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4. 00:45ㆍ고대사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2 32권 관련단체 Ⅱ > Ⅵ. 신한청년당 > 8) 新韓靑年黨의 부흥에 관한 건
제목 | 8) 新韓靑年黨의 부흥에 관한 건 |
문서번호 | 高警 제1479호 |
발신일 | 대정14년 5월 4일 |
발신자 |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
8) 新韓靑年黨의 부흥에 관한 건
高警 제1479호
대정14년 5월 4일
.........................................
▪ 한국민족의 문화 창조
한국민족은 창조력이 남다르게 뛰어난 민족이다. 지금으로부터 4252년 전, 즉 중국의 요순시대에 우리는 국가를 창조하였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의 국조인 단군께서는 거짓말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살인하지 말라는 12조의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단군께서는 남녀의 유별함을 강조하고, 궁실과 의복의 제도를 정하였으며, 도로를 내고 배와 마차를 만들었으며, 물길을 정비하고 문자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제천단을 만들어 하늘에 대한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백성들을 독려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5세기 전, 고구려에서는 기와, 자기, 유리 등을 발명하였으며 20여 종의 염료를 사용하였다. 12세기 전 당나라군대가 고구려의 도읍을 점령했을 때는 금속활자를 사용하여 인쇄한 국사 48권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약 19세기 전인 백제시대에는 이미 공화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15세기 전 고구려 · 백제 · 신라 3국은 모두 현대와 비슷한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로부터 17종의 악기와 노래 70여 곡이 전래되었다. 중국 측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독특한 음악과 무용이 유행하였다. 중요한 제전에는 노란색 비단옷을 입은 48명의 악사로 악대를 조직하여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수군통제사 李舜臣이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해군을 격멸하였다. 鄭平九는 비행거를 만들어 왜군 小西行長의 진영을 정찰하였다. 또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경성의 한 발명가는 환등활동사진을 발명하여 친우들과 즐기다가 요술을 부린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하였다.
별건곤 제12·13호 > 내가 자랑하고 십흔 朝鮮 것-現代文明의 産母, 活字의 發明은 朝鮮이 首位
잡지명 | 별건곤 제12·13호 |
발행일 | 1928년 05월 01일 |
기사제목 | 내가 자랑하고 십흔 朝鮮 것-現代文明의 産母, 活字의 發明은 朝鮮이 首位 |
필자 | 李允宰 |
기사형태 | 논설 |
내가 자랑하고 십흔 朝鮮 것-現代文明의 産母, 活字의 發明은 朝鮮이 首位
李允宰
한 社會의 文明이 發達되고 못됨은 그 사회에 刊書의 만코 적은 것으로 徵證하게 된다. 오늘날의 문명이란 것도 그 실상은 知識을 傳播하며 學問을 普及케 하는 書籍의 廣布에 말미암음이요 서적의 광포는 다만 印刷에 편리를 주는 活字의 創製에 잇다 할 것이다. 그런 즉 근세문명에 대한 활자의 공덕이 얼마나 큰 것임을 알 것이다.
활자가 어느 때부터 발명되엇는가 먼저 西洋의 것부터 말해보자. 和蘭人 라운렌트·코스타르씨가 木과 鉛으로 활자를 제작한 것이 西紀 1428년이나 세상에 만히 이름이 들어나기는 西紀 1438년에 木製活字를 製用한 독일인 요한·구텐벨흐氏로써 다 안다. 그러나 西紀 1452년에 이르러 요한·파우쓰트 及 페테르·쇄페르 兩氏의 共力으로 종래의 활자를 크게 개량하여 金屬製 활자를 製用하엿스니 西洋에서 활자의 완성은 실상 이때로써 비롯이라 할 것이다.
