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 16:32ㆍ이성계의 명조선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9월 9일 甲申 2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우정승 성석린 등이 면복과 서책을 내린다는 예부의 자문을 가지고 오다
우정승 성석린(成石璘)과 제학(提學) 이원(李原)·이정견(李廷堅)이 경사(京師)에서 돌아왔는데, 석린 등이 가지고 온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은 이러하였다.
"영락(永樂) 원년 7월 초3일에 본부관(本部官)이 봉천문(奉天門)에 일찍 조회[早朝]하고 흠봉(欽奉)한 성지(聖旨)에, ‘옛날 우리 부황(父皇)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께서 통어(統御)하시던 처음에 조선 국왕이 능히 천명(天命)을 알고 맨먼저 표(表)와 조공(朝貢)을 진달하매, 부황께서 그 충성을 아름답게 여기고 매우 우대를 가하였는데, 뒤에 그 나라가 간궤(奸宄)하여 틈[釁]을 만들고, 백가지로 능멸(凌蔑)하고 거만하였으니, 표전(表箋) 안에 기풍(譏諷)을 품은 것, 진헌한 말이 다리를 저는 병[瘸病]이 많아서 탈 수 없는 것, 안장[鞍]안에 쓴 글자가 설만(褻慢)하여 예(禮)가 없는 것 같은 것이었다. 부황께서 그 공헌(貢獻)한 것을 물리치고 악한 짓을 꾸민 사람을 경사(京師)에 데려다가 국법(國法)으로 논(論)하여, 간사한 꾀가 모두 드러났다. 부황께서 살리기를 좋아하는 마음[好生之心]이 천지(天地)와 같아서 차마 베[誅]지 못하고, 다만 먼 지방에 안치하였는데, 홍무 30년에 부황께서 다시 그 사람의 죄가 경중(輕重)이 있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물며 귀양보낸 지가 이미 오래 되어 멀리 고향을 떠났으니, 어찌 부모 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하여, 마침내 돌아오게 하여 그 나라로 방환(放還)토록 하시었는데, 불행하게도 부황께서 승하하시매, 건문(建文)이 어질지 못하고 효도치 못하여 고의로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어기고, 취(取)하여 돌아온 사람을 막아 두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짐이 즉위하던 처음에 조서(詔書)를 보내어 일렀더니, 저 나라에서 천도(天道)를 공경하여 순(順)히 하고, 우리 부황의 깊은 은혜를 생각하여, 곧 배신(陪臣)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받들고 조공(朝貢)을 바쳤다. 감히 부황의 마음을 본 받아서 이미 고명(誥命)과 인장(印章)을 주었는데, 이제 다시 사신을 보내 와서 사례를 하였다. 너희 예부(禮部)는 부황께서 지난번에 방환하려고 하신 사람을 조사하여, 중한 형벌을 범(犯)해서 취(取)하여 돌아오게 하지 않은 사람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데려다가 조선으로 방환(放還)하고, 또 국왕의 면복(冕服)과 서적(書籍)을 주청(奏請)하였는데, 이것은 저들이 중국 성인(聖人)의 도(道)와 예문(禮文)의 일을 사모할 줄 아는 것이니, 그 뜻이 가상하다. 면복은 부황의 예전 전례(前例)와 체제(體制)에 의하여 제조하고, 서적은 정리하여 주라. 저들이 가지고 온 포필(布匹) 등의 물건은 저들의 마음대로 팔게 하여 막지 말고, 의사(醫師)를 청한 일만은 허가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이대로 흠준(欽遵)한 외에 지금 성지(聖旨)의 사의(事意)를 갖추어 말하여 본국에 이자(移咨)해 알립니다."
처음에 석린 등이 갈 때에 예부에 올리는 글 한 통을 초잡아 보내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차래 사신(差來使臣)066) 의정부 우정승(議政府右政丞) 성석린(成石璘) 등은 인물(人物)의 일을 위하여 말합니다. 본국(本國)이 성조(聖朝)를 신하(臣下)로서 섬긴 이래 지극히 정성스럽고 다른 뜻이 없는데, 다만 땅이 편벽되고 풍속이 저속하여, 언어(言語)·문자(文字)가 체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차견(差遣)한 인원(人員)이 성지(聖旨)를 받고, 매매(賣買)하러 간 사람들이 일찍이 죄를 얻어서 지금까지 여러 해가 되었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성천자(聖天子)께서 즉위하시어 천하(天下)를 대사(大赦)하여, 그 부모 처자가 조석으로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이제 각 사람의 성명과 본래 차견(差遣)하였던 사유를 아래에 갖추어 기록하오니, 바라건대, 주문(奏聞)하시고 각처의 관사(官司)에 공문을 보내어 그들이 죽고 산 것을 물어서, 살아 있는 자가 있으면 본국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고, 이미 사망한 자는 그 사망한 날짜를 알려 주시어, 처자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하여 고아와 과부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이 때문에 갖추어 올리오니, 빌건대 밝게 살피시어 시행하소서.
