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북쪽으로 거용산에 막혀있다.

2022. 9. 19. 09:59백두산

목은시고 14 / () 

청산음(靑山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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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기약 있어 길이 문에 당했는지라 / 靑山有約長當戶
앉아서 거용 등지고 여부를 어루만지네 坐背居庸撫廬阜
 가닥이 종횡하여 산세가 불일치하니 / 三條縱橫勢莫一
어느 곳이 참다운 천부인지   없고 / 未知何處眞天府
동쪽 바다 서쪽 언덕에 자리한 장백산은 / 東溟西岸長白山
마치 태백이 도망갔던 형만 똑같은데 / 有如泰伯逃荊蠻
오악은 중국에서 가장 높게 내버려 두고 / 從敎五岳尊中州
홀로 요해에 걸터앉아 청구와 연하였네 / 獨跨遼海聯靑丘
삼한에 흩어져선 뛰어난 지세를 차지하여 / 散在三韓占形勝
봉우리마다 신선 누각을 솟구쳐 일으키고 / 峰峰聳起神仙樓
누각 아래 흐르는 물은 동해로 달려가 / 樓下流川走東海
봉래산의 운기는 하늘이 내리덮은 듯하네 / 蓬萊雲氣如天蓋
눈이 있어도 티끌 하나를   없거니 / 有眼不見纖塵生
 타고 돌아간들 또한 무엇이 해로우랴 / 駕鶴歸來亦何害
머리 숙이고 앉아서 청산음을 짓다 보니 / 低頭且作靑山吟
마른 버들에  부스럼 비벼댐 흡사하네 / 恰似枯楊便馬疥

[-D001] 청산(靑山) …… 당했는지라 : 

소식(蘇軾) 〈조동년초당(刁同年草堂) 시에 청산은 기약 있어 길이 문에 당해 있고, 유수는 정이 없어 절로 못에 흘러드누나.[靑山有約長當戶 流水無情自入池]”  데서  말이다.

[-D002] 거용(居庸) …… 어루만지네 : 

거용은 연경(燕京) 있는 산명(山名)인데, 험준하기로 이름이 높고, 여부는 바로 동진(東晉) 고승(高僧) 혜원 법사(慧遠法師) 거주했던 여산(廬山) 가리킨다.

[-D003] 천부(天府) : 

산천(山川) 험준한 천연의 요새를 말한다.

[-D004] 태백(泰伯) 도망갔던 형만(荊蠻) : 

형만은  남만(南蠻지방을 가리킨다태백은 ()나라 태왕(太王)  아들 가운데 장자(長子)인데, 막내아들인 계력(季歷) 성자(聖子) () 낳음으로 인해, 태왕이 계력을 후사(後嗣) 삼으려는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태백이 마침내 형만으로 도망가서 () 시조가 되었던 데서  말이다. 따라서 여기의 형만은  남만 지방의 산세를 가리킨 것이다.

[-D005] 마른 버들에 …… 비벼댐 : 

소식(蘇軾) 〈여호사부유법화산(與胡祠部游法華山) 시에 갑자기 좋은 선비 만나 명산에 함께 노니, 마른 버들에  부스럼 비벼댐과 뭐가 다르랴.[忽逢佳士與名山 何異枯楊便馬疥]”  데서  말로,  일시적인 즐거움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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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선생전서습유 4 / 잡저(雜著) 

공로책(貢路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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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말하노라.

