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6. 11:14ㆍ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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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와잡설(松窩雜說)
………
올 임인년(1782, 정조 6)에 도척면(都尺面)에 사는 상한(常漢)을 만났더니, 그가 말하기를,
“영동(嶺東)의 양양(襄陽)에 가서 뱃사람을 따라 바다에 들어갔는데, 풍랑을 만나 표류한 지 며칠 만에 어떤 섬에 닿았습니다. 그 섬은 갈대밭이 질펀하고 수목이 울창하였습니다. 뱃사람 8명이 모두 뭍에 내려서 사방으로 달려가보니 1, 2백 리 되는 곳에 인적이라곤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바람이 잠잠해져서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이는 필시 삼척 사는 사람이 보았던 섬일 것이다.
근간에 사부(師傅) 안응창(安應昌)의 《잡록(雜錄)》을 보니,
“인조조(仁祖朝)에 황익(黃瀷)이 통제사로 있던 때에 어떤 배 한 척이 표류해 왔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남방국에 사는 사람인데, 그 나라는 일본의 서남쪽 2천여 리에 있으며, 밀물과 썰물이 없다.’ 하고는, 또 ‘그 나라는 본래 신라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신라가 망하게 되자 태자가 종족 1만여 명을 데리고 고려에 저항하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래서 금강산으로 들어갔으나 골짜기는 좁고 사람은 많아 수용할 수가 없어서 민서(民庶) 20여 만 호와 함께 배를 나누어 타고 바다로 들어가서 어떤 섬에 이르러서 살았는데, 나라 이름을 남방국(南方國)이라 하고는 25개 국의 임금이 되었는데,, 백성들은 모두 신라의 후예들이며 지금도 건재한다.’ 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이 혹시 영동의 뱃사람이 만났던 섬이 아닐까. 밀물과 썰물이 없다고 한 것은, 우리 나라 영동의 바다 중에서 일본의 서해와 서로 접하는 곳은 하나의 큰 못을 이루어 본래 밀물과 썰물이 없으니, 말이 서로 부합하는 것이 기이하다. 애오라지 이문(異聞)을 기록하여 이를 남겨두는 바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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