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至正) 24년(1364)에 우리 태조황제가 오왕에 즉위한 원년이다.

2023. 6. 23. 20:37이성계의 명조선

 

강한집 제23권 / 발미(跋尾) 조제고(詔制考)

즉위 조서 홍무〔卽位詔 洪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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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생각하건대, 중국의 임금은 송(宋)나라의 운수가 이미 끝남으로부터 하늘이 진인(眞人)에게 명하여 사막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천하의 주인이 되도록 하였는데, 자손에게 전한 지 백여 년 만에 지금 운수가 또한 끝났으므로, 해내(海內)의 강토에서 호걸들이 투쟁하였다.

짐은 본래 회우(淮右)의 서민이었으나 하늘의 돌보심과 조종(祖宗)의 영령(英靈)의 은택을 입어, 마침내 축록(逐鹿)의 때를 타서 좌우에 영특하고 어진 이들을 초치하였다. 무릇 양회(兩淮)ㆍ양절(兩浙)ㆍ강동(江東)ㆍ강서(江西)ㆍ호(湖)ㆍ상(湘)ㆍ한(漢)ㆍ면(沔)ㆍ민(閩)ㆍ광(廣)ㆍ산동(山東) 및 서남쪽 여러 부의 오랑캐들〔蠻夷〕이 각처에서 약탈하므로, 거듭 대장군과 여러 장교들에게 명하여 위무를 떨치게 하여 이미 모두 평정되었으니, 백성들이 고향 마을에서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지금의 문무대신과 모든 관아의 관원들이 합사(合辭)하여 제위에 오를 것을 권하여, 짐을 받들어 황제로 삼아 백성들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 대중의 뜻을 힘써 따라 오(吳) 2년(1368) 정월 4일에 종산(鍾山)의 남쪽에서 천지에 고하여 제사 드리고, 남교(南郊)에서 황제에 즉위하였으며, 천하를 가진 명칭을 대명(大明)이라 정하고, 오(吳) 2년을 홍무(洪武) 원년으로 삼았다. 이 날 삼가 태묘(太廟)에 나아가 4대의 고비(考妣)를 추존하여 황제와 황후로 삼고,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을 경사(京師)에 세워 천하에 널리 고하노니, 모두 들어서 알게 하라.

 

위는 태조황제의 조서입니다. 홍무 원년(1368) 춘정월 을해일(4)에 황제에 즉위하고, 병자일(5)에 조서를 내려 천하에 고시(告示)한 것으로, 태조황제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옛날의 제왕 중에 문장으로 천하를 빛낸 이는 당 태종(唐太宗)과 송 인종(宋仁宗)이 바로 그 분입니다. 그러나 간략하면서도 바르고, 엄하면서도 밝으며, 순수하면서도 광대하기로는 태조황제의 어제 조서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시경》에, “저 길게 뻗친 은하수는, 하늘에 문장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 은하수는 의도적으로 문장이 된 것이 아니고, 하늘을 따라 돌아서 문장이 찬란하게 절로 드러난 것입니다. 태조의 문장이 은하수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D001] 홍무(洪武) : 

명나라 초대 황제인 태조(太祖)의 연호로, 기간은 1368~1398년이다.

[-D002]  :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의 자칭이다. 주원장은 중국 호주(濠州) 출신으로 자는 국서(國瑞),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고아가 되었고, 출가하여 탁발승이 되어 하북(河北) 일대를 떠돌아 다녔다. 원나라 말기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반란군 지도자의 한 사람인 곽자흥(郭子興)의 휘하에 들어가 2인자가 되고 그의 양녀와 결혼하였으며, 그의 사후에 반란군을 이끌었다. 반란군 지도자인 진우량(陳友諒)과 장사성(張士誠)을 격파하고 남부 지방을 평정한 후, 서달(徐達)ㆍ상우춘(常遇春) 등을 파견하여 북벌을 성공시키고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D003] ()나라의 …… 끝났으므로 : 

북방의 몽고족이 송나라를 무너뜨리고 중원으로 들어와 원(元)나라를 세운 것을 말한다. 원나라의 초대 황제는 칭기즈칸의 손자인 세조(世祖) 쿠빌라이(1215~1294)로, 1271년 국호를 대원(大元)으로 고치고 북경(北京)을 도읍으로 정하였으며, 1279년에는 남송(南宋)을 멸망시킴으로써 순수 이민족 왕조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하였다. 위에서 ‘진인(眞人)’이라고 칭한 사람은 쿠빌라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원나라는 1271년부터 1368년까지 중원을 점령하였다.

[-D004] 회우(淮右) : 

회수(淮水)의 서쪽으로 회수의 상류 지역이다. 주원장이 태어난 곳은 호주(濠州)로,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봉양현(鳳陽縣)인데 남경(南京)의 북서쪽으로 중국의 동부 해안에 있다.

[-D005] 축록(逐鹿) :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것을 뜻한다.

[-D006] 양회(兩淮) : 

회수(淮水)의 남북으로, 회남(淮南)과 회북(淮北) 지방을 말한다.

[-D007] 양절(兩浙) : 

절강(浙江)의 동서로, 절동(浙東)과 절서(浙西) 지방을 말한다.

[-D008] 강동(江東)ㆍ강서(江西) : 

양자강의 동쪽과 서쪽 지방을 말한다.

