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단산 남으로 보이는 게 신주라네 / 白檀南望是神州
2022. 10. 13. 21:10ㆍ북경 추정
연행기 제2권 / 열하에서 원명원까지[起熱河至圓明園] ○ 경술년(1790, 정조 14) 7월[16일-26일]
22일(경자) [DCI]ITKC_BT_1420A_0020_010_0070_2004_005_XML DCI복사 URL복사 맑음. 황토령(黃土嶺), 청석령(靑石嶺)을 넘어 양간방(兩間房)에서 밥을 지어 먹고, 조하(潮河)를 건너 북구(北口)의 조하천 영성(潮河川營城)에서 잤다. 이날은 80리를 갔다. 상산욕(常山峪)에서 서남으로 5리를 가면 황토량자(黃土梁子)가 있고, 칠구(七溝)에도 황토량자가 있는데, ‘황토량자라는 것은 북쪽 지방에서 재의 등성마루를 통칭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이가 있다. 고개 아래에 연대(煙臺)와 발신(撥汛)이 있는데 지명을 마권자(馬圈子)라 한다. 마권자라는 땅 이름이 모두 세 번이나 보이는데, 또한 발신(撥汛)의 통칭이 아닌가 의심된다. 황석량자(黃石梁子)에서 서남으로 7리를 가면 청석령이다. 돌을 뚫어서 길을 내었는데 험준하기가 광인령(廣仁嶺)보다 더하다. 청석령에서 서남으로 18리를 가면 연대와 발신이 있는데 지명을 ‘삼간방(三間房)’이라고 한다. 삼간방에서 서남으로 10리를 가면 행궁(行宮)과 사냥터[獵囿]가 있는데, 지명은 ‘양간방(兩間房)’이다. 양간방에서 서남으로 20리를 가면 연대와 발신이 있는데 지명을 ‘마권자(馬圈子)’라고 한다. 마권자에서 서남으로 12리를 가면 ‘파극습영(巴克什營)’인데, 여기에도 행궁이 있다. 파극습영에서 서남으로 8리를 가면 고북구(古北口)의 조하천 영성(潮河川營城)이 있다. 서북으로 조하(潮河)와의 거리는 겨우 100여 보(步)인데 하수를 끊어 작교(柞橋)를 만들어 북문협(北門夾) 사이로 통한다. 동쪽과 서쪽은 모두 사릉산록(四稜山麓)으로, 진(秦) 나라 때 쌓은 장성(長城)이 언덕 등성마루에 구불구불 둘러 있고, 명 나라 때의 적대(敵臺)는 봉우리 정상에 별처럼 벌여 있다. 기세가 웅장하고 경치도 장관이어서 실로 남북의 큰 방위선(防衛線)이요, 화이(華夷)의 큰 경계이다. 관내(關內)에는 여정(閭井)이 즐비하여 번화함이 평천(平泉), 의주(義州)에 버금간다. 양간방에서부터 서남으로는 산록(山麓)이 점점 낮아지고 점차로 평야가 열리다가 산이 다시 합치면서 들은 다시 없어진다. 무릇 다섯 번이나 그렇게 되풀이한 연후에야 비로소 고북구(古北口)가 되었다. 조하영(潮河營)에서 바깥쪽은 난평부(灤平府)의 경계에 속하고, 안쪽은 밀운현(密雲縣) 경계에 속한다. 조하천영(潮河川營)은, 명 나라 때에는 조하천 수어천호소(潮河川守禦千戶所)를 두었고, 청 나라에서는 조하천 파총(潮河川把摠)을 설치해서 주둔하여 수비하게 하였다. 성의 둘레는 6리인데 6개의 관문(關門)이 있다....직례총독(直隷總督)의 절제를 받는다. ......... 조하(潮河)는 근원이 고북구의 서북 300리에 있는 곽가둔(郭家屯)의 서쪽, 고개평(古開平) 남쪽 경계에서 나오는데, 서쪽으로 난하(灤河)의 근원과의 거리가 겨우 수십 리에 불과하다. 《수경(水經)》의 주(註)에서 이른바, ‘포구수(鮑邱水)가 어이(禦夷)의 북쪽 새중(塞中)에서 나온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동남쪽으로 흘러가서 산욕(山峪) 사이를 지나, 고북구에서부터 서쪽으로 흘러 밀운현계(密雲縣界)에 들어가서는 서남쪽으로 꺾어진다. 현치(縣治)의 서남에 이르러 백하(白河)와 모이는데, 수세가 사납고 급하여 물소리가 조수(潮水)가 들어오는 것 같다. 