1. 홍무(洪武) 28년 11월 11일에 고명(誥命)을 청하여 문하부사(門下府事) 정총(鄭摠)과 종인(從人) 한 사람을 보내었고, 같은해 10월 초10일에 홍무(洪武) 29년 정조(正朝)를 하례하기 위하여 서장관(書狀官)인 통례문 판관(通禮門判官) 양우(楊遇)와 통사(通事)인 사역원 부사(司譯院副使) 오진(吳眞)을 보내었고, 홍무 28년 6월 13일에 동년(同年) 9월 18일의 성절(聖節)을 하례하기 위하여 통사(通事)인 사재감(司宰監) 송희정(宋希靖)과 압물(押物)인 별감(別監) 권을송(權乙松)을 보내었고, 홍무 29년 2월 15일에 표전(表箋)을 지은 사람인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김약항(金若恒)과 종인(從人) 한 명을 보내었고, 동년 7월 19일 표문(表文)을 계품(啓稟) 교정(校正)한 사람인 예문직관(藝文直館) 노인도(盧仁度)를 보내었고, 홍무 30년 8월 18일에 동년(同年) 11월 초5일의 천추절(千秋節)에 하례(賀禮)하기 위하여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 유호(柳灝)와 압물(押物)인 정안지(鄭安止)를 보내었고, 동년 12월 28일에 계본(啓本)을 쓴 사람인 예조 전서(禮曹典書) 조서(曹庶)와 통사(通事)인 판사역원사(判司譯院事) 곽해룡(郭海龍)을 보내었습니다.
1. 홍무 22년 정월 초10일에 요동 진무(遼東鎭撫) 조경(趙景)이 무영전(武英殿) 안에 있는 금의위(錦衣衛)·의례사(儀禮司) 등 관사에서 성지(聖旨)를 주준(奏准)하였는데, ‘고려(高麗)는 매매(賣買)하여 가라. 본국에 없는 물건을 사기 위한 상인은 천 명·만 명을 불문하고, 수로·육로로 명백한 문인(文印)이 있으면 모두 통과시켜, 마음대로 강서(江西)·호광(湖廣)·절강(浙江)·서번(西番)에 가서 매매하여 가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본국에 없어서 공응(供應)치 못하는 왕부(王府)에서 복용(服用)할 약미(藥味) 등의 물건을 구하기 위하여, 홍무 25년 5월 일에 김원우(金原雨)의 한 패 33명을 보내어 선지철(宣之哲)의 배 한 척에 타고, 또 한 패 김윤원(金允源) 등 16명은 박연해(朴連海)의 배 한 척에 타고 산남(山南) 지면(地面)의 청주부(靑州府) 등처에 가서 매매하러 갔는데, 지금까지 살고 죽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석린 등이 조정(朝廷)에 이르러 면대하여 아뢰고 예부(禮部)에 바치었는데, 예부에서 주달(奏達)하여, 황제께서 이 명령이 있었던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276면
· 【분류】
외교-명(明)
· [註 066]
차래 사신(差來使臣) : 봉명(奉命)하여 온 사신이란 뜻.
○右政丞成石璘、提學李原ㆍ李廷堅, 回自京師。 石璘等齎來禮部咨曰:
永樂元年七月初三日, 本部官早朝於奉天門, 欽奉聖旨: "昔我父皇太祖高皇帝統御之初, 朝鮮國王能知天命, 首陳表貢, 父皇嘉其忠誠, 甚加優待。 後來其國, 奸宄生釁, 侮慢百端, 如表箋, 內含譏諷; 進馬, 多瘸病不堪; 鞍內寫字, 褻慢無禮。 父皇却其貢獻, 取其造惡之人至京, 論以國法, 姦謀畢露。 父皇好生之心, 同於天地, 不忍誅之, 止發遠方安置。 洪武三十年間, 父皇復憫其人罪有輕重, 況遷徙已久, 遠離鄕土, 孰無懷念父母妻子之心! 遂令取回, 放還其國。 不幸父皇賓天, 建文不仁不孝, 故違祖訓, 將所取回之人, 阻當不發。 朕卽位之初, 遣詔諭之, 彼能恭順天道, 念我父皇深恩, 卽遣陪臣, 奉表貢獻。 朕體父皇之心, 已給與誥印, 今復遣使來謝。 恁禮部便査考父皇已先欲行放回之人, 除犯該重刑的不取, 其餘的都取來分割, 放他回去。 他又奏請國王冕服及書籍, 這是他知慕中國聖人之道、禮文之事, 此意可嘉。 冕服照依父皇舊例體製造, 書籍整理給與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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