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8. 19:17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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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8권 / 인사문(人事門)
조선방음(朝鮮方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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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揚雄)의 《방언(方言)》에, 조선(朝鮮)의 열수(洌水)라고 칭한 곳이 많은데, 열수는 낙랑(樂浪)의 땅이고 오늘의 대동강(大同江)이다. 《방언》에 있는 말은 우리나라의 옛 방언으로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의 말이라고 칭하였으니, 조선 사람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하겠다. 《방언》에 “어린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을 훤(咺), 검은 눈동자를 간(盰), 나무의 가는 가지를 책(策)이라 하고, 유포(揄鋪)를 엽수(葉輸)라 하는데 유포는 짐승의 털이다. 속령(速逞)을 요선(搖扇)이라 하는데 속령은 빠르다는 것이다. 위와(蔿譌)를 열(涅)이라고 한다. 열은 화(化)하는 것인데 닭이 알을 품어 처음으로 부화(孵化)하는 때이다. 협(協)을 침(斟)이라 하는데 침은 협(汁)이다. 먹거나 바른 약의 독(毒)을 로(癆)라 한다. 비구(屝屨)를 앙각(䩕角)이라고 하는데 거친 신[麤履]이다. 솥[鍑]을 전(錪)이라 하고 혹은 병(鉼)이라고도 하는데 가마솥[釜] 등속이다. 삽(臿)을 조(𣂁)라 하고, 상(狀)을 수(樹)라 한다. 소와 양의 오장(五臟)을 박(膊)이라 하고, 번만(煩懣)을 한만(漢漫)이라 하며, 전현(顚眴)을 진현(䀼眩)이라 한다. 새 새끼와 병아리를 고(鷇)라고 하는데 고의 음은 고(顧)이다. 시구(尸鳩)를 복비(鶝䲹) 또는 혹(𪂉)이라고도 하며, 지주(鼅鼄)를 독여(蝳蜍)라 한다.” 하였다. 오늘날 풍속에 병아리를 ‘구구’라고 부르는데, 구는 곧 병아리의 이름이다. 이는 마치 강아지를 ‘요요’라고 부르는데, 요는 강아지의 이름인 것과 같다. 이상의 여러 가지 중에서 앙각(䩕角)과 독여(蝳蜍)의 유는 시(詩)를 짓는 데도 들어갈 만하다.
또 《고려사(高麗史)》를 상고하니 “미후도(獼猴桃)를 달애(怛艾)라 하고, 고양이[猫]를 고이(高伊)라 하며, 잠수장(梣樹杖)을 수청목(水靑木)이라 한다.” 하였으며,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에는 “아버지[父]를 아필(阿必)이라 하고, 어머니[母]를 액미(額嬭)라 한다.” 하였고, 송(宋) 나라 손목(孫穆)의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구름[雲]을 굴림(屈林)이라 하고, 바람[風]을 발람(孛纜)이라 하며, 눈[雪]을 눈이(嫩耳)라 하고, 비[雨]를 비미(霏微)라 하며, 우레[雷]를 천동(天動)이라 하고, 무지개[虹]를 육교(陸橋)라 하며, 까마귀[雅]를 타마귀(打馬鬼)라 하고, 개[犬]를 가희(家稀)라 하며, 놀고 먹는 사람[遊子]을 부랑인(浮浪人)이라고 한다.” 하였다.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않는다.
[주-D001] 《방언(方言)》 :
각 지방의 언어(言語)ㆍ물명(物名)의 동이(同異)를 수록한 책. 모두 13권이다. 한(漢) 나라 양웅(揚雄)이 찬(撰)했다고 하나, 근거가 희박하다. 《한서》 양웅전(揚雄傳)에 양웅의 저서를 기록한 데도 보이지 않고,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 양웅의 말을 인용한 것이 이 《방언》에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보아, 다른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 거의 틀림없다.
[주-D002] 솥[鍑]을 …… 등속이다 :
이 말은 《방언》에는 보이지 않고, 청(淸) 나라 대진(戴震)의 《방언소증(方言疏證)》 복(鍑)의 주석(注釋)에 보인다. 성호는 글을 인용하면서 원문과 주석을 구별하지 않은 듯하다.