[-D009] () : 

호주(湖州)로, 현재 절강성(浙江省)에 속한 지역이다.

[-D010] () : 

상주(湘州)로, 현재 호남성(湖南省)에 속한 지역이다.

[-D011] () : 

한주(漢州)로 지금의 사천성(四川省)에 속한 지역이다.

[-D012] () : 

면주(沔州)로 현재 섬서성(陝西省)에 속한다.

[-D013] () : 

민주(閩州)로, 현재 복건성(福建省)에 속한다.

[-D014] () : 

광주(廣州)를 가리킨다. 현재 중국 남동부에 있는 광동성(廣東省)의 성도(省都)이다.

[-D015] () : 

주원장(朱元璋)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의 연호로서 기간은 1367~1368년이다. 주원장이 남경(南京)을 점령한 후 세력을 확대하여 스스로 오왕(吳王)이라 칭하였다.

 

고전번역서 > 성재집 > 성재집 제8권 > 왕복잡고 > 최종정보

지정(至正) 15년(1355)에서 기년(紀年)을 ‘원 십오년(元十五年)’이라하고 - 권점으로 사이를 띄움. - 송주(宋主) 한림아(韓林兒) 용봉(龍鳳) 원년(元年)이라는 대목〔至正十五年 紀年云元十五年 - 隔圈 - 宋主 韓林兒 龍鳳元年〕

○ 《속강목》을 보면 이해 6월 우리 태조황제(太祖皇帝 주원장(朱元璋))가 군사를 일으킨 이후부터 원나라 일에 대하여는 국호(國號)를 썼습니다. 그 뜻은 대개 참된 군주가 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면 나라를 건설하여 국호를 세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천하는 더 이상 호원(胡元)이 전체를 지배하는 국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처리하므로 서수휘(徐壽輝)와 한림아 같은 무리들을 전에 도적과 작은 추장으로 처리하였지만, 이로부터 ‘국(國)’이라 쓰고 ‘주(主)’라 칭하여 원나라와 대적관계를 나타내 보인 것은 그 의미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다만 기년을 나타냄에 변화되는 절목이 없는 것이 작은 결함이 되기 때문에 이 책 《송원화동사합편강목》에서 근본을 정하였음을 보이고 특별히 15년 조 위에 원(元)이라는 국호를 더하여 보충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크게 단서를 바꾸는 예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 전대 역사서는 대개 통일한 뒤 분열되거나, 분열되었다가 통일하면 모두 단서를 바꾸는 예를 사용했다. - “원 순제 지정 십오년(元順帝至正十五年) - 권점으로 사이를 띄움. - 천완주 서수휘 치평 오년(天完主徐壽輝治平五), 송주 한림아 용봉 원년(宋主韓林兒龍鳳元年) - 권점으로 사이를 띄움. - 통일되었던 옛 대국 하나, 소국 하나, 새로운 소국. 모두 삼국.〔統舊大國一 小國一 新小國一 凡三國〕”이라고 쓰고, - 권점으로 사이를 띄움. - 이어서 그 아래에 “이해에 우리 태조황제께서 화양(和陽)에서 병사를 일으켰다.”라고 써서, 단서를 바꾸는 이유를 제시하면 더욱 분명히 갖추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만약 이처럼 쓴다면, 앞의 ‘지정십년’ 아래의 천완의 연대를 기록한 것은 삭제해야 한다. 대개 천완은 그 당시에 단지 도적이나 추장으로 처리했으므로 그 일을 쓸 때도 국(國)이나 주(主)라 칭하지 않고, 성명으로 칭할 뿐이다. 기년(紀年)함은 분수가 아닌 듯하다. -

 

지정(至正) 20년(1360) 한왕(漢王) 진우량(陳友諒)이 그 군주 서수휘를 시해하고 스스로 제(帝)라 칭하다고 한 대목〔至正二十年 漢王陳友諒弑其主徐壽輝 遂自稱帝〕

○ 생각하건대, 한왕(漢王) 위에 천완(天完) 두 자를 추가해야 할 듯합니다.

 

지정(至正) 24년(1364)에 연대 기록을 “원이십사년(元二十四年) - 권점으로 사이를 띄움. - 한주(漢主) 진리(陳理) 덕수(德壽) 원년(元年).〔漢主陳理德壽元年〕”이라고 한 대목

○ 생각하건대, 덕수 원년” 아래에 “우리 태조황제가 오왕에 즉위한 원년이다.〔我太祖皇帝卽吳王位元年〕”라고 첨가해서 써야 할 듯합니다. 대개 오왕(吳王) 장사성(張士誠)과 기원(紀元)은 같은 예이나, 조금 그 문장을 달리하였습니다.

 

이해에 우리 태조황제가 건국하여 오(吳)라고 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황제(皇帝)’ 아래에 ‘초즉왕위(初卽王位)’ 네 자를 첨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D156] 진리(陳理) : 진우량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이어 한왕(漢王)이 되어 덕수(德壽)라는 연호를 사용하였다. 명나라에 항복하니,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주원장(朱元璋)이 봉(封)하여 순덕후(順德侯)를 삼고, 고려(高麗)에 가서 살게 하였는데, 당시 고려에서 진왕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