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오(吳)ㆍ월(越)을 침범하여 그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여 살았다.”

2022. 9. 18. 12:38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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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 제6권 별집 / 서사(書事)

이방익(李邦翼)의 사건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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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천 군수(沔川郡守) 신 박지원은 교명(敎命)을 받들어 지어 올립니다.

금상(今上 정조(正祖) ) 20년 - 청(淸) 나라 가경(嘉慶) 원년(1796) - 9월 21일에 제주 사람 전(前) 충장장(忠壯將) 이방익이 서울에 있는 자기 부친을 뵐 양으로 배를 탔다가 큰바람을 만나 표류되어 10월 6일에 팽호도(澎湖島)에 닿았습니다. 관에서 의복과 음식을 주어 십여 일을 머물게 한 뒤에 호송하여 대만(臺灣)에 당도하고, 거기서 또 하문(厦門)을 경유하여 복건(福建), 절강(浙江), 강남(江南), 산동(山東) 등 여러 성(省)들을 거쳐 북경(北京)에 도달하고, 요양(遼陽)을 경유하여 다음해인 정사년 윤6월에 서울에 돌아오니, 수륙(水陸) 만여 리를 거쳐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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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익이 아뢰기를,

“정월 초닷샛날 복건성(福建省)에 들어서니 문안에 법해사(法海寺)라는 절이 있었고 보리는 하마 누렇게 익었으며 귤과 유자(柚子)는 열매가 드리워 있고 의복과 음식이 우리나라와 비슷하였습니다. 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 앞 다투어 사탕수수를 던져 주었으며, 어떤 이는 머뭇거리고 아쉬워하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였고 어떤 이는 우리의 의복을 입어 보고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옷을 안고 돌아가 가족들에게 보여 주고 돌아와서는 ‘소중하게 감상하면서 가족들과 돌려 보았다’고도 말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살펴보건대, 장주(漳州)에는 신라현(新羅縣)이 있는데 당 나라 시대에 신라가 조공을 바칠 때 거쳤던 지역이었습니다. 또 “신라가 오(吳)ㆍ월(越)을 침범하여 그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泉州)와 장주 지역의 유속(遺俗)이 우리와 유사하다는 것은 족히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의복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아직도 고국을 그리는 마음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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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 제26권 / 물산지(物産志) 1

초류(草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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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人)

○ 인삼은 백제(百濟)의 것을 중하게 치는데, 형체가 가늘고 단단하며 희다. 기운과 맛은 상당(上黨)에서 나는 것보다 박(薄)하다. 다음으로는 고려의 것을 쓰는데, 고려는 바로 요동(遼東)으로, 형체가 크고 허(虛)하며 연(軟)하여 백제의 인삼만 못하다. 백제는 지금 고려에 신속(臣屬)되었는바, 고려에서 바치는 인삼에는 두 가지 종류가 겸해 있으니, 어느 것을 취에 쓰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쓰기에는 모두 상당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명의별록(名醫別錄) 주(注)》

○ 인삼은, 지금 쓰는 것은 모두 하북(河北)의 각장(榷場)에서 교역해 온 것인데, 이는 모두가 고려에서 나는 인삼으로, 대부분 허하고 연하며, 맛이 박하다. 그러므로 노주(潞州)나 상당(上黨)에서 나는 인삼이 맛이 후하고 몸체가 통통해서 쓰기에 근거가 있는 것만 못하다. 《본초연의(本草衍義)》

○ 인삼 중에 하북(河北)이나 민절(閩浙)에서 온 것을 신라삼(新羅蔘)이라 하는데, 모두 상당(上黨)에서 나는 인삼만 못하다. 《본초도경(本草圖經)》 ○ 양만리(楊萬里)의 ‘어떤 사람이 자단삼을 보내 준 데 대해 사례하다[謝人寄紫團蔘]’는 시에, “신라삼과 상당삼이 종(宗)과 지(枝)가 다른바, 두 명의 증삼이 있으니 시비를 가릴 수 있겠나.[新羅上黨各宗枝 有兩曾參果是非]”라 하였다.

○ 신라국에서 조공하는 인삼은 손과 발이 있어서, 모양이 마치 사람과 같으며, 길이는 1자 남짓 된다. 삼(杉) 나무를 양편에 대고 붉은 비단으로 쌌다. 《해약본초(海藥本草)》

○ 백제의 인삼은 희고 단단하면서도 둥근데, 이를 백조삼(白條蔘)이라고 하며, 속명(俗名)은 간각삼(芉角蔘)이다. 요동(遼東)의 인삼은 누렇고 윤택이 나며 가늘고 길면서 수염이 있는데, 속명으로는 황삼(黃蔘)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인삼은 자색에 가까운 빛이 나며 몸체가 허하다. 신라의 인삼은 옅은 황색이며 맛이 약한데, 사람 모습에 가까운 것이 신기한 효험이 있으며, 닭다리[鷄腿]와 같이 생긴 것이 효험이 크다. 《본초몽전(本草蒙荃)》

○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는 토산품으로 인삼을 진공(進貢)한다. 《신당서》

