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9. 10:54ㆍ백두산
사료 고종시대사7 > 1875년(고종 12년) 4월 11일 > 영국 공사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심을 예방하기를 청함
기사제목 | 영국 공사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심을 예방하기를 청함 |
연월일 | 고종 12년(1875년, 淸 德宗 光緖 元年, 日本 明治 8年) 4월 11일 |
4월 11일, 영국 공사관 교습(敎習) 가리사(柯里士)가 면담 하에 제출한 단자(單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가 살피건대 장백산(長白山)은 중국의 발상(發祥)의 터전으로 그곳은 일본으로부터 1,500여 리 떨어져있는데, 조선은 일본과 300여 리 떨어져 있으니, 조선의 지세를 논하자면 비유하건대 중국과 일본 양국의 부교(浮橋)와 같습니다. 하물며 조선은 일본의 변방 경계에 접하여 두 산이 대치하고 있고 산의 입구가 곧바로 일본으로 향하니 마치 받드는 듯한 형세입니다. 조사해 보건대 183년 전 일본은 조선과 전쟁을 벌여 북소리 한 번에 조선을 함락시켰으니, 이는 조선이 유약해서가 아니라 실로 지세의 불리함에 한정되었을 뿐입니다. 당시 일본인은 흉폭하고 완악하게 살인을 즐겨, 조선의 크고 작은 사람들을 죽이고 상처 입힌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다행히 중국에서 군사를 파견하여 구원해줌에 힘입어 비로소 일본이 점점 국경 밖으로 축출되어 조선으로 하여금 위기를 바꾸어 평안하게 해주었으니, 이는 실로 중국의 힘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조선에서 중국에서 다시 살려준 은혜에 감격하고 이를 받들어 비로소 마음을 돌려 향화(向化)하게 되었고 공헌(貢獻)이 끊이지 않은 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선과 일본은 마음에 놀라고 오싹해하는 것이 없지는 않으며, 조선은 비록 마음에 원한을 품고 있어 보복을 도모하고자 하여도 또한 힘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풍문으로 듣건대 현재 일본과 조선은 강론(講論)하는 바가 있는데 비록 그 상세한 내용은 듣지 못하였지만 일본이 유구와 화약(和約)을 맺은 일을 본떠서 혹은 조선에 땅을 요구한다든지 혹은 지금 조선이 일본에 공물을 바치고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중국과 절교하라고 한다면 이는 중국과 크게 관계되는 일일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의 일본은 옛날의 흉폭하고 완악하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 (중략) …
만약 (일본이) 양국을 연합해서 중국을 엿본다면 그 근심은 또한 상당할 것입니다. 이로써 보건대 조선을 버려서 적의 쓰임이 되게 하는 것은 방법을 세워 보호하여 그 힘을 빌어 적을 방어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살피건대 일본의 지세는 하늘이 바다 가운데에 만들어준 나라로, 4면이 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 이미 바다 쪽의 험함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태서(泰西) 군기(軍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나라가 그를 공격하면 실로 그 국경으로 깊이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에 있어 나아가면 공격할 수 있고 물러나면 수비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급히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올린 말씀을 허황되다 여기지 않으신다면 마땅히 어떻게 방법을 세워 예방할 것인지를 다시 상세하게 아뢰겠습니다. 삼가 올립니다.
출전 ㆍ『淸季中日韓關係史料』 권 2, 문서번호 204
사료 고종시대사7 > 1875년(고종 12년) 4월 11일 > 영국 공사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심을 예방하기를 청함
기사제목 | 영국 공사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심을 예방하기를 청함 |
연월일 | 고종 12년(1875년, 淸 德宗 光緖 元年, 日本 明治 8年) 4월 11일 |
四月十一日, 英館敎習柯里士面遞單稱.
竊査, 長白山爲中國發祥之基, 該處距日本一千五百餘里, 而朝鮮距日本三百餘里, 以朝鮮地勢論之, 譬諸中日兩國之浮橋. 況朝鮮臨日本邊界, 兩山對峙, 山口直向日本, 若有拱仰之勢. 査一百八十三年前, 日本與朝鮮戰, 一鼓而下朝鮮, 非朝鮮懦弱, 實限於地勢之不利耳. 當時日本人兇頑嗜殺, 將朝鮮大小人口, 殺傷甚多. 幸得中國遣兵救援, 始將日本漸漸逐出境外, 使朝鮮得以轉危爲安者, 實中國之力也. 故朝鮮感載中國覆育之恩, 始歸心向化, 貢獻不絶, 至於今日. 若今日與朝鮮及日本, 無不心驚胆寒者, 朝鮮雖銜恨於心, 欲圖報復, 而又若於力之不足. 風聞, 現今日本與朝鮮, 有所講論, 雖其詳不可得而聞, 惟恐日本仿與琉球和約事, 或索地於朝鮮, 或今朝鮮進貢於日本, 而使之絶交於中國, 則與中國大有關係. 況今日之日本, 非同昔日兇頑可比. … (중략) … 若連合兩國, 窺伺中國, 其患更烈. 由此觀之, 與其舍朝鮮, 以資敵用, 不如設法保護, 借以禦敵. 再査日本地勢, 天成國立海中, 四面汪洋, 旋而繞之, 旣有海面之險, 又有泰西軍器之利, 故他國攻之, 實難沈入其境. 至於日本與中國, 進可以攻, 退可以守, 此又不可不急爲籌畵者也. 如以所呈不爲虛誕, 其應如何說法預防之處, 再爲詳細陳之. 謹呈.
출전 ㆍ『淸季中日韓關係史料』 권 2, 문서번호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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