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2. 18:57ㆍ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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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44권 / 표전(表箋)
평 서경헌첩 표(平西京獻捷表)
[DCI]ITKC_BT_1365A_0440_010_0160_2002_004_XML DCI복사 URL복사
김부식(金富軾)
신 부식(富軾) 등은 아뢰옵니다.
지난 을묘년 봄 정월에 서경(西京)이 반역을 계획하므로, 신 등은 엎드려 제명(制命)을 받들고 출정하였사오나, 지리가 험하고 성이 견고하여 오래토록 평정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겨울 10월부터 그 성 서남쪽 모퉁이에다 흙과 나무를 쌓아 올려 산을 만들어, 포차(砲車)를 그 위에 나열하고 큰 돌을 날리니 부딪치는 곳은 다 무너지자 따라서 크게 공격하여, 성문과 비옥(陴屋)이 모두 부서졌으며, 금년 2월 19일 새벽을 기하여 몰래 군사를 출동시켜 쳐들어가니 적이 무너져 항거하지 못하고, 위칭(僞稱)하는 소위 원수(元帥) 최영(崔永)과 부원수(副元帥) 조광(趙匡)의 시체를 묶어가지고 나와 항복하므로, 신 등은 성안에 들어가서 성궐(城闕)을 청소하고, 군ㆍ민을 위안시켰던 것이옵니다.
왕자(王者)의 군사는 정벌은 있으나 전쟁은 없는 것이니, 천위(天威)가 미치는 곳에는 그날로 누그러지는 것입니다. 중하(中賀)
신은 듣자오니, 한광무(漢光武)가 외효(隗囂)를 처서 3년 만에 이겼고, 당(唐) 덕종(德宗)이 이희열(李希烈)을 토벌하여 4년 만에 평정하였거늘, 무지한 간흉(姦兇)이 우리 성지(城池)를 점령하여, 죄는 이미 효경(梟獍)보다 더하고, 악은 역시 구산(丘山)만큼 쌓였던 것이온데, 오직 성산(聖算)이 실수가 없으시어, 1년 만에 이처럼 이기셨습니다. 함매(銜枚 입에 물건을 물려서 말을 못하게 하는 것)하고 성을 넘어 군사를 벌여 성문을 공격하였고, 군사가 겨우 칼날이 어울리자 적은 이미 기운을 잃으므로, 보병(步兵)과 기병은 용맹을 떨치어 번개같이 공격하고 호통치며 고함지르며 앞으로 나아가 파도가 무너지듯 하여, 운기(雲旗)와 뇌거(雷車)는 곧장 경애(鯨鯢 적군을 말한 것)의 갈퀴를 베이고,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唳]이 한데 뭉쳐 금혁(金革)의 소리로 되자, 솥 안의 고기는 바퀴를 돌며 살길을 찾고, 숲 속의 새는 놀라 높이 날아 모두 흩어지며, 죄가 중해서 스스로 면하지 못할 줄을 아는 자는 식구들과 함께 불에 타 없어지고, 뜻이 비겁하여 능히 결단을 못하는 자는 정확(鼎鑊)을 달게 여겨 포로가 되었으니, 적일(積日)의 근심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이에 회서(淮西)에 들어가 성상(聖上)의 뜻을 선포하매, 거꾸로 매달렸다 풀린 것같이 되었고, 장안(長安)을 회복하여 위로하니 유민(遺民)들은 대개 ‘돌아와 머물러야겠다.’ 하였으니, 어찌 시전(市廛)만이 변하지 아니했으리오. 우뚝히 성궐(城闕)도 그대로 보존되었으며, 해독은 이미 제거되고 피비린내도 쾌히 씻어졌기에, 드디어 이궁(離宮)의 먼지를 청소하고 원묘(原廟)의 의관(衣冠)을 우러러보니, 보좌(黼座 선왕의 위패를 모신 곳)는 완연하고 잉궤(仍几)도 여전하오며, 부로(父老)ㆍ사녀(士女)와, 어초(漁樵)ㆍ추요(芻蕘)가 춤추고 뛰놀며 앞을 다투고, 웃음과 노래로 서로 어울리며, 이르기를, “오늘 다시 왕인(王人)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옵니다.
이는 마침내 성상 폐하께옵서 천지의 항상 살게 하는 것을 본받으시고, 신무(神武)를 써서 죽이지 아니하시므로, 삼령(三靈)이 복을 내리고 사해가 정성을 바치어, 번개처럼 치고 바람같이 달려 일융(一戎)이 평정을 얻었고, 내[川]가 흐르고 산이 솟아서 진실로 만세의 안녕을 연 것이옵니다.
신 등은 친히 예모(睿謀)를 받들어, 나가 군기(軍紀)를 관장하오매, 성신(聖神)의 홍조(洪造)를 힘입어 오직 결단하였을 뿐이옵고, 장수의 재목이 아니오라 졸속(拙速)이 없어 부끄럽사오며, 춤추고 기뻐하는 마음은 보통보다 만배나 더하옵니다.
[주-D001]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唳] :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에, “부견(苻堅)이 군사 백 만을 거느리고 진을 벌여 비수(肥水)에 육박하자 사현은 군사 8천 명으로 하여금 물을 건너 들이치니 부견의 군사가 무너져서 갑옷을 벗어던지고 밤에 달아나는데 바람 소리나 학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모두 왕사(王師)가 몰려온다고 여겼다.” 하였다. 의구심이 많은 데 쓰는 말이다.
[주-D002] 원묘(原廟) :
《사기》 〈고조기(高祖記)〉에, “효혜(孝惠) 5년에 이르러 고조(高祖)를 생각하여 패궁(沛宮)을 고조(高祖)의 원묘(原廟)로 만들었다.” 하였고, 집해(集解)에, “원(原)은 두 번째라는 뜻이니 이미 먼저 묘(廟)를 세웠는데 지금 또 다시 세우므로 원묘(原廟)라 했다.” 하였다.
[주-D003] 추요(芻蕘) :
나무꾼을 말한다. 《시경》 〈대아(大雅)〉 ‘판장(板章)’에, “선민의 말이 있으니, 나무하는 무식한 자에게도 물어보라 하였다[先民有言詢于芻蕘].” 하였다.
[주-D004] 일융(一戎) :
일융의(一戎衣)의 준말로, 한 번 군복(軍服)을 입는다는 뜻. 곧 전쟁을 이름. 《서경》 〈무성편(武成篇)〉에, “한 번 융의(戎衣 갑옷)를 입으니, 천하가 평정되었다[一戎衣 天下大定].”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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