖爲上腴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 마음껏 누리네 / 衣食恣好美
어물과 생선 풍요로우니 / 取給饒魚鹽
많은 장사치들 여기에서 이득을 취하고 / 多賈仰幾利
나라의 풍속이 부유하고 화려함을 숭상하며 / 國俗尙富麗
장부들은 유희를 좋아하네 / 丈夫喜遊戲
구주의 남쪽을 대강 논한다면 / 槩論九州南
형초와 풍속이 비슷하네 / 荊楚俗相類
지금 내 나이 구십이라 / 今我九十老
정신 혼망하여 부끄럽기 그지없네 / 昏忘多慙愧
호해의 일을 대략 들어서 / 略擧湖海作
한두 가지 일을 적어 보낸다 / 一二贈相示

[-D001] 백해(白海) : 

원나라 이후에 백해군(白海軍)이니 백해주(白海州)니 하는 지명이 기록에 등장하고,원 세조(元世祖) 17년에 백해에 행궁(行宮)을 짓고 19년에는 이 행궁에 행행(行幸)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원나라 때에 만들어진 지명이며, 다른 자료에도 발해(渤海)나 낙타산(駱駝山)이 함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발해만(渤海灣) 지역을 가리키는 듯하다.《元史 卷160 王思廉列傳》

[-D002] 부경(浮磬) : 

물속에 있는 돌인데 윗부분이 물 위로 돌출하여 나와 있기 때문에 물에 떠 있는 돌처럼 보이고, 이 돌로 경쇠〔磬〕를 만들기 때문에 부경이라고 한다. 《서경(書經)》〈우공(禹貢)〉에 서주(徐州)에서 생산된다고 하였다. 백제 서남쪽 바닷가에서 바라보이는 중국의 위치가 서주이기 때문에 인용한 것이다.

[-D003] 도이(島夷) …… 하며 : 

《서경》 〈우공 양주(楊州)〉에 “도이는 훼복을 입는다.〔島夷卉服〕”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註)에 “도이는 중국 동남쪽 섬에 사는 오랑캐이고, 이들이 입는 옷감이

갈포(葛布)와 부들로 짠 베와 목면 등속이다.”라고 하였다.

[-D004] 서주(徐州)에서 …… 올리네 : 

《서경》 〈우공 서주〉에 “회이는 조개와 진주와 어물을 바친다.〔淮夷蠙珠曁魚〕”라고 하였는데, 채침의 주에 “어물은 제사에 쓰는 것인데, 지금 호(濠), 사(泗),초(楚)가 모두 회수(淮水)의 백어(白魚)를 바치니, 이 또한 예로부터 내려오는 제도이다.” 하였다.

[-D005] 전횡(田橫)  :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천자가 되자, 제왕(齊王) 전횡은 주살될까 두려워 그 무리500명을 거느리고 해도(海島)로 들어갔다. 고황제(高皇帝)가 사신을 보내 부르니 전횡이 할 수 없이 그 객(客) 두 사람과 함께 낙양(雒陽) 근처 30리 지점에까지 와서 신하의 신분으로 한왕을 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여 자결하고 그 객에게 자기머리를 황제에게 바치도록 하였다. 황제가 듣고 눈물 흘리며 왕자(王者)의 예로 장례하게 하였는데, 장례를 마치고 나자 두 객도 전횡의 무덤 곁을 파고 들어가 자결하였다. 고황제가 그 말을 듣고 놀라서 사신을 보내 섬에 남은 그 무리를 불러오게 하였는데, 사신이 섬에 도착해 보니, 이 소식을 들은 섬에 남은 무리 500명도 모두 자결하였다. 《史記 卷94 田儋列傳》

[-D006] 구이(九夷) 팔만(八蠻) : 

《주례(周禮)》에는 사이(四夷)와 팔만으로 나오고, 《서경(書經)》과 《이아(爾雅)》에는 구이와 팔만으로 나오는데, 이에 대한 설은 선유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아》 이순(李巡)의 주(註)에는 구이와 팔만을 하나하나 거론하고 있지만 그 진위는 알수 없다. 여기에서는 중국 구주(九州) 밖의 여러 만이(蠻夷)를 통틀어 말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D007]  번을 거듭 통역하여 : 

주(周)나라 성왕(成王) 때에 남방(南方)의 월상(越裳)이 세 번 통역을 거쳐 와서 입조(入朝)한 일이 있다. 남방은 중국과 언어와 풍속이 달라 여러 단계의 통역을 거쳐야만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尙書大傳 卷4》

