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0. 10:45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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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양집 제10권 / 기(記)
자유당기〔自有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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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珍島)는 우리나라 남쪽에 있다. 매년 춘분과 추분에만 노인성이 병정(丙丁)의 방향에 보이는데, 그 크기가 달만 하다. 민간에 전하기를, 이 별이 비추는 곳은 장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수성(壽星)이라 부른다고 한다.
내 벗인 정무정(鄭茂亭) 학사가 이 섬에 귀양 가 있으면서 기둥 네 개를 세워 서재를 지었다. 집이 완성되자 수성이 마침 보였기 때문에 이름을 ‘자유당(自有堂)’이라 하였다. 소릉(少陵 두보)의 시 “남극노인 스스로 별을 지녔네.〔南極老人自有星〕”라는 시어에서 따온 것이다. 군(郡) 내 명사들과 술을 마시면서 낙성식을 하고 편지를 보내 내게 기(記)를 지으라고 하였다.
내가 바야흐로 《맹자》의 〈진심(盡心)〉편을 읽다가 글을 지으며 탄식하였다.
“기(記)가 여기에 있구나. 사람 마음이 장수하고 싶어 하지 않음이 없으나 구하는 것이 오직 단약을 복용하는 것과 복을 비는 것에 있을 뿐이다. 내게 저절로 타고난 수명이 있어서 밖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몸을 죽이는 것 가운데 함부로 부리는 욕심만큼 심한 것이 없으나 마음을 보존하고 성(性)을 기르면 인욕이 물러나 순종한다. 정을 상하게 하는 것 가운데 근심과 두려움보다 더한 것이 없으나 수명의 장단을 의심하지 않으면 천군(天君 마음)이 태연하다. 무너지려는 담장 아래 서지 않으면 압사하거나 익사할 염려가 없다. 형벌 받을 죄를 범하지 않으면 형틀에 갇힐 근심이 없다. 만일 이처럼 할 수 있다면 항해(沆瀣 신선의 음료)를 마시고 화조(火棗 신선의 과일)를 먹지 않아도 장부(腸腑)가 조화를 이루어 조두(朝斗 북두 칠원성군에게 절하는 것), 보강(步罡 도사가 별에 절하고 신령을 부르고 보내는 동작), 사조(祠竈 부엌신 제사), 각로(却老 양생술)의 방술에 기대지 않아도 신명(神明)이 집을 지키리니 어찌 타고난 수명을 다하지 않음이 있으리오.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러움이 없고 편안하게 자득하면 하루라도 백 년의 즐거움이 있다. 비록 형체가 한때를 살아도 명성이 무궁하게 드리우면, 이것 역시 크게 장수하는 것이다. 어찌 산택의 파리한 은자가 일월의 정화를 캐고 천지의 원기를 훔쳐 구차하게 수명을 늘리는 것에 비하랴. 내가 세속에 전하는 〈노인성도(老人星圖)〉를 본 적이 있는데 모두 노쇠하고 병든 모습을 그렸으니 그림 그린 자의 뜻이 명백하다. 이는 스스로 늙음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이니 어찌 사람을 장수하게 하겠는가? 그 망녕됨이 참으로 가소롭다.
고려(高麗) 왕조 때 노인성이 나타났을 때 번다한 의식을 거행하면 크게 하사하는 것으로 응답할 것이라는 잘못된 말이 돌았다. 국내의 주(州)ㆍ현(縣)을 두루 다니며 모두 사당을 세우고 푸닥거리를 했으니, 그 구함이 간절했다 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는 황폐하고 백성은 흩어지고 재앙과 난리가 연이어 찾아오는 것은 노인성 역시 어쩔 수 없었다. 푸닥거리를 한들 무슨 보탬이 되었겠는가. 이는 모두 자기 몸 안에 저절로 수성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구한 자의 병통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모두 내게 갖추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참되면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 별이 하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정의 몸 한가운데 있음을 아니 어찌 이 별만이 그렇겠는가. 무정은 여러 책을 널리 통하였고 영화(英華)를 쌓아두었다. 이는 하늘 가득한 별이 그 가슴 안에 있어서 감도는 광채가 반사되어 비추는 것이니, 이루 다할 수 없는 즐거움을 지닌 자이다. 이것이 스스로 지닌 까닭이니, 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남과 무슨 상관이랴. 이에 〈자유당기(自有堂記)〉를 짓노라.”
[주-D001] 병정(丙丁)의 방향 :
오행상 화(火)에 해당하는 남쪽을 가리킨다.
[주-D002] 정무정(鄭茂亭) :
정만조(鄭萬朝, 1858~1936)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경(大卿), 호는 무정(茂亭)이다. 1895년의 팔월역변(八月逆變)ㆍ시월무옥(十月誣獄)에 연루되어 1896년 4월 진도(珍島)에 유배되었다가, 12년 만인 1907년 12월의 사면 때 풀려나 복관되었다.
[주-D003] 남극노인 …… 지녔네 :
《전당시(全唐詩)》 권231 〈담산인은거(覃山人隱居)〉에 보인다.
[주-D004] 만물이 …… 없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만물이 모두 내게 갖추어 있으니 자신을 돌이켜 참되면 즐거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萬物皆備於我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한 맹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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