○ 고려 인삼의 줄기는 한줄기로 자라나며, 어느 지방에나 있는데, 춘주(春州)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또한 생삼(生蔘)과 숙삼(熟蔘) 두 종류가 있다. 생삼은 빛깔이 희고 허(虛)한데, 약에 넣으면 그 맛이 온전하다. 그러나 여름을 지나면 좀이 슬기 때문에, 오래 둘 수 있도록 쪄서 익힌 숙삼만 못하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숙삼의 모양새가 납작한 것은 고려 사람들이 돌로 삼을 눌러서 즙을 짜내고 삶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지금 물어보니, 그 때문이 아니라 삼을 찐 것을 뿌리를 포개어 다듬었기 때문이며, 인삼을 달이는 데에도 그에 따른 법이 있다. 《고려도경》

○ 소화급(邵化及)이 고려 왕을 위하여 약을 처방하고는 말하기를, “인삼은 아주 단단하여 도끼를 가지고 쪼개었는데, 향기가 온 전(殿)에 진동하였다.” 하였다. 《담원(談苑)》 ○ 살펴보건대, 《고려사》를 보면, 문종(文宗) 33년(1079)에 송나라에서 의관(醫官) 소화급(邵化及) 등을 파견하여 보내왔다고 하였는데, 소화급의 말은 과장된 것이다.

○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는 지금 모두 조선에 속하였는데, 그곳에서 나는 인삼을 중국으로 가지고 와 교역한다. 역시 씨앗을 거두어서 10월에 씨를 뿌리는데, 채소 씨 뿌리는 것과 같이 한다. 추동(秋冬)에 채취하는 것은 단단하고 실하며, 춘하(春夏)에 채취하는 것은 허하고 연한데,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서 허하고 실한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살펴보건대,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삼을 기르는 법이다. 그 방법은 한식(寒食)을 전후로 씨앗을 뿌리는데, 양지를 등지고 음지를 향한 깨끗한 지역의 단수(椴樹) 아래에 있는 오래 묵은 땅을 택해 뿌려서 인삼 뿌리[蔘根]를 기른다. 또 삼[麻] 줄기로 발을 짜서 그 위에다 덮어 소낙비와 따가운 햇볕을 가려 준다. 10월이 되면 모두 채취하여 땅을 파서 움집을 만든 다음, 그 안에다 삼을 놓고 그 위를 흙으로 두텁게 덮어 겨울의 추위를 막아 준다. 다음 해 청명절(淸明節)에 다시 꺼내어서 위에서 말한 법대로 심는다. 3, 4년이 지난 뒤에 씨앗을 맺는데, 크기가 뱀딸기[蛇苺]만 하다.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약에 넣는다.

○ 조선의 오엽삼(五葉蔘)은 바로 《본초강목》에서 말한 신라 인삼(新羅人蔘)이다. 《조선부 주》 ○ 《잠미집(蠶尾集)》에, “강희(康煕) 38년(1699, 숙종25)에 우성룡(于成龍)에게 인삼 1근(觔)을 하사하였다.” 하였다.

○ 조선의 인삼은, 조선의 북쪽 달단(韃靼)의 남쪽 경계 지점에 큰 산이 있어서 이름을 백두산(白頭山)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인삼이 최상품이다. 그 잎과 꽃은 일본의 인삼과 서로 비슷하나, 열매가 달라서 처음에는 푸르다가 익으면 붉게 되며, 둥글어서 남천(南天) 열매와 같다. 그 뿌리는 호나복(胡蘿葍)과 비슷한데 백색이다. 감초(甘草)의 즙으로 쪄서 말린 것이 황색이 나면서 맛이 진하다. 머리 부분에 가로무늬가 있으며, 몸체가 무겁고 실하면서 중간 부분에 황색이 도는 것이 상품(上品)이며, 여러 해 묵은 것이 더욱 좋다.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은 1백 근 가운데 한두 뿌리가 있는데, 이것이 비록 신묘한 효험이 있다고는 하나 아주 좋지는 않다. 함경도 지방에서 나는 것으로 윤기가 흐르고 흰색이 나면서 투명한 것이 최상품이다.

○ 조선의 인삼 가운데 가짜는 모두 더덕[沙蔘], 잔디[薺苨], 도라지[桔梗]의 뿌리로 인삼을 만든다. 근래에는 인삼의 즙을 먼저 짜내어서 자신이 마시고, 햇볕에 말려 다시 팔아먹는다. 그것을 일러 위삼(渭蔘)이라고 하는데, 약재로 쓸 수가 없다. 《이상 모두 화한삼재도회》

살펴보건대, 위삼(渭蔘)이라는 것은 바로 강삼(江蔘)이다. 우리나라의 삼 가운데 오직 강계(江界)의 숙삼(熟蔘)이 좋은데, 숙삼을 만드는 법은, 인삼을 채취해서 솥에다 넣고 찐 다음 햇볕에 말려 약에 넣는다. 《고려도경》에서 이른 바 “고려의 숙삼은 좀이 스는 것을 피할 수 있어서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품질이 가장 좋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다고만 듣고 그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히 모르고서, 이에 “즙을 짜서 스스로 마셔서 약재로 쓸 수가 없다.”고 하니, 참으로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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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D008] 달단(韃靼) :

Tataru의 음역으로, 중국 명나라 때 몽고의 부족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내몽고 일대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