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2. 18:31ㆍ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낭주(朗州)
이칭
월내군(月奈郡), 영암군(靈巖郡), 낭주안남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
분야
인문지리
유형
시대
고려
성격
고지명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옛 지명.
내용
백제의 월내군(月奈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영암군으로 고쳤고, 영현으로 고안현(固安縣)이 있었으며 무주(武州)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낭주안남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로 하였고, 1018년(현종 9)영암지군사(靈巖知郡事)로 고쳐
황원군(黃原郡)ㆍ도강군(道康郡)과 곤미현(昆湄縣)ㆍ해남현(海南縣)ㆍ죽산현(竹山縣)을 관할하였다.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 1359년(공민왕 8) 전라남도 완도의 보길도(甫吉島)와 제주의 추자도(楸子島) 등지에서
전투가 있었다.
문곡집 제26권 / 기(記) 8수
안용당 기문〔安用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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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夏山) 조 중선(曺仲宣) 어른은 본래 세록(世祿)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친을 모시고 낭주(朗州 전라도 영암)의
구림촌(鳩林村)으로 옮겨 와 살았다. 마을이 월출산(月出山) 아래에 자리를 잡았으니, 호수와 바다
그리고 숲과 동산의 아름다움은 남쪽 지방의 으뜸으로, 조씨 어른의 거처는 마을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서 그윽하고깊으며
정갈한 풍취가 있다.
집 곁에는 비탈진 밭, 나지막한 지대가 많아 그 이익을 거두어 복랍(伏臘)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으며, 고기 잡는 포구와는
거리가 백 걸음도 안 될 만큼 가깝기에 날마다 그물을 쳐서 살진 물고기들을 잡아 조석(朝夕)의 반찬을 이어 갈 수 있다.
좌우에는 귤과유자, 석류, 매화, 살구나무 등을 심었으니, 이어진 가지들이 교차하여 그늘을 이루고꽃과 열매들이 환히 빛나
기이한 구경거리에 이바지하고 열매를 실컷 저장할 수 있다.
집 왼쪽에 터를 열어 당(堂)을 지었는데, 시원한 마루와 따뜻한 방은 사시의 절기에 맞추는 데 적합하다. 당의 앞뒤로는
돌을 쌓고 화초와 대를 줄짓게 하였으며, 연못을 파고 부들과 연꽃을 심었다. 지팡이를 짚고 그 사이를 거닐자면,
사계절 물태(物態)가 변하는 걸 보며 눈과 귀의 즐거움에 이바지할 수 있다. 게다가 손님이 오면 친소(親疎)를가리지 않고
반드시 고기를 썰어 술안주 삼아 기쁘게 마주하여, 술독이 비워지지 않으면 그만두질 않았다.
그러다가 흥이 나면 문득 누렁이를 이끌고 매를 날리면서, 노복으로 하여금 가죽 부대하나를 지니게 하고는
평원과 큰 산기슭 사이를 마음대로 노닐며 꿩과 토끼 쫓는 것을즐거움으로 삼았다. 이따금 대나무로 만든 가마나
작은 배를 타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 곳이 산속의 절 아니면 호숫가의 정자로, 또한 괴로움을 흩어 버리고
답답함을 펼칠수 있었으니 죽을 때까지 싫증내지 않았다. 비록 반곡(盤谷)에 부족함이 없었다한들,어찌 이곳보다 나았으랴.
존재집 제21권 / 기(記)
소호정 서호원 기〔蘇湖亭 徐祜遠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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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주(朗州 영암)의 서호(西湖)는 월출산(月出山)과 나란히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지역내 명소이다.
옛사람들이 그곳을 ‘서호’라고 부른 까닭은 중국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서호를 본떠 그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니
뛰어난 풍경을 알 만하다. 대개 월출산과흑석산(黑石山) 두 큰 산의 여러 골짜기 물이 큰물을 이뤄
서쪽으로 내달려 바닷물을만나 웅덩이가 호수를 이루었으니, 평평한 물결은 마치 하얀 비단을 펼친 듯하다.
둘레가 또 100리인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만 겹의 안개와 꽃들이 호수 가운데에서 빛난다.
멀리 금성(錦城 나주)과 서석산(瑞石山)의 빼어난 경관까지 보이니, 항주의 서호가과연 이처럼 빼어난 경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땅에 연꽃과 계수나무가 없다고 하여 소홀히 봐서야 되겠는가.