우리 동방이 처음 중국과 통하기는 후한(後漢) 건무(建武 광무제(光武帝) 연호) 시대이다. 삼국과 고려에 이르러서는 ()나라ㆍ송()나라ㆍ요()나라ㆍ원()나라를 섬겼는데, 표문(表文) 짓기를 더욱 공경히 하고, 조공을 받드는 일이 없는 해가 없었다.  조공을 들여간 길과   왕조의 국토가 있었던 곳은, 믿을 만한 사록에 갖추어 실려 있으리니, 이제 그것을 상고하여 일일이 들어 말할  있겠는가? 국조(國朝 명조(明朝) 가리킴) 고황제(高皇帝) 도읍을 금릉(金陵) 정하매, 고려 말기의 조공을 바치는 사신이 일찍이 바닷길을 따라가다가 배가 뒤집혀 빠져 죽는 환난을 여러  당하자, 부득이 정흥(定興)ㆍ요동(遼東) 길을 경유하려 했으나 당시 지방을 맡은 자가 재삼 가로막아 국서(國書) 드리지 못하였다. 마침 황제가 바닷길의 험함을 민망히 여겨 요동과 계구(薊丘) 길을 열기를 허락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백여  왕래에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중조(中朝) 경우, 남쪽으로는 왜구(倭寇) 변고가 있어 바다에 연한 지방은 모두 왜구의 노략질에 해를 당하여 손상과 파괴가 이미 극에 이르렀고, 북쪽 지방으로는 흉년으로 기근이 들어 있는 데다 달로() 마구 들어와 여기저기 성을 많이 함락시키는 바람에 도처에서 시체를 밟고 다닐 지경이어서, 평온을 되찾을 길이 없으나, 길이 막힐 우려가 없지 않다. 혹시라도 연로(燕路) 지키지 못해 황제가 피난을 가게 된다면, 주청(奏請)하기에 편한 길이 말미암을 데가 없게 된다. 만약 바닷길을 좇으려 한다면,  명확한 교지(敎旨) 없으니, 누가 - 글자 빠짐- () 좇아 달성할  있겠는가. 향하는 곳에서 거부를 당하는 것이 정요(定遼) 지역 보다 반드시 심하지 않다고는   없을 것이다. 하물며 왜적이 바야흐로 노략질을 함부로 해대며 여러 섬에 출몰하고 있음에랴.

만약에  길이  막히면, 지금을 위한 계책으로서는 장차 조심스레 봉하여  땅이나 지키면서 해내(海內 중국을 가리킴) 평정되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풍파를 무릅쓰고서라도 나라의 명이 반드시 상달되기를 바랄 것인가? 대저  나라를 섬기는 것은 중요한 일로서, 국시(國是) 있는 바에는 반드시 정론이 있을 것이다. 진실로 평소에 미리 강구해 두지 않으면,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응할 길이 없으리라. 너희 선비들은 옛것을 배우며 지금의 것을 통달하고, 반드시 스승이나 벗들을 좇아 이런 난처한 일을 질정해 두고서 내가 묻기를 기다린  오래이니, 각기 남김없이 글로 나타내어라.

 

() 응대합니다. 신이 듣기로, 밝은 임금은  의리를 바르게   이해(利害) 걸린 것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으며,  정성을 권장할  시세의 어렵고 쉬움은 헤아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리로써 일을 판단하시는지라, 경중의 마땅함을 저울질   있고, 정성으로써 자기 마음을 다하는지라 상하의 () 통하게   있습니다. 그것으로써  나라 섬기는 성의를 다하고 그것으로써 나라 보존하는 도리에 통하는 것이니, 《시경(詩經)》의 이른바, “하늘의 위엄을 경외하여 이에 보존하리로다.[畏天之威 于時保之]”라고  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크나큰 왕업의 다스림을 이으시어 천명(天命) 공경히 받들어, 윗자리에 처할 때는 밝고, 아랫자리에 처해서는 충성스러워, 내치(內治) 이미 흡족할 뿐만 아니라,  나라 섬기는 것도 더욱 공순하십니다. 사신의 왕래가 끊기지 않아 빙문(聘問) 예를 공경히 하고, 예물은 잇달아 보내 조공의 의례를 닦으니, 이미  의리를 바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정성을 다하신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시운(時運)에는 막힘과 통함이 있고, 형세에는 어려움과 쉬움이 있으니, 달노() 북방에서 크고,[ 오자(誤字) 듯하다] 교활한 오랑캐는 남방을 막아 혹시 예측하지 못했던 변고가 있어 우리의 조공 길이 끊어진다면, 의리는 이러한 변고에  수밖에 없고, 정성은 시세에 굴복하지 않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상께서는 이미 훌륭한 계책을 가진 인사와 더불어 조정에서 계책을 정하셨으면서도,  비천한 이들 가운데에 혹시 빠뜨려진 의논이 있을까 염려하시어, ()들을 궐내로 특별히 들이시어 친히 ()으로써 먼저 역대의 일을 물으시고, 이어서 당면한 지금의 일을 물으셨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무꾼이나 목동에게까지도 물어보시는  성대하신 뜻은 삼황오제(三皇五帝)보다도 훨씬 뛰어나십니다. 신이 비록 우매하오나 감히 그같이 훌륭한 명령을 공경하여 조그만 정성이나마  바치지 않을  있겠습니까?

