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북연의 군주 풍홍(馮弘, ?~438)의 무덤

2022. 10. 15. 12:53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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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당필기 2

풍홍의 무덤〔馮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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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연(成龍淵 성대중) 운산 군수(雲山郡守) 지냈다. 그가   말이다.

“고을에 큰 무덤이 있는데 황제총(皇帝冢)이라고 하네. 돌을 쌓아 만든 것인데, 한쪽 모퉁이가 무너져 내렸기에 들여다보니 움푹하게 속이  비었더군. 사람들은 황제란  위만(衛滿)이라 하는데, 어떤 이는 풍홍(馮弘)이라고도 하네.”

살펴보건대 위만은 황제를 칭한 적이 없다. 풍홍은 고구려에 맞아들여져 평곽(平郭)에서 살다가 얼마  북풍()으로 옮겨졌다. 장수왕이 장군 손수(孫漱) 고구(高仇) 등을 보내 북풍에 있는 풍홍을 죽였다. 시호는 소성(昭成)이다. 운산이 바로 고구려의 북풍이다.

[-D001] 풍홍의 무덤 : 

풍홍(馮弘, ?~438)은 십육국 시기 북연의 군주이다. 북연의 문성제 풍발(馮跋) 아우로, 형이 죽자  조카를 죽이고 찬탈해서 6년간 재위하였다. 437 북위의 침략으로 쫓겨나 고구려로 도망했다가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당시 풍홍의 무덤은 위만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성대중의 《청성잡기》 4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