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5. 08:16ㆍ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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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동문선 제3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송 조신득 본자(送曹伸得本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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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金宗直)
붉은 천리마에 좋은 꼴을 배불리어야 / 赤驥飽香𦱽
북연과 남월을 아침저녁에 갔다 오고 / 燕越朝暮返
굳센 활은 가득히 당길 수 있길래 / 强弩能持滿
살을 쏘면 반드시 먼 곳에 미치것다 / 其發必及遠
숙도는 나의 처제 / 叔度吾婦弟
종이밭 갈기를 좋아하여 / 頗好紙田墾
약관에 스승이 없이도 / 弱冠無師資
제법 삼우로 돌리었네 / 能以三隅反
시사를 모조리 공부하고 / 詩史徧搜討
경전을 또한 애써 익히니 / 經菑亦穮蔉
중씨ㆍ계씨가 마치 훈호인 양 / 仲季若塤箎
난초ㆍ혜초가 이랑에 가득했네 / 蘭蕙滿畦畹
가득히 쌓인 것 이미 남음이 있으나 / 充積巳有餘
누가 그 자물쇠를 열어 주리 / 誰爲發關楗
때로 불평의 울음을 지으면 / 時作不平鳴
드러나게 예원을 기울였것다 / 斑斑傾藝苑
시문의 파란이 차츰 출렁이어서 / 波瀾漸滂沛
기초한 필치에 화려를 겸했으나 / 奇峭雜華婉
향인이 절과 신을 가벼이 여기니 / 鄕人輕節信
나도 힘 모자라 밀지 못하였더니 / 吾力難推輓
인재를 빠뜨림이 적은 성조에서 / 聖朝少遺材
어찌 이 보옥을 모를 것인가 / 何況此琰琬
하루아침에 명성이 하늘(임금)에 들리니 / 一日聲徹天
어찌 담을 넘어 도망함을 본뜨랴 / 寧學踰垣遯
공거에 조명을 받잡고 / 待詔於公車
관에서 주는 밥을 먹더니 / 得喫太官飯
어명으로 내리신 글제에 / 御題出如綸
붓을 놀림이 병에서 물을 쏟는 듯 / 筆落瓴水建
두자미가 도리어 우스워라 / 却咲杜子美
대번에 춘관에서 포곤의 영광 / 春官與褒袞
내시들이 밑에서 굽실거리고 / 巷伯趨下風
허리에 인끈을 척 늘였더니 / 腰綬繫已穩
이윽고 국외에 나가는 사절을 좇아서 / 俄從出彊使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게 되니 / 張帆指日本
이험을 한결같이 보는 장한 뜻 / 撫壯一夷險
그대의 그 마음을 내 짐작하네 / 君心吾自忖
때는 해가 남쪽으로 향하는 여름 / 時維日南陸
훈풍에 밀보리가 흔들리는데 / 風景搖麥阪
바닷물이 맑디맑아 기름과 같고 / 海水澹似油
인개들도 조용히 싸움이 없네 / 鱗介無鬪狼
배 타기를 편안히 말 타듯 하니 / 乘船如騎馬
마치 침상에 누워 쉬는 듯 / 如在牀息偃
가소, 가서 그 고장의 풍토 살피고 / 去去拾風士
우리 만나기는 해늦을 무렵 / 團欒期歲晩
물정은 훼예가 쉬운 터이니 / 物情易毁譽
매사에 겸손하여 스스로 미찌소 / 受益宜自損
돌아오면 성은이 더 우악하리니 / 歸來增睿渥
어찌 한갓 호권에만 따를 것인가 / 豈徒從虎圈
그대여, 힘쓰라, 충성과 효도 / 勉哉忠與孝
내 시가 진실로 간절하옵네 / 吾詩誠繾綣
[주-D001] 종이밭[紙田] 갈기 :
문필(文筆)로 생활을 한다는 말이다.
[주-D002] 제법 …… 들리었네 :
공자가, “한 귀퉁이[一隅]를 가르쳐 주거든 그가 삼우(三隅)로 미루어서 돌려 생각하지 못하면 말해 주지 않았다.” 하였다.
[주-D003] 중씨(仲氏) …… 훈호(塤箎) :
훈(塤)과 호(箎)는 모두 악기(樂器)의 이름인데, 시경에 “백씨(伯氏)는 훈을 불고 중씨(仲氏)는 호를 분다.”라는 말이 있다.