[주-D003] 시구(尸鳩)를 …… 독여(蝳蜍)라 한다 :
이 말은 《방언》 전편에서 우리나라 방언과 관계 있는 것만을 대략 뽑아서 기록한 것들이다. 그러나 뜻으로 풀어도 우리 말과 맞지 않으며, 음으로 적어 보아도 역시 맞지 않으며, 중국 발음으로 적어 보아도 맞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한자(漢字) 음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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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 제28권 / 풍속지(風俗志)
방언(方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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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朝鮮)과 열수(洌水)의 사이에서는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樂浪郡)이고, 열수는 요동(遼東)에 있다.-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을 훤(咺)이라고 한다. 눈동자[瞳之子]를 우(盱)라고 하고, 혹은 양(揚)이라고 한다.
○ 나무의 잔가지[木細枝]를 책(策)이라고 한다.
○ 솜털[毳] -덮는 것이다.- 을 엽수(葉輸)라고도 한다. 빨리 가는 것[疾]을 요선(搖扇)이라고 한다.
○ 부화[化]하는 것을 열(涅)이라 하고, 혹은 화(譁)라고 한다. 닭이 알을 품고서 부화하지 않다가 처음으로 부화하는 때를 열(涅)이라고 하는 것이다.
○ 즙(汁)을 짐(斟)이라고 한다.
○ 신발 중에 거친 것[履麄]을 앙각(䩕角)이라 한다.
○ 부(鍑)를 혹 전(錪)이라고 하기도 하고, 병(鉼)이라고 하기도 한다.
○ 목이 긴 병[罃]을 장(瓺)이라고 한다.
○ 삽(臿)을 토(𣂁)라고 한다.
○ 말뚝[橛]을 단(椴)이라고도 한다.
○ 가는 것[行]을 시(徥)라고도 한다.
○ 떨어진 것[離]을 국(掬)이라고 한다.
○ 고기를 말리거나,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일을 들추어내거나, 소나 양의 내장을 긁어내는 것을 모두 박(膊)이라고 한다.
○ 꾸짖는 모든 말을 위영(魏盈)이라고 한다.
○ 번민스러운 것[煩懣]을 한만(漢漫)이라고 한다.
○ 어지러운 것[顚眴]을 진현(䀼眩)이라고 한다.
○ 모든 세워 두는 것[置立]을 수식(樹植)이라고 한다.
○ 건너가는 것[過度]을 섭제(涉濟)라 한다.
○ 복록(福祿)을 불전(祓戩)이라 한다.
○ 닭이 품는 것[伏鷄]을 포(抱)라고 한다.
○ 참새 새끼[爵子]와 병아리를 모두 각(𪆪)이라고 한다.
○ 시구(尸鳩)를 복비(鶝䲹)라고 하고, 또 역(𪂉)이라고도 한다.
○ 거미[鼅鼄]를 독여(蝳蜍)라고 한다. 《이상 모두 양웅(揚雄)의 방언(方言)》
○ 북연(北燕)과 조선의 사이에서는 초목(草木)이 사람을 찌르는 것을 책(茦)이라고 하고, 혹은 장(壯)이라고 한다.
○ 약을 마시거나 약을 붙였다가 중독되는 것을 로(癆)라고 한다.
○ 침상 앞에 가로지르는 나무[杠]를 수(樹)라고 한다.
○ 비(貔)를 비(𧳏)라고 한다.
○ 돼지[豬]를 가(豭)라고 한다. 《이상 모두 상동》
살펴보건대, 《사군지(四郡志)》에 이르기를, “북연(北燕)과 조선(朝鮮)의 사이는 계문(薊門) 이동에서 패수(浿水)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말하고, 조선(朝鮮)과 열수(洌水)의 사이는 패수 이남에서 한수(漢水)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을 말한다.” 하였다. 한(漢)나라 때 2군(郡)에 대해서는, 뛰어난 계책이 있으면서 기이한 것을 좋아하였던 자운(子雲 양웅(揚雄)의 자(字))과 같은 자가 있어서 기술(記述)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술한 여러 조항들은 지금에 와서 고찰해 볼 때에 어느 하나도 비슷한 것이 없다. 삼국(三國) 시대 이후로는 연대가 점차 멀어지면서 어음(語音)도 그에 따라 변한 탓에 대조해 볼 수가 없다.