 

월사집 16 권응록 (倦應錄上

소호정(蘇湖亭시에 차운하여 서경추(徐景推) 위해 짓다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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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의 명승지라 청서와 잇닿았나니 / 名區左海接靑徐
사람은 동오와 같고 땅은 소주(蘇州)보다 나아라 / 人似東吳地勝蘇
한 줄기 물은 멀리 드넓은 평야 둘러싸고 / 一水迥圍平野濶
어지러운 산들은 둥글게 외로운 정자 에워쌌어라 / 亂山環拱小亭孤
빗속에 도롱이 눈 속에 낚시는 한가한 중 멋이요 / 雨蓑雪釣閑中趣
달 아래 젓대 안개 낀 백사장은 그림 속 풍경이로세 / 月笛煙沙畫裏模
문득 그대와 더불어 새로운 생활 시작하고파라 / 便欲共君新活計
가을바람 불 제 어이하여 순챗국과 농어회 생각나는가 / 秋風何事憶蓴鱸

 

남주라 아름다운 지역 나라에서 으뜸이요 / 南州佳麗冠吾邦
명승지라 소호는 더욱이 비길 데가 없어라 / 形勝蘇湖更少雙

처마 밖 봉래(蓬萊) 영주(瀛洲)에는 하늘이 물을 치고 / 簷外蓬瀛天拍水
베개 곁 비바람에 물결은 강에서 뒤집힌다 / 枕邊風雨浪飜江

차가운 조수 올라올 즈음 아침에 그물 걷고 / 寒潮欲上朝收網
초승달이 막 떠오를 제 밤에 창을 밀치느니 / 新月初浮夜拓窓
백발의 몸 세상살이 서툰 것 더욱 가련해 / 白首益憐身世拙
고단한 인생 그 언제나 번잡한 일에서 벗어날꼬 / 勞生何日謝紛龐

[-D001] 청서(靑徐) : 

중국의 청주(靑州)와 서주(徐州)이다. 회수(淮水) 북쪽 일대로 동오(東吳)의 북쪽에 위치한다.

[-D002] 사람은 동오(東吳) 같고 : 

오희월녀(吳姬越女)라 하여 중국 양자강 이남 일대의 여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고전번역서 약천집 약천집 제10권 소차 최종정보

그리고 요동의 경우에 있어서는 애당초 기자(箕子)가 봉지를 받은 국경으로 개원현(開原縣)은 바로 옛날의 부여국(夫餘國)으로 고구려 시조인 고주몽(高朱蒙)이 발상한 지역이며, 지금의 개평현(蓋平縣)은 바로 진한(辰韓)의 옛 국경으로 또한 우리 삼한(三韓)의 하나였습니다. 일찍이 고구려 전성기에는 모든 요동의 일대와 여진족들이 사는 곳이 대부분 모두 고구려의 국경 안에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이 때문에 해동의 강대국이 되었는데, 말엽에 이르러 군주와 신하가 도리를 잃어 땅은 수(隋) 나라와 당(唐) 나라에 빼앗겨 줄어들고 백성들은 양자강(揚子江)과 회수(淮水)지방으로 옮겨가서 결국에는 국가가 전복되었으니, 불타고 남은 흔적을 다시는 찾을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수천 년 동안 아직도 우리나라의 옛 국경을 수복하지 못하였습니다. 국가가 부흥하고 멸망하며 번성하고 쇠퇴하던 시기와 병탄(倂呑)하고 분열(分裂)되었던 자취가 모두 이 한 폭의 지도에 기재되어 있으니, 또한 국가를 소유한 자가 서글피 탄식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척연히 두려움을 생각하게 하는 도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또 삼가 생각건대, 압록강과 두만강 두 강의 근원은 모두 백두산에서 나오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흘러 바다로 들어가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경계입니다.

 

백호전서 34 잡저(雜著

풍악록(楓岳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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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윤7월 24일(정유) 맑음. 아침에 배와 대추 등 과일을 사당에다 차려놓고 풍악(楓岳)에 다녀오겠다는 뜻을 고하였다. 그리고 나서 출발하여 통제(統制) 외삼촌 댁에 도착하였다.

