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융진이 있던 幽州-요순의 땅

2022. 9. 10. 20:11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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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8 / ()○재필록(載筆錄) 

종성을 떠나 경원으로 순시하러  때에 경원 백과 고이도에서 사냥하기로 약속하였다〔發鍾城巡向慶源時 與慶源伯約古珥島大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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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땅의 밥 짓는 연기가 지척에 피어오르니 / 夷界炊煙隔手浮
훈융진 성곽 둘러친 곳이 바로 유주로다 / 訓戎城郭是幽州
종산 땅 광활하니 준마(駿馬)가 기뻐하고 / 鍾山地闊驊騮喜
고이도에 깃발 펄럭이니 호표가 시름겹네 / 珥島旗翻虎豹愁
방패 손잡이에  아니 갈면서 괜스레 시만 곱고 / 楯鼻未磨空麗什
누란은 베지도 못한  오구만 차고 있누나 / 樓蘭不斬尙吳鉤
태평한 시절에 관방의 형편을 살피려 함이요 / 時平欲閱關防勢
〈상림곡〉 곡조 속에 노닐려는 게 아니라오 / 非爲常林曲裏遊

[-D001] 고이도(古珥島) :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 치소 동쪽 두만강 위에 있는 섬이다.

[-D002] 훈융진(訓戎鎭) …… 유주(幽州)로다 : 

훈융진은 경원도호부에 속한 진보(鎭堡)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부(府)의 북쪽 28리에 있다.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3242자, 높이 8자이다. 안에 우물 다섯이 있다. 병마첨절제사영(兵馬僉節制使營)이 있다. 첨절제사(僉節制使)는 1명이다.”라고 하였다. 유주는 중국의 동북 지방을 가리킨다. 《주례(周禮)》 〈하관사마(夏官司馬)〉 직방씨(職方氏)에 “동북 지방을 유주라고 한다.[東北曰幽州.]”라고 하였다. 경원이 중국의 동북쪽에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D003] 종산(鍾山) : 

종성(鍾城)을 가리킨다.

[-D004] 방패 …… 곱고 : 

문인(文人)으로서 종군하여 격문(檄文)은 짓지 아니하고 시만 짓고 있다는 의미이다. 남북조(南北朝) 때 순제(荀濟)가 양 무제(梁武帝)가 즉위하기 전 포의(布衣)의 벗으로 사귀다가 양 무제가 즉위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내가 방패 손잡이[楯鼻]에 먹을 갈아 격문을 지어 그를 성토(聲討)해야겠다.”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北史 卷83 荀濟列傳》

[-D005] 누란(樓蘭) …… 있누나 : 

칼은 차고 있으나 적장(敵將)을 베는 공은 세우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누란은 서역 지방에 있는 나라 이름이다.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누란의 왕이 한나라에 복종하지 않고 대완국(大宛國)으로 가는 한나라의 사신을 자주 죽이자, 부개자(傅介子)가 사신으로 가서 누란의 왕을 죽여 큰 공을 세웠다. 《漢書 卷70 傅介子傳》 오구(吳鉤)는 갈고리 모양의 휜 칼로, 춘추 시대 오(吳)나라 사람이 잘 만들었기 때문에 오구라고 일컫는데, 뒤에는 예리한 검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D006] 상림곡(常林曲) : 

악부(樂府) 서곡가(西曲歌)의 일종인 〈상림환(常林歡)〉을 가리키는 듯하나, 자세한 것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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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8 / ()○재필록(載筆錄) 

우암의 봉수대에 오르다〔登牛巖烽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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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연기 여기서부터 도성에 다다르니 / 烽煙肇此達京師
평온함을 알릴 때면 사시에 올리도다 / 每報平安準巳時
흉금을 시원히 걷고 우주를 마주하고 / 豁達披襟當宇宙
올라가서 마음껏 화이 경계 굽어본다 / 登臨恣意瞰華夷
요 임금 땅은 바다에 들어 쓸쓸히 끝나는데 / 堯封入海荒荒盡
소금 실은 오랑캐 배는 하나하나 알겠어라 / 虜舶輸鹽箇箇知
꼭대기서 휘파람 불어도 비 아니 내리거니 / 絶頂嘯歌天不雨
전생에는 아마도 안기생이었으리라 / 前身堪許是安期

종자(從者)가 “여기가 바로 신선이 노닐던 곳인데, 올라와 구경하는 사람은 왕왕 뇌우(雷雨)를 만납니다.”라고 하였다.

[-D001] 안기생(安期生) : 

신선의 이름이다. 일찍이 하상 장인(河上丈人)을 따라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설을 배우고 동해(東海) 가에서 약을 팔았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동쪽을 순시할 때 그와 더불어 사흘 밤낮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뒤에 진 시황이 사신을 파견하여 바다로 가서 그를 찾아보게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12 孝武本紀》

 

 고전번역서 경세유표 경세유표 제10권 지관 수제 최종정보

………………

하관(夏官) 직방씨(職方氏)에 “동남(東南)쪽은 양주(楊州)이니 그 진산(鎭山)은 회계(會稽)이고 그 택수(澤藪)는 구구(具區)이며 그 내[川]는 삼강(三江)이고 그 큰 못은 오호(五湖)이며 그 생리(生利)는 금ㆍ주석(錫)ㆍ댓살(竹箭)이다. 정남(正南) 쪽은 형주(荊州)이니 진산은 형산(荊山)이고 그 택수는 운몽(雲夢)이며 냇물은 강ㆍ한(江漢)이고 큰 못은 영ㆍ담(潁湛)이며 그 생리는 단은(丹銀), 짐승 이빨, 가죽이다. 하수(河水) 남쪽은 예주(豫州)이니 그 진산은 화산(華山)이고 그 택수는 포전(圃田)이며 냇물은 형ㆍ락(滎雒)이고 그 큰 못은 파차(波溠)이며 그 생리는 목재(木材), 옻(漆), 명주 실, 숫삼이다.