고(故) 생원(生員) 서공(徐公)은 가장 빼어난 터를 골라 정자를 짓고 그의 형 부사공(府使公)과 함께 시를 읊조리고
물고기를 잡으며 노년을 즐겼다. 당시 저명했던 분들인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와 동악(東嶽 이안눌(李安訥))이
모두 이곳의 경치를 시로 읊어 찬미하였다. 무릇 천지간에 좋아할 만한 것은 물인데 어느 곳인들 물이 없겠는가마는,
물은 절로 뛰어난 풍경이 되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야만 뛰어난 풍경이 된다.
항주의 서호는 임 화정(林和靖) 때문이요,구주(衢州)의 동강(桐江)은 엄자릉(嚴子陵) 때문이며,
주(周)나라의 반계(磻溪)는 강자아(姜子牙) 때문이다. 그 나머지 굽은 시내, 작은냇물조차 큰 인물인가 작은 인물인가에
따라 명성이 더불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데 거의 천백을 헤아릴 만큼 많다.
그런데 유독 서호는 임안(臨安)이라는 황제의 도성 옆에 자리해 명망 있는 선비들에게 경치가 뛰어난 곳이라고 칭송받았다.
또매화주인(梅花主人)의 차지가 되어 인물이 호수와 더불어 고금 천하에 하나가 되었다.
만일 이 영암 서호를 항주 서호에 가져다 놓는다면 땅이 바뀌면 다 그렇게 된다는 정도에 그칠 뿐이겠는가.
이곳이 호수가 된 것은 아마 4만 년 정도 되었을 터인데,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것이
어찌 서호의 아름다움이 저 항주의 서호만 못해서이겠는가. 서공이 차지하고 그정자에 이름을 붙일 적에
마침내 ‘소호’라고 이름 짓고, 스스로 ‘소호주인’이라고 호를 지었다. 이때부터 나라 안에 서호라는 이름이 알려져
소주의 호수와 서로 견주곤 하였다. 고문(古文)에서 서호를 본 사람은, 이곳에 이르러야 진정 서호의 모습을 알 수 있을것이다.
서공의 정자에 오르면 여기서 주인의 풍모를 만날 수 있으니, 이 호수가 과연 소주의호수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호수가 과연 소주의 호수인지, 아니면 이 호수를 소주의 호수처럼 여겨서 소호라고 이름 붙인 사람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정자가 세월이 오래되어 무너져 황량한 누대에 무성한 풀로 덮여 있지만
지나는 사람이 끝내 그 호수를 보지 않고도 주인에 대해 일컫고 있으니, 호수의뛰어난 풍경이란 물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해동역사 제45권 / 예문지(藝文志) 4 ○ 경적(經籍) 4
중국 서목(中國書目) 2 동국기사(東國記事)
…………………..
그리고 고려의 속군(屬郡) 가운데 강주(康州)가 있는데, 이 지역은 고려에서 남쪽으로 5천 리 되는 곳에 있는바,
중국의 명주(明州)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강주의 인근 군은무주(武州)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귤이 생산되는바,
그 기후로 말하면 여요(餘姚)와아주 비슷하다. 그러니 고려는 명주와 비스듬하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으로,
대개중국과 고려는 서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서 서북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는 것이다.
《연번로속집(演蘩露續集)》……
.[주-D008] 여요(餘姚) :
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현(縣) 이름이다.
[주-D027] 청성(靑城)의 화(禍) :
송나라 휘종(徽宗)과 흠종(欽宗) 두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것을 말한다.
청성은 송나라 재궁(齋宮)의 이름으로, 이곳에서 두 황제가 금나라에 항복하였다.
[주-D028] 영우(永祐) :
송나라 휘종(徽宗)의 능호(陵號)로,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에 있다. 여기서는 휘종을 가리킨다.
[주-D029] 건염(建炎) …… 하였으니 :
송나라의 휘종과 흠종 두 황제가 거란에 포로로 잡혀가 있자,
건염 2년에 양응성(楊應誠)이 “고려에서 여진까지는 길이 매우 가까우니, 신
이 삼한에 사신으로 가서 계림과 우호를 맺어 두 분 황제를 영접해 오겠습니다.”는 내용으로
상언하고 고려에 사신으로 갔으나, 실패하였다.《宋史 卷487 高麗列傳》
[주-D030] 임안(臨安) :
절강성의 항주(杭州)로, 송나라 고종(高宗)이 남도(南渡)하였을 때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주-D031] 사명(四明) :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산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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