우리 朝鮮은 녯적 新羅 적부터 이미 활자를 製用하엿다 하나 이에 대한 確的한 考證을 볼 수 업고 다만 高麗中葉에 이르러 李奎報文에
夫帝王之政, 莫先於制禮, 基沿革也損益野, 宣一定之, 以淑人心, 以齊風俗矣, 安可因循姑息, 불卽立常典, 使之紛然異同哉, 本朝自由國以來, 基禮制之損益, 隨制靡一, 病之久矣, 至仁廟, 始勅平章事崔允儀等十七臣, 集古今同異, 商酌折中, 所書五十卷, 命之曰詳定禮文, 流行於世, 然後, 禮有所歸, 而人之不感矣, 是書跨歷年*, 簡脫字缺, 難於考審, 予先公迺今補緝, 遂成二本, 一付禮官, 一藏于家, 基志遠也, 果於遷都之際, 禮官遑遽未得*來, 則幾若已發, 而有家藏一本得存焉, 予然後, 益暗基志, 且幸基不失, 用鑄字, 印成二十八本, 分付諸司藏之, 凡有司者謹傳之勿替, 勿負予意之痛勤也
라 한 것을 보면 이 글 가운대에 처음으로 鑄字(곳 活字)라는<58> 말을 보게 된다. 그것이 木製活字엿던지 혹은 金屬活字엿던지 꼭 단정하기 어려우나 鑄字라는 글자를 보면 반듯이 金屬製活字인 것이 의심업다. 그러고 이때는 麗史를 보아 高麗 高宗 21년 곳 西紀 1234년으로 알 것이니 高宗이 蒙古의 侵寇를 피하여 江都(곳 江華)에 遷都하고 우리의 禮文이 兵禍로 인하여 湮滅된 것을 걱정하며 鑄字版으로써 詳定禮文 28본을 인쇄하엿다는 것인대 이를 보면 그때에 그것을 인쇄하기 위하여 倉卒히 鑄字를 발명한 것이 아니요. 이미 잇던 鑄字를 사용하엿슴에 不過한 것일지니 이 以前으로 幾百年前에 된 것이며 또 그 倉志者가 엇떠한 사람인지는 아직 思索力이 부족한 나로서 잘 알 수가 업다. 활자의 발명이 假使 高宗 때에 된 것으로 친다 하더라도 西洋보다 거의 200년이나 압선 것은 숨길 수는 업는 일이다.
이보다 좀 먼저로 宋의 慶歷年間에 畢昇이란 사람이 膠泥로써 활자를 제작한 일이 잇섯스나 이는 다만 一時的<59> 試用에 불과한 것이요 계속적 발달이 잇지 아니하얏스매 무슨 功績이라고 나타난 일이 업섯다. 淸朝 康熙帝적에 이르러 圖書集成을 出版할 때에 처음으로 銅字活版을 쓰고 乾隆帝적 四庫全書를 출판할 때에 鋟木活字를 쓰게 되엇스니 支那는 겨우 이때부터 활자가 발달된 것으로 알 것이다. 또 芝蜂類說에 『鑄字印書, 倉自本朝, 非中國所有』라 함을 보아도 활자의 발명은 단순히 우리의 獨創的인 것이 의심업고 우리 朝鮮에 活版印刷가 한창 盛行할 때에 그네들은 아직 꿈도 꾸지 아니 하엿던 것 갓다. 이에 의지한다면 우리가 支那보다도 오히려 4, 500년이 압섯다하야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로 우리 나라 활자발달의 經路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겟다. 鑄字 印刷는 高麗 高宗 이후에도 물론 계속적으로 발달되엇슬지요. 다만 文獻에 실리어 잇는 것으로는 恭讓王朝에 書籍鋪鑄字를 설치한 것이고 그후 恭讓王 4년에 書籍院을 설치하여 活字製作과 書籍의 일을 맛게 하며 또 거긔에 官制까지 制定한 일이 잇섯다. 그러고 李朝에 이르러 더욱 발달을 보게 되엇스니 太宗 3년(西紀 1403년)에 鑄字所란 관서를 설치하고 內帤金을 내어 銅製鑄字 10만개를 鑄成하여 丁亥字라 이름하엿스며 其後에도 자꾸 개량과 발전을 힘써서 世宗朝에 庚子字, 甲寅字이며 文宗朝에 壬申字이며 世祖朝에 乙酉字이며 成宗朝에 辛卯字, 癸丑字가 잇섯고 英宗朝에 또 개량을 가하여 生生字, 整理字라는 이름이 잇섯고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만은 발달이 잇섯스나 다 들 수 업다. 이와가티 활자인쇄로 한 國政의 大要를 삼아서 書籍의 廣布에 注力하엿슴은 世界文化史上에 한 特筆할 만한 일이 아닌가.
이를 보건댄 녯날 우리 민족의 독창력의 이럿틋 만핫슴과 발명력의 이럿틋 컷슴은 세계에 엇더한 민족이라도 따르지 못할만하지 아니하엿는가.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도리어 이러케도 문명에 뒤떠러저 잇서 똑똑한 한 개의 印刷機關의 설비도 잇지 못하게 됨으로 요만한 것이라도 항상 남의 손을 빌리지 아니할 수 업게 된다. 우리가 진실로 그 獨創力, 發明力을 그대로 發揮하엿더면 오늘날 西洋의 소위 物質文明이란 것을 壓頭하기엔들 무엇이 부족하엿스랴마는 지금와서 남들이 다하는 온갓 것을 흉내도 내지 못하니 이를 한 懶惰의 습관이라 할 가 혹 暴棄의 心性이라 할가. 한갓 스스로 한심할 뿐이로다. 그러고 저러고 이 문명의 利器인 활자의 발명이 우리 朝鮮으로써 세계에 가장 먼저 되엇다는 것을 알게되는 때에 우리는 이것이 한 民族的 大矜耀요 世界的 大功績이 된다는 그 千古不朽의 偉功을 끼치어 노흔 點에서 자연히 자랑의 말이라도 나오지 아니할 수 업게 된다. (끗)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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