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악양을 지나다〔早過岳陽〕

2022. 9. 10. 20:14대륙조선의 일반 영토

매천집 2 / ()○을미고(乙未稿) 

아침 일찍 악양 지나다〔早過岳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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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강 한가운데 갑자기 웅덩이가 생겨 / 大江中忽陷
돌아 흐른 물결이 파란 언덕을 이루네 / 洄浪綠成岸
산봉우리 틈새로 아침 햇살 비추고 / 峰缺暾斜映
수증기는 노을 졌다 막 흩어지누나 / 水蒸霞初散
강길 따라 아침 나무꾼 붐비어라 / 沿流早樵競
배는 무겁고 돛대는 반쯤 가려졌네 / 舟重檣亞半
바람 소리 우수수 갈대밭 대숲 사이엔 / 淅淅蘆篁間
오리 거위가 시끄러이 울고 쪼고 하네 / 呷唼鳧鵝亂
길 가는 나는 아침 풍경을 좋아해 / 行人愛朝景
때때로 지팡이 짚고 바라보노라 / 時復支筇看
평생에 묘호를 상상만 하다 보니 / 平生想湖泖
정신은 가 있고 글은 책상에 있는데 / 神往書在案
이 경계가 응당 그곳과 같으련만 / 此境應與同
모자란 건 삼고와 짝할 만한 이로세 / 所欠三高伴
삽암의 그림자 우뚝하기도 해라 / 峨峨鍤巖影
동정호 가에 푸른빛이 떨어졌네 / 靑落洞庭畔
강가에서 이슬 젖은 국화를 따서 / 臨江掇露菊
삼가 한유한에게 받들어 올리노라 / 敬薦韓惟漢

[-C001] 을미고(乙未稿) : 

1895년(고종32), 매천의 나이 41세 때 지은 시고이다.

[-D001] 악양(岳陽) : 

경남 진주(晉州)의 서쪽에 위치한 현명(縣名)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이 현을 하동군(河東郡)에 예속시켰다.

[-D002] 묘호() : 

춘추 시대 오(吳)의 송강현(松江縣) 서쪽에 위치한 호수 이름인데, 상, 중, 하의 삼묘(三泖)로 일컬어지는바, 물이 많고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송(宋)나라 하원(何薳)의 《춘저기문(春渚紀聞)》에 의하면 “이른바 삼묘라는 곳을 지금 보니, 모두 넓고 큰 호수로, 봄, 여름에는 연과 부들이 널리 퍼져 있어 물 위에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고, 가을, 겨울에는 갈대숲이 무성하고 고기를 낚을 만한 섬들이 줄 이어 있어 강호의 썰렁한 풍경은 아예 없으니, 이른바 겨울에는 다습고 여름에는 서늘하다는 것이 정히 그 아름다움의 극치라 하겠다.〔今觀所謂三泖 皆漫水巨浸 春夏則荷蒲演迤 水風生涼 秋冬則葭葦藂蘙 魚嶼相望 初無江湖凄凜之色 所謂冬暖夏涼者 正盡其美〕”라고 하였다.

[-D003] 삼고(三高) : 

춘추 시대 월(越)의 범려(范蠡), 진(晉)나라 때 장한(張翰), 당(唐)나라 때 육귀몽(陸龜蒙)이 모두 오(吳) 지방 사람이므로, 송(宋)나라 때에 오강(吳江) 사람들이 이 세 사람을 고사(高士)라 하여 삼고사(三高祠)를 세우고 그들을 제사했던 데서 온 말이다. 《齊東野語 卷7》

[-D004] 삽암(鍤巖) : 

하동군 섬진강 변에 있는 바위 이름으로, 고려 시대의 은사(隱士) 한유한(韓惟漢)의 전설이 얽혀 있다. 조식(曹植)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 의하면 “별안간에 악양현(岳陽縣)을 지나는데, 강가에 삽암이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녹사(錄事) 한유한이 살던 곳이다. 한유한은 고려가 곧 망할 것을 알고는 처자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살다가 조정에서 대비원 녹사(大悲院錄事)로 부르자, 어느 날 밤에 집을 떠나 도망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모른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南冥集 卷2》

[-D005] 한유한(韓惟漢) : 

고려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처음에 벼슬을 하다가 이자겸(李資謙)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고는 장차 화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가족을 데리고 악양현(岳陽縣)에 숨어 살았는데, 그 후 조정에서 그의 재주를 아껴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았으나 그는 끝내 숨어 버리고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세인(世人)들은 그가 신선이 되어 갔다고도 하는데, 후일 지리산(智異山)의 화엄사(華嚴寺), 연곡사(燕谷寺), 쌍계사(雙磎寺) 등지에서 그의 자취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 그가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의 도를 이어받아 삼신산(三神山)으로 알려진 금강산(金剛山), 지리산, 한라산(漢挐山)을 두루 다니면서 신선을 따라 노닐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