신은 삼가 성책(聖策)에서, ‘우리 동방에서부터 일일이 말할  있겠는가?’라고 하신 곳까지를 읽고서 신은 항상 옛날을 상고하고 전대를 살피는 전하의 성대한 마음을   있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하늘에는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임금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동방은 멀리 해외(海外) 있어 비록 별도로  구역이   같으나, 구주(九疇) 가르침과 예악의 풍속은 중화(中華) 뒤지지 않으니, 끝내  줄기 강물이 갈라놓았다고 하여 따로 다른 이역(異域)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화에 조공을 닦은 것이 ()나라 건무(建武) 때로부터 비롯된다고는 하나, 기자(箕子) ()나라에 조현(朝見)하러   지은 맥수(麥秀) 노래 있었고, 연백(燕伯) 분수에 넘치게 제왕의 칭호를 가지자 [ () 자로 해야  듯하다] 묻는 군대를 일으키려고 했으니, 이로 보면 주나라ㆍ한나라 이전에 이미 중국에 통했을 것이나, 단지 문헌의 부족으로 고증해 내지 못할 따름입니다. 이로부터 내려오면서 외처럼 나뉘고 솥발처럼 버틴 삼국[瓜分鼎峙之三國] 닭을 가지고 오리를  고려[操雞搏鴨之高麗] 이르는 동안 예교(禮敎) 점차 갖추어지고 천자(天子) 배알함이 점차 공경스러워져 삼국은 이당(李唐) 대해서, 고려는 삼조(三朝 ()나라ㆍ요()나라ㆍ원()나라) 대해서, 크고 작은 빙문을 반드시 제때에 해서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직분을 잃지 않았으니, 명목상으로는 비록 외국이지만 실은 동방의  제로(齊魯) 따름입니다.

