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고황제 때에 탈탈(脫脫) 승상(丞相)의 휘하 3백여 명이 평안도(平安道)로 투항(投降)해 왔는데,

2023. 6. 18. 16:14이성계의 명조선

탈탈(脫脫승상(丞相)  1314 ㅡ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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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4 무오(1498) 9 6(신축)

04-09-06[02] 한치형이 해랑도에 도망간 백성들을 쇄환하는 일에 대해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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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형(韓致亨)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 사람이 해랑도(海浪島)로 도망가서 산 지가 세월이 오래되어 중국 사람과 서로 혼인을 하고 언어와 복색(服色)도 역시 같사온데, 쇄환할 때에 중국 사람까지 수색하여 잡아오거나 또 상처를 입힌다면, 신은 상국과 사이가 나빠질까 걱정입니다. 신은 원컨대, 이번 정조사(正朝使)가 들어가는 길에 자문(咨文)을 요동 도사(遼東都司)에게 보내되 쇄환의 뜻으로써 유시하오면 반드시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뒤에 사신을 보내서 쇄환하는 것이 사체로 보아 매우 편하옵니다.”

하고, 윤필상(尹弼商)은 아뢰기를,

“태조 고황제 때에 탈탈(脫脫) 승상(丞相)의 휘하 3백여 명이 평안도(平安道)로 투항(投降)해 왔는데, 황제는 우리 나라에 유시하기를 ‘중국 사람 10만여 호가 조선으로 귀부(歸附)하였으니, 즉시 쇄환하도록 하라.’ 하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평안ㆍ황해 양도의 백성까지 그 수효를 채워 보냈사오니, 지금에 양 도의 인민이 희소한 것도 이 때문이옵니다. 그런데 지금 해랑도에서 쇄환할 적에, 잘못되어 중국인을 잡아왔다가 상국에서 만약 노하면 거짓말로 ‘많은 수효를 잡아갔으니 즉시 쇄환하라.’ 한다면 고황제 때와 같은 일이 꼭 없다고 보장하오리까. 모름지기 다시 자문을 요동에 보낸 다음, 또 통사(通事)를 도사(都司)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요동에서 만약 주문(奏問)하지 아니한다면 우리 전하께서 스스로 주문하겠다.’ 한다면, 요동에서 반드시 처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정승의 말이 과연 옳소.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일을 실패하는 것이오.”

하였다.

【원전】 13 집 330 면

【분류】 호구-이동(移動)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