………

금강산(金剛山)이 높고 가파르고 수려하기 동방에서는 으뜸인데, 그 산맥은 장백산(長白山)에서 시작되어 검산(劍山)에서 높이 치솟고 철령(鐵嶺)을 가로질러 추지(楸池)에서 기복을 이루고 이어 여기에서 서려 이루어진 것이다.

툭 튀어난 봉우리가 능호봉(凌灝峯)인데 그 봉은 흙과 돌이 섞여 있고 돌무더기 산이죽죽 뻗어가다가 펄쩍 뛰어올라 영랑재[永郞岾]가 되고 또 갑자기 높이 솟아 비로봉(毗盧峯)이 되었는데 바위 전체가 솟아 봉우리가 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하늘까지 치솟아높고 거대하기로는 이와 맞먹을 봉우리가 없다. 비로봉에서 형세가 한풀 꺾여 내려오면서 험준하게 첩첩으로 싸인 것이 중향성(衆香城)인데 푸르른 바위 절벽이 둘러서서성을 이루고 하얀 바위들을 바라보면 그 빛이 마치 분을 발라놓은 것 같다. 그리고 바위 사이로는 노송ㆍ잣ㆍ해송(海松)ㆍ만향(蔓香) 나무들이 하나의 무늬를 이루고 있다.그리고 거기에서 연달아 일출봉(日出峯)ㆍ월출봉(月出峯)이 솟아 있고, 그 아래 가로로줄서 있는 것이 백운대(白雲臺)ㆍ금강대ㆍ대향로(大香爐)ㆍ소향로(小香爐)이고, 그 시냇물은 만폭동(萬瀑洞)인데 백천동(百川洞)의 물과 만나서 남으로 흘러 회한(淮漢)의상류가 된다. 그리고 또 서쪽으로 가서 망고봉(望高峯)이 되었는데 그 높이는 비로봉다음 가고, 또 그 다음으로 백마(白馬)ㆍ현등(玄登) 등의 봉우리가 있는데 마치 서쪽을향하여 엎드리려는 듯하다. 또 남으로 바닷가까지 나가서 들을 끼고 달려간 놈은 천후(天吼)ㆍ설악(雪嶽)ㆍ한계(寒溪)가 되었고, 서남으로 간 놈은 오대산이고, 곧바로 남으로 달려간 놈은 영(嶺)의 좌우 그리고 호(湖)의 서남쪽 줄기가 되고 있다.

비로봉 서쪽은 내산(內山)이라고 하는데, 바위가 우뚝우뚝 서있고 바람은 서풍을 받고햇볕은 석양 햇볕을 받기 때문에 나무들이 그리 자라지 못하고 있다. 비로봉 동쪽은 바위 사이로 흙이 꽤 많고 아침 해가 비치는데다 바다가 가까이 있어 그 기운까지 받기때문에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해를 가리고 구름 위까지 치솟아 있는데 그 쪽은 외산(外山)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백 리도 다 못가 동해에이르러 끝나고, 서쪽으로 뻗은 가지는 회수(淮水) 서쪽을 끼고 바다까지 다 못 가서 양강(楊江)과 만나 거기에서 끝나는데 천 리 절반 정도로서 가깝고, 북으로 뻗은 가지는높은 산이 첩첩이고, 둥그렇게 서려 한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이 구룡연(九龍淵)이다. 만폭동은 바위낭떠러지가 수려하고 수석도 맑아 지팡이 짚고 신발 신고도 건널 만하기 때문에 구경 온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으나, 구룡연은 어두컴컴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도 없으며 용과 새짐승들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풍정(風霆)이일고 괴물이 나타나고 하여 인적이 미칠 수 없는 곳이다.

……….

고전번역서 > 만기요람 > 재용편 5 > 제언 > 최종정보

재용편 5 / 제언(堤堰

각도 언보(各道堰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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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水原)은 둑[堰] 24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7처. ○ 광주(廣州)는 둑 13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3처. ○ 강화(江華)는 둑 32처. ○ 경기는 언 245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9처. ○경상도는 둑 1,765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99처. 보마기[洑] 1,339처. ○ 전라도는 둑 936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24처. 보마기 164처. ○ 공충도(公忠道)는 둑 535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17처. 보마기 497처. ○ 평안도는 둑 5[五處] 보마기 109 처(處). ○ 황해도는둑 45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6처. 보마기 71처. ○ 함경도 둑 24처, 그 안에 폐지된 것이 3처. 보마기 24처. ○ 강원도는 둑 71처, 보마기 61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