 조공을 바친 통로와 국토의 소재 같은 것은 믿을 만한 사록에 있으니,  어리석은 신하의 우매한 논설을 기다릴 것이 없겠으나, 신이  대략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당나라는 장안(長安) 도읍했고, 송나라는 변경(汴京) 도읍했으니 조공을 바침에 바다를 항행하여 길이 소주(蘇州)ㆍ항주(杭州) 경유했음을 가히   있으며, 요나라와 원나라는 모두 북연(北燕) 도읍했으니, 산을 넘어 요주(遼州)ㆍ계주(薊州) 도달했음을 또한 가히 상정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라고 하는 것은 비단이나  등의 예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삼국과 고려가 대국을 섬기는  게으르지 않았던 것이 과연 의리가 있어서 능히  정성을 다했던 것이겠습니까? 혹시 대국의 도움을 빌려 적대국을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나 아닌지요? 아니면 위세에 눌려서일 ,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지요?  예의는 비록 부지런했으나 반드시 의리에 맞지는 않았고,  의례는 비록 성대했으나 반드시  정성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어찌 우리 왕조에서 의리로써 섬기고 정성으로써 섬기는 것과 동일하게 논할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감히 욕되이 진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신은 엎드려 성책(聖策)에서, ‘국조 고황제가에서 갑작스러운 사태에 대응할 길이 없으리라 하신 부분까지를 읽고서, 전하께서  실마리를 잡아 치우치지 않게  중용(中庸) 쓰시려는 뜻을   있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길 때는 평탄하거나 험난하다고 하여  마음을 바꾸지 않고, 성하고 쇠한 것으로 인하여  예의를 폐하지 않는다.” 하오니, 이를 능히 행하고 있는 경우는 오직 우리 왕조가 중조(中朝) 섬기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우리나라는 북쪽으로 험난한 거용산(居庸山) 가로막혀 있고, 남쪽으로는 깊은 창해가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명국(大明國) 일어나 금릉(金陵) 도읍을 정하면서부터 고려 말의 사신들이 대양을 건널 적에, 거센 회오리바람이나 고래  같은 파도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환난으로 인해, 바친 토산물(土産物)  가운데 겨우 한둘 정도 도달할 지경이었고, 그중에는 배를 제대로 운항하지 못해 바다에 빠져 죽는 경우도 또한 있었습니다.  때문에 바닷길에 어려움이 많자 요양(遼陽) 통하여 공물을 전함으로써 정중한 정성을 펴보려고 하였으나,  지역을 맡은 관리가 영토를 지키면서 길을 빌려 주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황제께서 신성하시어 밝게   밖을 보고 바다를 건너는 어려움을 충분히 짐작하시어 드디어 요양의 길을 열어 왕래하는 사신을 통하게 하셨습니다. 게다가 위엄과 덕망을 널리 펴자 오랑캐가 두려워 복종하였으며, 또한 동방에서는 진정한 군주가 천명을 받아 등극하였습니다. 위에는 온화하고 공경스러운 황제의 덕이 있고, 아래에는 아름답고 성하게 제후의 덕이 있게 되었으니, 남쪽으로는  척의 배도 쳐들어올 위험이 없고, 북쪽으로는 초구(楚丘) 침략이 없게 되었습니다. 중화와 동방이 합하여 한집이 되어, 도움을 주는  - 글자 빠짐- 이미 내려지고 번국(藩國)으로서의 소임이 무겁게 되니, 실로 만세의 그지없는 경사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하늘이 어여삐 여기지 않아 국조에 근심거리가 많아 준동(蠢動)하는 북쪽 오랑캐는 무간(舞干) 교화에 바로잡히지 않고, 볼품없는 남쪽 오랑캐는 항상 독벌레의 독을 피워서 요양 일대는 거의 피비린내 나는 지경으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해안의 두어 고을에 남아 있는 백성이라고는 거의 없는 지경이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중국 조정의 커다란 우환이자 우리나라의 불행입니다. 만약 하늘이 화란을 내린 것을 거두지 않아 난리가 즉시 그치지 않아서, 만에 하나 장성(長城) 지키지 못하고 황제가 남쪽으로 옮겨간다면, 우리나라가 조공을 들여가는 길은 장차 어디를 통할 것입니까? 북쪽으로는  심보를 헤아릴  없는 공순치 못한 오랑캐들을 어떻게 막을  있을 것입니까? 남쪽으로는 지난날 배가 뒤집혀 빠져 죽는 환난이 또한 걱정스럽습니다. 그리하여 장차 조심스럽게 봉토를 지키면서 시기를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도달하여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전하께서 스스로 지혜를 쓰시지 않으시고 모의를  가난한 선비에게까지 미치게 하신 까닭입니다. 신은 청컨대, 옳음과 그름, 이로움과 해로움의 논설로써 우러러 밝으신 이목을 더럽히고자 합니다.