○ 진한(辰韓)에서는 나라[國]를 이름하여 방(邦)이라고 하고, 활[弓]을 호(弧)라고 하고, 도적[賊]을 구(寇)라고 하고, 행주(行酒)를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 부를 때에는 도(徒)라고 하여, 진(秦)나라 말과 흡사하므로 혹 진한(秦漢)이라고도 부른다. 《후한서》
○ 진한 사람들은 낙랑(樂浪) 사람들을 이름하여 아잔(阿殘)이라고 하는데, 동방 사람들은 나[我]를 아(阿)라고 하는바, 낙랑 사람들은 본디 거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삼국지》
○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은 뒤섞여 사는데, 언어는 차이가 있다. 《후한서》
○ 주호국(州胡國)은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다. 《삼국지》
○ 용서(舂鉏)를 낙랑 사람들은 백로(白鷺)라고 한다. 《시초목조수충어소(詩草木鳥獸蟲魚疏)》
○ 예(濊)의 언어는 대개 고구려와 같다. 《후한서》
○ 부여(夫餘)는 그 속언(俗言)에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한다. 《후위서》
○ 동옥저(東沃沮)는 언어가 고구려와 대체로 같으나, 가끔은 차이가 난다. 《삼국지》
○ 고구려는 언어가 대부분 부여와 같다.
○ 서로 비슷한 것을 위(位)라고 한다.
○ 구루(溝漊)란 것은 고구려에서는 성(城)을 이름하는 것이다. 《이상 모두 상동》 ○ 삼가 살펴보건대, 고구려에서는 성을 이름하여 구루라고 하였으므로, 책구루(幘溝漊), 매구루(買溝漊) 등의 명칭이 있었다.
○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은 다음에야 통할 수가 있다. 세속에서는 성(城)을 건모라(健牟羅)라고 하고, 읍(邑)이 성안에 있는 것을 탁평(啄評)이라 하고, 밖에 있는 것을 읍륵(邑勒)이라 한다. 그들은 관(冠)을 유자례(遺子禮)라 하고, 저고리[襦]를 위해(尉解)라고 하고, 바지[袴]를 가반(柯半)이라 하고, 신발[靴]을 세(洗)라고 한다.《양서(梁書)》
○ 서간(西干)은 신라의 방언(方言)으로, 임금[君]을 뜻한다.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 신라에서는 비단[絹]을 급(𢃺)이라고 한다. 《해편통종(海篇統宗)》
○ 백제는 치성(治城)을 고마(固麻)라고 부르고, -살펴보건대, 우리나라의 방언에 곰[熊]을 고마(固麻)라고 하는데, 백제는 웅진성(熊津城)에 도읍하였으므로, 고마(固麻)라고 하였다.- 읍(邑)을 담로(檐魯)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郡縣)과 같은 말이다. 지금의 언어는 대략 고구려와 같다. 모자[帽]를 관(冠)이라 하고, 저고리[襦]를 복삼(複衫)이라 하고, 바지[袴]를 곤(褌)이라 한다. 그들의 말에는 중국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역시 진(秦)ㆍ한(韓)의 남은 풍속이라 하겠다. 《양서》
○ 백제에서는 왕(王)을 어라하(於羅瑕)라 부르고, 백성들은 건길지(鞬吉支)라 부르는데, 이는 중국말로 모두 왕이라는 뜻이다. 왕의 아내를 어륙(於陸)이라고 부르니, 이는 중국말로 왕비라는 뜻이다. 《후주서》
○ 발해는 세속에서 그 왕을 가독대(可毒大) -살펴보건대, 《당서》를 보면, 가독대가 가독부(可毒夫)로 되어 있다.- 라 부르고, 대면하여서는 성왕(聖王)이라 부르고, 전표(牋表)를 올리면서는 기하(基下)라고 부른다. 왕의 아버지는 노왕(老王)이라 부르고, 왕의 어머니는 태비(太妃)라고 부르고, 왕의 아내는 귀비(貴妃)라고 부르고, 왕의 장자(長子)는 부왕(副王)이라고 부르고, 왕의 여러 아들들은 왕자(王子)라고 부른다. 《책부원귀》
○ 《고려박학기(高麗博學記)》에 이르기를, “수(酥)를 대도규(大刀圭)라 이름하고, 제호(醍醐)를 소도규(小刀圭)라 하고, 낙(酪)을 수도규(水刀圭)라 하고, 유부(乳腐)를 초창도규(草創刀圭)라 한다.