동문선 제57권 / 서(書)
대 고려왕 답 견훤 서(代高麗王答甄萱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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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無名氏)
엎드려 오월국(吳越國) 통화사(通和使) 반상서(班尙書)가 전한 조서 한 통과 아울러 족하의 내려 보인 장서(長書)에 일을 서술한 것을 받들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니 빛나는 수레의 민첩한 사신이 제서(制書)를 보내왔고 척소(尺素 한 자[尺]의 종이)에 가득한 좋은 말은 겸하여 가르침을 주는 것을 받았습니다. 조서를 받들고 비록 감격하였으나 그대의 편지를 펼쳐 보고는 의혹됨이 없지 않습니다. 이제 돌아가는 편에 의심스러운 마음을 폅니다. 나는 위로는 하늘의 내리심을 받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추대(推戴)함이 간절함으로 하여, 과분하게 장수의 권병(權柄)으로써 경륜(經論)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요즈음은 삼한(三韓)의 액운으로 구주(九州)에 흉년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황건적(黃巾賊)에 투속(投屬)되었고, 전야(田野)는 모두 적토(赤土)가 되었습니다. 거이 풍진(風塵)의 경계가 그치어 이웃나라끼리 재앙을 구원하기를 바라서, 이에 선린(善隣)으로 화친 맺었더니 과연 수 천 리의 농상(農桑)이 업을 즐기었고, 7, 8년간 사졸(士卒)들이 한가히 지냈는데, 유년(酉年) 10월[陽月]에 갑자기 일이 생겨 서로 교전하게 되었습니다. 족하는 처음은 적을 가볍게 여겨 앞으로 내닫기를 당낭(螗蜋)이 수레바퀴를 들이받듯이 하다가 필경에는 어려움을 알고 용퇴(勇退)하기를 마치 모기가 태산을 지듯 하고는, 합장[拱手]하여 말을 하되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오늘 이후로는 길이 화호할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맹세를 변한다면 귀신이 죽일 것이다.” 하기에, 나 역시 싸움을 그치는 것이무(武)임을 숭상하고 죽이지 않는 것이 인(仁)임을 기약하여, 드디어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던 것을 풀어 주어 피곤한 군사들을 쉬게 하였으니, 아들을 볼모로 삼는 것을 사양하지 않고 다만 백성을 편하게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남방(南方) 사람들에게 큰 덕을 준 것인데, 뜻밖에 맹세로서 마신 피가 마르지도 않아서, 흉한 위엄을 다시 지어 땅벌떼의 독이 생령을 침해하고 미친 호랑이떼가 서울에 횡행하므로, 금성(金城)은 몹시 군색하였고 황옥(黃屋 임금의 수레)이 대단히 놀랐으니, 의(義)로써 주(周) 나라를 높이는 것을 누가 제환공(齊桓公)ㆍ진문공(晋文公)의 패업(霸業)과 같다 하겠습니까. 틈을 타서 한(漢) 나라를 꾀한 것은 오직 왕망(王莽)과 동탁(董卓)의 간사함을 견줄 뿐입니다.
그래서 왕의 지극히 높으심으로 하여금 굽혀 족하에게 자(子)라고 일컫게하니, 존비가 차례를 잃고 상하가 함께 근심하여 말하기를, “보필[元輔]의 순일한 충성이 아니라면 어찌 사직을 재흥(再興)시키겠는가.” 하였으며, 나를 사특한 마음이 없고 존왕(尊王)하는 뜻이 간절하다고 하며, 조정에다 두고 위태로운 나라를 붙들게 하였습니다.
족하는 호리(毫釐)같이 작은 이익만을 엿보고 천지같이 두터운 은혜를 잊어서 군왕(君王)을 베어죽였고 궁궐을 불살랐으며, 경사(卿士)들을 소금에 저리듯하였고 백성들을 무찔러 죽였으며, 후궁들을 빼앗아 수레를 같이 하였고 진보(珍寶)를 빼앗아 배에 가득 실었으니, 악독함이 걸(傑)ㆍ주(紂)보다 더하고 인(仁)하지 못함이 효경(梟獍 흉악한 짐승)보다 심하였습니다.
이에 나의 원한은 하늘이 무너지듯 지극하고 하늘을 우러르는 정성이 지극하여, 거의 새매가 참새를 쫓는 것을 본 받아 견마의 노력을 펴 다시 군사를 일으킨 지 2년이 되었습니다.
육지의 싸움은 우레와 벼락을 치듯하였고 바다의 싸움은 범이 얽히고 용이 솟치듯하여, 움직이면 공(功)을 이루었고 시작하면 헛된 것이 없었습니다.
