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참시 당한 조조

2022. 9. 6. 11:16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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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전고 제2권 / 유관잡록(留館雜錄)

유관잡록(留館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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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 왕진(王振)이 권세를 독점하여 나라를 그르쳐서 토목(土木)의 변을 일으켰다. 태정제(泰靖帝)가 야선(也先)에게 잡혀 갔으므로 성왕(郕王)이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야선이 상황(上皇)을 끼고서 자형관(紫荊關)을 깨뜨리고 곧바로 들어가 경사(京師)를 엿보았다. 상황이 덕승문(德勝門) 밖 토성에 이르니, 제(帝 대종(代宗))가 좌통정(左通政) 왕복(王復)과 소경(少卿) 조영(趙榮)을 시켜 상황을 토성에게 만나보게 하였다. 병부 상서(兵部尙書) 우겸(于謙)이 석형(石亨)과 더불어 부총병(副總兵) 범광(范廣)을 거느리고 덕승문 밖에서 무력을 과시하며 항거하였다. 여러 성문을 모조리 닫아 버리고 스스로 독전하며 임진(臨陣)한 장수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군(軍)을 돌아보지 않고 먼저 후퇴하는 자는 후대(後隊)가 전대(前隊)를 베라.’ 하였다. 장수와 병졸들이 죽음으로써 명령을 받들어, 먼저 복병을 두고 몇 기(騎)로써 야선의 수만 기를 유인하니, 야선의 아우 삭라(索羅)가 포(礮)를 맞고 죽었다. 야선은 싸움이 불리하게 되자 드디어 상황을 모시고 북쪽으로 갔다.”

건륭(乾隆) 무진년(1748, 영조 24)에 장하(漳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물에 들어간 사람이 갑자기 허리가 끊기어 물위에 떠올랐다. 황제가 병졸을 풀어 하수를 파고 보니, 강 속에는 수많은 쇠뇌에 살이 메워져 있고 그 밑에는 무덤이 있었다. 그 널을 파내어 보니 은해(銀海)와 금부(金鳧)와 면류관에 왕의 옷차림을 갖춘 것이 조조(曹操)의 시신이었다. 임금이 친히 관묘(關廟 관우의 사당)에 이르러 소열(昭烈 유비)의 소상(塑像) 앞에 꿇리고 목을 베어 천고 신인(神人)의 분함을 시원히 풀고, 또 72총(塚)의 의혹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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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5] 72총(塚) :

위 무제(魏武帝) 조조가 자기의 무덤을 숨기기 위하여 72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