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단교(單轎)를 어깨에 메고 가는 행차

2022. 11. 28. 18:14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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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3 정미(1727) 5 17(임신) 맑음

03-05-17[24] 희정당(熙政堂)에서 약방이 입진하고 황해 수사가 함께 입시한 자리에 도제조 민진원(閔鎭遠) 등이 입시하여 상의 증후를 살피고 복용할 약을 정하는 , 승지를 패초하는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민진원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참으로 옳습니다. 요즘 사대부들은 오로지 자신들 편의만 일삼아 힘든 직임에는 출사하지 않고 목 좋은 태수 자리는 얻어 차기를 꾀하며, 소각사(小各司)의 경우 하나같이 한가하고 편한 자리만 얻으려 합니다. 전관(銓官) 역시 안면과 인정에 얽매어 세도가들의 청에 충실히 부응하는데 이런 모습을 서로가 부러워하며 본받아 관원들의 풍습이 모두 그러합니다.

또 가마 타는 폐습을 선조(先祖) 때부터 엄히 금해 왔지만 지방 관원들은 양반이나 중인, 서얼, 노소 할 것 없이 함부로 타지 않는 자가 없고 별성(別星)은 특히 심합니다. 또한 대간과 대간을 겸임한 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관원임에도 스스로 법을 어기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신이 감사였을 때 전문 차사원(箋文差使員)을 차출한 적이 있었는데 무관은 탈을 핑계로 사양함이 없었지만 문음(文蔭)은 대부분 회피하였습니다. 이는 전문을 받들면 감히 가마를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신의 안일을 꾀하는 습성이 매우 놀라우니 의당 별도로 신칙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근래 이 일과 관련해 스스로 자백하고 직무에서 물러나려는 자가 간혹 있긴 하지만 자백하지 않는 자 또한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선조(先朝) 때는 엄히 신칙했기 때문에 폐해가 심하지 않았으나 근래에는 엄히 신칙하지 못해 점차 이 지경에 이르렀다. 대신(臺臣)의 경우 신분이 법을 집행하는 관원임에도 앞장서서 법을 어겼으니 더욱 놀랄 만하다.”

하였다. 민진원이 아뢰기를,

“찰방은 별성이 법을 어기고 가마를 타면 혹 적발하여 알리는 경우도 있는데 저들 또한 가마를 타고 다니니 이래서야 어찌 폐단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늙고 병들어 말을 탈 수 없다면 지붕 없는 단교(單轎)를 어깨에 메고 가는 행차야 형편상 어쩔 수 없지만 옥교(屋轎)에 편안히 누워 탄다면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감사에 신칙하여 계본으로 그때그때 보고하게 한다면 두려워 조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를 여러 도의 감사에게 알려 각별히 엄금하도록 하되 감사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할 리가 없으니 만약 듣고도 계본으로 보고하지 않으면 해당 감사를 논죄하는 것으로 별도로 신칙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 수사는 나아오라.”

하니, 구성익이 나아와 엎드렸다. 상이 이르기를,

“해서(海西)의 수영(水營)은 새로 신설된 곳이다. 이제 내려갈 텐데 내게 물어 정할 것이 있는가?”

하니, 구성익이 아뢰기를,

“신이 아직 부임하기 전이라 폐단이 있는지 여부를 상세히 알지 못합니다. 내려간 후에 변통할 수 있는 폐단이 있으면 삼가 즉시 장계로 보고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말에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좋은 말이다. 근래에 평화로운 날이 오래되어 군정이 해이해진 것이 몹시 염려스러운데 서로(西路)로 말하면 다른 지역과도 자별한 곳이니 군정을 비롯한 모든 일에 각별히 유념해서 하도록 하라.”

하니, 구성익이 아뢰기를,

“신은 성상의 먼 친척 되는 자손으로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어찌 감히 남들에게 뒤지겠습니까마는 나이가 어리고 재주가 졸렬하여 직무를 태만히 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황해 수사는 금군 별장 구성임(具聖任)과 어떤 사이인가?”

하니, 김취로가 아뢰기를,

“구성임은 구성익의 동복형입니다.”

하였다. 김취로가 아뢰기를,

“황해 수사에게 내리는 유서(諭書)를 읽어서 듣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김취로가 유서를 다 읽었다. 상이 물건을 하사하자 구성익이 무릎을 꿇고 받은 뒤에 물러 나갔다.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 나갔다.

[-D001] 척맥(尺脈) : 

원문은 ‘脊’인데, 《승정원일기》의 다수 용례에 근거하여 ‘尺’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D002]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 : 

경종(景宗)의 계비(繼妃)인 선의왕후(宣懿王后)의 아버지 어유귀(魚有龜)를 말한다.

[-D003] 공자께서 …… 질병이셨다 :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오는 말이다.

[-D004] 장사숙(張思叔) : 

송(宋)나라 학자 장역(張繹, 1071~1108)으로, 사숙은 그의 자(字)이다. 정이(程頤)의 문인이다.

[-D005] 유행(流杏) : 

원문은 ‘類杏’인데, 《산림경제(山林經濟)》 권1 〈복거(卜居)〉에 근거하여 ‘類’를 ‘流’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D006] 이정박이 …… 지나치다 : 

당시 이정박(李挺樸)은 경기 도사로 종5품, 생부 이세환(李世瑍)은 세자익위사 위솔(衛率)로 종6품이었다. 제수하려는 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고 세자익위사는 왕세자의 시위를 담당하는 곳이므로, 이정박이 같은 동궁(東宮)에 속했다 하여 피혐한 것이다. 하지만 세자시강원은 예조의 속관이고 세자익위사는 병조의 속관이므로, 이정박은 결국 세자시강원 문학(文學)에 제수되었다. 《承政院日記 英祖 3年 5月 29日》

[-D007] 그리하라 : 

원문은 ‘依之’인데, 《승정원일기》의 다수 용례에 근거하여 ‘依’ 뒤에 ‘爲’ 1자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D008] 삼조(三曹) : 

호조(戶曹), 형조(刑曹), 공조(工曹)를 말한다. 《大典會通 吏典 限品敍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