신은 듣건대, 단지 취함과 버림으로써 시비를 삼는 자는  주장으로 삼는 바가 의리일 따름이요, 한갓 이로움과 해로움으로써 경중을 삼는 자는  살피는 바가 시세일 뿐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일은 시세로 말하면, 장차 조심스럽게 봉토를 지키기에도 여가가 없을 것인데, 어느 겨를에  밖의 다른 일을 걱정하겠습니까. 의리로 말하면, 장차 위험을 무릅쓰기에도 여가가 없을 것인데 어느 겨를에 이익을 헤아리겠습니까.

무엇을 일러 시세라 합니까. 이제  오랑캐의 남은 씨알머리들이 만약 천자국으로 가는 조공 길을 막는다면 북쪽을 돌아볼 가망은 진실로 끊어집니다. 만약 굳이 바람과 파도를 무릅쓰고, 중국의 남쪽 변경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면, 표류하고 빠져 죽는 재액이 잇달아 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죽을 고비를 겪고서라도 기어이 죽지 않고 살아나 군왕의 명을 욕되지 않게 하기를 정몽주(鄭夢周) 같이할 사람이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비록 상국(上國) 다다랐다 하더라도 그래도 가로막을 우려가 있으니, 지난날 정요(定遼)에서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천조(天朝) 도달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해적이 날뛰어 수시로 출입하니 만약  독수(毒手) 만나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자기를 사지(死地) 몰아넣어 죽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다면 시세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일러 의리라 합니까. 이제 작은 것으로써  것을 섬겨 군신의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때의 어려움과 쉬움을 헤아리지 않고, 형세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헤아리지 않으며  정성을 다하기만 힘쓸 따름입니다. 달적() 북쪽에서 가로막아 우리의 길을 막을 수는 있겠으나 대국을 섬기는 우리의 정성은 막을  없을 것이요, 황제를 높이는 일념이 끝내 변하지 않는다면 거센 파도는 걱정할 겨를이 없을 것이며, 가는 길을 가로막아 국서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헤아릴 겨를이 없을 것이며, 표독하고 사나운 해적의 노략질도 우려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사신을 보내는 일을 어찌 이런 일로 인해서 잠시라도 폐지할  있겠습니까. 이렇게 일의 옳음과 그름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공자(孔子) 말에, “ 해야 하는 것도 없으며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없어, 단지 () 따를 따름이다.”라고 했으니, 이제 전하의 공경스러운 정성으로써  시비 이해의 사이에 어찌 우매한 신하의  논설을 기다리겠습니까.

또한 신은 들은 바가 있습니다. 옛날  무제(梁武帝) 혼란한 시기에 백제는 양나라가 위기 상황에 처한 뒤에도 조공을 바쳤고,  명황(唐明皇) 태만한 임금이었는데도 신라는 명황이 촉지(蜀地) 피난했던 날에도 빙문의 예를 닦으니, 전대의 역사가 이를 의롭게 여기고 지금까지도  갸륵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나라(백제와 신라)  왕조(양나라와 당나라) 섬긴 것은 반드시 그럴 의리가 있지도 않았고, 그럴 정성이 있지도 않았으면서도 이와 같았습니다. 하물며 전하께서는 반드시 의리로써, 반드시 정성으로써 공경히 당당한 성조(聖朝) 섬기셔야  것인데, 도리어 가만히 앉아서 봉강(封疆) 지키고  사신도 보이지 않으시기를 향인(鄕人) 문을 닫아건 것처럼 하신다면 옳겠습니까. 중조(中朝) 난리는 비록 우리나라가 능히 구제할 바는 아니지만  덩달아  조공까지 폐한다면, 전하께서  영토를 계승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 봉승하는 뜻이 아닐 듯합니다. 신은 진실로  대책이 일의 정세나 요즘의 급무와는 관련이  줄을 압니다만, 다만 유자(儒者) 말은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구할 수는 없는 법이니, 어찌 감히 사곡(私曲)되게 논설하여 평소에 배운 바를 저버리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시험 삼아 밝게 살펴 주소서.

