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8. 18:02ㆍ대륙조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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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2 / 풍속(風俗)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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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 거리를 잘 달려서 준마(駿馬)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말[馬]이 귀하고 수레가 없어서 도보(徒步)로 달리기를 익혀 온 때문이다. 그러므로 낮에 걷기 위하여 밤에 식량을 장만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보면 보통 사람보다 갑절을 더 걷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길로는 연경(燕京)이다. 역졸(驛卒)이 걸어서 수레와 말을 모는데, 역졸 하나가 일생 동안에 연경을 40~50회 정도 왕복하게 되므로, 이수(里數)로 따지면 40만 리쯤 되고 보수(步數)로 따지면 1억 4천 4백만 보가 되니, 이는 그 대충을 들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세속에서, 땅에서 하늘까지의 거리는 9만 리가 된다고 하는데, 밀도(密度 정밀한 척도(尺度))로써 계산하면 땅에서 하늘 중간까지의 거리는 15만 □천 3백 46리가 되므로, 역졸이 도보로 연경을 왕복한 이수는 땅에서 하늘까지의 거리보다 다섯 갑절이나 더 먼 거리이니,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대부(大夫)가 행역(行役)할 때 하루의 길은 30~40리에 불과하므로 연경을 석 달의 길로 삼지만, 잘 걷는 자가 빨리 달리면 수십 일이 못 되어 왕복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수레와 말이 많아서 걸어다니는 자가 없으면서도 행역(行役)하는 것을 괴롭게 여기므로, 감발 차림으로 걷는 우리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마치 큰 붕새 앞에 조그만 비둘기와 다름이 없다. 우리 동쪽 사람들이 잘 달린다는 것은 예로부터 그만한 증거가 있다. 《왕회해(王會解)》에, ‘발인(發人)은 녹(鹿)과 같은데, 녹은 사슴처럼 신주(迅走)함을 뜻한다.’ 하였고, 그 주에 ‘발인은 동이(東夷)의 사람을 말하고 신주는 빨리 달림을 말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역은 곧 옛적에 구이(九夷)가 살던 곳이므로 지금까지 그 풍기(風氣)가 없어지지 아니하여 빨리 걷고 빨리 달리는 것인지.
《후한서(後漢書)》에,
“고구려(高句麗)에서는 절할 때에는 한 다리를 꿇고 걸을 적에는 모두 달음질친다.”
하였다. 남연(南燕) 모용초(慕容超) 때 고구려에서 천리인(千里人) 10명을 바쳤는데, 천리인이란 하루에 1천 리를 갈 수 있는 자를 말한다. 담헌 선생(湛軒先生) 홍대용(洪大容)의 《연행잡기(燕行雜記)》에,
“내가 일찍이 고사(古史)에서 ‘조선(朝鮮)의 동자(童子)들은 잘 달린다.’는 말을 보고 내심 괴이하게 여긴 것은, 동자들이 잘 달리는 것은 그 천성(天性)이라고 본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중국의 동자들을 보니, 아무리 경쾌한 놀이를 하더라도 절대로 우리나라의 동자처럼 뛰거나 달리는 자가 없었다.”
하였는데, 나도 그 점을 괴이하게 여겨 늘 까닭을 연구해 보곤 하였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 ‘동(東)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였고, 《풍속통(風俗通)》에는 ‘동쪽 사람들은 생동(生動)하기를 좋아하는데, 만물(萬物)도 땅을 저촉(觝觸)해서 생겨난다.’ 하였으니, 저촉도 움직인다는 뜻이다. 대저 동쪽 사람들이 걸음이 빠르고 또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만물이 땅의 기운을 저촉해서 생겨나는 동쪽 지역에서 난 때문에 생동(生動)하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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