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강성 金華道衢縣금화도구현에 韓愈한유의 徐偃王廟碑서언왕묘비

2022. 10. 15. 11:22고대사

동광 제7호   >   古朝鮮民族의 二大別, 朝鮮古代史硏究一端
 
古朝鮮民族의 二大別, 朝鮮古代史硏究一端
安自山

1. 내두리
上古 朝鮮史의 차짐새는 아직 학자네의 마새가 일치치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기 가장이 어려운지라 어찐 일이냐 하면 何國의 역사던지 그 上古에는 모도 똑똑지 못해. 朝鮮史도 上古에 잇서서는 기록이 희미하고 갈피가 어수선하여 말하기가 매우 거북한지라. 그러나 연구의 가치는 어러운대 잇는 것이라 지금 우리가 새로운 연구로써 한 번 제겨 보면 취미도 만흐며 또한 우리 조선인의 고대생활이 어떠한 것을 가히 알 것이라.
時方 나의 연구로 말하면 上古의 朝鮮民族은 二大派로 난우어 진 것으로 思惟하노니 제1파는 滿洲 밋 半島에 퍼저 곤달곤달의 부락을 지어 살던 것이오. 제2파는 遼陽大野에 뿌리를 박고 漢族과 씨름하다가 필경 漢地에 深入하여 살던 것이니 前者는 東朝鮮族, 後者는 西朝鮮族이라 命名하여 노코 그 명칭으로써 조곰 논술코자 하는 일이라 하노라.
2. 東朝鮮族
東朝鮮族은 달리 本朝鮮族이라고도 이름을 부티다녀 이는 원래 滿洲와 半島에 퍼저잇는 족속이니 扶餘, 肅愼, 濊貊 辰國의 四大部로 별러 잇서서. 其中에 濊貊은 본시 扶餘에 잇다가서 차차 ㄱ字형으로 밀려 나려와 東北의 지방에 잇던 것이요. 辰國은 半島의 서방과 남북에 ㄴ字형으로 잇섯던 바 追後에 馬, 辰, 幷 三韓으로 난우어진 것이니
後漢書
濊 自謂 與句驪同種 言語法俗 大抵相類 人性愚慤

三四志
扶餘 其印文言 濊王之印 國有古城 名濊城 蓋本濊貊之地

後漢書韓傳
韓有三種 凡七十八國 各在山海間地 合方四千餘里 東西 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이 濊貊의 근본과 辰國에 대한 말은 참 新硏究의 發覺이요. 其外의 것은 기왕부터 一致되어 오는 것이니 지금 다시 喋喋할 필요가 업서 고만 그치고 西朝鮮族의 일을 끄내고저 하노라.


3. 西朝鮮族
남들의 불확실한 말은 탄할 것이 아닌 고로 他說을 평론할 것은 아니요. 나는 특히 西朝鮮族의 史跡을 세어 말하노라.
본래 漢人이 東方人을 夷라 하여 九種으로 적어 나려온 바 其中에 嵎夷(우이)라 한 것은 遼陽에 근거하던 大族이라. 嵎夷가 무엇이냐 하면 고구려니 嵎夷의 古音은 (구리) 곳 句麗의 異譯이라. 이 嵎夷가 漢族과 씨름을 크게 하다가 둘루 난우어서 一은 扶餘로 들어와 濊貊을 밀어내고 高句麗를 세우고 차차 남으로 나려서서 百濟를 건설한 자라. 또 一은 靑州地方에서 크게 활동하다가 차차 中原의 南方으로 向하여 淮水邊地에서 여러나라를 세우고 살다가 周穆王(주목왕)때에 잠시간<99> 큰 국가를 세웟스니 이 증거는 下文과 가티 여러군데 잇나니라.
史記正義
嵎夷旣畧 嵎夷靑州也 堯命仲 理東方靑州嵎夷之地 日所出處 名曰陽明之谷  

尙書
海垈 惟靑州 嵎夷旣畧 

後漢書
王制云東方曰夷O有九種O夏后氏失德 夷人始叛O桀爲暴虐 諸夷內侵 殷湯革命 伐而定之 至于仲丁 藍夷作冠 自是 或服或叛 三百餘年 武乙衰退 東夷寢盛 遂分遷淮垈 漸居中土O 後 徐夷僭號 乃率九夷 以伐宗周 西至河上 穆王 畏其方熾 乃分東方諸候 命徐偃王 主之O陳涉起兵 天下慣亂 燕人衛滿 避之朝鮮 因王其國 百有餘歲 武帝滅之 於是 東夷始通上京

