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4. 00:34ㆍ대륙조선 일반
국역비변사등록 12책 > 인조 26년 윤3월 > 順陵의 石物을 옛날대로 수리해 고치는 일에 대한 備邊司의 啓(1648-03-01(윤))
기사제목 | 順陵의 石物을 옛날대로 수리해 고치는 일에 대한 備邊司의 啓 |
연월일 | 인조 26년 1648년 윤03월01일(음) |
아뢰기를
"순릉(順陵) 수개도감(修改都監)의 계사에 '순릉의 혼유석(魂遊石) 및 무석(武石) 2좌(坐)와 문석(文石) 1좌는 전일 왕명을 받들어 살필 때 다시 마련할 것을 재가하셨습니다. 석물(石物)을 새로 세울 길일(吉日)을 4월 20일 사시(巳時 : 오전 9시~11시)로 결정하였으니, 중흥동(中興洞)에서 돌을 뜨는 공사를 새달 초순에는 시작해야 합니다. 공장(工匠)의 요포(料布) 및 역군(役軍)의 고가(雇價) 등은 비록 이미 재결하였을지라도, 이 밖의 석돌 4좌를 운반할 역군은 자그마치 2천 5백여 명이나 되어야 하며 설마(雪馬 : 썰매)와 칡줄 등 들어가야 할 여러 도구에도 반드시 많은 민력(民力)이 필요합니다. 묘당으로 하여금 미리 의논해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셨습니다.
순릉에 돌을 세울 길일을 4월 20일로 결정하였으면 돌을 뜨는 공사는 마땅히 이달 초순에 시작해야 하며, 공장의 요포와 역군의 고가는 지금 굳이 일일이 논할 것은 없더라도 석물을 운반할 역군은 마땅히 2천 5백여 명이 3, 4일을 소비해야 달성할 수 있다 합니다. 그윽히 듣건대 각릉(各陵)의 유의석물(幽儀石物)은 크기가 달라 경릉(敬陵)의 경우 혼유석의 길이는 8자 2치요 순릉은 길이가 9자이며, 또 선릉(宣陵)의 마석(馬石) 1좌는 턱이 깨진 곳을 유회(油灰)로 붙여서 지금까지 그대로 두었다 합니다. 이는 아마도 대란(大亂)을 겨우 평정한 뒤라 이러한 구차스런 일이 있었던 것이니 조종조(祖宗朝)의 깊은 뜻은 진정 우연이 아닙니다. 수리하여 고치는 지금의 이 역사(役事)는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되나, 재해(災害)의 참혹함은 난리를 치른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반드시 시의(時宜)를 참작하여 실정과 형식이 모두 갖추어진 뒤에야, 위로는 굽어 살피는 영(靈)을 위로할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힘을 크게 손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막중한 능침(陵寢)의 일을 다만 계사에 따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인대(引對)하여 신들로 하여금 상세히 여쭙게 하고 임금님의 결단을 받들어 봉행(奉行)하면 미진한 일이 없을 것임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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