정림(亭林) 고염무(顧炎武)가 말하기를, “고북구(古北口)의 북쪽 3리 지점이 조하천이니, 수어천호(守禦千戶)가 있는 곳으로 관(關)이 있다. 《원사(元史)》에 ‘중통(中統) 2년(1261, 고려 원종)에 황제가 친히 여러 만호(萬戶) 및 한군(漢軍)과 무위군(武衛軍)을 거느리고 단순주(檀順州)를 거쳐 조하천에 주둔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라고 하였다. 조하는 새외(塞外) 흥주(興州)에서 발원, 고북구에 들어와서 서남으로 밀운(密雲), 회유(懷柔)를 거쳐 우란산(牛欄山)에 이르러 백하(白河)와 합류한다. ......... 조하천영(潮河川營) 성에 올라가 시(詩)를 지었다. 수레는 더디고 사막엔 가을인데 / 車馬逶遲大漠秋 백단산 남으로 보이는 게 신주라네 / 白檀南望是神州 연경 운수는 하늘 끝에 닿았고 / 燕雲樹色連天盡 선대하 물소리는 관새로 사라져 가네 / 宣大河聲入塞流 지난날의 가을 산과 봄물의 감회 / 異代秋山春水感 몇이나 진 나라 달 한 나라 관에서 시름했던고 / 幾人奏月漢關愁 변성의 아녀자들 무정한 마음 / 邊城兒女無情緖 가득히 생화 꽂고 포루로 올라오네 / 滿揷生花上砲樓 또 한 수는, 산 따라 쌓은 성첩 형세도 웅장한데 / 緣山古堞勢猶雄 하늘이 겹 관을 만들어 길이 한 없네 / 天作重關路不窮 열하의 천 리 변을 지나 / 行過熱河千里塞 석양에 다시 명대에 오르네 / 明臺復上夕陽中 그리고 또 한 수는 이렇다. 사릉산 아래 조하가 달리는데 / 四稜山下走潮河 사신 길 추풍에 변방에 와 노래하네 / 漢節秋風出塞歌 관방은 고북을 제일로 치는데 / 第一關防稱古北 묻노니 척공의 방략 어떠했던가 / 戚公方略問如何 [주-C001] 원명원(圓明園) : 북경의 서직문(西直門)의 동산으로 청 나라 세조(世祖)가 번저(藩邸)에 있을 때에 하사된 것이다. 옹정(雍正) 이래로 매년 초봄에 여기에서 청정(聽政)하는 것을 상례로 하였다. 함풍(咸豐) 때에 영불연합군(英佛聯合軍)에 의하여 불에 탔다. 『中國古今地名大辭典』 白檀山本文在京兆密雲縣南二十里。與懷柔縣接界。舊説白檀縣以此名。按密雲之白檀縣爲後魏置。山當以縣得名。漢白檀縣在盧龍塞外。塞外當別有白檀山。漢李廣弭節白檀。又曹操伐烏桓。田疇請從盧龍口越白檀之險。掩其不備。皆指塞外之白檀山而言。不能認爲密雲之白檀也。 密雲縣本文秦漁陽郡治。後魏置密雲縣。唐於縣置檀州。改曰密雲郡。元廢縣入檀州。明改州爲密雲縣。清屬順天府。今屬京兆尹。縣踞潮河白河會口之東北。爲京熱大道之咽喉。北近長城。與蒙古交易頗盛。⦿遼置。尋改爲慶雲。故治在今奉天開原縣西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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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맑고 바람이 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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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가 모두 새벽에 일어나 노구(盧溝)로 행차하였다. 여러 반당(伴倘)이 함께 따라갔다. 노구는 황성(皇城)에서 40리 떨어져 있었다. 노룡새(盧龍塞)가 끝나는 곳으로 노구의 물은 흘러서 혼하(渾河)로 들어간다.
상건하교(桑乾河橋) 남쪽에 이르니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 서쪽으로는 섬서성으로 내달리는데 태항산(太行山)이 그 서쪽에 있고, 남쪽으로는 강남의 여러 성으로 내달으니 이곳은 천하의 도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