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 너비가 20여 리나 되는 데다 강물 색깔이 칠흑 같았는데, 물고기와 강가의 짐승들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2022. 10. 28. 17:48백두산

러시아〔車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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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우후(北虞候) 신류의 《차한기략》에 말하였다.

“차한(車漢)은 나선(羅禪)이다. 이전에 왈개(曰介), 개부락(介夫落), 퍅개(愎介) 세 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자 청나라가 죄를 물으려 하니 세 나라가 ‘차한의 침략을 받아 난리를 구제하기에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청나라가 이에 해마다 군대를 내어 차한을 토벌하였으나 번번이 패하였다.

효종 5년 갑오년(1654)에 청나라가 우리나라에 군사를 요구하였다. 우리나라는 북우후 변급에게 총수(銃手) 100명과 기수(旗手)와 고수(鼓手) 48명을 거느리고 후통강에 나아가 싸우게 했는데, 적 중 많은 수가 총탄에 맞아 죽었으나 변급은 군대를 보전하여 돌아왔다. 효종 9년 무술년(1658)에 청이 또 군사를 요구하자, 신류가 혜산 첨사(惠山僉使)에서 북우후로 옮겨 임명되어 북쪽 변경의 총수 200명과 표하(標下), 기수(旗手), 고수(鼓手), 화정(火丁) 60명을 뽑아 3개월의 군량을 가지고 갔다. 이해 3월 1일에 두만강을 건너 19일에 영고탑에 도달하고 6월 10일에 흑룡강에 이르렀다. 강은 너비가 20여 리나 되는 데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강물 색깔이 칠흑 같았는데, 물고기와 강가의 짐승들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적은 흑룡강 하류에서 왔는데 그들의 배는 모두 자작나무 껍질을 겹씌운 것이었다. 우리나라 부장(部將) 배시황(裵是鎤)과 유응천(劉應天) 등이 적선에 불화살을 쏘아 붙이자 일시에 불이 번져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적은 키가 10척이나 되고 깊숙한 눈에 머리카락이 붉었으며 드리운 수염이 어깨를 덮었다. 그들의 화포는 도화선을 쓰지 않고 산호석(珊瑚石)을 화문(火門)에 붙여 놓고, 또 용두(龍頭)의 위에 금수를 달아 놓아서 용두를 떨구면 불이 일어나 탄환이 발사되었다. 그 배의 쇠닻은 열 명이서도 들어 올릴 수 없었는데, 포로로 잡은 적은 마치 지푸라기를 집듯 한 번에 들어 올렸다. 우리 군대는 전사자가 8명이고 부상자도 몇 명 있었다.

7월 10일에 승전보를 올리고 회군하여 9월 27일에 영고탑에 이르렀다. 청나라 장수가 배시황을 초청해 자기 집으로 가서 세 아내를 보였는데, 세 아내는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려 예를 하고서 나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차려 대접했다. 11월 18일에 영고탑을 떠나 12월 15일에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다음 해 청나라는 전사자의 집에는 은 30냥씩, 부상자 25인에게는 은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조선으로 돌아오는 사신 편에 부쳐 보냈다.”

《청일통지》에 말하였다.

“흑룡강에는 국초에 색륜과 타호이(打虎爾) 두 부족이 있었는데 결국 태종 문황제에게 복속했다. 악라사(鄂羅斯 러시아) 사람 나찰(羅刹)이 아극살 지역에 성을 쌓고 색륜과 타호이를 침략하였으므로, 강희 22년(1683)에 장군과 부도통(副都統)을 두어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 25년에 나찰을 쳐서 그 성을 함락하였고, 28년에 격이필제하에 대신을 보내 강가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

살펴보건대 신류가 기록한 “차한은 나선이다.”라고 한 것은 나찰을 가리킨 듯하고, 왈개, 개부락, 퍅개 부류는 색륜과 타호이인 듯하다. 우리 효종 9년(1658)은 청나라 순치 15년이다. 생각건대 그 당시 나찰이 흑룡강 지역을 침범하여 괴롭히자 청의 요청으로 군대를 징발하여 토벌한 사건이 있었고, 강희 연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평정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흑룡강까지 가서 악라사와 싸운 것 또한 초유의 일이었다.

[-D001] 신류(申瀏) : 

1619~1680. 1656년 혜산진 첨절제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함경북도 병마우후가 되었다. 1658년 나선 정벌에 참가하였고 저서로 이때의 일을 기록한 《북정일기(北征日記)》가 있다.

[-D002] 차한기략(車漢記略) : 

‘차한기(車漢記)’ 또는 ‘차한기략(車漢記略)’이라는 제목의 책은 확인되지 않는다. 차한(車漢)은 악라사(鄂羅斯), 나선(羅禪), 아라사(俄羅斯) 등과 함께 러시아를 가리키는 말인데, 유득공이 러시아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로 인용한 것인지, 직접 열람한 책의 이름을 쓴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같은 내용이 《성호사설》 권8 〈차한일기(車漢日記)〉에 보인다.

[-D003] 변급() : 

조선 효종 때의 무관으로, 나선 정벌 때의 지휘관이다. 1654년 함경도 병마우후로 있다가 나선 정벌에 출전, 영고탑에서 청군과 합류하여 흑룡강에 이르러 러시아군을 맞아 큰 전과를 올리고 개선하였다.

[-D004] 후통강(厚通江) : 

지금의 송화강이다.

[-D005] 금수(金燧) : 

화경(火鏡)의 일종으로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도구이다.

[-D006] 색륜(索倫) : 

남방 퉁구스족의 일파로 아무르강의 남방에 분포한다.

[-D007]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 : 

재위 1636~1643. 청나라 제2대 황제로, 청 태조의 여덟째 아들이다.

[-D008] 아극살(雅克薩) : 

지금의 러시아 알바진 지역, 흑룡강 유역이다.

[-D009] 격이필제하(格爾必齊河) : 

흑룡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오륜목하(烏倫穆河) 부근의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