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수(浿水)가 북쪽 흘러 북방 한기 완연하고 / 浿水北流渾朔氣

2022. 9. 7. 20:19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관연록 권상 / 1804(순조4, 갑자)

13 밤에 눈이 내리다가 아침에 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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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리를 가서 곽산(郭山)에 이르고, 40리를 가서 선천(宣川)에서 묵었다.

한낮에 운흥관(雲興館)에 도착했으니, 바로 곽산의 경계다. 산위에는 여러 개의 바위가 바둑돌처럼 펼쳐져 있었다. 봉우리를 빙 둘러 성을 쌓아 놓았는데, 성 안에는 사찰 하나가 있고 곁에는 별고(別庫)가 있다고 한다. 포시에 선천에 도착해 의검정(倚劍亭)으로 들어갔다. 정자 서쪽으로 난간을 이어서 누대를 만들고 문미에 ‘관덕루(觀德樓)’라고 했으니, 바로 삼방(三房 삼사(三使))이 묵는 곳이다. 그 곁에 작은 누각이 있는데 ‘보허각(步虛閣)’이라 하였다. 산봉우리가 에워싸고 인물이 많으니 또한 서관(西關)의 한 도회지이다. 이날은 국기(國忌 왕이나 왕후 등의 국장 및 제삿날) 때문에 기악(伎樂)을 폐하였다. 날이 저문 뒤에 촛불을 들고 조금 앉았으니 자못 다시 무료해졌다.

 

선천의 앞길이 드넓고 아득한데 / 宣川前路浩茫茫
의검정 머리에서 석양을 보노라니 / 倚劍亭頭看夕陽
패수(浿水)가 북쪽 흘러 북방 한기 완연하고 / 浿水北流渾朔氣
운흥관이 서쪽 솟아 이 또한 관방(關防)일세 / 雲興西出又關防
눈 아래 모든 것이 새 경치 아님 없건만 / 除非眼下皆新境
고향 향한 이내 마음 어떻게 하리오 / 爭奈心頭秖故鄕
옥 갈고 은을 뿌려 오늘 밤 눈 내리니 / 玉碾銀妝今夜雪
묘군(卯君)은 어디메서 홀로 산을 오르리 / 卯君何處獨登崗

 

흔들리는 작은 촛불에 생각이 아득하여 / 小燭搖輝思渺然
한밤에 옷 걸치니 이내 잠이 달아나네 / 披衣中夜況無眠
벗이 먼저 이별한 사람 마음 알아서 / 故人首獲離人意
밝은 달 맑은 바람 두 사람이 함께하네 / 明月淸風共兩邊

【서원(犀園)의 〈우식곡(憂息曲)〉에 ‘명월청풍공양변(明月淸風共兩邊)’이라 한 구절이 있었다.】

[-D001] 운흥관(雲興館) :

평안도 곽산에 소속된 역관으로 많은 사신들이 이곳을 지나가며 시문을 지었다. 《해동역사》에 운흥관이 곽산군(郭山郡)에서 북쪽으로 17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하였다.

[-D002] 묘군(卯君) :

훌륭한 아우를 뜻하는 말이다. 송나라 소식(蘇軾)이 그의 아우인 소철(蘇轍)이 묘년(卯年)에 출생했다 하여 소철을 묘군이라고 불렀는데, 소철 역시 문장으로 이름이 났었다. 여기서는 김선민의 아우인 김선신(金善臣)을 가리킨다.

 

사가시집 제21권 / 시류(詩類)

묘향산(妙香山)에 유람하러 가는 행 상인(行上人)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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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찾아 연래에 실컷 멀리 노닐다 보니 / 訪道年來飽遠遊
바랑 짊어진 행색이 가을보다 썰렁하여라 / 打包行色冷於秋
묘향산 흰 구름은 운산에 연접하여 가고 / 香山白接雲山去
대동강 푸른 물은 살수와 연해서 흐르리 / 浿水靑連薩水流
가는 곳마다 선사는 호배라 칭할 테지만 / 到處禪師稱虎背
존자가 바로 사후라는 건 누가 알겠는가 / 誰知尊者是蛇喉

후일에 두루 유람하고 돌아온 다음에는 / 他時參遍歸來後
좋이 금비로써 내 안막을 긁어 줄는지 원 / 好借金篦刮膜不
[주-D001] 가는 …… 알겠는가 : 당대(唐代)에 무명씨로서 축융봉 선자(祝融峯禪者)로 호칭되는 고승이 있어 기행 이적(奇行異跡)이 퍽 많았고, 매양 뱀〔蛇〕 한 마리와 범〔虎〕 한 마리가 그의 곁에서 호위하는 형상을 지었다는 고사가 있기는 하나, 사후 존자(蛇喉尊者)와 호배 선사(虎背禪師)에 관한 구체적인 설은 아직 상고할 수가 없다. 다만 원(元)나라의 시인 정복(丁復) 또한 그의 송승유절동(送僧遊浙東) 시에서 “사후 존자는 가을에 골짜기로 돌아가고, 호배 선사는 밤에 시내를 지나가겠네.〔蛇喉尊者秋歸洞 虎背禪師夜過溪〕”라고 한 시구만 볼 수가 있을 뿐이다.[주-D002] 좋이 …… 원 : 금비(金篦)는 금으로 만든 젓가락으로, 본디 고대 인도의 의사가 맹인의 안막을 제거해 주던 도구였는데, 전하여 후세에는 불가에서 중생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지의 막(膜)을 금비로 제거해 준다고 하는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