○ 또 이르기를, “미공보장(迷空步障) -안개[霧]를 가리킨다.-, 위설(威屑) -서리[霜]를 가리킨다.-, 교수(敎水) -이슬[露]을 가리킨다.-, 빙자(冰子) -우박[雹]을 가리킨다.-, 기모(氣母) -무지개[虹]를 가리킨다.-, 설금(屑金) -별[星]을 가리킨다.-, 추명대로(秋明大老) -은하수[天河]를 가리킨다.- ”라 하였다. 《이상 모두 청이록(淸異錄)》
○ 고려의 국속(國俗)에, 국왕을 신하나 백성들이 부를 때에는 성상(聖上)이라고 부르고, 사사로이 칭할 때에는 엄공(嚴公)이라고 한다. 후비(后妃)는 궁주(宮主)라고 한다. 《송사》
○ 고려에서는 중국의 사신들을 일러 모두 천거(天車)라고 한다. 《중주집(中州集)》
○ 고려 사람들은 삿갓[笠]을 알(軋)이라고 하고, 고슴도치 털[刺蝟毛]을 고섬섬(苦苫苫)이라고 한다. 《고려도경》
○ 고려는 북쪽을 별십팔(別十八)이라 하는데, 중국말로 다섯 성(城)을 연결하였다는 말이다. 《철경록(輟耕錄)》
○ 매[鷹]를 고려 사람들은 결운아(決雲兒)라고 부른다. 《화경(花鏡)》
○ 조선에서는 선대 때 일찍이 문무(文武)의 관원을 겸한 자들을 일러 양반(兩班)이라고 한다.
○ 그 나라의 소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글을 읽을 때에는 평성(平聲)이 거성(去聲)과 같다. 이를테면, 성(星)을 성(聖)이라고 하고, 연(煙)을 연(燕)이라고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평상시에 쓰는 말은 대부분 여진(女眞)의 말과 비슷하다. 심지어는 한 글자를 3, 4자로 지어서 부르는 것도 있는데, 이를테면, 팔(八)을 야득리불(也得理不)이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 글자를 두 자로 지어서 부르는 것이 더욱 많은데, 이를테면, 부(父)를 아필(阿必)이라 하고, 모(母)를 액미(額㜷)라고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상 모두 조선부 주》
살펴보건대, 지금 국속(國俗)에는 부(父)를 일러 아비[阿父]라 하고, 모(母)를 일러 어미[阿㜷]라고 하며, 아프면 아야(阿爺)라고 하고, 겁나면 어마[阿母]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방언으로, 굴원(屈原)이 이른바 “아프고 참담하면 부모를 부르지 않는 적이 없다.”고 한 의리이다. 중국의 소리는 입성(入聲)이 적으므로, 아필(阿必)은 아비[阿父]의 음이 전음(轉音)된 것이고, 액미(額㜷)는 어미[阿㜷]의 음이 전음된 것이다. 아미(阿㜷)란 글자는 《이장길전(李長吉傳)》 및 최치원(崔致遠)의 진감선사비서(眞鑑禪師碑序)에 나오니, 대개 본래는 중국말이다.
○ 인중(人中)을 고려에서는 살랍밀(薩拉蜜)이라고 한다. 《강희기가격물론(康煕幾暇格物論)》 ○ 삼가 살펴보건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을 부를 때 ‘사람[薩拉蜜]’이라고 하는데, 잘못 인중(人中)을 칭하는 말로 되었다. 이는 대개 잘못 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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