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 19:04ㆍ이성계의 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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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년 기해(1419) 12월 10일(경진)
01-12-10[04] 두 임금이 윤회ㆍ원숙과 중국으로 도망간 중들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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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임금이 수강궁 편전에서 촛불을 켜고 병조 참의 윤회ㆍ지신사 원숙을 불러서, 좌우의 근시를 물리치고 중들의 사건에 대하여 말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오늘 주상이 나에게 중 30명이 도망하여 중국에 들어간 사건을 보고하였다. 이 말을 듣고, 문득 전자에 윤이(尹彝)ㆍ이초(李初)가 도망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거짓말로 본국에 대한 일을 고자질하고, 가짜 왜구를 꾸며 명나라를 엿본 일이 생각나는데, 그때 고황제(高皇帝)의 총명으로도 또한 의혹하여, 우리 나라에서 여러 해를 두고 변명하여도 마침내 제대로 밝히지 못하였다. 과인의 초년에 상당군(上黨君) 이저(李佇)를 외방에 귀양보냈는데, 중 하나가 도망하여 중국에 들어가 사실을 지나치게 고하였으므로, 지금 황제가 또한 이것을 믿고 본국 사신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 왕이 친족을 죽였다.’ 하였다. 오랜 뒤에 과인의 심지를 자세히 알고 고해 바친 자의 거짓임을 깨달았거니와, 또 황제가 우리 나라에서 야인을 초안(招安)하여 사모(紗帽)와 품대(品帶)를 주니, 그들이 돌아가서는 품대와 사모를 말 옆구리에 매달았다는 말을 듣고 비웃었다 하는데, 이와 같은 것은 전부 불령(不逞)한 무리가 도망하여 명나라에 들어가 거짓말로 사건을 일으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또 동서 양계(兩界)는 경계가 명나라와 연해서 사람이 도망쳐 들어가기 매우 쉬운데, 하물며 중들이 도망쳐 들어가기는 평민보다도 더 쉬움에랴.
지금 황제가 부도(浮屠)를 신봉하는 것이 소량(蕭梁)보다 더 심하여, 《명칭가곡》을 외우는 소리가 천하에 퍼져 있고, 공화(空花)와 불상(佛像)의 상서를 그린 그림이 파다하여, 일시에 풍습이 쏠려서 미연(靡然)히 따라가고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앞서 이미 사사(寺社)의 전토와 백성을 혁파하여 겨우 열에 하나를 남기고, 이번에 또 절의 노비를 다 없앴으니, 비록 그들이 자취(自取)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찌 원망이 없겠는가. 이들이 이미 희망을 잃었고, 또 황제가 불도를 숭상한다는 것을 들었으니, 반드시 도망하여 중국에 들어가 말을 꾸며서 참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황제가 〈불도를〉 숭상하고 신봉함이 저와 같은데, 우리 나라의 〈불도를〉 혁파함이 이와 같음이겠느냐. 중들이 여기서 도망하여 저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는 것이다. 옛날 사람도 때에 따라 변고(變故)를 제압하기 위하여 권도(權道)로 임시변통(臨時變通)하는 일이 있었으니, 지금 중들에게 스스로 위안하고 기쁘게 하는 마음을 열어 주기 위하여, 속히 서북면(西北面)과 황해도 등 사신이 내왕하는 곳에 중과 늙은이들을 모아서 황제가 하사한 《명칭가곡》과 위선(爲善)ㆍ음즐(陰騭) 따위를 항상 읽고 외우게 하며, 또 황제가 〈불도를〉 숭상하여 그 갚음[복]을 얻고 상서로운 일이 여러 번 나타난 모양을 찬하하는 시와 노래를 지어서 기생들에게 가르치게 하라. 그리하여 명나라 사신이 와서, 연도(沿道)를 지날 때에 경을 외우는 자가 있고, 연회에서 가무할 때에 〈황제의〉 덕을 칭송(稱誦)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황제가 듣고 반드시 우리 나라가 황제의 마음을 본받는다 하여 기뻐할 것이니, 비록 도망하여 들어가 참소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말이 행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자복사(慈福寺)의 전지(田地)를 중들이 모이는 곳에 이속시켜 그들의 마음을 편케 하고자 한다. 이것은 과인이 불씨의 화복설(禍福說)을 겁내서가 아니요, 또 천자가 불교를 배척한다 하여 갑자기 군사를 일으켜 우리 나라를 치겠느냐마는, 그러나 지금의 권도로서는 이렇게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도 어찌 모르겠느냐. 변계량ㆍ허조 및 3의정과 더불어 비밀히 논의하고 충분히 계획하여, 주상에게 아뢰어 과인에게 전달하게 하라.”
하였다. 숙 등이 물러나와 계량과 조와 논의하였는데, 계량이 아뢰기를,
“상교(上敎)가 매우 옳으니, 경을 외우고 부처를 숭봉하는 일은 당연히 거행할 것이나, 그러나 요는 그들의 마음을 편케 하여서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으니, 신의 의견으로서는 〈절의〉 노자(奴子)를 돌려주어서 그들의 마음을 편케 하고, 양계(兩界)에 엄령(嚴令)을 내려 도망치는 것을 막고, 또 이미 도망쳐 들어간 중을 돌려보내도록 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조는 아뢰기를,
“신이 명을 듣고 보니, 전하의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생각은 국가의 장원한 계획에서 나온 것으로서 신들의 미치는 바가 아닙니다. 불도를 숭상하고 경을 외우는 일은 삼가 하교를 받들어 거행하겠습니다마는, 노자를 돌려준다는 것은 불가합니다. 다만 서울 절에 거주하는 중들은 거의 모두가 양반의 자제로서 나무를 지고 물을 긷는데 반드시 원망이 있을 것이니, 얼마쯤 노자를 주어서 그 마음을 위로하소서.”
하였다. 숙이 계량 등과 함께 3정승 댁에 가서 비밀히 의논하였다.
【원전】 2 집 349 면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상-불교(佛敎)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신분(身分)
[주-D001] 고황제(高皇帝) :
명 태조.
[주-D002] 양계(兩界) :
평안도와 함경도.
[주-D003] 부도(浮屠) :
불도.
[주-D004] 소량(蕭梁) :
양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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