箕子가 朝鮮王이 되엇다 함은 이 西朝鮮族과의 관계요. 東朝鮮族과는 하등의 아랑곳이 업는 줄로 단언하노니 그 증거는 下文과 가트니라.
三才圖會
箕子 率中國五千人 入朝鮮

漢書
殷道衰 箕子去之 朝鮮

遼東志
遼東 爲箕子過化之邦


東夷之國 朝鮮爲大 得箕子之化 

隋書
高麗之地 本孤竹國也 周代 以之封箕子 

舊唐書
遼東之地 周爲箕子之國 

箕子 이후에는 燕人 衛滿의 통치가 잇섯다가 그 三世가 漢에게 亡함이 되어 辰國으로 들어와 辰王이 되어서 그 일파는 中土에 侵入하여 크게 활동하기는 徐偃王이니 그 偃王이 누구냐 하면 東朝鮮族의 여러 創業主와 동일한 傳說인 卵生兒로써 仁義의 정치를 행하여 30餘 國을 통괄하여 일시적의 대국을 건설한 그이라.
史記秦本記正義
博物志云 徐君宮人 有娠而生卵 以爲不祥 棄於水濱 孤獨母有犬鵠蒼街所棄卵以歸 覆煖之 乃成小兒生偃故 宮人聞之 更取養之 及長 襲爲徐君 夏侯志云 翁州上 有徐偃王城 傳云 昔 周穆王 巡狩諸侯 共尊偃王

淮南子人間訓
昔 徐偃王 好行仁義 陸地之朝者 三十二國 

文獻通考
舒偃姓子爵 在盧江舒縣 舒鳩偃姓子爵舒之別封 盧江南 * 참고 안휘성 서성현

同靑州條
海垈惟靑州 嵎夷旣畧 舜分靑州 爲管州 皆置牧 周以徐州 合靑州 其土益大 川曰淮泗 春秋時 可考者五國 齊莒萊牟譚O秦時爲郡 三齊郡瑯郡遼東郡



西朝鮮族의 생활은 어떠터냐 하면 이는 그 토지의 利勢를 取하여 牧畜과 농업으로써 자뢰하여서, 그 문화라 할 것은 仙이니 이 仙術은 東洋의 중심사상을 지은 것이라. 中原이 神仙을 사모하기는 전혀 遼陽지방의 언저리를 표준하여 갈구한 것이라. 고로 神仙의 道術家도 만히 遼陽지방에 잇서서, 그 神仙의 思想이 一方으로 東朝鮮으로 들어와 또한 本朝鮮의 수천년 문학사상을 매즌일도 잇나니라.
池氏鴻史(지씨홍사)
伏羲氏 名曰蒼芽 是謂蒼精故 號春皇 母華胥氏 爲帝於九夷 兆三畵著八卦

歸藏
黃帝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刻名萬神

圖書集成
大道著手東 而本統起乎北易曰 帝出乎震 震東方也

 
그런데 西朝鮮族이 몹시 날처 한족과 각축하엿스되 그 中原의 全土를 앗지 못하여서. 그러나 思想上으로는 漢地를 통괄한 세음이니 그 神仙思想은 上下에 퍼저 누구던지 미치지 안흔이가 업서서. 秦始皇 漢光武 가튼 이도 仙道에 미처 허둥거렷스며 일반 文士 詩人들도 仙의 催眠에 빠저 국가도 不顧, 家族도 不顧, 오직 山水의 樂에 주잔저 無事閑遊를 爲主하엿스니 이 어찌 西朝鮮族의 무형한 성공이라 아니할까 이것은 실상 기피 연구하여 볼 거리니라.