정동(正東) 쪽은 청주(靑州)이니 진산은 기산(沂山)이고 그 택수는 망저(望諸)이며 그 냇물은 회사(淮泗)이고 그 큰 못은 기목(沂沐)이며 그 생리는 갈대와 생선이다. 하수(河水) 동쪽은 연주(兗州)이니 그 진산은 대산(岱山)이고 택수는 대야(大野)이며 냇물은 하제(河泲)이고 그 큰 못은 여유(盧維)이며 그 생리는 부들[蒲]과 갈대와 생선이다. 정서(正西) 쪽은 옹주(雍州)이니 그 진산은 악산(嶽山)이고 택수는 현포(弦蒲)이며 냇물은 경예(涇汭)이고 큰 못은 위낙(渭洛)이며 그 생리는 옥석(玉石)이다.

동북(東北) 쪽은 유주(幽州)이니 그 진산은 의무려산(醫巫閭山)이고 택수는 해양(貕養)이며 그 냇물은 하제(河泲)이고 큰 못은 치시(菑時)이며 그 생리는 생선과 소금이다. 하수 안쪽은 기주(冀州)이니 그 진산은 곽산(藿山)이고 택수는 양우(楊紆)이며 냇물은 장(漳)이고 큰 못은 분로(汾潞)이며 그 생리는 송백(松栢)이다. 정북 쪽은 병주(幷州)이니 그 진산은 항산(恒山)이고 택수는 소여기(昭餘祁)이며 그 냇물은 호지구이(虖池嘔夷)이고 큰 못은 칠역(漆易)이며 그 생리는 포백(布帛)이다.” 하였다(《이아》에 기록된 것과 많이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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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8 / ()○재필록(載筆錄) 

무산령〔茂山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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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고 겹겹한 봉우리가 대지를 진압하여 / 蒼蒼複嶺壓坤維
천 리를 달려와서 석막의 한 가지 되었네 / 千里騰來石幕枝
용호가 서린 곳은 소나무가 보호하고 / 龍虎屈盤松櫪護
화이를 나눈 경계는 귀신들이 유지하네 / 華夷刻畫鬼神持
삼산의 아득한 길을 어느 해에 만들었나 / 何年路刱三山遠
사월인데도 큰 골짝엔 눈 더디 녹는구나 / 四月氷消巨壑遲
우스워라 서생의 환란 대비 계책이여 / 可笑書生陰雨策
관방(關防)을 만날 때마다 생각을 골똘히 하네 / 每逢關阨費尋思

삼산(三山)은 바로 무산(茂山)의 다른 이름이다. 무산에 새로 읍(邑)을 설치하였는데, 길이 이 고개의 왼쪽으로 나 있으므로 다섯 번째 구절에서 언급한 것이다.

[-D001] 무산령(茂山嶺) : 

회령(會寧)과 부령(富寧)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D002] 석막(石幕) : 

부령의 옛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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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8 / ()○재필록(載筆錄) 

봄이 끝났는데도 무산 이북에는 빙설이 한창이었다부령을 지나며 길가에 꽃이  것을 문득 보고  위에서 느낀 바를 읊었다이날은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春盡 而茂山以北氷雪崢嶸 過富寧 忽見路傍花發 馬上感吟 是日卽余初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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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희고 느릅은 말라 삭기에 움츠리니 / 草白楡枯朔氣嚬
육주에는 봄 다하도록 봄이 아니로다 / 六州春盡不成春
두견화는 홀연 어느 산의 빛을 보내는가 / 鵑花忽送何山色
말 머리에서 고향 사람을 상봉한 듯하여라 / 馬首如逢故國人
화이(華夷)의 풍기가 정녕 자별함을 알겠거니 / 夷夏定知風氣別
번화한 시절 이미 늦어 서울서 보던 풍경이네 / 繁華已晩洛城看
왕명 받든 여정이라 칼머리 생각 않건마는 / 王程不作刀頭念
생일이라 부모님 그리워서 마음이 상하누나 / 生日思親欲損神

[-D001] 나의 생일이었다 : 

번암의 생일은 4월 6일이다.

[-D002] 육주(六州) : 

세종 때 여진족(女眞族)이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김종서(金宗瑞)를 시켜서 두만강 가에 설치한 여섯 진으로, 경원(慶源), 경흥(慶興), 부령(富寧), 온성(穩城), 종성(鍾城), 회령(會寧)이다.

[-D003] 번화한 …… 풍경이네 : 

번암이 서울을 떠날 때 보았던 봄 풍경을 부령에서는 4월에야 비로소 보게 된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D004] 칼머리 생각 않건마는 :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칼머리[刀頭]는 칼머리에 달린 고리를 지칭한 것으로, 환(還) 자의 은어(隱語)로 쓰여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