신은 엎드려 성책에서, ‘너희 사자(士子)들은에서 남김없이 글로 나타내어라 하신 것까지를 읽고서 어리석은 [狂夫]일지라도 품은 생각을 남김없이 말하도록 인도하시는 전하의 뜻을   있었습니다. 신은 듣건대, 눈이 어두운 자는 문채 있는 광경에 함께할  없고, 귀먹은 자는 거문고의 음률에 함께할  없다고 했는데, 신은 빈천한 선비로서 귀는 비록 망녕되이 듣고 눈은 비록 망녕되이 보오나,  국시(國是) 관련된 것이나 조정의 의논을 결정하는 것에는 우매한 신이 결정할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청컨대 졸렬한 생각이지만 다시 보잘것없는 충성이나마 바쳐 볼까 합니다. 신은 듣건대, 평상(平常) 대처하기는 쉬우나 이변(異變) 대처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혹시 불행이 있어 위에서 우려한 바와 같게 되면, 험난한 바닷길을 통해서는 도달함을 기약할  없으니, 오늘날 사신의 선정을 신중히 하지 않을  없습니다. 만약 사신이 적격자가  된다면, 신은 생각건대, 전하께서 사대(事大) 명분은 있더라도 실질적인 사대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바람과 파도를 무릅쓰고 독기 있는 안개를 받으면서 만분의 일도 살아날 가망이 없는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안일을 탐하고 구차스럽게 살려는 사람들은 능히   없는 일입니다. 설혹 중도에서 되돌아와 길이 막혀서라고 핑계를 삼는다면,  속임수를 끝내 억측할  없을 것이고, 조공은 끝내 통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만을 위할  () 잊고, 나라만을 위할  가정은 잊으며, 임금만을 위할  몸은 잊어버리는 사람을 얻어 사신의 임무를 맡긴다면 반드시 험난함을 회피하지 않고서 기어코 도달하려고 결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오늘날 사신의 선정을 신중히 하지 않을  없다.”라고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일에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있고, 또한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현명한 임금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을 다할 따름이니,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은 앞질러 요량할  없습니다. 이제 우리 전하의 사대에 있어서의 성실과 불성실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만,  사명이 도달하고 못하는 것은 전하의 책임이 아닙니다. 북쪽 길을 통하지 못하고 남쪽 길도 끝끝내 항행하지 못해, 사신이 가서 백에 하나도 이르지 못한다면, 전하께서는 장차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른바 하늘에 달려 있다.’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국조(國朝) 흔들리지 않는 형세와 반석 같은 안정으로  때는 위에서 우려한 바와 같은 일은 필시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성실을 더욱 힘쓰시고 미연의 일로써 지레 염려하지 마소서. 신은 살아서 임금께 직언(直言)  있는 시대를 만나 항상 전하를 보필할 뜻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전하의 앞에서 진술하고 싶은 흉중에 쌓인 것들이 다만 사대(事大)  가지  뿐만이 아니오나, 짧은 지면에 짧은 시간으로 회포를 남김없이 토설하기 어렵습니다. 혹여 대궐에 나아가 마음속의 요체(要諦)  말씀드릴  있다면,  우매한 신하는  이상 바라는 바가 없겠습니다. 신은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응대합니다.

[-D001] 맥수(麥秀) 노래 : 

()나라가 망한  은나라의 종족(宗族) 기자(箕子) ()나라에 조회 가는 길에 폐허가  은나라의 옛터를 지나가다 보고 지었다는 노래이다.

[-D002] 외처럼 …… 삼국 : 

[] 쪼개듯이 나라가 찢어지기 쉽고, 솥발처럼 서로 버티고  있다는 뜻인데, 어지럽던 삼국 시대를 말한다.

[-D003] 닭을 …… 고려 : 

닭은 계림(鷄林)이요, 오리는 압록강을 말하는데, 고려가 먼저 신라를 치고  뒤에 고구려를 쳐서 어지럽던 국토를 통일시켰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