4. 東朝鮮族의 形止
<100>

西朝鮮族이 漢族과 겨러본 동안에 漢人의 文物을 取하여 東朝鮮族에게 傳及하니 東族은 그 문물을 섭취하면서 점점 강성하여 나가서. 그리하여 西朝鮮族의 근거지를 반이나 점령한 일이 잇스니 이는 三國史記와 盧龍縣志를 뒤저 보아도 알기 쉬운 일이니라.
盧龍縣志 城隍廟記
東以全遼並蔽 承平二百餘年 民不識兵革 邇來三韓發難 廣寧以東 幾成甌脫 楡關一線 風鶴時驚 供億輪將 民不堪命 吏於玆土者 惟願與城俱存 不翅以身 視城矣

隋書
高麗 本孤竹國也 周代 以之封箕子 漢世 爲三郡 晉氏 亦統遼東 今來不臣 別爲外域

封禪書正義節文
孤竹故城 在平州 盧龍縣十二里 殷時諸侯孤竹國也



그리할 둥안에 西朝鮮族은 仙術을 가지고 東方으로 넘어와 國業을 창설한 일도 만흐니 그럼으로 創業主의 전설은 모도 仙說로 化하여서. 高句麗 始祖도 仙이요. 新羅 始祖의 전설도 仙이요 加耶, 耽羅 등의 始祖도 다 神仙의 說話러라. 그뿐 아니라 地名도 역시 그 便의 것을 떼어 쓴 것이 만흐니 三韓의 韓이라 한 것은 秦의 同族이던 韓人들이 辰國에 와서 살므로써 譯하여 韓國이라 한 것이요. 九月山도 登州의 山名, 平壤도 遼陽의 地名이요 義州도 亦然이라. 그런데 東朝鮮族이 三國 이후에는 南北 2部로 갈라저 버렷스니 北部는 滿洲라 명칭한 것이 그것이라. 그 북방족속은 점점 강성하여 中原을 倂呑하기 시작하니 제 1차는 金이라하여 中原의 북반부를 점령이엿섯고 최근에는 中原全土를 점령하여 淸國을 세워 필경 西朝鮮族의 宿願을 伐成하엿다하기 可하다할만콤 되엇나니라.
史記 秦本記正義
同州韓地縣 與秦同祖 秦穆公二十二年 滅之

同韓世家正義
韓城 古韓國也 古今地名云 韓武子 食采於韓原地城也

 
 백과사전 : 한(韓)나라의 선조는 주(周) 천자와 같은 성(姓)인 희씨(姬氏)이다.
그 후 후예들은 진(晉)나라를 섬겨 한원(韓原)에서 봉토를 받아 한무자(韓武子)라고 칭했다.
한무자의 3대 후손에 한궐(韓厥)이 있었는데, 봉토의 명칭을 좇아 한씨(韓氏)라 했다.
 韓武子(한무자) 韓萬(한만). 춘추시대 곡옥(曲沃)사람으로 이름은 만(萬)이다. 시호가 ‘武’였으므로 한무자라고 불린다.
 
後漢書
辰韓耆老 自言 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 割東界地與之 或名之爲秦韓

尙書傳 孔氏疏
 卽韓也 音同而字異也

이의 설명은 여긔 그치나 後日의 틈을 타서 다시 상술할 터이옵(終)<101>

濊貊예맥
綱目註강목주에 曰왈 濊예는 곳 貊맥이라하고 彊域考강역고에 曰왈 貊맥이 九種9종에 濊貊예맥이 其一그하나이라 하엿스니 濊예와 貊맥이 二國2국이 아니라 一族일족을 혹 稱칭 濊예요 혹 稱칭 貊맥이라 하엿도다. 濊貊예맥이 大興安嶺대흥안령을 中心중심하여 察哈爾하얼빈와 熱河열하의 地方지방에 거하다가 其中그중에 寒濊추운곳에있던 예가 점점 남하하여 今지금 直隷직예, 山東산동, 江蘇강소, 安徽안휘, 浙江절강 등지를 遠拓먼거리까지개척하고 大徐帝國대서제국을 建건하여 中國중국 商王상왕 小乙소을의 甲寅갑인으로부터 秦始皇진시왕 戊寅무인까지 1105년간을 歷력하엿는대 其中그중에 偃王언왕은 東方동방 諸族제족의 盟主맹주이엇나니 浙江省절강성 金華道衢縣금화도구현에 韓愈한유의 徐偃王廟碑서언왕묘비가 잇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