윤반(尹邠)을 해안에서 추격하자 갑옷은 산같이 쌓였고, 추조(鄒祖)를 변성(邊城)에서 사로잡자 나자빠진 시체는 들판을 덮었습니다. 연산군(燕山郡)의 밭두덕에서는 길환(吉奐)을 군진(軍陣) 앞에서 베어죽였고, 마리성(馬利城)의 변두리에서는 수오(隨唔)를 깃발 아래서 죽였습니다. 임존성(任存城)을 뺏던 날에는 형적(邢積) 등의 수백 명이 몸을 버렸고, 청주(靑州)를 깨뜨릴 적에는 직심(直心) 등 4, 5명의 무리가 머리를 바쳤습니다. 그 때문에 동수(桐藪)에서는 깃발을 바라보고 흩어져 달아났고, 경산(京山)에서는 도리옥[璧]을 품고 항복하였습니다. 강주(康州)는 남방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귀부(歸附)하였고, 나부(羅府)는 스스로 서방(西方)에서 동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침공하는 것이 이 같은데 어찌 수복(收復)하는 것이 멀겠습니까. 기필코 지수영(泜水營) 가운데서 장이(張耳)의 천 가지 한(恨)을 씻고, 오강정(烏江亭) 위에서 한왕(漢王)의 한 번 이긴 공을 이룩하여, 풍파(風波)를 가라앉히고 온 바다를 길이 맑게 할 것이니, 하늘이 돕는데 천명이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물며 오월왕(吳越王) 전하께서 포황(包荒)하시는 덕이 흡족하였고, 작은 것을 아끼시는 인(仁)이 깊으셔서 특별히 궁중에서 조서를 내려 청구(靑丘)의 어려움을 수습하려고 하니 이미 훈계를 받고 가히 존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족하가 왕명을 받들어 흉한 병기를 다 철수시킨다면, 비단 상국의 어진 은혜에 부응될 뿐 아니라 아마 동해(東海)의 끊어진 계통을 이을 것이고, 만약 허물을 고치지 않는다면 후회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습니까.
[주-D001] 황건적(黃巾賊) :
한 나라 말년에 장각(張角)이란 사람이 푸른 하늘은 없어지고 누른 하늘이 생긴다고 하여, 머리에 누른 수건을 쓰고 난리를 일으켜서 온 천하가 소란하였으므로 그들을 황건적이라 하였다. 그 후로는 민간에서 그런 종류의 난리가 일어나면 그것을 황건적에 비유하였다.
[주-D002] 당낭(螗蜋) :
사마귀가 마차가 굴러올 때에 그 마차바퀴를 향하여 두 앞발을 벌리고 대항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덤비는 것을 쇠똥벌레에 비유한다.
[주-D003] 무(武) :
싸움을 그치는 것이 무(武)이다. 무(武)라는 글자가 그칠 지(止) 자와 창 과(戈)자를 합하여 된 것이니, 즉 창 쓰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참 무(武)라는 뜻이다.
[주-D004] 패업(霸業) :
춘추 시대(春秋時代)의 종주국인 주(周) 나라가 제후들을 통솔할 역량이 없어져서, 온 중국 천지가 여러 제후들의 침략과 쟁탈로 혼란한 것을, 제환공이 먼저 나서서 그 제후들을 억압하고 주 나라의 왕을 높게 모시어 한때 천하의 양정(良政)을 보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는 진문공(晉文公)이 그와 같은 사업을 하였으므로, 그들을 패(覇)라 하여 왕(王)과 구별하였다.
[주-D005] 왕망(王莽)과 동탁(董卓) :
모두가 한(漢) 나라 때의 역적들.
[주-D006] 장이(張耳) :
진시황(秦始皇)이 죽은 뒤에 천하는 다시 소란해져서 여러 크고 작은 영웅들이 일어나서 몇 만 몇 10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왕(王)이 되는 판에, 장이(張耳)는 자기의 부하였던 진여(陳餘)에게 배반당하며 실패하였다. 그래서 분함을 품은 장이는 한(漢) 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에게로 귀순(歸順)하여, 그의 힘으로 지수(汦水)라는 냇가에서 진여를 섬멸하고 원수를 갚았다.
[주-D007] 오강정(烏江亭) :
한 나라를 건국한 유방은 초패왕(楚覇王)인 항우(項羽)와 여러 해를 두고 싸우다가, 최후에 해하(垓下)라는 곳에서 항우에게 큰 타격을 주어서, 항우는 오강 나룻가에서 자살하였다. 정(亭)은 나루터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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